{"exported_at":"2026-05-13T12:58:05.328496Z","count":141,"posts":[{"id":1,"source":"naver","title":"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きみの鳥はうたえる)》의 배경, 하코다테의 밤거리","content":"사토 야스시의 하코다테를 여행하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짙은 잔상. 바로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きみの鳥はうたえる)》다. 목적 없이 부유하는 서점 아르바이트생 '나', 룸메이트 '시즈오', 그리고 직장 동료 '사치코'. 세 남녀가 함께 술을 마시고 당구를 치며 흘려보내는 하코다테의 짧고 뜨거운 여름밤은,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 끝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의 멜랑콜리를 완벽하게 담아낸다.\n​\n📍\n청춘의 허기를 달래던 밤, 하세가와 스토어(ハセガワストア)\n세 주인공이 슬리퍼를 끌고 나와 야식을 사던 친숙한 편의점. 하코다테 시민들의 소울푸드인 '야키토리 도시락(やきとり弁当)'을 파는 하세가와 스토어는\n이 영화에서 가장 일상적이고 생생한 청춘의 무대가 된다. 이름은 '야키토리(닭꼬치)'지만, 실제로는 돼지고기를 꽂아 굽는 것이 하코다테 야키토리 도시락. 달콤짭짤한 냄새가 밴 도시락 하나를 나눠 먹으며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에 충실했던 세 사람의 온기가 그곳에 짙게 남아 있다.\n​\n📍\n다정한 거리감의 온도, 하코다테 모토마치 커피점(函館元町珈琲店)\n​\n하치만자카(八幡坂) 비탈길에 조용히 자리 잡은 이 고즈넉한 찻집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 '나'와 사치코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곳이다. 세 사람이 함께 뭉쳐 다닐 때의 들뜨고 끈적한 공기와는 사뭇 다르게, 두 사람만이 남겨진 이 공간에서의 시간은 차분하고도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짙은 나무의 온기가 느껴지는 인테리어와 정성스레 내린 드립 커피의 향. 매서운 바닷바람을 피해 이 낡고 다정한 찻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영원할 수 없음을 알기에 더 애틋했던 두 사람의 조용한 눈빛이 마주 앉은 빈자리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n​\n📍\n목적 없는 발걸음이 머물던 곳, 다이몬(大門)의 밤거리\n영화 속 인물들은 끊임없이 하코다테의 밤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클럽에서 해방감에 젖어 춤을 추고, 다이몬 주변의 좁은 골목들을 취기 어린 발걸음으로 배회한다. 츠가루 해협의 바닷바람이 부는 밤, 이름 모를 술집의 네온사인 아래를 비틀거리며 걷던 그들의 뒷모습은 목적지를 잃어버린 우리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처럼 쓸쓸하면서도 묘하게 아름답다.\n​\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200353834","published_date":"2026. 3. 3. 22:10","scraped_at":"2026-04-05 06:06:38"},{"id":2,"source":"naver","title":"영화 《오버 더 펜스》의 하코다테 공원","content":"작가 사토 야스시의 '하코다테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영화 《오버 더 펜스》는 부서진 사람들이 기어코 서로의 울타리를 넘어 다가가는 이야기다. 이혼 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고향 하코다테로 도망치듯 돌아온 남자 시라이와(오다기리 죠). 그는 직업훈련학교에서 목공을 배우며 실업급여로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버텨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견고한 울타리(펜스)를 치고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엉뚱하고 위태로운 여자 사토시(아오이 유우)를 만난다.\n오버 더 펜스\n드라마\n2017\n야마시타 노부히로\n블로그 글\n더보기\n밤에는 카바쿠라에서, 낮에는 유원지에서 일하는 사토시는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불안하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맹렬한 생명력으로 닫혀 있던 시라이와의 펜스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는다. 결코 완벽하지 않은, 오히려 바닥까지 부서져 본 두 사람이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서툴게 다가가는 과정은 하코다테의 서늘한 공기 속에서 짙은 먹먹함을 안겨준다.\n​\n📍\n기묘하고도 애틋한 구애의 춤, 하코다테 공원(函館公園)\n영화 속에서 사토시가 낮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은 하코다테 공원 내에 있는 레트로한 미니 유원지 ‘고도모노쿠니(こどものくに)’다. 동물원이 함께 있는 이곳에서 영화의 가장 인상적이고도 상징적인 장면이 탄생한다. 사토시는 우리 안의 새(타조) 앞에서 마치 자신도 한 마리 새가 된 것처럼 깃털을 달고 파닥거리며 기묘한 구애의 춤을 춘다. 날지 못하는 새처럼 처절하게 춤을 추는 사토시의 모습은 처연할 만큼 고독하고 애틋하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온전히 이해받고 싶어 남몰래 몸부림치던 그녀만의 절박한 언어였을지도 모른다.\n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ab_etc&mra=bkEw&pkid=68&os=4069069&qvt=0&query=%EC%98%A4%EB%B2%84%20%EB%8D%94%20%ED%8E%9C%EC%8A%A4%20%ED%8F%AC%ED%86%A0\n하코다테 공원\n１７番地 Aoyagicho, Hakodate, Hokkaido 040-0044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200337618","published_date":"2026. 3. 2. 21:50","scraped_at":"2026-04-05 06:06:38"},{"id":3,"source":"naver","title":"영화 《풀의 울림(草の響き)》의 배경, 하코다테 도모에대교","content":"\"꼭 미친 사람처럼 달린다니까.\"\n\"미치지 않으려고 달리는 거야.\"\n영화 《풀의 울림(草の響き)》에서 주인공 카즈오와 아내와의 대화\n사토 야스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화려한 야경에 가려진 하코다테의 날것 그대로의 풍경을 보여준다.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마음의 병을 안고 고향 하코다테로 돌아온 주인공 카즈오는 의사의 권유로 매일 거리를 달리기 시작한다. 오직 숨소리와 발소리에만 집중하는 이 단순한 반복이 어떻게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지 깊이 공감하게 하는 영화다.\n​\n📍 끊임없이 달리고 또 달렸던 치유의 길, 도모에 대교\n주인공 카즈오가 묵묵히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달렸던 길이다. 하코다테 항구의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달릴 수 있는 '도모에 대교(ともえ大橋)'는 그의 거친 숨소리가 짙게 밴 곳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저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정직한 행위. 바다를 곁에 두고 땀 흘려 달리는 카즈오의 모습은, 러닝이라는 외롭고도 단순한 운동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한 위로임을 보여준다.\nTomoe Big Bridge\nHakodate, Hokkaido,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그날은 남편이 아침에 일을 해야 했기에 혼자 하코다테의 아침을 달려보기로 했다.\n매해 겨울마다 홋카이도를 방문하고 있지만 눈길을 달려보는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온 아이젠을 차고 뛰어본다. 생각보다 아이젠의 위력이 대단하다. 살짝 언 눈길에도 전혀 미끄러지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비록 속도는 나지 않지만, 지난해 겨울 눈길에서 달리다가 미끄러져 한 달을 달리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새삼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눈이 없는 길이나 잠깐 들어가야 하는 실내에서는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매우 신경 쓰여 불편하기 그지없지만.\n​\n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도모에 대교에서 나는 몇 차례고 카즈오의 대사, \"미치지 않으려고 달리는 거야.\"를 되새겼다. 코로나 때 갇혀버린 집 안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줌(Zoom) 회의를 하며 보냈던 시간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던 날을 떠올리면서. 하코다테는 벌써 서네 번째 방문하는 도시지만, 도모에 대교에서 바라보는 하코다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영화가 아니었으면 관광지도 아니고 편한 도보길도 아닌 도모에 대교를 달려볼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n​\n​\n📍 그리고 미도리노시마\n일을 마친 남편과 함께 미도리노시마로 향했다. 미도리노시마는 주인공 카즈오가 방황하는 청춘들(아키라, 히로토, 메구미)과 처음으로 조우하는 곳이다. 갈 곳 없이 섬 공원에서 불꽃놀이를 하며 시간을 때우던 아이들이, 미친 사람처럼 달리는 카즈오를 발견하고 홀린 듯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 중 하나다. 각자의 결핍과 상처를 안고 있는 이들이 말없이 발소리와 거친 숨소리만으로 연대하던 풍경은 이상하리만치 깊은 위로를 건넨다.\n​\n미도리노시마\n15 Omachi, Hakodate, Hokkaido 040-0052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200329398","published_date":"2026. 3. 1. 21:40","scraped_at":"2026-04-05 06:06:38"},{"id":4,"source":"naver","title":"《호텔 로열》의 배경, 구시로","content":"태평양과 맞닿은 쇠락한 항구 도시, 구시로가 그렇다. 구시로 습원에서 밀려오는 짙은 안개는 도시 전체를 우울하고도 신비롭게 감싼다.\n사쿠라기 시노의 나오키상 수상작 《호텔 로열》은 바로 이 안개 낀 도시 구시로의 낡은 러브호텔을 배경으로 한다.\n작가 자신의 아버지가 실제로 운영했던 러브호텔을 모티브로 한 이 연작 소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날것의 삶을 보여준다.\n호텔 로열\n사쿠라기 시노\n2014\n현대문학\n블로그 글\n더보기\n북쪽 항구 마을의 환락가, 스에히로초(末広町)는 누사마이교를 건너면 나타나는 구시로 최대의 번화가다. 과거 어업과 탄광으로 번성했던 시절의 영광은 많이 빛바랬지만, 여전히 낡은 네온사인들이 밤거리를 밝힌다. 《호텔 로열》에 등장하는 수많은 남녀가 각자의 사연을 품고 스며들었을 골목들. 화려함 뒤에 숨겨진 서민들의 눅눅하고도 치열한 삶의 냄새가 밴 곳이다.\n​\n그리고, ‘호텔 로열’이라는 이름의 도피처 가난, 외도, 도망,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은 구시로의 날씨만큼이나 춥고 헛헛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비웃거나 값싼 동정을 보내지 않는다. 그저 매서운 북국의 추위 속에서 아주 잠시나마 서로의 체온에 기대야만 했던 사람들의 쓸쓸한 온기를 담담하게 그려낼 뿐이다. 삶이 바닥을 칠 때, 거창한 구원 대신 '호텔 로열'이라는 허름한 도피처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n​\n재미있는 사실은 구시로역 앞에 러브호텔은 아니지만 구시로 로열인이라는 호텔이 있다.\n구시로 로열 인\n14 Chome-9-2 Kuroganecho, Kushiro, Hokkaido 085-0018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97249821","published_date":"2026. 2. 28. 22:10","scraped_at":"2026-04-05 06:06:38"},{"id":5,"source":"naver","title":"《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오토가 근무한 세탁소","content":"긴 제목만큼이나 긴 여운을 남기는 사카모토 유지 각본의 드라마 《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 화려한 도쿄 타워의 야경 대신, 비좁은 원룸과 야간 교대 근무, 그리고 낡은 코인 빨래방을 맴도는 지방 출신 청춘들의 이야기는 결코 반짝이지만은 않는다. 하지만 상처받고 웅크린 채 살아가는 이들이 서로의 결핍을 알아보고 다정함을 내어줄 때, 그 눅눅했던 도쿄의 골목은 어떤 여행지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n​\n렌과 오토,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이 머물렀던 아프고도 따뜻한 청춘의 배경들을 따라가 보았다.\n​\n이야기의 시작은 홋카이도다.\n렌은 오토가 잃어버린 가방과 돌아가신 어머니의 편지를 돌려주기 위해 도쿄에서부터 그 먼 홋카이도 토마코마이까지 낡은 이삿짐 트럭을 몰고 달려간다.\n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오토를 구해내 도쿄로 향하던 그 좁은 트럭 안. 차가운 북국의 날씨와 대비되는 두 사람의 서툴고도 따뜻한 온기가 화면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홋카이도의 겨울 풍경을 마주할 때면, 언젠가 누군가를 위해 밤새 트럭을 몰았던 렌의 다정한 무모함이 떠오를 것만 같다.\n​\n오토가 양부모 밑에서 집안일과 병간호를 도맡으며 묵묵히 일해야만 했던 세탁소.\n이곳은 홋카이도 토마코마이시(苫小牧市) 유후츠에 위치한 실제 '모리타 클리닝(森田クリーニング店)'\n에서 촬영되었다. 렌이 트럭을 몰고 찾아와 오토와 처음 마주치는 운명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사카모토 유지 작가는 세탁소라는 공간을 통해 서민들의 고단하고 눅눅한 삶의 냄새를 탁월하게 그려내곤 한다. 화려한 세트장이 아닌, 북국의 차갑고도 쓸쓸한 공기가 배어 있는 이 평범한 실제 건물 앞에 서면, '체념'을 강요받으면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던 오토의 웅크린 청춘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n​\n우리가 방문한 날은 마침 연말연시 휴무라 굳게 문이 닫혀 있었지만, 차분하고 한적한 마을 풍경이 드라마 속 정서와 꼭 닮아 있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n​\n상경한 오토와 렌이 도쿄에서 기적처럼 다시 마주치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던 곳 역시 코인 빨래방이었다. 도쿄 오타구에 위치한 유키가야오츠카역 근처의 이 동네는 화려한 도쿄 도심과는 거리가 멀다. 돌아가는 세탁기를 가만히 바라보며 캔커피를 나눠 마시던 낡은 공간. 하루하루 버텨내는 것조차 버거운 청춘들에게 이곳은 거대한 도쿄에서 유일하게 숨을 고르고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다정한 도피처였을 것이다. 그리고 렌과 오토가 함께 걸어 올라가던 가파른 언덕길과, 퇴근길에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던 평범한 육교들. 드라마 속 배경이 된 도쿄의 길거리들은 여행객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평범한 생활의 공간이다. 다음 도쿄 여행에선 길가에 핀 작은 꽃의 이름을 알려주고 싶어 하던  그 애틋한 마음을 떠올리며, 이 잿빛 육교와 비탈진 골목길을 꼭 걸어봐야지.\n​\n​\n언젠가 이 사랑을 떠올리면 분명 울어버릴 것 같아\n드라마\n2016\n일본 후지TV\n블로그 글\n더보기\n〒059-1372 Hokkaido, Tomakomai, Yūfutsu, １３−13\n일본 〒059-1372 Hokkaido, Tomakomai, Yūfutsu, １３−13\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98462217","published_date":"2026. 2. 27. 21:30","scraped_at":"2026-04-05 06:06:38"},{"id":6,"source":"naver","title":"⟪댄스 댄스 댄스⟫ 배경, 하와이 와이키키","content":"저녁 때마다 나와 함께 지내면, 일주일 만에 너는 일본에서 피나콜라다에 제일 밝은 중학생이 될 거야.\nー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n댄스 댄스 댄스(상)\n무라카미 하루키\n2023\n문학사상\n블로그 글\n더보기\n와이키키는 상상 속 완벽한 휴양지만은 아니었다. 화려한 관광객들 틈에서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곳.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나')이 키키를 찾아 헤매던 발자취가 와이키키 골목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었다. 골목을 걷다 해변으로 나와 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응시한다.\n​\n'대체 나는 여기서 뭘 찾는 거지?' 소설 주인공처럼 막연한 질문이 마음속을 맴돌았다.\n따가운 햇살 아래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바다, 시원한 파도 소리, 달콤한 피나콜라다 한 잔.\n이 모든 것이 완벽한 휴가를 외치고 있었지만, 내 눈은 자꾸만 낡은 골목이나 웃음 뒤 숨겨진 공허함을 찾고 있다. 하루키 소설은 언제나 그렇다. 빛나는 표면 아래 심연을 들여다보게 만든다.\n​\n물론 와이키키 해변의 노을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파도 소리는 영원히 계속될 춤곡처럼 들렸다.\n할레쿨라니 호텔\n바에 자리를 잡고 피나콜라다를 주문했다. 달콤한 코코넛 향이 섞인 파인애플 주스 맛.\n​\n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잎사귀 소리.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들이 느꼈을 시공간적 감촉이 전해져 왔다.\n잃어버린 것을 찾고, 잊고 싶었던 것을 잊기 위한 시간들.\n​\n하와이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행복한 장면 안에서 나는 다시 한번 하루키의 세계에 푹 잠겼다.\n포트 드루시 해변 공원\n할레쿨라니\n2199 Kālia Rd, Honolulu, HI 96815 미국\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97205709","published_date":"2026. 2. 26. 21:58","scraped_at":"2026-04-05 06:06:38"},{"id":7,"source":"naver","title":"영화 《북쪽의 카나리아들》의 배경, 홋카이도 리시리 & 레분","content":"영화 《북쪽의 카나리아들》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서사 뒤에는 홋카이도 최북단의 낙도, 리시리섬의 웅장하고도 쓸쓸한 풍경이 흐른다.\n​\n20년 전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섬을 떠나야 했던 교사 하루. 옛 제자가 범죄 용의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홋카이도 북쪽 끝의 섬으로 향하는데.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이들은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야 한다.\n북쪽의 카나리아들\n서스펜스, 드라마\n사카모토 준지\n블로그 글\n더보기\n​\n📍 바다 너머 리시리산을 품은 학교, 북쪽의 카나리아 파크\n레분섬에서 영화의 중요한 무대이자 리시리산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영화 촬영을 위해 지어졌던 교사 세트장을 보존해 기념 공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교실 창밖으로 바다 너머 거대하게 솟아 있는 리시리산의 자태만으로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교실 안에는 당시의 사진과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어 영화 속 서툴지만 따뜻했던 여섯 아이의 합창이 다시금 울려 퍼지는 듯한 감동을 준다.\n​\n​\n기타노카나리아 파크\n일본 〒097-1201 Hokkaido, Rebun District, Rebun, Kafukamura, 字フンベネフ671 字フンベネフ ６２１\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 비극이 덮친 아름다운 노을 명소, 지조이와\n바비큐를 즐기러 온 '하루' 일행에게 예기치 못한 비극이 덮치는 장면의 무대가 된 곳이다. 두 손을 맞대고 기도하는(합장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지조이와(지장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그 높이가 무려 50m에 달하는 거대한 기암이다. 섬 안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노을 명소이기도 하다. 이곳에 먼 바닷길 건너온 한국발 쓰레기도 만났다. 😅\n​\nJizō Rock\n일본 〒097-1201 Hokkaido, Rebun District, Rebun, Kafukamura, モトチ\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n📍 섬을 떠나는 하루의 무거운 발걸음, 오이소\n눈보라와 눈사태 속에서 쫓기듯 섬을 떠나는 '하루'의 씬을 촬영한 장소다. 여름이면 길 양쪽으로 다시마를 빼곡히 널어 말리는 진풍경이 넓게 펼쳐지지만, 겨울이 되면 풍경이 일변하여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혹독한 환경으로 변하는 곳이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바람이 어찌나 매섭게 불던지... 날아갈 뻔 했다.\nポロフンベ（大磯）\nOiso-372 Oshidomari, Rishirifuji, Rishiri District, Hokkaido 097-0101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93071578","published_date":"2026. 2. 24. 22:00","scraped_at":"2026-04-05 06:06:38"},{"id":8,"source":"naver","title":"오쿠다 히데오의 에세이 《항구 마을 식당》에 등장하는 레분섬 맛집, 지도리","content":"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갈 곳을 굳이 열여섯 시간이나 배를 타고 가는 수고. 오쿠다 히데오의 에세이 《항구 마을 식당》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곳은 홋카이도 최북단의 낙도, 레분섬의 작은 식당이었다.\n​\n항구 마을 식당\n오쿠다 히데오\n2016\n알에이치코리아\n블로그 글\n더보기\n오쿠다 히데오가 일본 각지의 항구 마을을 돌며 쓴 유쾌한 에세이. 그 종착지인 한겨울의 레분섬에서 작가는 거센 눈보라에 갇히고 만다. 하지만 그 고립 속에서도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식당 '로바타 지도리(炉ばた ちどり)'에서 따끈한 호케(임연수어) 찬찬야키와 술잔을 기울이며 언 몸을 녹인다.\nRobata Chidori\n일본 〒097-1201 Hokkaido, Rebun District, Rebun, Kafukamura, 字入舟1115ｰ3\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섬사람들의 온기가 밴 공간, 로바타 지도리(炉ばた ちどり)의 문을 열었다. 거센 바람을 피해 들어간 실내는 소박하고 다정한 항구 마을 식당의 전형이었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한 계절이나 시간대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섬사람들의 주린 배와 고단함을 달래주었을 공간. 작가가 툴툴거리면서도 이 외딴섬의 식당에서 묘한 위안을 얻었던 이유를 그 공기 속에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n​\n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점심 시간. 시오라멘과 연어튀김 정식을 주문한다. 화려한 맛은 아니었지만, 항구 마을 특유의 투박하고 소박한 맛이 오히려 마음에 잔잔하게 스며들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곁들여 마신 생맥주였다. 대체 이 먼 시골 마을에서 생맥주 기계를 어떻게 이토록 철저하게 관리한 것일까. 크리미한 거품이 쫀쫀하게 살아있는 생맥주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저녁에만 파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  호케 찬찬야키(ホッケのちゃんちゃん焼き)를 먹지 못한 아쉬움이 이 완벽한 생맥주 한 모금에 눈 녹듯 사라졌다.\n​\n'찬찬야키'란 본래 연어 등의 생선과 각종 채소를 철판에 올려 된장(미소) 베이스의 특제 소스로 구워 먹는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향토 요리. '찻찻(ちゃっちゃっ: 재빠른 행동을 나타내는 의성어)' 만들어서 찬찬야키라는 설, '찬(ちゃん: 아버지)'이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는 설 등 이름에는 여러 유래가 있다고 한다. 이곳 '지도리'에서는 연어 대신 레분섬의 명물인 큼직한 호케(임연수어)를 통째로 숯불에 올리고 그 위에 파와 듬뿍 얹은 된장 소스를 곁들여 굽는다.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했던 지글거리는 숯불의 온기와 짭조름한 파 된장 소스의 냄새. 비록 이번엔 직접 마주하지 못했지만, 훌륭했던 생맥주와 소박한 점심 식사 덕분에 이 시리도록 푸른 섬을 다시 찾아야 할 다정한 핑계 하나를 남겨두고 레분 섬을 떠난다.\n​\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93091670","published_date":"2026. 2. 23. 22:00","scraped_at":"2026-04-05 06:06:38"},{"id":9,"source":"naver","title":"드라마 《이혼 좀 합시다》를 따라 마쓰야마","content":"넷플릭스 시리즈 《이혼 좀 합시다》의 유쾌한 소동극 뒤에는 에히메현의 고즈넉하고도 따뜻한 풍경이 흐른다.\n드라마 속 선거전의 치열함과 부부의 묘한 긴장감이 머물다 간 장소들을 따라가 보았다.\n​\n이혼 좀 합시다, 지금 시청하세요 |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n반드시 이혼하고 싶은 배우 아내와 정치인 남편. 하지만 이 부부와 얽혀 있는 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헤어지기 위해 둘은 일심동체가 되어야 한다.\nwww.netflix.com\n📍 마쓰야마의 상징이자 비밀스러운 밀회지, 마쓰야마성\n해발 132m 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는 마쓰야마성은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마쓰야마의 상징. 일본에서 현재까지 남아 있는 12개의 천수 중 하나를 포함해 21점의 중요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드라마 속에서는 배우 유이와 썸을 타는 가노 교지의 밀회 장소로 등장했다. 성벽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마쓰야마 시내의 절경이 매우 아름답고 특히 벚꽃 시즌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드는 여행객과 주민들로 붐빈다.\n​\n📍 서민들의 응원이 울려 퍼지던 상점가, 긴텐가이\n마쓰야마시 역 노면전차 정류장에서 오카이도까지 이어지는 긴텐가이는  오카이도 상가와 함께 마쓰야마의 대표적인 약 600ｍ 아케이드 상가. 타이시가 에히메 온도를 추거나 거리 연설을 하며 유권자들을 만나던 활기찬 장소다. 여름에는 토요 야시장이 열려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이곳은 드라마 속에서 가장 생활 밀착형인 선거전의 배경이 된다. 지붕이 덮인 아케이드 길을 걷다 보면, 드라마 속 코믹하면서도 뜨거웠던 선거 캠페인의 소음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n​\n📍 3천 년의 시간이 뿜어내는 온기, 도고 온천\n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알려진 도고 온천은 드라마에서도 상징적인 배경으로 등장한다. 특히 로케이션지로 활용된 아스카노유는 전통적인 온천의 가치에 현대적 예술을 접목한 공간으로 타이시의 연설 장면이 촬영되었다. 약 3천 년의 역사를 품은 본관 건물과 그 주변의 정취는 에히메가 가진 가장 깊은 매력을 보여준다. 뜨거운 온천 증기 사이로 열변을 토하던 타이시의 모습이 이곳의 오래된 풍경과 묘하게 어우러지며 드라마 특유의 분위기를 완성한다.\n​\n​\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88537610","published_date":"2026. 2. 19. 21:20","scraped_at":"2026-04-05 06:06:38"},{"id":10,"source":"naver","title":"《N을 위하여》의 배경, 쇼도지마","content":"“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n모두가 가장 소중한 사람만을 생각했다.\n가장 소중한 사람이 가장 상처 입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n《N을 위하여》\n크리스마스 이브, 도쿄의 호화 맨션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으로 드라마 《N을 위하여》는 시작된다.\n그곳엔 이름에 ‘N’을 이니셜로 갖는 네 명의 젊은이가 있었다.\n​\n남편과 나는 이 드라마를 정말 재미있게 보았고 지금도 우리 둘이 손꼽는 일드 베스트 5 중 하나이기도 하다.\n시코쿠 여행을 하게 된다면 드라마의 배경인 쇼도시마를 가장 먼저 가봐야했다.\n​\n오카야마 공항에서 내려 차를 렌트하자마자 망설임 없이 쇼도시마행 배가 있는 항구로 달렸다.\n​\n​\n📍 세상 밖을 꿈꾸던 높은 곳, 사쿠라바나 전망대(벚꽃 공원)\n쇼도시마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찾아간 곳은 주인공 노조미와 나루세가 바다를 내려다보며 장기를 두던 정자다. 드라마에서처럼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곳이었다. 흐린 날씨가 조금 아쉬웠지만, 둥근 만 뒤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과 바다 위에 앙증맞게 떠 있는 섬들은 충분히 살가웠다. 이토록 좋은 풍경을 매일 마주하면서도 노조미는 늘 ‘수평선’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섬들이 떠 있어 갇혀 있는 느낌을 주지 않는, 막힘없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그 갈망이 이곳의 잔잔한 파도 위로 겹쳐 보였다.\n​\n📍 비밀의 불꽃이 피어오른 길, 나카야마 센만다(계단식 논)\n노조미가 살았던 ‘유령의 집’ 근처 마을도 찾아가 보았다. 항구 주변 어촌 마을과는 달리 경사가 엄청난 산촌 풍경이 펼쳐졌다. 노조미가 마트에서 산 무거운 식료품을 들고 이 가파른 길을 올랐을 것을 생각하니 드라마 속 장면에 현실감이 더해졌다. 800개가 넘는 논이 물결치는 이곳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무시오쿠리' 축제의 불꽃과 함께 비극적 사건의 긴장감이 서려 있던 공간이다. 청산도의 구들장 논을 닮은 이 길 위에서 노조미의 고단했던 유년을 잠시 짐작해 보았다.\n​\n📍 무너진 일상의 흔적, 화장품 가게 (코스메틱 사카모토)\n아빠에게 쫓겨난 후, 현실을 부정하며 아이처럼 변해버린 엄마가 고가의 화장품을 사들이던 가게. 실제로 도노쇼항 근처 상점가에 위치한 이 작은 가게는 드라마 속에서 노조미가 엄마의 사치를 막으려 애쓰며 절망하던 장소다. 화려한 궁전에서 쫓겨난 엄마가 유일하게 붙잡고 싶어 했던 '아름다움'이라는 허상이 이 소박한 가게 안에서 얼마나 위태롭게 타올랐을지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n​\n쇼도 섬\n일본 가가와현 Shozu District, 쇼도 섬\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N을 위하여\n드라마\n2014\n일본 TBS\n블로그 글\n더보기\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87042730","published_date":"2026. 2. 18. 21:10","scraped_at":"2026-04-05 06:06:38"},{"id":11,"source":"naver","title":"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버닝> 촬영지, 만우리","content":"​\n\"가끔씩 헛간을 태운답니다.\" 그가 반복했다.\n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손톱 끝으로 라이터의 모양을 따라 더듬고 있었다. 그리고 마리화나 연기를 힘껏 폐 속으로 빨아들여 십 초쯤 그대로 있다가 천천히 뱉어냈다. 마치 엑토플라즘처럼 연기가 그의 입에서 공중으로 떠돌았다.\n-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중에서\n개봉하자마자 바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 좀처럼 없는 내가 서둘러 예매를 하고 《버닝》을 보러 간 이유는 하나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글이 영상 안에서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n산책으로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n》란 책을 번역하면서 더욱 하루키 소설에 빠져 지내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영화 《버닝》과 소설 <헛간을 태우다>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하루키가 그린 주인공 ‘나’와 이창동 감독이 담은 종수가 전혀 다른 인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영화를 보고 실망할 것이란 생각은 섣부르다. 영화 곳곳에\n무라카미 하루키 팬이라면 눈치챌 법한 수많은 소재들이 아낌없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n148분의 러닝타임은 충분히 즐거웠다.\n​\n버닝\n미스터리\n2018\n이창동\n블로그 글\n더보기\n​\n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버닝》.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종수, 해미, 벤.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가를 꿈꾸고 있는 종수(유아인)는 배달을 갔다가 어린 시절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해미는 아프리카에 다녀오겠다며 그동안 자신의 자취방에 와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란 부탁을 하고 떠난다. 그리고 종수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해미를 공항으로 마중 나가는데, 해미 곁에는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은 많은... 마치 개츠비 같은 수수께끼의 남자 벤(스티븐 연)이 서있었다. 원작 역시 ‘나’, ‘그녀’, ‘그 남자’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줄거리는 비슷하다.\n다만 벤은 ‘비닐하우스’를 태우고, 남자는 ‘헛간’을 태울 뿐.\n​\n아침잠이 많은 내가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 70km 거리를 달려 도착한 곳은 파주 만우리. 종수의 집이 있는 마을로,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 보고 있다. 영화에 대해 다룬 기사를 읽다가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매직 아워(Magic Hour).” 이 ‘마법의 시간’은 해 질 녘과 동틀 녘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카메라로 들어오는 빛이 부드러워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 수 있는 시간대라고 한다.\n《버닝》의 절반 이상이 하루에 얼마 주어지지 않은 이 시간을 기다려 찍은 화면이라고 한다.\n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니 내가 이제까지 찍은 사진 중 정말 마음에 드는 하늘색이 담긴 몇 컷이 떠올랐다. (언젠가 책을 낸다면 그 색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을 표지로 삼고 싶었다. 정작\n《다정한 여행의 배경》의 표지를 선정\n할 때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서 해가 뜨기 전에 만우리에 도착해야 했던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n매직 아워에 깔린 배경을 만나야 했다.\n서두른 덕분에 만우리 근처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주변은 어두컴컴했다.\n​\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n서울에서 일을 하던 종수는 아버지가 폭행죄로 수감되어 고향인 만우리로 돌아오게 된다. 만우리는 종수와 해미가 성장한 마을이고, 해미가 어릴 때 빠졌다고 주장하는 ‘마른 우물’이 있는 곳. 해미는 우물에 빠졌는데, 종수가 발견해주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종수는 기억하지 못한다. 또 해미의 엄마와 언니도 그런 우물은 없었다고 말한다. 한편 종수가 어릴 때 집을 나간 엄마는 우물의 존재를 알고 있다.\n​\n​\n만우리\n구석구석에 고양이들이 있었다.\n짧은 시간 동안 열 마리는 족히 만난 듯하다. 그중 대여섯 마리는 팔뚝만 한 새끼 고양이였는데 얼마 전에 다 같이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모두들 해미의 고양이처럼 수줍음이 굉장히 많아서 가까이 가기만 해도 재빨리 도망가버리거나 아이처럼 울어댔다. 이곳에는 고양이 말고도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매직 아워가 시작됨을 알리는 듯 “꼬끼오 꼬꼬 꼬꼬” 우는 닭들부터, 작은 발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개들. 아침이 온 것이 너무나 신나 견딜 수 없어 보이는 새들의 지저귐. 이런 소란 속에서도 외양간에 있는 젖소들은 잠이 덜 깼는지 멍하니 앉아 있다.\n​\n아직 어두운 마을. 사늘한 아침 공기가 이상한 긴장감을 가져왔다.\n서울 일상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닭이 우는 소리를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로 착각한 나의 어깨 근육이 순간적으로 쪼그라들었다.\n아무래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버닝》를 두고 있는 탓인 듯했다.\n​\n​\n만우리노인정\n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 412\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https://naver.me/xIFoVcrx\n네이버지도 - 저장\n배경여행\nnaver.me\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80452123","published_date":"2026. 2. 16. 21:50","scraped_at":"2026-04-05 06:06:38"},{"id":12,"source":"naver","title":"최은영 소설 <601,602>의 배경, 광명시 주공아파트","content":"우리 가족이 광명의 주공 아파트로 이사 한 건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광명에서 부천 역곡으로 안산 반월을 거쳐 다시 광명으로 돌아온 것이다. 엄마 아빠의 눈에 1988년식 신축 주공 아파트는 주거비 부족으로 서울에 진입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잊을 만큼 훌륭했던 것 같다. 깨끗한 새 아파트는 연탄을 때야 했던 구식 아파트와는 차원이 달랐고, 육층 남향집 거실에는 밝은 꿀빛 햇살이 고였다.\n- 최은영, <601,602>의 시작\n퇴근길 교보문고 신작소설 코너에서 몇 권의 책을 들춰보던 나는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고 그대로 멈춰 섰다. 몇 분 동안 어린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 곁에 있던 두 명의 아이들을 그렸다. 한주영과 장기준\n(가명. <601,602> 속 인물들의 이름을 빌렸다. 소설 속 캐릭터와는 무관.)\n내 생애 최초 ‘친구들.’ 우리 셋은 광명에 있는 주공아파트 한 단지 안에 살고 있었고 동네 입구에 위치한 유치원을 함께 다녔다. 내가 가운뎃 동에 살고 있었고, 산에 가까운 뒷 동엔 기준의 집이 있었다. 앞 동엔 주영이가 살았다. 네살 터울의 어린 동생과 함께 엄마가 집에 있었던 나와 달리 둘의 부모님은 낮에는 집을 비웠다. 하지만 주영의 부모님은 (내 기억이 맞다면) 의사, 약사를 하고 있어 살림이 넉넉했고, 할머니가 주영을 하루 종일 돌보았다. 우리 집보다 더 큰 평수에, 보다 남쪽에 서있는 주영의 집은 늘 밝고 따뜻한 느낌이었고, 그 집의 분위기만큼이나 주영은 해맑았다. 단짝으로 지내는 내가 여자아이지만 키도 크고 달리기도 빠르고 힘도 셌음에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할머니, 부모님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티 없이 자라는 어린이였고 자주 웃었다. 한편 북쪽 동에 살던 기준의 표정엔 어딘가 그늘이 있었다.\n​\n​\n《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되어 있는 <601,602>란 단편 소설에는 주영과 효진이 등장한다. 둘은 광명의 한 주공아파트 같은 동 같은 층에 나란히 살고 있다. 칠곡에서 온 효진은 다섯 살 터울의 오빠 기준과, 그 오빠에게 절절매는 엄마가 함께 살고 있다. 효진은 오빠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지만 그의 부모는 방관한다. 주영은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목격하게 된다.\n​\n광명은 마음먹고 가보지 않으면 갈 이유가 특별히 없는 동네다. 근처에 이케아가 있어 몇 번 가구를 사러 갔지만, 이케아의 가구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조립을 해야하므로 옛 동네를 둘러볼 여유는 없다. 그래서 살던 동네를 찾아가 보는 일을 몇 번이고 미루다가 지난 주말 마침 미세먼지도 없고 해서 찾아갔다. 함께 간 남편은 생각보다 오래된 느낌이 없어 놀랐다고 말했다. 내가 봐도 동네가 그리 낡은 느낌이 안 들었고, 주영과 기준과 다녔던 유치원도 기억보다 세련됐다. 아무래도 올해 남편과 내가 이사 온 도시에 어린 시절 살았던 곳보다 더 오래된 주공아파트들이 남아 있어서, 이런 풍경을 매일 마주하다 보니 그리 느꼈을지도 모른다. 동네 아이들은 이 추위 속에서도 모여서 놀고 있고,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이 아파트 입구를 드나들고 있었다. 쓰레기통은 가득 차있고, 어두워지니 집들 마다 불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기 겸연쩍었다. 나에게만 추억이지,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일상이니까. 그리고 그 일상에 조금이라도 폐가 되어선 안 되니까.\n​\n내게 무해한 사람\n최은영\n2019\n문학동네\n블로그 글\n더보기\nhttps://naver.me/xIFoVcrx\n네이버지도 - 저장\n배경여행\nnaver.me\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80448108","published_date":"2026. 2. 15. 22:40","scraped_at":"2026-04-05 06:06:38"},{"id":13,"source":"naver","title":"영화 <리틀 포레스트> 배경, 경북 의성과 군위","content":"이가라시 다이스케가 그린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이치코는 도쿄에서 살다가 도호쿠 지방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논과 밭을 일궈서 식재료를 얻고, 맛있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나뉘어 있고 두 편씩 묶어 개봉했다. 촬영지도 도호쿠에 있는 오모리란 마을.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엔 서울에서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지친 혜원(김태리 분)이 주인공으로, 회사에 다니다가 월급날이나 기다리며 살기 싫다며 퇴사를 하고 돌아온 재하(류준열 분), 고향에서 은행을 다니지만 서울에 가고 싶은 은숙(진기주 분)이 등장한다. 한 편 안에서 겨울부터 시작된 계절이 흘러간다.\n리틀 포레스트\n드라마\n2018\n임순례\n블로그 글\n더보기\n의성 산수유마을 ©moonee / 우. <리틀 포레스트> 속 장면 (출처 : 다음 영화)\n의성 산수유마을 ©moonee\n의성 산수유마을에서 만난 산수유 꽃 ©moonee\n​\n​\n화면보다 훨씬 아담한 공간\n<리틀 포레스트>는 경상북도 의성과 군위를 배경으로 한다. 우린 우선 의성에 있는 산수유마을에 갔다. 산수유 축제 기간이라 주차장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고 주차관리를 하는 사람들도 서 있었다. 행사가 이미 끝났는지 광대 분장을 아직 지우지 않은 아저씨가 길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고, 천막과 플라스틱 테이블들이 비어있었다. 나는 지방에서 ‘00 축제, 00 공연, 전통놀이대회 등 각종 부대 행사’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고, 노점상을 열고, 트로트를 틀어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드는 행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때마침 잘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축제를 보고 나온 듯한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오던 시간이었다. 온화한 봄의 햇빛이 노란 산수유꽃과 연둣빛 마늘밭에 내려앉기 시작한다. 주인공 혜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길에 석양까지 더해진 풍경. 이곳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더 가면 군위군 우보면에 혜원의 집이 있다.\n​\n​\n<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집 ©moonee\n<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집과 집 앞 구천 ©moonee\n<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집 ©moonee\n​\n​\n70년 된 빈 집을 빌려 찍었다고 하는데 혜원의 집은 다시 빈 집이 되어 있다. 어쩜 이렇게 좋은 위치에 집이 있을까, 또 이곳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있고 앞에는 ‘구천’이라고 하는 낙동강의 지류인 하천이 흐른다. 이 하천에서 혜원과 재하(류준열 분)가 다슬기를 땄다. 주변 풍경과 집이 실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가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신기했다. 화면에서 느껴진 것보다는 훨씬 더 아담한 공간.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거나, 관광객이 많이 다녀간 흔적은 없어 보였다. 촬영 소품으로 쓰였던 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혜원이 사용한 냉장고도 그대로. 이토록 현실감 있는 모습을 마주하니 ‘여기서 살아보고 싶은데?’ 꿈이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n​\n​\n영화[리틀포레스트]촬영지\n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미성5길 58-1\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https://naver.me/xIFoVcrx\n네이버지도 - 저장\n배경여행\nnaver.me\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80444798","published_date":"2026. 2. 14. 21:40","scraped_at":"2026-04-05 06:06:38"},{"id":14,"source":"naver","title":"이태준 소설 <달밤> 속 그곳","content":"나는, \"수건인가?\"하고 아는 체 하려다 그(황수건)가 나를 보면 무안해할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휙 길 아래로 내려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었다. 그는 길은 보지도 않고 달만 쳐다보며, 노래는 그 이상은 외우지도 못하는 듯 첫 줄 한 줄만 되풀이하면서 전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담배를 다 퍽퍽 빨면서 지나갔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n- 이태준, <달밤>의 끝\n​\n​\n“이게 소설이라고? 일기 아니야?”\n남편이 물었다.\n“황수건이란 사람. 진짜 있었던 사람 같지?”\n​\n황수건이 실제로 성북동에 살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린 반달이 환하게 밝은 밤.\n성북동에 닿았다.\n​\n주말에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가 느지막이 일어나기도 했고, 단풍이 예쁜 곳이야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 그동안 가보길 별러 온 성북동을 택했다. 사실 난 4년 여동안 종로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성북동이 꽤 익숙하다. 한 땐 그쪽에 있는 칼국수 집에 꽂혀, 또 다른 한 때는 돈가스 집에 꽂혀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저녁을 해결하러 가곤 했던 동네.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든 곳이 어느 날 갑자기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회사에서 국내외 작가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다 발견한 이태준(1904 ~ 미상)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가 성북동에 살았고, 또 실제 살았던 집이 여전히 남아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몇 달간 성북동에 저녁을 먹으러가 아니라, 밤 산책을 하러 꼭 한 번 가봐야지 별러 온 것이다. 어서 밤이 오길 기다리며 이태준의 소설 <달밤>을 읽었다. 매우 짧은 단편이라 오래 걸리지 않았다.\n​\n<달밤>엔 황수건이란 아둔한 인물이 등장한다. 문안에서 성북동으로 이사 온 주인공 ‘나’\n(작가 이태준 자신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n는 황수건이란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신문배달 보조일을 하고 있는데, 그의 소원은 정식 배달원이 되는 것이다. 원래 학교에서 급사 일을 했지만 쫓겨났고, 지금은 형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나’는 눈치가 없고 미련하지만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황수건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싫지 않다. 어느 날 황수건은 ‘드디어 내일부터 정식 배달원이 된다’고 신이 나서 집에 찾아왔다. 그러나 결국 보조 배달원 자리마저 잃고, 실패는 거듭된다. ‘나’에게 삼 원을 받아 시작한 참외 장사도 망하고, 아내까지 집을 떠난다. 이토록 답답하고 슬픈 인생이 있나 싶지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과 같이 ‘황수건’의 순진무구함에 빠져들었다. 요령 없는 그가 조잘조잘 떠드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졌다.\n​\n지금은 ‘수연산방’이라고 하는 전통찻집이 된 이태준의 집은 내가 이제까지 다섯 번은 족히 갔을 돈가스 집 바로 곁에 있었다. 돈가스를 먹으러 그렇게 자주 와놓고 이런 곳이 있단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니.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n​\n​\n​\n달밤의 수연산방은 아름다웠다.\n​\n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맡겨진 이태준은 가난에 허덕였다고 하는데… <달밤> 속 묘사와 달리 이젠 부촌이 된 동네에 위치한 탓인지, 아니면 집을 물려받은 자손들이 잘 가꾸어 온 덕분인지 굉장히 근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태준은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았고, <달밤>\n(역시!)\n, <돌다리>, <코스모스 피는 정원>, <황진이> 등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러다 1946년 7, 8월경에 월북해서 초기에는 평양조선문화협회 방문 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도 다녀오고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다 1956년 친일적인 작품을 썼단 죄목으로 함흥까지 쫓겨났다. 그곳에서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했다고 하는데, 이후 삶은 묘연하다.\n(참고 :\n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n)\n우린 수연산방에서 차 두 잔과 인절미 떡 하나를 시켰다. 이렇게해서 25,000원. 이곳의 높은 찻값이 이태준의 삶과 대비되어 거북한 마음이 들었다. 유감하였다.\n​\n수연산방의 밤에서 빠져나와 와룡공원까지 올라갔다.\n​\n반짝이는 서울땅 위로, 높이 솟은 서울 성곽 위로,\n반만 차오른 달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nhttps://naver.me/xIFoVcrx\n네이버지도 - 저장\n배경여행\nnaver.me\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80439654","published_date":"2026. 2. 13. 22:30","scraped_at":"2026-04-05 06:06:38"},{"id":15,"source":"naver","title":"<옥자>가 뛰어오른 계곡","content":"영화 ‘옥자’를 보고 나서는 ‘돼지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는 마음보다 ‘어떻게 저렇게 맑은 곳이 있지?’란 생각이 앞섰다. 영화 ‘옥자’의 주인공은 강원도 산골에 살고 있는 소녀 ‘미자’와 그녀의 가족 ‘옥자.’ 깊숙한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 미자에게 옥자는 친동생보다도, 친구보다도 가까운 존재다. 옥자는 사실 ‘미란도’라는 기업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낸, 슬픈 운명을 갖고 태어난 돼지다. 미란도 기업은 전 세계 26개 농가에 옥자와 같은 슈퍼돼지를 한 마리씩 보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키우도록 한다.\n옥자\n모험, 액션, 드라마\n2017\n봉준호\n블로그 글\n더보기\n옥자는 강원도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투명한 물에서 헤엄치며, 야생에서 자라는 열매를 먹고 건강하게 자랐다. 미자가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소리치면 못에 ‘풍덩’ 하고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고, 데굴데굴 굴러 감나무에서 감을 떨어뜨려 준다.\n​\n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옥자’의 촬영지가 당연 외국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강원도 화천, 영월, 삼척, 정선 등지에서 촬영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리뷰가 많았다. 나도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남아있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옥자가 폴짝폴짝 뛰어다닌 계곡 풍경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옥자가 미자에게 물고기를 선물한 계곡은 삼척에 있는 이끼계곡이라고 한다. 그곳은 당분간 탐방로 조성으로 접근이 어렵다는 소식을 접했다. 삼척 말고도 영월의 계곡도 옥자에 담겼다고 하니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기사에 촬영지가 ‘영월 칠량이 계곡’이라 나와 있었다. 칠량이 계곡은 캠핑장까지 마련되어 있는 곳. ‘옥자’ 속 자연을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일 듯한데…….\n​\n칠량이 계곡에 도착하고 나서야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이끼계곡’이라는 다른 계곡이 하나 더 있단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우린 그곳에 접근하는 방법을 같이 찾기 시작했다.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국토 재해대비 비상숙소’란 곳에 차를 대고 산길을 걸어 올라가니 왼쪽으로 이끼계곡이 보였다. 이곳이야 말로 옥자가 뛰어놀던 풍경이다.\n​\n맛있는 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이 온통 초록빛이어서 눈의 피로가 녹아내렸다. 초록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것이 보였다. 버섯 머리를 하나 발견하자, 다른 버섯이 보이고, 또 다른 색의 버섯이 보이고. 붉은색이 앙증맞은 뱀딸기가 보이고, 혹시 뱀이 나오면 어쩌지 걱정하고.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이지만 이곳의 개망초는 분홍빛이 살짝 돌아 더욱 예뻐 보였다. 매연에 시달리지 않아서 일까.\n​\n​\n​\n​\n영월 상동 이끼계곡\n​\n이끼계곡\n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 산2-1\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https://naver.me/xIFoVcrx\n네이버지도 - 저장\n배경여행\nnaver.me\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80436034","published_date":"2026. 2. 12. 22:30","scraped_at":"2026-04-05 06:06:38"},{"id":16,"source":"naver","title":"내 기억 속에잊을 수 없는 눈이 있어요. 소설 <삿포로의 여인>","content":"내 기억 속에 잊을 수 없는 눈이 있어요.\n눈이 내리면 오빠는 어떤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n나는 첫눈이든 한겨울 눈이든 봄눈이든 내 기억 속 대관령의 어떤 눈이 떠올라요.\n그 눈은 내 나이 열일곱 살 봄에 내렸어요.\nー‘삿포로의 여인’ 중에서\n삿포로의 여인\n이순원\n2016\n중앙북스\n블로그 글\n더보기\n책장에 꽂혀있던 이순원의 작품을 얼핏 보고 나서 대관령에 다녀왔다. 책의 띠지 뒤에 적힌 황정은 작가의 ‘고백한 적은 없지만, 선생을 이룬 것 중에 내가 은밀하게 샘내는 것이 있다. 선생의 대관령이다’란 고백을 듣고 일단 가본 것이다.\n​\n다녀와서 ‘삿포로의 여인’을 읽어 내려간 시간이 좋았다. 서울에 있지만 머릿속은 이미 대관령의 사계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에 (나와 남편은 강원도를 자주 가기 때문에 대관령의 사계절을 모두 만나본 듯하다) 그 배경 안에 주인공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주호, 연희, 주호의 이모부, 길 아저씨, 그리고 동네 사람들...\n​\n‘삿포로의 여인’ 주인공 주호는 군대에 다녀와 학비를 벌기 위해 대관령에서 구판장을 하는 이모부 집에 2년 동안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구판장 맞은편에 있는 미라노 패션에서 일을 하는 연희를 만난다. 연희는 어딘가 이국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17살의 여자아이로, 주호는 중학생 때 어린 연희를 횡계 버스정류소에서 본 적이 있다. 그곳엔 국가대표 스키선수였던 연희의 아버지 유강표와 그를 사랑한 시라키 레이란 여자도 함께 있었다. 소설은 그들에 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다.\n​\n주호가 처음 연희를 본 횡계버스터미널 풍경은 평창올림픽을 맞이해 사라져버렸다. 새 건물이 들어서 있다.\n​\n​\n주호가 기억하는 연희의 첫 모습이 담긴 횡계 버스정류장에 들렀다가 서울로 돌아와 삿포로행 비행기표를 샀다. 그리고 ‘삿포로의 여인’을 다 읽었다. 아쉽게도 주호와 연희가 함께 기억하는 소중한 추억은 삿포로가 아닌 강원도 안에만 있다. 삿포로에 다녀와서 주호와 연희가 길 아저씨의 차를 타고 대관령에서 강릉으로 가서 다시 7번 해안 국도를 따라 양양까지 갔던 여정을 따라 가보고 싶다 생각했다.\n횡계시외버스터미널\n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대관령면 대관령로 78\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https://naver.me/xIFoVcrx\n네이버지도 - 저장\n배경여행\nnaver.me\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80430659","published_date":"2026. 2. 11. 21:20","scraped_at":"2026-04-05 06:06:38"},{"id":17,"source":"naver","title":"그때 우린 세상이 넘칠 정도로 사랑했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배경","content":"작은 어촌마을로 향한다. 일본 가가와현 다카마쓰에 있는 아지초(庵治町).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먼저 두 주인공의 모습을 사진에 남겨준 시게 아저씨의 사진관에 들어갔다. 사진관은 이제 카페가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먹으며 숨을 돌리기로 했다. 나는 명란젓이 발라 있는 토스트를 남편은 감자가 올라간 토스트를 주문. 바삭한 빵에 적절한 소금기. 건강한 기분이 들게 하는 수제 요구르트. 평범하고 담백해서 메인 요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양배추 샐러드까지. 거기에 곁들인 맛도 향도 매우 진한 커피. 테이블 곁에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듬뿍 쏟아지는 햇살이 빵과 커피를 오래도록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시간.\n봄빛까지 머금은 이 작지만 완벽한 식사는 온몸에 따뜻한 기운을 돌게 했다.\n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n멜로/로맨스, 드라마\n2004\n유키사다 이사오\n블로그 글\n더보기\n​\n​\n가타야마 교이치가 쓴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일본에서 영화, 드라마로, 한국에서도 <파랑주의보>란 이름의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1986년 여름을 배경으로 흐르는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여주인공 아키는 얼굴도 예쁘고 우등생에 운동까지 잘한다. 그런 아키가 평범한 남학생 사쿠타로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사쿠에게 라디오 심야방송에 응모엽서를 보내 사은품인 워크맨을 타자고 제안하며 둘은 가까워진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 견딜 수 없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다가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그렇게 세상이 넘칠 정도로 사랑하다 아키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더 이상 아키가 없는 세상에서 남학생 사쿠타로는 어른이 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때 결혼을 약속한 리츠코 손에 들려 사쿠타로에게 전달된 카세트테이프에서 아키의 마지막 메시지를 듣는다. 우리가 도착한 마을 아지초에서.\n​\n작품전을 보고 나와 언덕길을 올라 도착한 어느 신사. 항구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사실 목적지는 신사가 아니라 신사 바로 앞에 놓인 그네다. 아키와 사쿠타로는 이곳에서 그네를 타며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축제에서 줄리엣 역할을 맡게 된 아키는 자살시도를 실패하고 눈을 떴을 때 로미오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된 줄리엣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사쿠에게 묻는다. 그러고 보니 성인이 된 사쿠타로는 잠에서 깨어나며 처음 등장한다. 영화 곳곳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 녹아 있었구나.\n​\n근사한 위치에 걸린 그네였다. 마침 날이 좋아 하늘과 바다가 굉장히 깨끗했고 그네를 타고 높이 올라 더 먼 곳까지 굽어보았다. 힘껏 뛰어오르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주인과 벤치에 앉아 있던 비숑프리제가 쪼르르 다가왔다.\n​\n복슬복슬한 친구와 헤어지고 내려와 잠시 멈춘 항구엔 늠름한 (아마도) 아키타견이 바다를 보고 앉아 있었다. 아지어항은 부모님 몰래 간 여행에서 쓰러져 돌아온 아키를 아키의 아버지가 마중 나온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아키를 태운 차가 급히 병원으로 향하고, 그 차를 맨발로 뒤쫓으며 뛰어가던 사쿠. 그 길을 따라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갔다.\n​\n​\n그 길에서 나는 아키와 사쿠타로의 애틋한 사랑보다 남은 사람, 남은 삶을 생각했다. 사쿠타로와 결혼을 앞둔 리츠코가 이곳에서 보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둘의 사랑의 깊이를 모두 듣고 느낀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n​\n아지초\n일본 〒761-0130 가가와현 다카마쓰시 아지초\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77824721","published_date":"2026. 2. 9. 21:30","scraped_at":"2026-04-05 06:06:38"},{"id":18,"source":"naver","title":"풋풋한 연정의 색깔을 닮은 섬, 에노시마에서 만난 <바닷마을 다이어리>","content":"에노시마역에서 내려 벤텐바시 다리를 건너 섬으로 향하는 길은, 스즈와 후타가 설레는 마음으로 보폭을 맞추던 그날의 공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습니다.\n​\n바다를 건너 섬의 품으로, 에노시마 벤텐바시 섬으로 들어가는 기다란 다리 위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기분 좋은 해방감을 선사합니다. 뒤를 돌아보면 가마쿠라의 해안선이 길게 뻗어 있고, 앞을 보면 초록빛 숲으로 덮인 에노시마가 위엄 있게 서 있지요. 데이트의 시작을 알리던 이 다리 위에서 스즈와 후타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아마도 바다 위로 튀어 오르는 윤슬처럼 반짝이는 일상의 조각들이었을 겁니다.\n​\n입안 가득 퍼지는 바다의 맛, 시라스동(잔멸치 덮밥) 에노시마에 왔다면 놓칠 수 없는 것이 바로 시라스동입니다. 가마쿠라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갓 잡은 신선한 시라스는 에노시마 데이트의 필수 코스죠. 투명한 생시라스에 생강과 간장을 살짝 곁들여 한 입 먹으면, 비로소 바다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지며 단짝 친구인 시원한 생맥주를 부릅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소박하고 정직한 그 맛은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가진 따뜻한 정서와 참 닮아 있습니다.\n​\n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 에노시마 씨캔들(Sea Candle) 좁은 상점가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보면 섬의 정상에 도착합니다. 이곳에 우뚝 솟은 전망대 씨캔들은 스즈와 후타가 함께 내려다보던 광활한 태평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입니다. 해가 질 무렵,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수평선은 이곳에 머무는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 줍니다.\n에노시마\n일본 〒251-0036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 에노시마\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76420948","published_date":"2026. 2. 8. 21:50","scraped_at":"2026-04-05 06:06:38"},{"id":19,"source":"naver","title":"사라짐으로써 선명해지는 것들, 하코다테에서 만나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촬영지","content":"​\n\"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요. 세상에서 내가 사라진다면, 누군가 슬퍼해 줄까요.\"\n《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중에서\n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n드라마\n2016\n나가이 아키라\n블로그 글\n더보기\n시한부 판정을 받은 주인공에게 악마가 제안합니다. 세상에서 무언가 하나를 없애는 대신, 수명을 하루 연장해 주겠다고요. 전화, 영화, 시계... 소중한 기억이 담긴 물건들이 사라질 때마다 하코다테의 풍경은 조금씩 더 쓸쓸하고도 선명하게 다가옵니다.\n​\n📍 추억이 멈춰 선 시간, 하코다테 공예관(函館工藝館)\n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첫사랑이 일하던 곳이자, 두 사람이 함께 영화를 보던 극장 '미나토자'의 외관으로 등장한 이곳은 현재 하코다테 공예관이라는 이름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곳은 1890년(메이지 23년)부터 식료품과 주류를 판매하던 '우메즈 상점(梅津商店)'이 있던 자리입니다.\n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건물은 잦은 대화재를 겪은 하코다테의 역사를 증명하듯, 1934년(쇼와 9년) 대화재 직후에 재건된 90년 역사의 건축물입니다. 1층은 홋카이도 작가들의 숨결이 담긴 공예품 셀렉트숍으로 운영되고 있고, 2층에는 이 건물의 주인이었던 우메즈 후쿠지로(梅津福次郎)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n직원에게 요청하여 2층에 올라가 과거 응접실의 풍경을 마주해 보세요. 견고한 벽면이 품은 시간의 질감을 느끼다 보면, 악마가 빼앗으려 했던 것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사람들과의 '추억'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n​\n📍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길목, 주지가이역(十字街駅)\n공예관 2층 창너머로 내려다보이는 주지가이역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복잡한 마음을 안고 노면전차에 오르내리던 중요한 길목입니다. 전차가 사라진다면 목적지엔 더 빨리 닿을지 모르나, 창밖으로 흐르는 하코다테의 사계절을 감상할 여유는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n멀어지는 전차의 뒷모습을 보며, 내일 죽더라도 오늘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싶어 했던 주인공의 다정한 마음을 떠올립니다.\n하코다테 공예사\n8-8 Suehirocho, Hakodate, Hokkaido 040-0053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75333065","published_date":"2026. 2. 7. 22:00","scraped_at":"2026-04-05 06:06:38"},{"id":20,"source":"naver","title":"센다이(仙台)에서 마주한 《골든 슬럼버》","content":"​\n이사카 고타로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골든 슬럼버》는 센다이(仙台)라는 도시 전체를 거대한 체스판으로 삼습니다.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 평범한 남자 아오야기가 친구들의 믿음에 힘입어 달렸던 그 길 위에는, 센다이 시민들의 다정한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 있습니다.\n​\n골든 슬럼버\n스릴러\n2010\n나카무라 요시히로\n블로그 글\n더보기\n📍 푸른 가로수 아래의 숨 가쁜 질주, 조젠지 거리(定禅寺通り)\n영화의 서막을 알리는 총리 암살 사건의 퍼레이드가 열린 곳입니다. 센다이가 '숲의 도시(杜の都)'라 불리는 이유를 단번에 보여주는 아름다운 가로수길이죠. 거대한 느티나무들이 푸른 잎사귀 터널을 이루는 이 길은 여행자에게는 세상없이 낭만적인 산책로가 되어주지만, 영화 속에서는 평화가 산산조각 나는 긴장감 넘치는 무대로 변모합니다. 찬란한 햇살이 비치던 가로수길 위로 울려 퍼진 폭발음은, 아오야기의 평범했던 삶이 '도주'라는 낯선 궤도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n​\n📍 절체절명의 순간, 고토다이 공원(勾当台公園)\n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촬영된 이곳은 아오야기가 경찰과 대치하는 장면이 전국으로 생중계되던 긴박한 장소입니다. 온 세상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을 때, 그는 이 공원의 한복판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갑니다. 경찰에 포위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아오야기는 이곳의 맨홀을 통해 어두운 하수도로 몸을 던지며 다시 한번 도주를 선택합니다. 지상의 화려한 빛과 지하의 눅눅한 어둠이 교차하는 이 공원은, 그가 살아남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과 끝까지 지키려 했던 신뢰가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n​\n​\n📍 일상의 평화가 깃든 이정표, 후지사키(藤崎) 백화점\n센다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후지사키 백화점은 영화의 가장 뭉클한 엔딩을 장식합니다. 성형 수술로 얼굴을 바꾸고 살아가는 아오야기는 훗날 이곳 엘리베이터에서 옛 연인 히구치와 그녀의 딸을 우연히 마주칩니다. 히구치는 아오야기가 무심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독특한 습관을 보고 그가 아오야기임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성형을 하여 아예 다른 얼굴이 되어 있습니다.)\n​\n센다이여행을 떠나신다면  《골든 슬럼버》는 꼭 보시고 방문하세요!\n​\n​\nJozenji-dori Ave\nJozenji-dori Ave, Aoba Ward, Sendai, Miyagi,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후지사키 센다이 본점\n3 Chome-2-17 Ichibancho, Aoba Ward, Sendai, Miyagi 980-8652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66862546","published_date":"2026. 2. 5. 22:20","scraped_at":"2026-04-05 06:06:38"},{"id":21,"source":"naver","title":"《최후로부터 두 번째 사랑》의 나가쿠라집","content":"드라마 《최후로부터 두 번째 사랑》에서 치아키와 와헤이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맥주 캔을 기울이던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이런 이웃이 있다면 좋겠다'는 로망을 심어줍니다. 고쿠라쿠지(極楽寺)역에서 내린 두 주인공이 퇴근길에 나란히 걷다가, 앞뒤로 붙은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풍경은 참 다정하죠.  늦은 밤에는 나가쿠라 집 툇마루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아침이면 신페이가 차려주는 신선한 브런치를 먹고 출근하는 일상 말입니다.\n​\n극 중 치아키의 집 외관으로 등장하는 집은 ‘카피오(Capio)’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고, 와헤이의 집으로 등장하는 ‘사카노시타’는 지금도 인기 카페입니다. 드라마 속에서는 두 집이 바로 붙어 있는 것처럼 연출되었지만, 실제로는 가마쿠라의 고즈넉한 골목을 따라 조금 걸어야 하는 거리에 떨어져 있습니다.\n​\n사카노시타의 삐걱거리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드라마 속 세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들이 반겨줍니다. 금방이라도 부엌에서 와헤이가 잔소리를 하며 들어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죠.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마당과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은, 우리가 왜 그토록 이 드라마에 열광했는지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그저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는 일상이야말로 가장 '최고'의 인생이라는 것을요.\n​\n가마쿠라 특유의 정취를 느끼며 걷다 보면 두 집을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도쿄에 갈 일이 있을 때면 종종 찾게 되는 가마쿠라지만, 오랜만에 방문해도 여전히 그곳만의 따뜻한 공기와 여유로운 일상의 풍경은 변함없이 좋습니다.\n​\n​\n최후로부터 두 번째 사랑 3\n드라마\n2025\n일본 후지TV\n블로그 글\n더보기\n사카노시타\n21-15 Sakanoshita, Kamakura, Kanagawa 248-0021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capio\n5-2 Sakanoshita, Kamakura, Kanagawa 248-0021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66672785","published_date":"2026. 2. 4. 21:30","scraped_at":"2026-04-05 06:06:38"},{"id":22,"source":"naver","title":"일상의 복선이 기적으로 변하는 곳, 이나와시로 호수와 《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content":"​\n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을 읽다 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타인들의 삶이 아주 작은 접점을 통해 연결되는 순간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신비로운 이야기의 중심에 바로 이나와시로 호수(猪苗代湖)가 있습니다.\n​\n하늘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 같다고 하여 '천경호(天鏡湖)'라는 별명을 가진 이 호수는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입니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각자의 고민을 안고 마주하는 평화로운 도피처이자 새로운 시작의 공간이 되어주죠. 잔잔한 수면 뒤로 펼쳐진 반다이산의 웅장한 능선은 마치 소설 속 문장들이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제가 방문한 날은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 흐릿한 풍경 덕분에 소설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더욱 짙게 맴돌았습니다.\n​\n사실 이 소설은 후쿠시마현 이나와시로 호숫가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오하라 브레이크(Owara Break)’의 특별한 이벤트로 시작되었습니다. 행사를 기획한 스가 마사요시가 작가 이사카 고타로에게 \"이나와시로 호수를 배경으로 단편을 써서 페스티벌 관객들에게 소책자로 나눠주자\"고 제안한 것이 그 시작이었죠. 이 제안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수년에 걸쳐 층층이 쌓였고, 2022년에 이르러 마침내 한 권의 완결된 소설로 탄생했습니다. 이 배경을 알고 나면 소설 속에서 음악이 들려올 때마다 세상이 공명하던 장면들이 단순한 허구가 아닌, 실제 호숫가에 울려 퍼지던 선율의 기록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n​\n소설을 읽고 이나와시로 호수를 마주하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일상의 풍경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복선일지도 모른다는 소설의 메시지가 떠올라 작은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기 어렵습니다.\n​\n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n이사카 고타로\n2023\n내친구의서재\n블로그 글\n더보기\n이나와시로 호\n일본 후쿠시마현 이나와시로 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66707913","published_date":"2026. 2. 3. 21:20","scraped_at":"2026-04-05 06:06:38"},{"id":23,"source":"naver","title":"단지라는 이름의 우주, 《모두, 안녕히》의 무라야마 단지","content":"영화 《모두, 안녕히》의 주인공 사토루는 12살이 되던 해, 단지 밖의 세상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에게 단지는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학교, 직장, 사랑, 그리고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완결되는 거대한 성벽이자 우주였죠.\n​\n다마가와조스이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도착한 무라야마 단지는 그 규모부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1960년대 고도성장기 일본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한때 수만 명의 꿈이 모여 살던 곳이죠. 횡으로 길게 뻗은 도쿄의 지도를 다시 한번 실감하며, 저는 이 거대한 단지의 미로 속으로 들어갔습니다.\n​\n기요세 아사히가오카가 조금 더 '생활'의 냄새가 짙었다면, 무라야마 단지는 마치 영화 속 사토루가 지키려 했던 거대한 요새처럼 느껴졌습니다. 똑같이 생긴 수십 개의 동이 평행을 그리며 서 있는 풍경은 기하학적이면서도 묘한 적막감을 자아냈습니다. 저 동들 중 어딘가에서 사토루가 매일 아침 단지 안을 순찰하며 \"모두, 안녕히!\"라고 인사를 건네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n​\n영화 속 사토루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케이크 가게나 친구들과 어울리던 상가는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이것도 몇 해전 일이니 지금은 더욱 쇠락해 있겠지요.\n​\n노인들이 천천히 유모차를 밀며 지나가는 길목, 칠이 벗겨진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사토루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변하지 않는 풍경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나누었던 '다정한 이야기들'이 아니었을까 하고요.\n모두, 안녕히\n드라마\n나카무라 요시히로\n블로그 글\n더보기\n村山団地\n일본 〒208-0012 도쿄도 무사시무라야마시 미도리가오카\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66652144","published_date":"2026. 2. 2. 22:20","scraped_at":"2026-04-05 06:06:38"},{"id":24,"source":"naver","title":"과거로 돌아가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시간, 도마코마이와 《나만이 없는 거리》","content":"홋카이도의 푸른 정막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 했던 한 소년의 온기가 서린 도시. 넷플릭스 시리즈 《나만이 없는 거리(僕だけがいない街)》의 배경은 도마코마이(苫小牧)입니다.\n​\n나만이 없는 거리\n미스터리\n2016\n히라카와 유이치로\n블로그 글\n더보기\n​\n주인공 사토루와 친구들이 매일 등하교를 하던 미소노 초등학교는 이야기의 중심축입니다. 눈이 가득 쌓인 운동장과 조용한 교정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실종 사건의 불안함이 공존하던 곳이죠.\n​\n사토루와 카요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과학관은 팬들에게 가장 소중한 성지입니다. 특히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구소련의 우주정거장 미르의 실물 모형 안에서 두 아이가 나누었던 대화는,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서로의 체온으로 고립을 견뎌내던 가장 따뜻한 순간이었습니다. 플라네타륨의 인공 별빛 아래에서 그들이 꿈꿨던 '나만이 없는 거리' 너머의 행복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아련해집니다.\n​\n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재탄생한 《나만이 없는 거리》는 원작의 차갑고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실제 도마코마이의 풍경 속에 완벽하게 녹여냈습니다.\n​\n과거의 비극을 막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는 '리바이벌'이 시작될 때, 우리는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공업도시 도마코마이로 소환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 재탄생한 《나만이 없는 거리》는 원작의 차갑고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실제 도마코마이의 풍경 속에 완벽하게 녹여냈습니다.\n​\n도마코마이 역\n일본 〒053-0022 홋카이도 도마코마이시 오모테마치 6 조메−4\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n​\n​\n​\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69278787","published_date":"2026. 2. 2. 22:03","scraped_at":"2026-04-05 06:06:38"},{"id":25,"source":"naver","title":"<태풍이 지나가고> 남은 자리, 기요세 아사히가오카 단지","content":"​\n“중요한 건 되고 못 되고가 아니야.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n정말이야. 정말. 정말. … 정말이야.”\n—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중에서\n태풍이 지나가고\n드라마\n2016\n고레에다 히로카즈\n블로그 글\n더보기\n영화 속 료타가 아들 싱고에게 건넨 이 대사를 처음엔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그리고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만난 이 장면은 저를 왈칵 울리고 말았습니다. 세 번 반복하면 거짓말 같다던 가족들의 눈총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한 번 더 “정말이야”를 덧붙인 료타의 진심.\n​\n영화의 배경이자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실제로 청춘을 보냈던\n기요세 아사히가오카 단지(旭ヶ丘団地)\n. 도쿄 역에서 전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두 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그곳은 도심의 화려함 대신 파주의 외갓집을 떠올리게 하는 정겨운 밭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n1967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이 낡은 아파트 단지는 영화 속 풍경을 박제해 놓은 듯 그대로였습니다.\n료타와 싱고가 내린 버스 정류장, 요시코와 료타가 나란히 걷던 길, 아들을 배웅하며 요시코가 손을 흔들던 아파트 난간 모두.\n매미 소리가 정막을 깨우는 한낮의 단지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나이 든 주민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n​\n료타가 엄마 요시코에게 사다 준 몽블랑을 맛보기 위해 양과자점 ‘호른(ホルン)’을 찾았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할아버지 주인이 건네준 포크 비닐에는 갈색 때가 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낡음이 이 마을의 깊은 이야기를 대신해 주는 것만 같아 감사히 받아 들었습니다.\n​\n기요세 역에서 료타가 서서 소바를 먹던 가게를 뒤로하고 다시 전차에 올랐습니다. 남쪽에서 올라오고 있다던 태풍은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n​\nAsahigaoka danchi\n5-chōme-5 Asahigaoka, Kiyose, Tokyo 204-0002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66639175","published_date":"2026. 2. 1. 21:50","scraped_at":"2026-04-05 06:06:38"},{"id":26,"source":"naver","title":"<고독한 미식가>에 등장하는 미유키식당","content":"핸드폰을 손에 쥔 아저씨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n앞에 놓인 접시엔 음식이 더 이상 담겨 있지 않다.\n누구도 ‘나가라’, ‘더 주문하라’ 말하지 않는다.\n무려 네 자리나 차지하고 있지만.\n​\n일본 기요세 역 앞 미유키 식당 풍경. 나는 영화\n‘태풍이 지나가고’의 배경을 여행\n한 후 이 식당에 들어갔다.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식당은 일부러 시간을 들여서 찾아가기도 하는데 이번 여행은 운이 좋았다. 마침 찾아간 마을 가까이에 ‘고독한 미식가’ 속 식당이 있었다. 게다가 메뉴도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든다’라고 함부로 이야기 하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이곳엔 메뉴가 엄청나게 많다.\n​\n고독한 미식가 시즌4\n2014, 일본 TV도쿄\n블로그 글\n더보기\n​\n미유키 식당은 ‘고독한 미식가’ 시즌 4의 1화에 등장하는 곳이다.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는 수입 잡화상을 운영하는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등장한다. 이노가시라는 여러 마을을 방문하며 업무를 보고, 주변 식당에 들어가 혼자 식사를 즐긴다. 시즌 4 1화의 무대는 도쿄 기요세시\n清瀬市\n. 이노가시라도 ‘도쿄가 맞나’라고 할 정도로 소박하고, 적당히 활기찬 마을이다. 이노가시라는 이곳의 한 안경점에서 외국 선글라스를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안경점에서 나온 그는 배고픔을 느끼고, 방금 전 눈여겨본 닭꼬치 가게 바로 옆 식당에 들어간다.\n​\n​\n​\n미유키 식당의 한쪽 벽면은 메뉴가 적힌 종이로 가득 차 있다. 벽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고민하는 이노가시라. 우리는 이노가시라 덕분에 망설이지 않아도 괜찮았다. 우선 그가 먹은 숙주나물 고기 매콤 볶음, 풋고추 된장 마늘을 주문한다. 고기볶음은 참기름 향이 고소하고 숙주나물이 아삭하니 좋다. 고기는 고급스러운 느낌은 없지만 양념이 잘 베어 먹기 편하다. 희미한 매콤함이 너무 느끼해지지 않도록 잡아준다. 이노가시라처럼 공깃밥과 미소 장국을 곁들여 든든한 한 끼 식사로 완성했다. 숙주나물 고기 매콤 볶음과 풋고추 된장 마늘은 한낮의 시원한 맥주와도 잘 어울리는 메뉴. 사실 이노가시라는 극 중에서 술을 전혀 못하는 역할로 나온다. 이 식사에 맥주를 곁들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아쉽다.\n​\n​\n반면,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는 술을 좋아한다. 드라마 끝에 원작자 구스미가 가게에 실제로 방문하는 영상이 나오는데, 나는 이 코너를 더 좋아한다. 구스미 마사유키가 맥주를 들이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원한 캔맥주를 딸깍 따곤 한다. 구스미는 미유키 식당에서 야채 소 라멘 소자를 시켰다. 나는 마파 라멘, 카레 라멘을 먹고 싶다는 남편에게 굳이 야채 소 라멘을 시켜주었다.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양과,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맛이 궁금했기에. 일본에서 라멘이라고 하면 꼬불거리고 쫄깃한 생면인데, 이곳의 ‘소 라멘’은 앞에 ‘소’가 붙어 소면을 라멘국물에 만 요리다.\n일본에서는 독특한 조합.\n우리나라 잔치국수와도 비슷할 듯 하다. 국물은 라멘처럼 된장, 간장, 소금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린 구스미 처럼 ‘간장’ 베이스를 택했다. 확실히 잔치국수에 간장을 많이 넣은 맛. 면이 얇은 만큼 간이 잘 스며들어 맛있다. 야채도 듬뿍 들어 있어 건강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소 라멘 안에 든 야채를 보고, 메뉴가 많아도 괜찮은 이유를 눈치챘다. 숙주나물 고기 매콤 볶음에 들어있는 야채와 소 라멘에 든 야채가 동일했다. 구성도 모양도. 잔뜩 준비하여 일부는 볶아서, 일부는 국물에 말아서 내놓는구나. 그렇게 한다면 이렇게 많은 메뉴를 감당할 수 있겠다. 아무리 그래도 ‘시골 스파게티’에는 스파게티 면이 들어갈 테고, 돈부리 메뉴들도 따로 있고, 소바나 우동, 튀김류까지 정말 다양하다.\n​\n​\n“이렇게 싸게 해서 어떻게 하냐\"라고 묻는 구스미 마사유키의 질문에 주인아저씨의 대답이 웃음을 짓게 만든다.\n“제 용돈을 줄이면 되니까요. 메뉴가 이렇게 많으면 남은 걸 잔뜩 먹을 수 있어요.”\n​\n​\nINFORMATION\n미유키 식당\nみゆき食堂\n기요세역 남쪽출구에서 1분거리. 일, 월, 목 휴무.\nみゆき食堂\n1 Chome-9-18 Matsuyama, Kiyose, Tokyo 204-0022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66632826","published_date":"2026. 1. 31. 21:40","scraped_at":"2026-04-05 06:06:38"},{"id":27,"source":"naver","title":"SEKAI NO OWARI, 'MAGIC'에 등장하는 도쿄 카페 미켈란젤로","content":"계절이 흐르고 흘러 네 번째 겨울이 찾아왔을 때도 나는 여전히 당신 곁을 서성이고 있었죠.\n커다란 나무가 서 있는 '카페 미켈란젤로'에서 마침내 나는 진심을 건넸습니다.\n\"나와 함께해주지 않을래요?\"\n— SEKAI NO OWARI, 'MAGIC' 중에서\nMagic\n노래\nSEKAI NO OWARI\n2017.03.17.\n도쿄 다이칸야마의 한복판, 시간이 멈춘 듯한 고풍스러운 외관의 카페 미켈란젤로(Caffé Michelangelo)에 들어서면 이 노래의 가사가 마법처럼 현실이 됩니다. 노래 속 주인공이 4년이라는 긴 기다림 끝에 수줍은 고백을 건넸던 그곳에는, 가사 그대로 하늘을 가릴 듯 우뚝 솟은 커다란 팽나무 한 그루가 우리를 맞이합니다.\n카페 미켈란젤로\n29-3 Sarugakucho, Shibuya, Tokyo 150-0033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300년의 세월을 견뎌온 그 거대한 나무 아래 테라스 석에 앉아 있\n으면, 이곳이 왜 〈MAGIC〉이라는 노래의 배경이 되었는지 금세 깨닫게 됩니다. 붉은 타일 바닥과 클래식한 가구 위로, 나뭇잎 사이사이를 뚫고 내려오는 부드러운 햇살. 그 찰나의 눈부심 속에서 가사 속 주인공들은 '언젠가 사라질 마법' 같은 인생 이야기를 나눴을 것만 같습니다.\n​\n따뜻한 봄날, 여유로운 마을 분위기 속에서 즐기는 피자 한 조각과 시원한 맥주 한 잔, 그리고 이어폰 너머로 흐르는 후카세의 목소리.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지는 순간, 우리의 평범한 하루도 누군가의 노랫말처럼 특별한 조각이 됩니다.\n​\n마법이 풀리기 전, 소중한 사람과 함께 이 커다란 나무 아래를 찾아보세요. 혹은 혼자여도 좋습니다.\n​\nps 참고로 음식은 사악한 가격에 비해서 매우 적고 평범합니다. 😅","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59203702","published_date":"2026. 1. 29. 20:00","scraped_at":"2026-04-05 06:06:38"},{"id":28,"source":"naver","title":"<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배경, 가부키초","content":"​\n어느 해 연말이 가까워지던 무렵, 청바지에 코트 차림으로 캐리어를 달달달 끌며 가부키초 거리를 걸었다.\n그날 밤의 풍경이 유독 생생하게 떠오른 건, 지난 5월 황금연휴에 만난 하타노 도모미의 소설 《신을 기다리고 있어》 때문이었다. 나와 닮은 차림으로 이 거리에서 트렁크를 끄는 주인공이 등장했기 때문이다.\n일본인이라고 해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있다. 술집이나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듯한 화려한 차림의 남녀 외에도, 누가 봐도 조직 폭력배로 보이는 무서운 얼굴의 사람들도 이 거리를 걷고 있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경찰의 안내 방송이 서로 뒤섞인다. 호객행위는 금지라느니, 바가지 판매에 조심하라느니 하는 경찰의 안내를 듣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귀담아듣고 주의할 만한 사람은 애초에 이곳에 오지 않는다.\n​\n나는 어깨보다 조금 긴 길이의 까만 머리를 하나로 묶고, 캐멀색 코트에 청바지를 입고 보아털 부츠를 신었다. 이곳 분위기와는 완전히 따로 노는 차림이다. 거리 중심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있지만 거기 가는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n- 하타노 도모미, <신을 기다리고 있어>\n​\n​\n​\n​\n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홈리스가 되어 거리로 나가게 된 스물여섯 살 여성의 6개월간의 삶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미즈코시 아이는 (상위권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도쿄에 있는 대학을 졸업 후 수십 군데의 회사에 지원했지만 딱 한 곳에 합격을 하게 된다. 합격한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성희롱을 당해 가지 않기로 하고, 문구회사 파견직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파견직 계약이 끝날 무렵 구두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정직원 전환, 차선책으로 요구한 재계약이 성립되지 않아 실직을 한다. 집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만화카페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시작하고, 일일 아르바이트, 즉석만남카페에서 돈을 번다. 대학까지 나와 이제까지 무얼 했냐고 멸시하는 공장의 작업반장, 남자에게 여러 차례 버림받고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사치(정신지체 증상이 있다), 아버지의 성폭행을 겪고 집을 나와 성매매를 하며 사는 여학생 나기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n​\n난 이 소설을 좀처럼 내려놓을 수가 없어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이 소설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그날 밤 머문 호텔 벽 너머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을 이야기였다. 그 배경 속에서 <신의 기다리고 있어>의 아이는 2만 엔에 성을 팔아넘겼다. 여러 복잡한 생각이 뒤섞였고, 가부키초 풍경에 여러 사회의 면면이 겹쳐졌다.\n​\n가부키초\n일본 〒160-0021 도쿄도 신주쿠구 가부키초\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59212443","published_date":"2026. 1. 28. 22:10","scraped_at":"2026-04-05 06:06:38"},{"id":29,"source":"naver","title":"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배경, 메구로","content":"드라마의 상징과도 같은 메구로강(目黒川)은 주인공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 혹은 서로를 향해 독설을 내뱉을 때마다 늘 그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벚꽃 시즌의 화려함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지만, 드라마 속 메구로강은 그저 평범하고 담백한 일상의 무대일 뿐이다. 도쿄 출장이 있을 때면 나는 매일 아침 메구로강을 뛰는데, 조깅을 할 때마다 드라마 《최고의 이혼》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오르곤 한다. 어느 다리 모퉁이에선가 금방이라도 미쓰오(에이타 역)가 잔뜩 투덜거리며 나타날 것만 같다.\n​\n최고의 이혼\n드라마\n2013\n일본 후지TV\n블로그 글\n더보기\n드라마 《최고의 이혼》은 극도로 예민한 남자 미쓰오와 털털한 여자 유카(오노 마치코 역) 부부의 시끄럽고도 솔직한 기록이다. 작가 사카모토 유지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유머가 빛을 발하는 이 작품은,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 맞지 않아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던 두 사람이 어느 날 홧김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며 시작된다.\n급작스러운 이혼에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서류상으로는 남남이 되었음에도 집 문제와 주변 어른들의 시선 때문에 당분간 '이혼한 채로 한집에 사는' 기묘한 동거를 이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생활 중에는 보이지 않던 서로의 진심과 상처들은 남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무렵, 미쓰오는 대학 시절 옛 연인인 아카리(마키 요코 역)와 우연히 재회한다. 아카리는 이미 묘한 매력의 예술가 료(아야노 고 역)와 가정을 꾸린 상태였다. 하지만 료는 심각한 바람둥이였고, 심지어 아카리와의 혼인신고서조차 제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네 남녀의 관계는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다.\nMeguro River\nMeguro River, 도쿄도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네 사람이 우연 혹은 필연적으로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고 다투던 수많은 다리가 메구로강 곳곳에 걸려 있다. 화려한 도쿄 도심과는 조금 다른, 메구로만의 아기자기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달뜬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서툰 어른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던 이 길 위에서, 나는 묵묵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달리곤 한다.\n​\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59185640","published_date":"2026. 1. 27. 20:40","scraped_at":"2026-04-05 06:06:38"},{"id":30,"source":"naver","title":"《에키벤》이 이끈 무로란의 맛과 풍경, 카레라멘과 지구곶(地球岬)","content":"보통 카레우동을 만들 때는 물을 조금 더 넣어 국물을 묽게 잡기 마련이죠. 하지만 무로란에서 만난 카레라멘의 국물은 전혀 묽지 않았습니다. 카레 본연의 깊고 진한 맛을 유지하면서도, 탱글탱글한 노란 면발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카레라멘을 먹다 보니 '왜 카레우동은 굳이 묽게 만들어 먹었을까?' 하는 기분 좋은 의문이 생기더군요.\n​\n홋카이도 카레라멘 기원설의 중심에는 제가 찾아간 맛의 대왕()'이 있습니다. 1965년 도마코마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한데, 무로란 본점은 1972년부터 메뉴를 내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삿포로의 미소, 하코다테의 시오, 아사히카와의 쇼유에 이어 홋카이도의 네 번째 라멘 자리를 노리는 무로란 사람들의 성실한 자부심이 엿보였습니다. 과연 '맛의 대왕'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맛이었습니다.\n​\n아지노 다이오 총본점\n138-3 Uenae, Tomakomai, Hokkaido 059-1365 일본\n이 블로그의 체크인\n이 장소의 다른 글\n​\n무로란을 찾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만화 《에키벤》 덕분이었습니다. 주인공 다이스케가 일본 전역의 기차역 도시락(에키벤)을 소개하는 이 만화는 제게 최고의 일본 여행 가이드북이기도 합니다. 만화 속 다이스케와 나나는 보코이역(母恋駅)에서 '보코이 도시락'을 사서 지구곶(地球岬, 지구미사키)에 올라가 먹습니다. 저 역시 라멘을 먹고 기분 좋은 카레 향기를 풍기며 언덕을 올라 지구곶에 닿았습니다.\n​\n'지구'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이곳은 사실 천체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름의 유래는 아이누어에 있는데, '낭떠러지'를 뜻하는 '치케우'가 일본어 치큐(지구)'와 발음이 비슷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보코이역 역시 '엄마가 그립다'는 한자를 쓰지만, 사실은 '함박조개가 많이 나는 곳'이라는 뜻의 아이누어 '포커 오이'에서 왔습니다. 홋카이도 지명 곳곳에 아이누어의 숨결이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습니다.\n휴가 일정을 미루다 겨우 오게 된 이곳은 비수기 특유의 헐벗은 풍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눈도, 푸른 풀도, 사람도 없는 쓸쓸한 모습이었지만, 그 애잔한 자연의 모습이 오히려 제 마음을 더 깊이 두드렸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날, 나라도 찾아와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반듯하지 않고 둥글게 그어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저는 '지구곶'이라는 이름이 참  잘 지어졌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n​","url":"https://m.blog.naver.com/istandby4u2/224159117187","published_date":"2026. 1. 26. 21:20","scraped_at":"2026-04-05 06:06:38"},{"id":31,"source":"brunch","title":"밤새워 읽었고 겨우 만났다","content":"오월의 어느 날 늦은 밤. 일본의 한 호텔에서 홀로 있었다.\n밤새 태풍이 휘몰아치며 창문을 심하게 두드리는 바람에 4시가 되도록 잠들지 못했다. 새벽 4시까지 '본격소설' 하권을 모두 읽었다.\n잠이 안 오기도 했지만\n소설이 잠을 못 이루게 하기도 했다.\n소설은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가 문예잡지 편집자 유스케로부터 전해 들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n중졸에 미국으로 건너가 억만장자가 된 주인공 아즈마 다로와 작가의 실제 경험, 유스케와 가정부 후미코로부터 들은 이야기가\n사실인 듯 소설인 듯 엮여 있다.\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 요코와 다로의 행복한 기억이 깃든 오이와케\n▲ 요코의 할머니가 자주 머문 쓰루야 여관\n▲   쇼기념 예배당\n▲ 실제 모습 |  '본격소설' 하권에 첨부되어 있는 서양관 사진 | 손그림 @istandby4u2\nㅡ\n시대 탓이었나봐요.\n나도 모르게 미래라는 것을\n믿고 있었죠.","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published_date":"2016-07-16T03:24+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32,"source":"brunch","title":"15화 숲 속에 답이 있었다","content":"“헤멘린나에는 아름다운 호숫가 성과 시벨리우스의 생가가 있지만, 아마 다자키 씨한테는 그보다 더 중요한 볼일이 있을테죠.”\n-『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중에서\n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인 내가 핀란드 여행에서 가장 집착 증세를 보인 도시는 헤멘린나\nHämeenlinna\n였다.  가장 좋은 날씨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여행의 감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헤멘린나에 가고 싶었다.\n그리곤 날씨와 감성의 조건이 충족한 바로 그 날.\n배탈이 났다.\n그것도 내 생애 겪은 배탈 중 가장 극심한 복통을 동반. 오장육부가 뒤엉키는 듯한 느낌이었다. 여행지에서는 늘 생수를 사먹곤 했는데, 사우나를 하면서 수분보충을 위해 사둔 생수가 부족하여 (먹어도 괜찮다고 하는 핀란드의)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신 탓이었다. 지난 며칠간 먹은 모든 것을 쏟아냈다.\n헤멘린나역\n헬싱키에서 헤멘린나로 향하는 오전 10시 6분 기차를 기어서 5분에 탔고, 7번 칸 자리였는데 더이상 기어갈 힘 조차 없어서 한참 먼 식당칸에 엎어져 있다가 화장실에서만 40분을 보냈다. (차라리 화장실석을 예약할 것을 그랬다.)\n헤멘린나는 헬싱키에서 약 100km 떨어진 도시다. 기차로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동행한 친구는 계속해서 중간에 내려 헬싱키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당시는 헤멘린나에 꼭 가고 싶다는 생각보다, 중간역에서 내려 걸어서 반대편 열차를 타러 갈 기운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엎어져 있었다.\n그렇게 겨우겨우 도착해서 처음 찾아간 곳은 하루키 소설 속 숲도, 호수도 아닌 약국이었다. 약을 먹고 걷다가 지치면 쉬어가며 하루를 보냈다. 덕분에 느릿느릿 헤멘린나를 온전히 바라보았다.\n헤멘린나 성\n홀 로  색 채 가  없 었 던  다 자 키 쓰 쿠 루\n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는 주인공 쓰쿠루가 대학교 2학년 여름, 가장 친했던 친구 다섯 명의 그룹으로부터 영문도 모른 채 퇴출당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십 여 년 후 퇴출의 이유를 밝혀나가는, 즉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순례의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일본의 나고야, 하마마쓰, 도쿄, 그리고 핀란드의 헬싱키, 마지막엔 헤멘린나까지…….\n각 도시가 매우 인상 깊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과 함께 도시순례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다섯 도시 중 일본에 있는 나고야, 하마마쓰, 도쿄는 순방할 기회가 있었다.\n순례의 마지막 친구 구로를 만나는 헤멘린나를 못 가본 것이 마치 홀로 색채가 없었던 (이름 중 색\n色\n이 있는 한자가 없었던) 다자키 쓰쿠루의 심리 마냥 아쉬웠다.\n핀란드 여행은 그 아쉬움을 해소할 여행이었다.\n헬싱키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카모메식당>에 이런 장면이 있다. 오랫동안 부모님 간병으로 시간을 보낸 마사코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겨우 자유가 생겨 헬싱키에 가게된다. 카모메식당에서 마사코가 “왜 핀란드인은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일까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핀란드청년 토미가 답한다.\n“핀란드에는 숲이 있어요.”\n그 말을 듣고 곧장 숲으로 향한 마사코처럼, 나도 핀란드의 숲에 꼭 가보고 싶었다. 마침 헤멘린나엔 근사한 숲이 있다.\n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호수가 보였다. 작은 방파제 같은 게 있고, 겨자색 플라스틱 보트가 한 대 묶여 있었다. 낚시용 작은 보트였다. 나무들에 둘러싸인 아담한 목조 오두막이 있고, 지붕에는 사각형 벽돌 굴뚝이 솟아올랐다.\n-『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중에서\n전 원 풍 경 이  불 러 일 으 키 는  영 문 모 를  슬 픔\n소설 속에서 구로가 가족과 휴가를 보내는 헤멘린나 근교에 있는 숲. 아마 아울란코\nAulanko\n부근이 아닐까 짐작해 보았다. 이탈라 글라스 센터에서 쇼핑을 하고 싶다는 친구를 보내고, 혼자 아울란코행 버스를 탔다. 광활한 숲이 펼쳐져 있는 아울란코는 핀란드 사람들이 여름휴가로 즐겨 찾는 곳이라고 하는데, 이상하게 내가 간 날에는 사람이 없어서 무서웠다.\n숲으로 들어가는 입구\nGranite Castle\n부근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이대로 가야 할지, 그냥 돌아갈지. 나는 굉장한 겁쟁이다.\n마침 한 핀란드 가족이 숲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에게 의지하면서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지면, 조금 참으며 걷다 만나는 다른 가족들에게 의지하고, 또 다시 의지하면서……. 의지의 대상을 배턴터치하며 발걸음을 옮겼다.\n프란츠 리스트가 여행의 기억을 곡으로 풀어낸 작품집 <순례의 해> 중 '르 말 뒤 페이\nLe Mal du Pays\n.' 다자키 쓰쿠루는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만남의 마지막 즈음에 자살한 시로가 즐겨 연주하던 ‘르 말 뒤 페이를 기억하는지’ 묻는다. 르 말 뒤 페이는 우리말로 '향수' 혹은 '멜랑콜리'로 번역되곤 하는데, 정확한 의미는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n내가 걸은 아울란코의 숲은 ‘르 말 뒤 페이’의 의미를 충분히 품고 있었다. 혼자 걷고 있는 나는 괜히 울컥 했다. 신경 써야 하는 사람도 없고, 여비가 부족하지도 않았고, 속이 조금 불편했지만 꽤 걸을 수 있는 체력까지 있었다. 길 위엔 백조와 새끼들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붉은 얼굴을 한 핀란드 가족들은 그들이 지나가기를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 풍경 뒤로는 호수가 반짝거리고 있었고, 숲이 울창했다. 그곳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감정을 만끽할 수 있었다.\n그런데 영문도 모르게 슬펐다.\n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1.8km 정도 걸어가면 숲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타워\nAulangon näkötorni\n가 하나 있다고 해서, 걸어가 보았다. 3km는 걸은 듯 했지만 타워는커녕, 나무들 때문에 높은 건축물이라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둘째라면 서러울 방향치인 나는 숲 안에서 같은 장소로 서너번 가량 돌아왔다.\n정말 다리가 끊어질 것 같던 순간. ‘돌아가자!’ 마음 먹었는데,  그럴 때는 늘 친절하고 용기를 주는 아주머니가 등장한다.\n“노! 잉글리쉬! &^%$#@”\n손짓으로 타워를 만드니,\n핀란드어로 ‘얼마 안 남았으니 앞으로 가’라고 한다.\n어떻게 알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알아 들어 다리를 질질 끄니 타워가 보였다.\n타워 바로 밑에는 매점이 하나 있었다. 오전에 모든 것을 쏟아내곤 배 안에 아무 것도 넣질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왜 콜라가 마시고 싶은지…….\n매점에서 콜라를 한 병 샀다.\n(사실 타워를 오를 기운이 전혀 없었다. )\n콜라를 마시고 앉아 있었다.\n(나는 평소에 콜라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n딱 콜라 한 잔 마셨는데!\n(아마 15분도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n파란색이었던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무서운 속도로 몰려들었다. 켜켜이 쌓여 회색, 검은색으로 변해간다.\n타워에 오르니, 검은 숲이 되어있다.\n하아.\n이번 여행 열흘 동안 단 한 순간도 날씨가 흐린 적이 없었다. 계속되는 맑은 날씨, 푸른 하늘, 눈부신 물빛에 너무 운이 좋은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런 순간들이 계속 되다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매몰차게 몰려든 구름. 콜라 한 잔으로 푸른 하늘 아래 싱그러운 초록빛 숲 전경을 놓치고 말았다.\n'뭐 그런 거지.'\n태연하게 굴고 싶었지만 혹시 구름이 없어지지는 않을 까 20분 동안 그 높은 곳에 마냥 서 있었다.\n포기하고 내려와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밤 11시 반까지도 환한 백야의 핀란드이지만, 구름이 끼니 숲은 무시무시하다. 의지했던 가족들도 다들 어디로 들어갔는지,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백조가족들이 남아 있어서 이들에게 무한정 의지했다. 그리곤 버스시간을 잘 못 보아 물가 높은 나라에서 택시를 타게 된 비교적 귀여운 에피소드로 일정을 마감하며 생각했다.\n헤멘린나행.\n포기하지 않아서 다행이야.\n도로 양쪽은 거의 숲이었다.\n국토 전체가 싱싱하고 풍성한 녹음으로 덮인 듯한 인상이었다.\n대부분 자작나무고 소나무나 가문비나무나 단풍나무가 섞였다.\n-『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중에서\n[부록] 하루키의 답장을 받다\n일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기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습니까.\nラオスにいったい何があるというんですか?\n』 가 새로이 발간되었다고 하여 주문을 하였다. 대부분의 여행기는 일본 여객기 JAL의 기내지인 ‘아고라\nAgora\n'에 연재되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후기에 따르면 사진 중심의 기내지엔 들어가는 문장분량이 굉장히 적어 긴 버전과 짧은 버전을 써두었고, 짧은 버전이 기내지에 실렸다. 이번 단행본에 수록된 것은 당시 함께 써둔 긴 버전의 여행기라고.\n목차를 읽어 내려가던 중 핀란드 여행기가 있단 사실에 극도로 흥분했는데, 단지 핀란드, 헬싱키만이 아닌 헤멘린나가 있단 사실을 알고 정신줄을 놓을 뻔 했다. 이유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속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느낀 헤멘린나가 아닌, 무라카미 하루키가 느낀 헤멘린나 이야기가 늘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녀온 이 장소에 대한 감상을 하루키의 긴 문장으로 들어보고 싶었다.\n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하루키와 독자간의 대화' 이벤트 때는 질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답변을 받았다.\n- 나의 질문\n핀란드의 도시, 헤멘린나에서 느낀 바가 궁금합니다.\n해외에서 하루키 씨의 소설을 빠짐없이 읽고 있는 팬입니다. 3 년 전부터 회사에서 휴가를 얻으면, 하루키 씨의 소설 속 배경이 된 곳을 순례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 인생에서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최근 다녀온 곳은 핀란드 헤멘린나입니다만, 근교의 숲을 산책해 보기도 하고, 시내를 걸어 보니, 소설에 묘사된 것들을 직접 느껴볼 수 있어 무척 즐거웠습니다.\n\"가보지 않은 곳도 상상력을 발휘하여, 소설의 배경으로 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헤멘린나도 소설을 쓴 후 방문하신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실제로 가본 후의 감상을 듣고 싶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하루키 씨의 소감이 신경 쓰여 잠을 이룰 수 없으므로, 무라카미 씨, 한마디 해주시면 기쁩니다.\n- 하루키의 답변\n헤멘린나. 네, 가보지 않고 썼습니다 (웃음). 지도만 보고 적당히 쓴 것입니다. 소설을 쓴 후 (출판되기 전에) 가보고, 여기 저기 둘러보니 상상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에 안심했습니다.\n단지 수목의 종류 정도는 달랐기 때문에, 그것은 다시 썼습니다. 그리고 제가 설정했던 호숫가의 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 부분도 수정했습니다. 광장 장면도 실제에 맞게 조금 수정했습니다.\n가장 놀란 것은 제가 헬싱키에서 빌린 렌터카가 우연히 감색 폭스바겐 골프였던 것. 소설과 똑같았지요. \"어!\"하고 놀랐습니다. 이런 일이 있구나. 신기합니다.\n『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속 핀란드 장면을 전부 상상으로 써버린 후에 이번 핀란드 취재를 갔습니다. 왠지 스스로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더듬어 가듯.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여행이었습니다.\n-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습니까』 (무라카미 하루키) 중에서\n나에게도 헤멘린나는 농도 짙은 하루였다. '하루만 보내고 돌아가긴 아깝다' 싶은 당일치기 여행이었고, 헬싱키에서의 여러날보다 선명하게 기억하고 오래 추억할 것 같다. 하루키의 발자취를 좇을 수 있어서 행복했고, 그리고 계속해서 어디 한 구석이 그와 연결되어 있는 듯하여 기쁘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published_date":"2016-07-18T12:5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33,"source":"brunch","title":"쓸쓸한 사랑의 기억","content":"라면을 끓이게 되는 영화가 있다.\n\"라면 먹을래요?\"\n이제는 질릴 만도 한 이 대사는\n여러 차례 다시 들어도,\n설레고 고프다.\n영화 '봄날은 간다' 스틸컷 (출처 : 네이버영화)\n신흥사 대웅전\n'봄날은 간다' 촬영지 삼척\n신흥사는\n음향기사 남주인공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n영화는 서울에서 할머니와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사는 주인공 상우(유지태)와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이자 아나운서인 은수(이영애)가 녹음 일로 만나며 시작한다.\n둘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강원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사랑에 빠지게 된다.\n은수와 상우가 눈 내리는 사찰의 소리를 녹음한 삼척 신흥사에 도착하니,\n물소리와 바람소리…\n그리고 멀리서\n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n영화에서도 뻐꾸기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기에 반가웠다.\n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찰에서\n영화 속 소리들을 마주 하고 있자니,\n여러 감흥이 뒤섞이기 시작했다.\n신흥사는 신라의 44대 왕 민애왕 때 동해시 부근에 지어졌던 절인데, 1674년에 현재 장소로 옮겨 왔다고 한다.\n2년 전 아궁이에 불을 지핀 채 월드컵 경기를 보러 나간 스님의 실수로 큰 불이 나,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n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와 창고가 탔다고 하는데,\n영화 속 풍경과 다른 점을 전혀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잘 복원되어 있었다.\n신흥사\n강원 삼척시 근덕면 양리길 220\n신흥사 가까이엔 폐교가 하나 있어,\n인적 드문 이곳 풍경에 운치를 더해주었다.\n폐교 전에는 이곳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했을 것이라니... 감이 잘 오지 않는다.\n신흥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n강화순 할머니의 사유지라고 하는 이곳은 영화 속 장면과 사뭇 달랐다.\n영화 봄날은간다촬영지\n강원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n강화순 할머니 (당시 72세)는 ‘봄날은 간다’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상우와 은수는 할머니가 차려준 고봉밥으로 함께 첫 식사를 한다.\n비록 영화 속 한옥 이었던 집은 양옥으로 바뀌었지만...\n집으로부터 텔레비전 소리 등 생활의 소리가 나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앞을 조용히 지났다.\n대나무 숲은 경사가 심하게 져 있고 생각보다 우겨져 있지도 않았다. 다만, '삭삭' 들리는 소리가 15년 전 영화 속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n영화 '봄날은 간다' (출처 : 다음영화)\n서울로 올라가기 전, 삼본 아파트를 찾았다.\n영화에서 이곳은 많은 일들이 벌어진 곳이다.\n은수와 상우가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고,\n사랑을 시작했고,\n너무 보고 싶다며 서울에서부터 친구 택시를 타고 온 상우를 아파트 앞 길가에 서서 기다리기도 했고,\n다른 남자를 만나는 은수를 알게 되기도 했다.\n그리고\n둘은 이곳에서 이별을 했다.\n삼본아파트\n강원 동해시 해맞이길 231\n해질 무렵 바다의 기운이 쓸쓸하게 느껴지는\n한적한 아파트는 많은 사랑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듯 괜스레 애잔했다.\n© istandby4u2","url":"https://brunch.co.kr/@istandby4u2/5","published_date":"2016-07-20T12:3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34,"source":"brunch","title":"아침햇살이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content":"러셀\n크로우 주연의 영화\n<\n어느\n멋진\n순간\nA Good Year\n>\n은 일과 싸구려 사랑에 취해 살던 런던 증권맨 맥스 스키너(러셀 크로우)가 프로방스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 사랑, 추억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n우리 영화볼래? <어느 멋진 순간>\n워커홀릭 바람둥이의 안절부절 로맨스!인생 뭐있어? 돈과 여자가 최고지!잘생기고 능력 있는 런던증권가의 펀드 매니저 맥스 스키너. 업계 최고의 실력자인 그는 재능만큼이나 건방지고 바람기 많은 인물로 유명하다. 맥스는 유럽시장을 정복하려 온갖 경쟁을 하고 마침내 엄청난 이익을 내는데 성공한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삼..\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2397\n어린 시절 프로방스에서 자란 맥스 스키너는 자신을 키워준 헨리 삼촌의 유산을 정리하러 프로방스로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서 만난 페니(마리옹 꼬띠아르)에게 호감을 느끼고 데이트 신청을 하기 위해 페니가 일하는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그 때 바쁜 페니가 하는 말.\n“맥도날드는 아비뇽, 피시 앤 칩스는 마르세유에 있어요!”\n영화 '어느 멋진 순간' 스틸컷 (출처 : Daum 영화)\n영화 속 프로방스의 풍경은 너무나 여유롭고 아름다웠는데, 여주인공의  입에서 나온 ‘아비뇽 = 맥도날드(?)’ 라는 멘트는 '한적한 프로방스의 아비뇽'을 기대하며 여행길에 오른 나에게 제법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큰 기대 없이 아비뇽 역에서 내렸다.\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아비뇽역, 떠나는 풍경까지 따뜻하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published_date":"2016-08-01T15:0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35,"source":"brunch","title":"그들만의 작은 궁전을 엿보다","content":"왕조가 바뀔 때마다 힘없는 백성들은 혼란스럽다.\n전국 각지에서 난이 일기도 하고, 숨죽이고 있던 북방 민족(거란, 여진, 몽골 등)이 침략해 내려오기도 한다. 혼란기 때마다 중국 대륙에서는 북에서 남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유민이 발생하였다. 중국 역사상 총 5차례가 있었던 대규모 유민은 ‘객가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을 만들었다.\n객가인들은 사실상 중원에 살던 한족\n汉族\n이지만 거주지를 남쪽으로 옮겨 살아간 사람들을 칭한다. 객가인의 규모는 7,000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 장시성, 푸젠성, 광둥성 일대에 많이 정착했다. 대만과 해외로 진출한 화교들도 상당수 객가 출신이다.\n침략과 약탈에 넌더리가 났던\n객가인들이 세운 폐쇄적인 건축양식인 토루(土樓).\n2008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푸젠토루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현재 남아 있는 토루는 약 3,000여 개로 그중 총 46채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n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토루는 주로 푸젠성의 장저우시\n漳州市\n, 룽옌시\n龙岩市\n등지에 분포해 있는데, 내가 간 곳은 유네스코로 지정된 토루가 가장 많이 있다는(20채) 장저우시 난징 현\n南靖\n.\nGoogle 지도\n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nhttps://www.google.co.kr/maps/place/Yuchang+Building/@24.5966999,117.0437123,4193m/data=!3m1!1e3!4m13!1m7!3m6!1s0x34114daec442e1db:0x8c2c84a54fa8a724!2s309+Sheng+Dao,+Nanjing+Xian,+Zhangzhou+Shi,+Fujian+Sheng,+China!3b1!8m2!3d24.5993263!4d117.0486705!3m4!1s0x0:0xc29d45b5c4dc9918!8m2!3d24.5911561!4d117.0470551?shorturl=1\n매정하게도 도착하자마자 폭우가 쏟아졌고, 카메라와 함께 비를 맞으며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n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기록을 읽어보니, 이 토루라는 건물은 사실 객가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동남부 지역에 살던 민난인들 역시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을 지었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토루들의 많은 부분이 객가인들이 살았던 건축물이기 때문에, 객가인과 토루 문화를 결부시켜 논하는 경우가 많다.\n전라갱토루 ©istandby4u2\n네 가 지 반 찬, 국 하 나\n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전라갱 토루\n田螺坑土樓.\n‘4채 1탕’이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어 있는 이 토루는 원형 토루 4채와 방형 토루 1채가 붙어 있어, 4개의 반찬과 1개의 탕과 같다. 산 위에 이 5개의 토루를 함께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었다.\n비가 내려서 아쉬웠지만,\n‘귀퉁이에 있는 작은 건물은 수저’라는 가이드의 추가 설명이 더해져\n더욱 흥미로운 토루 여행의 막을 열었다. 600여 년 전에 황씨 일가가 이 일대에서  살면서 우렁이를 먹인 오리를 키웠다고 해서 밭 전\n田\n자에 우렁이 라\n螺\n를 써서 '전라갱'이라 이름 붙었다.\n유창루 ©istandby4u2\n소 간 지 는 없 지 만\n다음으로 난징 현에서 가장 오래된 토루인\n유창루\n裕昌楼\n로 향한다. 무려 705년이나 된 유창루는 1308년부터 1338까지 30년 동안 지은 집이다. 1층과 2층은 스승이 짓고, 3층부터는 제자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 제자는 스승에게 자신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기둥을 비스듬히 세워서 완성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n유창루는 269개 방이 있는 데 현재는 59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토루는 보통 두 개 기둥 사이 한 줄(4층)을 한 가족이 쓰게 되어 있다.\n1층은 주방, 2층은 식량 창고, 3층은 침실, 4층은 침실 겸 창고다. 가운데 큰 마당에는 조당을 지어 조상을 모시는데, 소농 경제 사회의 종법 제도에 따른 것이다.\n- p.120 윤태옥,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中\n요즘에는 1층 앞에 상점을 열어 지역 특산물과 토산품을 팔고 있다. 유창루는 sbs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에서 의사로 나오는 소지섭이 의료봉사활동을 한 장소가 바로 유창루였다고 하다. 실제로 방문해보면 중국 할머니들이 많고, 소간지는 찾을 수 없다. (기대는 마시길...)\n화귀루 ©istandby4u2\n울 렁 울 렁 울 컹 울 컹\n둥그런 토루들은 실컷 보았으니, 방형의 토루를 방문해 보기로 한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화귀루는 지반이 견고하지 않은 늪지 위에 방형으로 지었는데, 외관만 보더라도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n가이드 말에 따르면 가장 위험한 토루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주하고 있다. 가운데 공간에 땅을 밟아 볼 수 있게 해 두었는데, 정말로 발로 밟아보니 울렁울렁, 울컹울컹. 당장이라도 지반이 내려앉을 것 같은 공포가......\n회원루 ©istandby4u2\n책 을 읽 는  방 이  한 가 운 데 에\n마지막으로 다른 토루보다 비교적 젊은 회원루\n怀远楼\n를 돌아보기로 했다. 회원루 가운데엔 사시실\n斯是室\n이라는 조당\n祖堂\n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가족들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n객가인들은 원래부터 교육열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 궈모뤄, 지도자 쑨원, 싱가포르 전 수상인 리콴유, 중국 정치가 덩샤오핑 등이 객가 출신이다. 모두 객가인들의 뛰어난 교육열 때문에 태어난 인재들이었다.\n한 채 한 채 깊은 역사와 재미난 이야기를 담은 토루를 둘러보면서, 중국 역사의 깊이를 다시 한 번 느껴 볼 수 있었다.\n조금 날씨가 맑았더라면 더 신이 났을 텐데......\n전라갱토루 색칠과정 ©istandby4u2","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4","published_date":"2016-08-06T13:24+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36,"source":"brunch","title":"언젠가 이날을 그리워할 테지","content":"당분간은 학교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이지만, 연고도 없는 스탠퍼드대학교에 꼭 가고 싶었던 이유는 인상 깊게 본 두 편의 작품\n때문이었다.\n(* 소설 '본격소설'과 영화 '동탁적니'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n작년 이맘때쯤 난 미즈무라 미나에의 '본격소설'에 흠뻑 빠져 지냈다. 그 이후로도 다른 몇 편의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긴 했지만 본격소설을 읽었을 때처럼 잠을 못 이루거나, 읽은 후 며칠 동안 마음이 내려앉아 힘들었던 경험은 없다.\n그래서인지 작년부터\n소설에 언급된 여러 도시를 순례\n하며 이야기를 되짚어 보고만 있다.\n본격소설. 상\n근대 일본을 배경으로 되살아난 고전 제54회 요...\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54606547&g=KOR\n상 관 없 습 니 다  도 서 관 에  가  있 겠 습 니 다\n소설은 12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가 문예잡지 편집자 유스케로부터 전해 들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루이자와에 있는 친구의 별장에 놀러 간 편집자 유스케는 길을 잃어, 근처 마을인 오이와케의 한 낡은 별장에 신세를 지게 된다.\n그곳에서 가정부 후미코라는 여자를 만나고, 그녀가 일했던 사이구사 가(家)의 기나긴 역사와 사이구사 가의 둘째 딸 요코, 옆집에 세 들어 살던 미천했던 아즈마 다로의 사랑이야기를 듣게 된다.\n그 사랑이야기를 들은 유스케는 일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갑자기 미국으로 떠난다.\n유스케가 아즈마 다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미나에를 찾아간 곳은\n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위치한 스탠퍼드대학교.\n소설 속 미나에는 스탠퍼드에서 일본문학 세미나를 맡고 있었는데, 실제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 역시 스탠퍼드에서 강의를 했었다.\n이 설정이 본격소설의 가장 흥미로운 점.\n어디서부터가 사실인지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의 경계가 매우 흐릿하게 처리\n되어 있는 것이다.\n유스케가 미나에의 세미나가 끝날 때까지 잡지를 읽으며 기다리겠다고 한 도서관은 스탠퍼드의 후버 도서관.\n- 네, 그렇지만 세미나를 세 시간이나 하는데요.\n- 상관없습니다. 도서관에 가 있겠습니다. 저는 가끔 후버 라이브러리에서 잡지를 읽거든요.\n후버 라이브러리는 동아시아 관계 장서 전문 도서관이다.\n- p.148 '본격소설' 상 (미즈무라 미나에)\n후버는 미국의 제31대 대통령이다. 스탠퍼드 출신인 그가 1919년에 설립한 후버 도서관. 후버 대통령은 중국에 거주한 적도 있어 중국어에도 능통했다고 한다.\n소설 속에서 '동아시아 관계' 서적이 많다는 이야기에 납득이 간다.\n후버 도서관 드로잉 ©istandby4u2\n유스케는 비 내리는 날에 (또 강의가 있던 날이었으니 아마도 주중이었을 것이다) 방문했지만 내가 찾아갔을 땐\n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의 토요일 오후\n였다.\n캠퍼스에 나와 공놀이를 즐기는 가족들이 있었고, 친구끼리 혹은 교수의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며 나른한 봄날의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n메인쿼드\n철학대 느낌을 한껏 풍기는 건물과, 야자수가 아름답게 늘어서 있는 메인쿼드를 지나 후버 도서관에 다다랐다.\n아쉽게도 공사 중이었다.\n제 꿈 은  스 탄 푸 에  가 는  것 입 니 다\n내부는 등록 절차를 밟아야 들어가 볼 수 있어서 시간상 돌아보진 못하였다. 유스케처럼 한국 잡지를 읽곤 '한국이 멀어졌어요'란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물론 여행의 첫날 방문하여 이런 멘트는 매우 허풍이겠지만)\n스탠퍼드를 가보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최근 인상 깊게 본 한 편의 중국 영화 때문이었다.\n영화 '동탁적니'는 풋풋한 첫사랑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린 작품인데, 여주인공 샤오즈가 남주인공 린이의 학교에 전학을 오며 이야기가 시작된다.\n샤오즈는 자기소개에서 '제 꿈은 스탠퍼드(스탄푸)에 가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n영화 속에서 둘은 빠른 속도로 함께 성장하고, 만만치 않은 현실적 난관을 하나 둘 만나게 된다. 결국 남주인공 린이 만을 미국으로 보내고 샤오즈는 꿈에 그리던 미국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영화는 끝을 맺는다.\n난 미국에 못 갔어도 매일 같이 지도를 보고 또 봤어.\n네가 살았던 모든 집이 남향이었고,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집은 작은 정원을 가진 LA의 집. 그 집에서 네가 사준 치마를 입는 상상을 했어.\n그 이후로 이사한 집들은 모두 그것만 못해.\n우린 현실에 지고 만 거야. 그러니까 린이, 우리 누구도 탓하지 말자.\n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길 간절히 기대했던 미국 서부의 풍경은 영화 속 배경에 담겨 있지 않다.\n하지만 여주인공이 묘사한 풍경들을 스탠퍼드 주변 마을 팔로알토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팔로알토는 우리나라 대학가 특유의 번잡스러운 풍경이 전혀 없었고 조용한 주택가였다. 집마다 크고 작은 정원이 딸려있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햇빛이 좋아 보이는.\n기차 시간이 맞지 않아 마을 구경도 하고 팔로알토 역에 앉아 시간을 보냈는데 미국 여행의 시작부터 좋은 기억을 얻게 되었다.\n해가 서서히 떨어지고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역 안엔 너 다섯 명의 남녀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스무고개와 같은 놀이를 하고 있었다. 생김새는 동양인의 얼굴이었지만 모두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유학생일까 이민자들일까 궁금해하며, 나의 대학시절을 떠올렸다.\n언젠가 저들도 이 시간을 나만큼이나 그리워하겠지.\n기차가 도착할 때쯤엔 주홍색을 내는 햇빛이 하늘을 선 긋고 있었다.\nINFORMATION\n가는 법 : 칼트레인 (caltrain)을 타고 팔로알토 (palo alto) 역에서 내려 스탠퍼드 캠퍼스 안을 순회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nhttp://www.caltrain.com/","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6","published_date":"2016-08-10T12:58+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37,"source":"brunch","title":"다시,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걷다","content":"요코하마에 교환학생으로 가서 1년을 지내는 동안, 가까이에 있는 가마쿠라엔 서너 번 다녀온 것 같다.\n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난해. 가마쿠라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든 것은 느닷없이 빠져버린 만화책 때문이었다.\n요시다 아키미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시리즈.\n바닷마을 다이어리 세트\n카마쿠라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네 자매의 따스한...\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2909100680406&g=KOR\n웃 기 게  생 긴  모 양 에  비 하 여\n가마쿠라에 살고 있는 세 자매의 집에서 이복동생 스즈가 함께 살기로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마쿠라 시민병원에서 일하는 첫째 언니 사치, 신용금고에 다니는 술꾼 요시노는 둘째, 스포츠용품점에서 일하는 셋째 치카, 그리고 스즈는 축구를 좋아한다. 일을 나가고 학교에 다니고, 연애를 하고, 때때로 넷이 함께 저녁을 먹고……. 소소하고 평범한 삶이 평화롭게 담겨 있다.\n만화 속 풍경들은 대부분 가마쿠라의 실제 장소를 모델로 한다.\n도쿄 근교에 위치한 가마쿠라 일대는 에노덴 전차만 익숙해지면 큰 불편함 없이 여행할 수 있다. 에노덴은 후지사와에서 가마쿠라까지 약 10km의 구간을 달리는 작은 전차. 마을 구석구석을 지난다. '노리 오리군'이라고 하여 하루 600엔에 무제한으로 타고 내릴 수 있는 승차권을 사서 여행했다.\n황금 같은 휴가를 얻어 훌쩍 떠난 가마쿠라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장 먼저 향한 곳. 축구선수를 꿈꾸던 스즈의\n친구 유야가 자살시도를 하는 줄 오해한 고료 신사\n御霊神社\n였다. 신사의 바로 앞으로 에노덴 전차가 지나가는데, 나의 부족한 사진 실력으론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n신사에서 바닷가 쪽으로 걸어 나오니\n스즈와 친구 후타가 즐겨 먹는 후쿠멘 만주집이 있다.\n나도 하나 사서 먹어본다. 웃기게 생긴 모양에 비하여 맛은 비교적 평범하다.\n출 세 운 도  따 라 와  줬 을 까\n가마쿠라 곳곳엔 고민가\n古民家\n가 남아있어 풍취가 감돈다. 특별히 어디로 향하지 않아도 바다와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걷는 것만으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만화에서\n큰 언니 사치와 스즈, 두 자매가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속 찻집을 찾아가고자 와다즈카역\n에 내렸다. 지도상 찻집은 분명 철로변에 있는 데 돌고 돌아도 도저히 입구를 만나기 어려웠다. 30-40분을 헤맨 끝에 선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 겨우 자리를 잡았다.\n만화 속에서 사치가 먹은 안마메칸은 떡 두 개와 앙꼬, 한천과 조린 완두콩에 흑설탕 조청인 쿠로미츠를 끼얹어 먹는 디저트였다. 달달한 것들을 입에 가득 넣으니 오랜 시간을 헤매며 쌓아온 피로가 녹아내렸다. 딴딴하게 알이 꽉 차있는 콩은 식감이 좋았고, 극도로 단 음식과 곁들여 나온 씁쓸한 우롱차가 참 잘 어울렸다.\n숙소로 돌아가기 전 날씨가 조금 궃기 시작해서 망설이다 사스케 신사에 가보기로 했다.\n스즈와 셋째 언니 치카가 ‘둘째 언니 요시노의 남자 친구가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는 의심에 뒤를 밟으며 따라간 곳.\n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무장, 미나모토노 요리토모\n源頼朝\n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사스케이나리신사\n佐助稲荷神社\n는 출세운, 사업운이 있는 신사로 유명하다. 실은 이 여행은 이직을 앞두고 남은 연차를 소진하는 휴가였다. 회사를 옮기기 전 가게 되었으니 절묘하게 잘 찾아갔던 것인가?\n숲이 우거진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신사는 혼자 들어가기엔 좀 으스스했다. 식은땀을 잔뜩 뿜어 내며 조금씩 올라가다가 신사에 다다랐을 땐. 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보는 여우 동상들 때문에 놀라 자지러질 뻔했다. 이들은 신의 심부름꾼이라고 한다.\n누군가가 와주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정작 누군가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며……. 경내를 간단히 둘러보고 황급히 뛰어내려 갔다.\n과연 출세운도 따라와 줬을 것인가......?\n같 이  살 아 도  다 르 다\n대단한 출세까진 못했지만, 그럭저럭 큰 실수 없이 1년을 보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같은 호텔을 예약했다. 작년에도 두 밤을 보낸 바닷마을에서 올해는 한 달 정도 늦은 시기에 또다시 사흘을 머물기로 한 것이다. 그 사이에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영화로도 개봉하였다.\n우리 영화볼래? <바닷마을 다이어리>\n15년 전 가족을 버린 아버지의 장례식,어릴 적 나와 꼭 닮은 아이를 만났다.조그마한 바닷가 마을 카마쿠라에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는 15년 전 집을 떠난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추억도 어느덧 희미해졌지만 홀로 남겨진 이복 여동생 ‘스즈’에게만은 왠지 마음이 쓰이는데..“스즈, 우리랑 같이 살래? 넷이서…”<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려낸 문득,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들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년, 올해의 영화가 찾아옵니다.\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3924\n작년엔 사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스스로에게 보상을 주겠다며 찾아간 여행이었다. 무리해서 바다가 보이는 방을 예약하고 넓은 공간을 굴러다니는 사치를 부렸다. 하지만 푹 쉬겠다고 해놓곤 전혀 쉬지 못했다.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뿐 아니라 드라마 ‘최후로부터 두 번째 사랑’, ‘비브리아 고서당의 사건 수첩’ 등... 여러 작품 속 명소를 매일 두세 곳씩 걸어 다녔고, 방에 돌아갔을 땐 탱탱 부은 발에 전기가 통하는 느낌이었다.\n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출처 : Daum 영화)\n올해는 같은 장소를 다시 간 덕에 작년보다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에노덴 전차를 타고 내리는 일도, 골목길 구석구석이 모두 익숙했다. 일정은 작년에 가보지 못한 두어 개의 명소만 가보면 됐다.\n가마쿠라로 이사와 입단한 축구부에서 스즈는 미호, 유야, 마사, 후타 등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 축구부의 에이스 유야는 갑작스러운 병을 얻으며 다리를 절단하게 되는데...\n재활치료를 받은 후 축구부에 복귀한 유야가 어느 날 등교를 하지 않았다.\n스즈와 후타는 유야가 아버지와 낚시를 하러 자주 갔다던 에노시마로 향한다.\n전에도 느꼈는데 이곳 에노시마 주변 바닷마을은 서핑을 하는 사람도 많고 가게들의 분위기도 특색 있어 어딘지 모르게 서양의 느낌이 난다. 실제로 서양인을 자주 마주치게 되고.\n작년엔 에노시마를 코앞에 두고 있었으면서 정작 그 안에 들어가 보지도 못 했다. 올해는 에노시마 안을 구경하기도 했고, 주변 바닷가에 한참을 앉아 서핑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했다.\n일본 후지사와시에 있는 에노시마\n江ノ島\n는 면적 0.38 km²둘레 4㎞의 작은 섬이다. 해발고도는 60m 정도로, 에노시마 다리가 섬을 육지와 연결한다. 들어가 보길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굉장하다 싶은 곳까진 아니었다. 작은 섬에 서양식 정원도 있고 타워도 있고 신사도 있고 야경도 볼 수 있고, 잔멸치 덮밥도 맛있고. 모든 것이 아기자기하게 갖춰있다.\n도쿄에서 전차로 쉽게 올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에 이 정도로 즐길만한 섬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젊은 커플이 참 많았다.\n타워도 신사도 정원도 작지만 순수한 매력이 넘쳤다.\n모두 제 역할을 착실히 하고 있었으니까. 타워 옆으로 노을이 늘어선 하늘엔 후지산이 보였고, 저물어가는 바닷마을의 여유를 내려다보았다. 이 지역의 신기한 점 중 또 하나는 서양 인구만큼이나 강아지 인구? (견구?) 도 많다는 사실이다. 애견 백화점도 크게 하나 있다.\n바닷가에 두 마리의 강아지를 산책시키러 나온 부부가 있었다. 회색빛이 도는 강아지는 신이 나서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수십 차례. 다른 검정 강아지는 소심하게 주인 옆에 얌전히 서서 회색 강아지를 쳐다보고 있다.\n같이 살아도 참 다르구나.\n그리고 월요일 오전에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엄청 부러워졌다.\n(나도 쉬고 있으면서.)\nINFORMATION\n- 고료 신사 (御霊神社)\n주소 :  神奈川県鎌倉市坂ノ下4-9\n가는 법 : 하세 역에서 도보로 6분\n- 치카라모치야 (力餅家)\n주소 : 神奈川県鎌倉市坂ノ下18-18\n가는 법 : 하세 역에서\n도보로\n4\n분\n영업시간 : 9:00 ~ 18:00\n- 무신안 (無心庵)\n주소 : 神奈川県鎌倉市由比ガ浜3-2-13\n가는 법 : 와다즈카역에서 내려 선로 따라 2분\n- 사스케이나리신사 (佐助\n稲荷神社\n)\n주소 : 神奈川県鎌倉市佐助 2-22-12\n가는 법 : 가마쿠라 역에서 도보로 20분 (1.5km)\n-\n에노시마 전망 등대\n- 가는 법 : 에노덴 전차 에노시마 역에서 도보로 25분\n- 위치 : 〒251-0036 神奈川県藤沢市江の島2丁目3番\n- 영업시간 : 9：00～20：00 (연중무휴)\n- 입장료 : 어른 500엔, 어린이 250엔\n(바닷마을 다이어리 여행지도가 필요하시다면 ↓)\n바닷마을 다이어리를 걷다\n[BY istandby4u2] ‘바닷마을 다이어리’ 만화와 영화에 담긴 모든 풍경들은 한 장도 놓칠 수 없는 모습을...\n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580780&memberNo=15674","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7","published_date":"2016-08-13T07:5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38,"source":"brunch","title":"델마와 루이스는 이 길을 달려갔을까","content":"영화 '포레스트 검프' 촬영지는 올해 미국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LA에서 그 먼 곳까지 다녀오려면 하루는 모뉴먼트 밸리에서 묵어야 했다.\n캠핑 등의 방법도 있었지만, 먼저 다녀온 동기로부터 ‘더뷰호텔’을 추천받았다.\n환상적인 풍경은 덤이었다.\n그리고 이번 주 우연히 '델마와 루이스'란 영화를 만났다.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모뉴먼트 밸리와 닮은 풍경이 슬쩍슬쩍 지나갔다.\n영화는 델마와 루이스 두 명 여주인공이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며 시작된다. 루이스의 지인의 별장으로 향하던 둘은 휴게소에 들어가 술을 마시게 된다. 그리고 델마는 어떤 남성과 춤을 추게 되는데, 그는 델마를 주차장으로 데리고 나와 강간을 시도하고, 루이스는 그에게 총을 겨눈다. 이로써 둘의 여행은 점점 길어지게 된다.\n주 황 빛 이  밑 동 에 서 부 터  점 점  소 멸 해 가 다\n오랜 기간 제대로 씻지 못하여 한껏 와일드해진 두 명의 여성이 뚜껑 없는 자동차를 타고 붉은 모래를 휘날리며 경찰을 따돌리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초반부에서 마음에 담은 먹먹함을 시원한 바람에 쓸려 보내버린다.\n우리가 머문 더뷰호텔은 사막 위에 나바호 인디언들이 세운 호텔로 나바호 부족 공원\nNavajo Tribal Park\n안에 위치해있다.\n2008년에 문을 연 이곳은 미국 원주민들의 전통문화를 담은 인테리어가 특징이고, 외관도 주변 자연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신경 썼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대지의 색과 어우러진 건물 색을 갖고 있음이 한눈에 들어왔다.\n세도나에서 출발한 우리 가족은 4시간을 달려 저녁 무렵 호텔에 도착했다.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갔는데, 도착했을 땐 호텔 앞에 놓인\n세 개의 뷰트에 물든 주황빛이 밑동에서부터 점점 소멸해가고 있었다.\n나바호 부족의 성지이기도 한 모뉴먼트 밸리 지역의 바위산들은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한다. 테이블처럼 위가 판판한 지형을 메사\nMesa\n, 뾰족하게 치솟아 있는 바위산은 뷰트\nbutte\n라고 한다.\n두 짝의 벙어리장갑\nMitten\n모양을 하고 있는 웨스트 미튼 뷰트\nWest Mitten Butte\n, 이스트 미튼 뷰트\nEast Mitten Butte\n, 그 옆엔 메릭 뷰트\nMerrick Butte\n가 있다. 왼손과 오른손의 사이즈가 다른가도 싶지만, 오른쪽 벙어리장갑이 뒤에 있어서 더 작아 보인다. (실제로 작을 수도 있고.)\n메릭 뷰트만 외톨이로 사람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 일대에서 은광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모자 뷰트나 목도리 뷰트 정도의 이름이면 딱일 텐데. (메릭 뷰트의 유래를 찾는 데 꽤나 고생했다.\n출처 link\n)\n세 상 에  여 기 가  어 디 야\n주황등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우린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저녁을 먹고 돌아오니 하늘엔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n아래층에서 주무시던 아빠가 새벽부터 호텔 내선전화를 여러 차례 울렸다. 뷰트에 불이 다시 켜지고 있으니 빨리 일어나라는 것이다. 요란을 떨며 테라스에 카메라를 설치하자 동생은 잠에 취해 암막커튼 좀 쳐달라 아우성이다. 홀로 서서 얇은 잠옷 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강렬하게 들어서는 아침해를 바라보았다.\n아침 해를 본 것이 얼마만이더라.\n'델마와 루이스' 영화 포스터엔 포레스트 검프 촬영지이기도 한 배경이 펼쳐져 있어, 결론에 다다르기까지 언제나 나올까 목을 빼고 기다렸다. 물론 '이들이 어떻게 될까'도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n영화의 설정 상 아칸소주에서 그랜드캐년을 향해 달려가니 분명 모뉴먼트 밸리를 지나야 하지만, 또 여러 장면들이 모뉴먼트 밸리에서 만난 장면과 닮았으나, 여러 차례 돌려보아도 정확히 모뉴먼트 밸리의 특정 장소를 찾기란 어려웠다.\n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아칸소주와 그랜드캐년을 잇는 가상의 도로를 가정하고, 대부분 캘리포니아주와 유타 주에서 촬영했다고 한다.\n세상에...\n여기가 어디야?\n그랜드 캐년 같은데.\n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은 실제로 유타주 남쪽에 있는 데스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nDead Horse Point State Park\n이라고 한다. 데스 호스 포인트 주립공원까진 가보지 못했기에 기운이 조금 빠져버렸지만 설정 속 루트는 분명 우리가 지난 길이었음에 아쉬움을 달래기로 한다.\n포스터 속 배경은 질릴 만큼 구경하기도 했고.\nINFORMATION\n더뷰호텔\nThe view Hotel\n: 나바호 부족 공원 방문객센터\nMonument Valley Navajo Tribal Park Visitor Center\n와 나란히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할 수 있으며, 모든 객실에서 3개 뷰트가 보인다. 1층, 2층, 3층의 숙박료가 달라 전망이 많이 차이 날까 고민하였는데, 1층과 2층 두 개 방을 예약해보니 아주 큰 차이는 없었다.\n주소 : Indn Rte 42, Oljato-Monument Valley, UT 84536, United States\n홈페이지 : monumentvalleyview.com\nThe View Hotel\nIndn Rte 42, Oljato-Monument Valley, UT 84536 미국\nhttps://www.google.co.kr/maps/place/The+View+Hotel/@36.9817977,-110.1143021,17z/data=!3m1!4b1!4m5!3m4!1s0x873728081cd65463:0x4a8e9f394d8a360e!8m2!3d36.9817977!4d-110.1121134?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20","published_date":"2016-08-28T09:1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39,"source":"brunch","title":"고흐가 아로새긴 별밤","content":"고흐는 일본 우키요에(\n浮世絵\n, 일본의 판화. 도자기의 포장지로 쓰여 유럽으로 전해졌다)에 그려진 일본의 아름다운 풍경과 빛을 사랑했다. 난 일본에서 1년간 지내면서 일본 특유의 맑은 공기, 깨끗한 하늘에 '섬나라라 공기의 순환이 좋아 그런 것인가?' 기상학적, 지구과학적 근거 없는 원인을 찾아보곤 했다.\n나보다도 120여 년 전 이국의 햇빛을 동경한 천재 미술가 빈센트 반 고흐. 그는 그 아름다운 햇빛을 찾아 남부 프랑스 아를\nArles\n로 향했고, 고흐가 과연 아를에서 ‘그 답을 찾았을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기차에 올랐다.\n아를로 향하는 기찻길 창 밖 풍경은 고흐의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쭉쭉 뻗어 있었다.\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아를의 론 강\n아를의 역\n고흐 作 <구경꾼들>  ⓒpublic domain\n아를의 고대 극장\n고흐 作 <아를의 병원 (Hospital in Arles)> ©public domain\n고흐풍으로 그려본 색연필 드로잉 ©istandby4u2\n고흐作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 public domain\n고흐의 그림과 달리, '구름이 빛나는 낮'이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21","published_date":"2016-09-01T14:24+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0,"source":"brunch","title":"네 북장단 듣고 네가 온 줄 알았어","content":"장사하시는 분이 돈을 받으려 재촉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을 내야 하는 여행자만 다급하다.\n근무 중 잠깐 나와 차를 태워 주시는 분도 서두르지 않는다. 오히려 차를 빌려 탄 여행자가 그분의 시간을 너무 빼앗을까 안달이 난다.\n길 가다 만난 동네 사람들의 대화가 끝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저렇게 이야기하다 배를 못 타실까 여행자만 걱정이다.\n슬로 시티 청산.\n그곳에서 만난 느림의 삶과 사람들.\n나는 청산도에서도 여전히 몸을 한시도 가만히 두질 못 했지만, 그곳의 삶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n청산도로 내려가는 길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를 보았다. 1993년도 영화임에도 지루하지 않고, 영상이 촌스럽다는 느낌도 전혀 없다. 기술의 발달은 스토리텔링의 힘을 압도하지 못하는 듯하다.\n영화는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일정한 수입도 없이 떠돌면서 살아가는 소리꾼 유봉, 그리고 그 소리를 물려주고자 데리고 다니는 남매 송화와 동호의 삶을 이야기한다.\n유봉은 송화가 한이 맺힌 소리를 내게 하려고 눈까지 멀게 한다.\n우리 영화볼래? <서편제>\n1960년대 초, 누나와 아버지를 찾아 다니던 동호(김규철)는 보성 소릿재에서 주막 주인의 판소리를 들으며 회상에 잠긴다. 마을 대갓집에서 소리품을 팔던 유봉(김명곤)은 동호의 어미 금산댁을 만나 자신의 양딸 송화(오정해)와 함께 새 삶을 꾸린다. 금산댁이 아이를 낳다 둘 다 죽자 유봉은 아이들을 데리고 소리품을 판다. 동호에게는 ..\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02\n영 화 역 사 상  가 장  아 름 다 운  명 장 면\n곧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아버지 유봉의 자존감, 고단한 가난의 연속이 영화를 보는 사람마저 내내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논두렁을 걷던 유봉, 송화, 동호가 흥이 나서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이 장면은 좀처럼 잊을 수 없다.\n따뜻한 햇살, 다랭이논, 그리고 구불구불 이어진 논길이 아리랑 장단과 어우러졌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긴장을 다 풀어헤치고 즐길 수 있던 순간이었다.\n▲ 자전거 여행자의 특권. 절경이 펼쳐지면 어디든 내려서 바라볼 수 있다. 양지에 있다 하여, 양지마을이란 이름이 붙었다.\n청산도에 도착하여 짐을 풀자마자 서편제 촬영지로 향하기로 했다. 청산도에 머무는 1박 2일 동안 하루는 온전히 섬의 모습을 살펴보고 싶어 자전거를 대여하기로 했다. 숙소에서 서편제 촬영지로 가려면, 대선산과 보적산 사이 고개\n(라고만은 할 수 없는 꽤 가파른)\n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그곳은 일반 자전거로 넘긴 버겁다.\n전기자전거를 빌려보았다. 전기가 많은 도움을 주어 힘을 덜 들이고 넘을 수 있었다. 또\n자전거 여행은 청산도의 아름다운 풍경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게 해주었다.\n그리곤 가는 길 내내 풍경이 아름다워 자주 내리다 보니 전기가 금방 닳아버렸다. 전기가 닮아버린 전기자전거는 성가신 고철덩어리가 되어 돌아오는 고갯길에선 힘겹게 페달을 밟아야 했다. 허벅지와 허리가 닳아 버리는 줄 알았다.\n청산도에서 묶은 숙소는 폐교를 개조하여 만든 ‘느린 섬 여행학교’. 원래 청산동 중학교였던 건물은 리모델링하여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고, 옥상에 5채의 예쁜 건물들을 올려 각각 4인실 방을 운영하고 있다. 미술실, 문학실, 영화실, 음악실, 사진실. 방 이름도 아날로그적 감성이 충만했다.\n서편제 촬영지에 도착하여, 안내 표지판을 읽어보니 바로 이곳에서 내 머릿속 가장 기억에 남는 그 장면이 촬영되었다고 한다.\n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으로 꼽히는 5분 30초에 걸친 롱 테이크가 촬영된 곳. 원래 그렇게 길게 찍을 계획은 아니었으나 감독이 장소가 너무 좋아 바꿨다는 곳.\n푸른 바다, 푸른 산, 그리고 황톳길이 어우러진 곳.\n- 안내판 내용 중\n이런 풍경이라면 저절로 흥이나 아리랑 장단을 흥얼거릴 수 있을 듯하다. 살아가면서 일상에 지쳐 있다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흥에 취할 만한 기회가 별로 없지 않은가.\n임권택 감독이 이곳에서 5분이 넘는 장면을 영화에 담은 것은 풍경이 아름다운 이유도 물론 있겠지만, 도심의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n조금이나마 어깨의 짐을 내려놓아 보라\n는 메시지를 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았다.\n많은 사람들이 청산도를 봄, 유채꽃이 만개할 때 방문한다. 유채꽃이 만발할 땐 완도에서 청산도 들어가는 배를 타는 데도 꽤 줄을 서야 한다고…….\n궁금한 마음에 청산도에 사시는 분에게 “청산도는 확실히 봄이 좋은지?” 묻자, \"봄에는 외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차를 끌고 나가지도 못해요. 또 청산도는 항상 아름답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제야 봄에 방문하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던 여행자의 마음이 누그러지면서,\n동시에 괜한 욕심이 부끄러워졌다.\n가을의 파란 하늘 아래 완연한 햇빛을 받은 들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데도 말이다. 다시 살펴보니 '서편제'의 그 장면 역시 비슷한 계절에 촬영된 것 같다.\n한 을  쌓 는  일 이  살 아 가 는  일\n추수가 끝난 가을이라 다랭이논이 민둥 했지만, 그곳에 다시 구멍을 내고 마늘 알이 한 알 한 알 들어가고 있었다. 사실 청산도의 논은 쉴 틈이 없다고 한다. 벼 수확이 끝나면 보리, 마늘, 양파 등을 심는다. 척박한 섬. 그곳의 느림의 삶. 그 여유는 바로 이렇게 쉼 없이 일해주는 땅이 있기 때문일까?\n섬을 걷다 보면 구들장논과 다랭이논을 자주 만나볼 수 있다. 다랭이논이야 계단식 논으로, 다른 산간지역에서도 쉽게 볼 수 있지만 구들장논은 청산도만의 특색이다. 2013년 국가 중요 농업유산 1호로 지정된 구들장논은 온돌과 논이 결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자갈을 가장 밑에 깔아 물이 잘 빠지도록 하고, 그 위에 구들장, 다시 그 위에 흙을 쌓아 만든 논이다. 흙과 물이 부족하여 고안된 논의 형태라고 하며, 16-17세기부터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 땅은 물과 흙이 부족한 척박한 섬 환경을 보완하기 위한 섬사람들의 지혜 그 자체인 셈이다.\n‘서편제’에서 유봉과 송화, 동호가 살았던 초가집 세트장은 진도아리랑 장면을 촬영한 곳에서 도보로 10~1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곳이었다.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지, 손길이 닿은 지 꽤 되어 보였다. 동호의 북은 북북 찢어져 있었고, 소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n다시 완도로 향하는 배에 오르려고 택시를 타려는데, 고마운 현지분이 차를 태워 주셨다. 덕분에 청산도의 이야기를 듬뿍 들을 수 있었다. 그분이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청산도에는 초등학교가 4개나 있었지만 지금은 1개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유치원, 어린이집, 초등학교, 중학교가 각각 한 개씩 남았다. 북적북적했던 곳이 서서히 한산해진다는 것, 하나 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떠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어깨를 부딪히며 살아가야 하는 곳에 지내는 나는 감이 잘 오지 않았다.\n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도청항에 도착. 차를 태워 주신 분은 나름 업무 중에 나오셨으니 바로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항구에서 만난 지인 아주머니와 또 한참 수다 삼매경.\n그 아주머니의 이야기.\n“어제 배로 짐을 하나 보낼 것이 있는데 손님이 와가지고 화장실에 화장지가 부족하다 길래 가져다주려니까, 예쁘게 화장지 좀 가져달라면 좀 좋냐… 아주 싸가지가 없어서 신경질을 잔뜩 부리기에… 그 x를 xxx xxxx\n(삐 —— 자체 검열합니다.)\n욕을 한바탕 하니 배가 저 먼치 가버리는 거야…”\n전날 배편으로 짐을 하나 부치셔야 했는데 욕을 하다가, 못 부쳐서 오늘 다시 부치신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찌나 웃었는지.\n참 신기한 것이 욕인데 상스럽지 않았다. 살가웠다.\n살아가는 것이 한을 쌓는 일이고,\n한을 쌓는 일이 살아가는 일이 된단 말이여.\n- 영화 '서편제' 中\n한을 쌓아 두지 않고 구수한 욕으로 풀어내 버리는 청산도의 아주머니와, 느린 섬을 뒤로했다.\nINFORMATION\n느린섬 여행 학교\n- 주소: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양중리 372\n- 가는 법: 청산도 도청항에 배가 들어올 때마다 버스가 있다. 기사 아저씨에게 ‘느린 섬 학교’에 간다고 하면 내릴 때 말해준다.\n- 홈페이지:\nhttp://www.slowfoodtrip.com","url":"https://brunch.co.kr/@istandby4u2/25","published_date":"2016-09-10T03:3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1,"source":"brunch","title":"영화 같은 풍경을 뒤로하고 현실을 마주하다","content":"여명과 장만옥 주연의 홍콩영화 '첨밀밀'의 세 번째 이야기,\n'소살리토'\n천재 프로그래머 마이크(여명)는 어느 날 클럽에서 엘렌(장만옥)을 만나게 된다. 엘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아들 스콧을 홀로 키우며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는 촉망받던 화가였지만 먹고살기 위해 꿈은 잠시 접어두었다. 가끔 벽화를 그린다. 벽화의 소재는 늘 캘리포니아의 작은 마을 소살리토\nSausalito\n풍경.\n우리 영화볼래? <소살리토>\n술집에서 만난 중국계 미국인 엘렌(장만옥)과 마이크(여명)는 우연히 하루 밤을 보낸다. 열살 짜리 아들을 둔 이혼녀 엘렌은 생업을 위해 택시를 모는 가난한 화가이고, 사랑을 믿지 않는 마이크는 돈 걱정 안하고 사는 천재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다. 삶의 모양이 다른 두 사람은 지난 밤의 일을 인연이라고 믿을까 아니면 꿈이라고 생각할까 고민하지만 운명적인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는데...\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3100\n마이크가 묻는다.\n- 왜 하필 소살리토야?\n엘렌이 답한다.\n- 홍콩의 서경을 닮았어.\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영화 '소살리토' (출처 : Daum 영화)","url":"https://brunch.co.kr/@istandby4u2/26","published_date":"2016-09-14T02:4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2,"source":"brunch","title":"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content":"밥 짓는 굴뚝엔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릴 적 시골집에서 자주 맡던 장작 타는 냄새가 풍겨왔다. 누렁이가 짖기 시작하고, 노랗게 익은 벼가 바람에 흔들렸다. 때는 풍경을 더욱 노오랗게 물들이는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n가을날 저녁이었다.\n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 아름다운 순이의 얼굴은 어린다.\n- 윤동주, ‘소년’ (1939)\n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왕곡마을은 영화 '동주'의 배경이 되었다. 추석 연휴 끝 무렵 강릉에 가볼까 하다가 우연히 왕곡마을의 존재를 알게 되어, 조금 더 북쪽으로 향했다.\n우리 남매들이 태어난 명동 집은 마을에서도 돋보이는 큰 기와집이었다. 마당에는 자두나무들이 있고, 지붕 얹은 큰 대문을 나서면 텃밭과 타작마당, 북쪽 울 밖에는 30주가량의 살구와 자두의 과원, 동쪽 쪽대문을 나가면 우물이 있었고, 그 옆에 큰 오디나무가 있었다.\n- 윤일주 '윤동주의 생애' 중\n영화에서 윤동주 시인의 집으로 등장하는 큰상나말집도 시인의 동생 윤일주 교수가 묘사한 집처럼 앞에 우물을 하나 두고 있었다. 이곳에서 동주(강하늘 분)와 몽규(박정민 분)가 등목을 하는 장면이 촬영되었고, 영화가 끝난 후 스크린에 그 모습을 담은 영상이 흐른다.\n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n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n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n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n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n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n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 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n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n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n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n- 윤동주, ‘자화상’ (1939.9)\n영화 '동주'는 시인 윤동주(\n1917.12.30 - 1945.2.16\n)\n와 그보다 3개월 전 같은 집에서 태어난 사촌 송몽규(\n1917.9.28 - 1945.3.10\n)\n의 삶을 담았다. 둘의 고등학생 시절부터 연희전문 재학시기, 일본 유학,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삶이 사실에 기반하여 세세히 담겨 있다.\n윤동주와 송몽규는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영화를 볼 때만 해도 당연 여전히 흔적이 남아있는 중국 지린성 룽징의 윤동주 생가에서 촬영을 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촬영지가 고성의 왕곡마을이었음을 알게 되곤, 비교적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임에 아쉬움과 반가움이 교차했다.\n고성왕곡마을\n강원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길 36-13\n왕곡마을이 영화의 배경이 된 이유는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마을에 가보니 느낄 수 있었다. 마을은 옛 모습을 굉장히 잘 간직하고 있었다. 이곳의 건축에는 우리나라 북방지역 가옥의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한다. 우선 지붕의 경사가 급하여 눈이 지붕에 많이 쌓이지 않고 떨어진다. 대문을 만들지 않고 개방된 마당을 두었다. 따뜻한 햇볕을 많이 들이기 위함이고, 눈이 많이 쌓였을 때 고립되지 않기 위함이라고 한다. 집집마다 둥글게 놓인 항아리 굴뚝은 집안으로 따뜻한 열기를 다시 보내준다고 한다. 이러한 지혜는 고성보다 더욱 추웠을 북간도에서도 이어졌으리라.\n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n몽기몽기 웨인내굴 대낮에 솟나.\n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 애들이\n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n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n옛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n산골짜기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n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n- 윤동주, ‘굴뚝’ (1936. 가을)\n안동 하회마을이나 전주 한옥마을처럼 잘 알려진 마을보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고즈넉하니 좋았다. 경로당 앞에 놓인 커다란 지도엔 각각의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쓰여 있었는데, 여전히 많은 가구가 생활을 하고 있는 듯해서 조심히 걸었다.\n누나의 얼굴은\n해바라기 얼굴.\n해가 금방 뜨자\n일터에 간다.\n해바라기 얼굴은\n누나의 얼굴.\n얼굴이 숙어들어\n집으로 온다.\n- 윤동주, ‘해바라기 얼굴’\n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성씨를 보니 대부분이 함씨. 그 이유는 마을의 유래 안에 있다.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을 지지했던 함부열은 조선의 건국을 반대하다 이곳에 은거하게 되었는데, 그의 손자 함영근이 정착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강릉 최씨도 함께 살아 집성촌을 이루었다.\n영화 초반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는 왕곡마을의 정미소. 이곳에서 몽규는 동주에게 시집을 선물하기도 하고, 시에 대한 견해 차이로 말다툼을 하기도 하고, 몽규의 신촌 문예 당선 소식을 듣기도 하고, 중국으로 몽규를 떠나보낸다.\n(영화 속 이야기다.)\n정미소의 기계는 여전히 작동 가능한 상태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공간이 영화 속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어두컴컴하여 흑백으로 칠해진 영화 속 동주와 몽규가 당장이라도 먼지를 털고 일어나 나올 것 같다.\n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에 진학하게 된 윤동주와 송몽규는 고향을 떠나 경성으로 향한다. 그 장면에 마을의 전경이 아름답게 담겨 있다. 기대에 찬 두 청년의 마음을 잡아두는 안정감 있는 배경은 어디에 둘러 있는 것일까. 마을 밖으로 나오니 보였다.\n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잠시 차를 댈 수 있는 공간을 만났다. 바로 그곳이 고향을 떠나 새로운 길을 떠나는 둘의 모습을 프레임 안에 가둔 곳이었다.\n황금들녘에 황혼이 눈부셨다.\n햇살은 미닫이 틈으로\n길죽한 일자를 쓰고......지우고......\n까마귀 떼 지붕 위로\n둘, 둘, 셋, 넷, 자꾸 날아지난다.\n쑥쑥, 꿈틀꿈틀 북쪽 하늘로,\n내사 ………\n북쪽 하늘에 나래를 펴고 싶다.\n- 윤동주, ‘황혼’ (1936.3.25 평양서)\n내년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나는 올해 그가 세상을 떠난 나이가 되어 있다. 서늘한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보듬어주는 시를 세상에 남기고 떠난 그를 떠올리니 참으로 부끄러운 나이다.\n윤동주 문학관에 있는 시비\nINFORMATION\n고성 왕곡마을\n주소 :\n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봉리\n홈페이지 :\nhttp://www.wanggok.kr/\n고성왕곡마을\nhttp://www.wanggok.kr/\n함께한 작품\n- 영화 '동주' (이준익 감독)\n우리 영화볼래? <동주>\n이름도, 언어도, 꿈도 모든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 시대. 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갑내기 사촌지간 동주와 몽규.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진다.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 길에 오른 두 사람. 일본으로 건..\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2107\n-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지음)\n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원본 대조 윤동주 전집)\n윤동주 시인의 원본 대조 시 전집. 윤동주 시인은 19...\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71416600&g=KOR\n- 도서 '윤동주 평전' (송우혜 지음)\n윤동주 평전\n일본 후쿠오카 감옥에서 함께 옥사한 윤동주의 고종사촌 ...\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33840467&g=KOR","url":"https://brunch.co.kr/@istandby4u2/27","published_date":"2016-09-18T06:3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3,"source":"brunch","title":"겉과 속이 똑 닮아 더욱 마음에 든다","content":"때로는 효율적이지 못한 일들을 감행할 때가 있다.\n어느 주말 여섯 시간을 달려가서 물곰국 한 그릇을 먹고, 다시 여섯 시간을 달려 돌아왔다.\n밥ᆞ 돈ᆞ 몸ᆞ 길ᆞ 글\n삐뚠 마음을 가진 나는 ‘1000만 관객 달성’, ‘베스트셀러’, ‘요즘 핫이슈’ 란 타이틀의 작품은 늘 멀리하다가 한참 뒤에나 보고는 뒷북의 감동을 둥둥 두드리곤 한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김훈의 『라면을 끓이 며』 는 서점에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바로 사다 읽었다. 몇 번이나 그의 책을 통해 우리나라의 좋은 곳을 만난 덕분이다.\n라면을 끓이며\n김훈 산문집『라면을 끓이며』. 오래전에 절판된 후 애서...\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54637770&g=KOR\n책은 이미 발간된 『밥벌이의 지겨움』 ,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바다의 기별』 등에서 좋은 산문을 가려내고, 새로 쓴 원고를 덧붙여 완성되었다고 한다. 밥ᆞ돈ᆞ몸ᆞ길ᆞ글 총 5부작으로 엮여 있는데, 그중 1부가 밥이고, ‘라면을 끓이며’ 가 첫 산문이다.\n첫 글부터\n배고픔\n을 참을 수 없기 시작.\n돈, 몸에 담긴 산문들에\n고달픔\n을 느끼다,\n마지막 글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엔 왠지 모를\n서글픔\n이 녹아 있다.\n어찌 됐든 ‘라면을 끓이며’에서부터 식욕을 억누르지 못하고 물을 끓여 버렸다. 작가는 단무지와 시금치, 우엉 한 줄만 넣은, 혹은 절인 무와 실파 등 야채만 든 김밥이 좋다고 이야기한다.\n파는 라면 국물에 천연의 단맛과 청량감을 불어넣어주고, 그 맛을 면에 스미게 한다. 파가 우러난 국물은 달고도 쌉쌀하다. 파는 라면의 공업적 질감을 순화시킨다. 그다음에는 달걀을 넣는다. 달걀은 미리 깨서 흰자와 노른자를 섞어놓아야 한다.\n-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n어릴 땐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동생과 물을 적게 넣고 라면볶이처럼 만들어 먹기도 하고, 고추장을 풀기도 하고, 여러 시도를 하곤 했는데……. 요즘엔 작가의 레시피처럼 파와 계란 만으로 깔끔한 맛을 낸 라면을 찾는다. 라면을 먹으며 책을 읽다 보니\n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n작가가 8개월간 경북\n울진군 죽변면 바닷가에 머물며 맛본 바다의 맛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n나의 걷기 코스는 연구소 → 후정해수욕장 → 111 반점 → 죽변항 → 수산물 위판장 → 카페 피렌체 → 대나무 숲 길 → 드라마 세트장 → 죽변등대였고, 돌아올 때는 이 코스를 거꾸로 걸었다.\n- 『라면을 끓이며』 중에서\n출발이 늦었고 울진은 너무 멀었다\n죽변항이 있는 죽변이란 지명은 대나무 숲 끝에 위치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오징어, 고등어, 꽁치, 대게, 도루묵, 가자미 등이 많이 잡히는 어항이다. 책을 통해 죽변항의 활기를 기대하고 갔지만,\n출발이 늦었고 울진은 너무 멀었다.\n오로지 등대의 불빛과 희미한 가로등만이 반짝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 바다와 항구 풍경 위에서 벌벌 떨다 돌아왔다. 몇 시간만 지나도 감쪽같이 푸른 바다에\n활기가 더해질 줄 알면서도, 검은 바다는 무섭다.\n죽변항의 돌섬 식당에 들어갔다.\n물곰국의 맛이 참 좋았다.\n몰캉몰캉 푸딩 같은 흰 살. 콩나물과 김치가 들어가 시원하다.\n물곰국은 인간의 창자뿐 아니라 마음을 위로한다. 그 국물은, 세상 잡사를 밀쳐버리고 우선 이 국물에 몸을 맡기라고 말한다. 몸을 맡기고 나면 마음은 저절로 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위안의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서, 물곰국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다. 이런 국물은 이 지구 상에 울진 말고는 없다.\n- 『라면을 끓이며』 (김훈 ) 중에서\n물곰은 대충 이렇게 생긴 듯 하다. ©istandby4u2\n물곰은 꼼치과의 어류로 ‘물메기’라는 생선이다. 옛날에는 생김새가 좋지 않기도 해서 먹지 않고 버렸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 곰치(실제 이 이름을 가진 다른 물고기도 있다!), 물텀벙, 미거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n생김새를 찾아보니, 몸매도 흐물흐물, 눈빛도 흐리멍덩한 것이 맛과 꼭 닮았다.\n겉과 속이 똑 닮아 더욱 마음에 든다. 작가가 묘사한 맛이 고스란히 혀로 전해지자, 같은 풍경을 눈에 담지 못한 점이 서글퍼진다.\n다음엔 꼭 아침 일찍 일어나 울진에 가봐야지.\n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죽변등대 ©istandby4u2","url":"https://brunch.co.kr/@istandby4u2/29","published_date":"2016-09-28T12:58+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4,"source":"brunch","title":"소설의 속편을 읽어 버린 것 같다","content":"태풍 18호 차바 소식으로 아침부터 NHK 뉴스가 시끄러웠다. 오키나와 본섬의 학교들은 임시휴교 결정이 내려졌고, 59만 명의 주민들에게 태풍 피난 준비를 권고한다는 속보가 들어왔다.\n이시가키 항구에서 이리오모테 섬으로 향하는 배는 특별한 안내도 없이 출발했고, 다소 높은 파도에 배가 오르락내리락 하긴 했지만 하늘은 높고 파랗다. 나하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산더미 같이 짊어져 온 태풍 걱정이 무색했다.\n야에야마\n八重山\n.\n미야코지마\n宮古島\n보다 남쪽에 있는 섬들을 칭하는 명칭.\n야에야마가 실제 오키나와 본섬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n이리오모테 섬은 대만으로부터 약 200km, 오키나와 본섬으로부터 약 400km 떨어져 있다.\n오쿠다 히데오\n奥田英朗\n작품을 좋아하는 나는 소설 ‘남쪽으로 튀어\nサウスバウンド\n’를 읽은 후, 일본에서 제작된, 그리고 다시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를 여러 번 다시 보았다. 청산도를 다녀오는 길에 굳이 대모도(한국판 ‘남쪽으로 튀어’ 촬영지)를 거쳐 나오는 배를 택해 먼발치에서나마 구경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꽤 오랜 기간 이리오모테 여행을 꿈에 그려왔다.\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이시가키 항구\n오하라 항구\n투어에 포함된 점심식사","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0","published_date":"2016-10-07T23:33+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5,"source":"brunch","title":"나도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content":"오키나와 본섬에서 가고 싶은 곳은 오로지 하나였다.\n일본에서 가장 작은 헌책방, 울랄라 ウララ\n우다 도모코의 에세이 '오키나와에서 헌책방을 열었습니다'의 배경이 된 곳이다.\n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n작가 우다 도모코는 일본의 대형 체인서점인 준쿠도\nジュンク堂\n의 직원이었다. 7년 차에 오키나와로 발령이 났고, 9년 차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헌책방 울랄라를 연다. 울랄라는 2011년 11월 11일에 시작되었다. 벌써 5년을 채워간다.\n큰 신간서점에서 작은 헌책방으로, 회사원에서 자영업으로, 도쿄에서 오키나와로 옮기며 다양한 위치에서 책방이라는 일에 관하여 생각해왔습니다.\n-p.28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 (本屋になりたい)' 우다 도모코.\n本屋になりたい: この島の本を売る (ちくまプリマー新書)\n本屋になりたい: この島の本を売る (ちくまプリマー新書)\nhttp://www.amazon.co.jp/dp/4480689397/ref=tsm_1_fb_lk\n나는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비브리오 고서당의 사건수첩'을 보고 배경이 된 가마쿠라의 서점을 찾아가 보기도 했고,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을 읽고는 세계 최대 고서점 거리라 불리는 진보초\n神保町\n에도 다녀왔다. '장서의 괴로움'을 읽고는 그렇게 책이 많지도 않으면서 책장정리를 하기도 하였다.\n오키나와 여행을 다녀왔지만, 고래상어가 있다고 하는 츄라우미 수족관이나 코끼리코 모양을 한 만좌모, 붉은빛이 인상적인 슈리성 중 아무 곳도 가보지 못했다. 대신\n우다 도모코의 이야기를 따라 반나절을 보냈다.\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가게의 왼쪽 물고기가 그려진 파란색 화일에 어쩐지 눈길이 가더라니...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실려있습니다.\n©istandby4u2","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1","published_date":"2016-10-14T10:35+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6,"source":"brunch","title":"숲의 시계는 천천히 시간을 새긴다","content":"따뜻하고 고요한 분위기 가운데\n드라마의 주제곡이 흐르고 있었고\n밖은 설원이었다.\n홋카이도 여행을 준비하며 '다정한 시간\n優しい時間\n'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만났다. 일본 아이돌 그룹 아라시의 멤버 니노미야 카즈나리와 나가사와 마사미의 앳된 모습이 담겨 있는 제목만큼 따뜻한 드라마.\n남자 주인공 다쿠로(니노미야 카즈나리 分)에겐 해외근무가 잦은 아버지 와쿠이 유키치가 있다. 다쿠로는 어떤 사정에 의해 폭주족이 되었고 어느 날 자동차사고로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다. 자신이 운전한 자동차였다.\nTV프로그램 <자상한 시간>\n3년 전에 타쿠로의 어머니는 타쿠로가 운전한 차에 동승을 하면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일을 계기로 타쿠로의 아버지도 타쿠로와 떨어져 지내는데..\nhttp://movie.daum.net/tv/main?tvProgramId=56343\n▲ 드라마 '다정한 시간' OST\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 화분의 위치와 꽃의 종류까지 똑같다.\n.","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2","published_date":"2016-11-02T14:0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7,"source":"brunch","title":"01화 외국인인데 이곳에서 결혼식 할 수 있나요?","content":"7년 전 우리는 한 시사잡지사에서 인턴기자로 만났다. 인턴 교육의 일환으로 가산에 있는 인쇄소로 향하는 날이었다. 나란히 걷게 되어 자기소개 비슷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취미가 닮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n\"주말엔 일본 드라마 보면서 시간 보내요.\"\n나는 이미 교환학생으로 간 요코하마에서 1년을 지내고 돌아온 뒤였고, 그는 인턴이 끝나고 도쿄로 교환학생을 갈 예정이었다.\n매일 저녁마다 있던 술자리, 어려운 선배들, 서툰 글솜씨,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던 하얀 지면, 어색한 만남들....... 고된 하루가 이어지던 가운데 그는 일산에 사는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기 시작했다. 지하철 3호선 양끝에 살며 광화문으로 출퇴근을 하던 우리. 하루에 고작 다섯 시간 정도 주어진 수면시간을 대중교통 안에서 보내며.\n7년이란 시간이 우리를 더욱 닮게 만들었던 것 같다.\n판에 박힌 것을 못 견뎌하고, 남들 앞에 나서길 싫어하고, 겉치레를 비웃었다.\n올해 가을은 유난히 결혼식이 많았다. 9월과 10월 매주 토요일 낮시간을 예식장, 호텔로 향하는 꽉 막힌 길 위에서 보냈다. 일찍 나간다고 나갔는데 매번 지각을 하며... 마음 한 편에 귀찮단 마음을 안고 있음이 죄스러웠다.\n토요일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요일이다.\n서울을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 찾아다니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어깨에 뭉친 근육을 풀어내고, 깨끗한 공기를 마셨다. 역사의 한 자락을 보고 돌아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정리했다. 7년 내내 토요일을 이렇게 보내왔다. 두 달 정도 이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은 우리의 결혼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n우리도 결혼을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일\n'여행'\n을 하듯이 결혼을 하고 싶었다. 나와 결혼할 사람은\n‘우리의’\n결혼식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n여행하듯,\n우리가 주인공인\n결혼식.\n장소와 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알아보곤 절망했다. 시골 학교를 빌려 작은 결혼식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모든 것을 직접 준비하기엔 두 달 안에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내가 특히 성질이 급해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빨리 하고 싶었다. 작은 결혼식 전문업체도 많았지만,\n규모를 줄일 순 있어도 비용은 작지 않았다.\n시간과 돈. 둘 다 넉넉하지 않은 우리에게 '작은 결혼식'은 사치였다.\n왠지 시골학교에서 하게 되더라도, 소규모 웨딩홀에서 해도 식은 점점 부풀어 오를 것 같았다. 우선 우리 집은 친척이 많다. 매년 설과 추석 때 5촌 아저씨, 6촌 언니, 오빠들까지 왕래한다. 그는 직업 특성상 회사 동료, 업무관계 지인이 상당히 많다. 친구도 많다. 누구까지 초대하고 누구까지 안 부르겠는가. '5촌 이하, 최근 6개월 이내 만난 적이 있는 사람만 오세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n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답답한 가운데 '일본도 우리처럼 결혼을 하던가?' 야후 재팬에서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작은 결혼식'이라는 이름의 식장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일본 전국에 지점이 있고\n,\n식을 올리는 데 6만 7천 엔(약 68만 원)이면 된단다!\n6만 7천 엔 안에 드레스, 턱시도 대여, 신부 헤어 메이크업, 대관료, 사회자, 사진 한 장 촬영이 포함.\n일주일 전에 연락해도, 식장이 비어있다면 결혼식 가능.\n둘이서만 식을 올려도 OK, 강아지나 고양이를 데리고 식을 올릴 수도 있음.\n그리고 작년 겨울,\n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낸 홋카이도에도 식장이 있음.\n문의하기에 글을 남겼다.\n“외국인인데 이곳에서 결혼식 할 수 있나요?”\n그렇게 우리는 시간과 돈도 풍족하지 않으면서 해외 결혼식을 감행하기 시작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3","published_date":"2016-12-06T14:3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8,"source":"brunch","title":"02화 두 달간 오고 간 50통의 메일","content":"회신이 왔다.\n“신랑 신부와 일본어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하객 중 일본어를 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가능합니다.”\n요즘 일본어 쓸 일이 거의 없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할 진 모르겠지만,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과연 올 수 있을지 확인은 못했지만.\n비행기 값 감당이 안 될 성수기가 되기 전에,\n크리스마스에 가까이 다가가기 전으로 날짜를 잡았다.\n오타루 시\n홋카이도 오타루 시\nhttps://www.google.co.jp/maps/place/%25252525ED%2525252599%252525258B%25252525EC%25252525B9%25252525B4%25252525EC%252525259D%25252525B4%25252525EB%252525258F%2525252584+%25252525EC%2525252598%25252525A4%25252525ED%2525252583%2525252580%25252525EB%25252525A3%25252525A8+%25252525EC%252525258B%252525259C/@43.1500335,140.7885022,10z/data=!3m1!4b1!4m5!3m4!1s0x5f0adfae98ef793b:0xa3e7b628d5ad9a1!8m2!3d43.1907173!4d140.9946621?shorturl=1\n작은 결혼식 오타루점 담당자 고토\n後藤\n씨와 메일이 시작되었다. 결혼식 날짜를 확정한 후 한 차례, 약 1시간의 국제전화를 했고 이후론 이메일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했다.\n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살펴보니 오고 간 메일이 모두 50 통이었다. 10월 11일부터 딱 두 달간 거의 매일 주고받은 셈이다.\n모든 메일엔 일본 사람 특유의 꼼꼼함이 묻어 나 있다.\n5,400엔을 추가하면 신랑 신부 퇴장 시 하객들이 꽃을 뿌려주는 ‘플라워 샤워’를 할 수 있다고 한다.  3장의 사진이 첨부되어 회신이 왔다. ‘핑크, 노랑, 파란색 꽃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색으로 하시겠습니까?’\n내심 '아무 색이어도 관계없지 않나?', '현장에서 대충 정하면 되지 않나?' 이런 것까지 하나하나 메일로 물어오는 것이 신기했다.\n핑크색으로 선택하니, 좋은 선택이라며 근사할 것이라는 회신까지 왔다.\n물론 홈페이지에 언급된 6만 7천엔 만으로 결혼식을 올리진 않았다.  6만 7천 엔에는 드레스, 턱시도, 액세서리 대여, 사회자의 식 진행, 음향과 조명 조절, 신부 헤어 메이크업, 신랑 신부 사진 한 장, 식장 꽃장식(조화), 결혼 증명서 발행이 포함되어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사진이 중요했고, 남자 친구는 먹는 것이 중요했다. 우리들의 요구를 둘다 충족시키기 위한 옵션이 불어났다.\n결혼식 기본비용 67,000엔 (+ 휴일은 10,800엔 추가)\n19명 이상 추가 비용 5,400엔 (20명이건, 25명이건 같은 비용)\n결혼식 촬영 및 데이터 구입 70,200엔 (약 250 ~ 300장)\n오타루 운하 로케이션 촬영 32,400엔 (+ 휴일 비용 10,800엔 + 데이터 구입 32,400엔)\n신랑 신부 시낭송 인쇄비 3,240엔 (기본 글귀를 읽으면 추가 비용이 안 들지만, 우리는 한국어로 읽어야 했으므로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좋아하는 윤동주 시를 읽기로 했다.)\n샴페인 세레모니 5,400엔 x 2 (한 병에 18잔이 나오기 때문에, 19명부터는 두 병을 사용해야 한다.)\n플라워 샤워 5,400엔 x 2 (위와 동일)\n웰컴 드링크 324엔 x 22명 (대기 시 커피, 홍차, 물 등 제공 비용)\n웨딩 케이크 15,660엔\n부케와 부토니에 12,960엔\n피로연 회식 가이세키 요리 10,800엔 x 24명\n(그 외 현장에서 필요한 소품 구매, 드레스 업그레이드 비용이 발생 예정)\n위의 비용은 소위 말하는 스드메와 결혼식장 대관료, 식대가 합쳐진 비용인 듯한데, 식을 하기전에 약 650만원 정도를 송금하였다. 한국에서 하는 결혼식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몰라서 과연 비용을 줄인 것인지는 모르겠다. 결혼한 친구들에게 물어보았지만, 식대는 축의금으로 커버가 가능하다, 대관료가 아니라 꽃장식 비용이다, 꽃장식도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등 여러 정보가 뒤죽박죽되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처럼 호텔 결혼식을 했다면 훨씬 더 비쌌을 것이다.\n시간은 분명 절약했다.\n물리적인 시간을 줄였다기보다, 진행과정이 재미있었다. 우리 둘이 특히 취약한 금액 네고, 다양한 선택지로부터 오는 피로, 회유와 약간의 협박 섞인 상술, 분명 (흐리멍덩한 우리 성격상) 상술에 끌려다닐 시간을 겪지 않아도 괜찮았다. 대신 일본어 공부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는 나는 평소에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일본 드라마든 중국 영화든 자막 없이 보는 일을 좋아한다. 실은 놀고 있으면서 일본어 공부했다고 스스로 위안 삼기를 즐겨하는 것이다. 이런 내게\n결혼 과정을 일본어로 준비했다는 건 굉장히 뿌듯한 일이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4","published_date":"2016-12-12T12:58+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49,"source":"brunch","title":"03화 왜 하필이면 일본이야?","content":"작년 11월 홋카이도에 갔다.\n삼일째 되는 날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n눈이 마을을 하얗게 지워버렸다.\n예약한 료칸엔 숙박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이틀 동안 넓은 대욕탕을 혼자 썼다. 노천탕에는 한 명만 쏙 들어갈 수 있는 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통 바로 앞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눈에 반사된 아침햇살에 눈이 부셨다.\n커다란 나무에 묵직하게 앉아 있던 눈이 가끔씩 투우 욱.\n떨어졌다.\n참으로 좋은 소리였다.\n이런 순간을 얻게 되다니...\n나만 즐기긴 아깝다.\n결혼 이야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 하나, 공통적인 반응 하나.\n“왜 하필이면 일본이야?”\n“부모님 대단하시다...”\n솔직한 마음은 ‘해외’, ‘일본’ 에서라기 보다, ‘홋카이도’에서 하고 싶었다. 일본에서 1년 교환학생으로 지낸 적도 있고, 매년 취재, 출장, 여행 등으로 일본의 여러 도시를 다녀왔다. 그중 홋카이도여야만 했다.\n항공권 가격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 도쿄나 후쿠오카, 오키나와, 오사카와 같은 도시에서 결혼식을 한다면 오타루에서 하는 것보다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겨울 홋카이도에서 하고 싶었다.\n작년에 만났던 행복한 순간을 부모님께도 선물하고 싶었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는 시간, 정갈한 료칸 요리를 대접해드리고 싶었다. 친한 친구들과도 눈으로 뒤덮인 그곳의 시간을 공유하고 싶었고,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었다.\n부모님이 대단하신 것은 맞다. 적어도 우리 집은 넉넉하지 않아서 내가 한국에서 적당한 규모로 결혼식을 올렸다면 가계에 많은 도움을 드렸을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이 '추수'라고 부르는 그 일을 과감히 포기해주셨다.\n제주항공이나 티웨이 같은 저가항공사가 있어 다행이었지만, 홋카이도행 항공권은 25만 원에서 35만 원 사이였다. 우리 둘의 주머니 사정이 좋진 않기 때문에 친구들의 항공권, 호텔 비용이 부담이 아니었다면 거짓말이다.\n\"오타루 도미인 혹은 오텐트, 둘 중 하나에서 숙박하면 될 거야.\"\n당연 예약해놨으니 일정 상 좋은 쪽을 택하라는 뜻으로 메시지를 보냈는데, 초대한 나의 친구들 모두가 둘 중 한 곳을 예약하라는 뜻으로 알고 직접 예약을 하거나, 자기 숙박비는 괜찮다며 계좌를 알려달라고 했다.\n결혼 준비 처음부터 눈시울이 몇 번이나 붉어졌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5","published_date":"2016-12-12T14: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0,"source":"brunch","title":"04화 오늘 공항 폐쇄래...","content":"홋카이도에 있는 작은 결혼식장\n小さな結婚式\n은 삿포로\n札幌\n와 오타루\n小樽\n두 곳이 있다. 삿포로점이 교통이나 규모는 훨씬 좋았지만 식장 내부가 반질반질한 소재로 되어 있고, 정면에 거울이 있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반면 오타루 식장은 사진 속의 모습만으로도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다. 붉은 벽돌벽에 나무의자, 정면 창에는 운하 풍경이 들어 있었다.\n오타루점은 규모가 작은 지 드레스를 삿포로점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고, 작은 결혼식 삿포로점에 결혼식 전날 저녁 6시 반에 가서 드레스를 골랐다. 세 시간 정도 입었다 벗었다 하며 드레스를 골라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오후 5시가 약속시간이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연착되었고, 눈이 많이 내려 도로가 미끄러워서 1시간 반을 지각했다. 늦게 도착한 와중에도 각종 상업시설 안에 위치한 삿포로 식장을 택하지 않은 나의 안목에 감탄하며 혼자 뿌듯해 하고 있었다.\n오타루 운하를 배경으로 찍는 촬영용 드레스는 기본요금 내에서 하기로 하고, 본식 드레스는 추가 요금을 더 내고 화려한 것으로 골랐다. 꽃모양의 수가 놓인 드레스를 한 벌 입어보고 바로 결정. 두세 벌 입어 볼 것이라 예상했는지 스태프는 놀란 눈치였지만, 누군가에게 폐 끼치는 일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나의 성격 탓이었다. 시간 엄수를 중시하는 그들의 퇴근시간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새 대충 골라버린 것을 후회하며 촌스러울 것 같다는 걱정 속에 밤을 지새웠다.\n(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지만 쿨하진 않다.)\n늦은 밤 오타루 호텔에 도착하니 설국이었다.\n소복이 쌓인 눈 위에 주황빛 가로등이 내려앉아 있었다.\n결혼식 당일 아침이 밝았다. 창문 밖을 보니 여전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눈도 없이 춥기만 한 결혼식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 흥분되기 시작했다.\n예쁜 웨딩 사진이 되기에 충분한 눈이었다.\n1시까지 식장으로 가기로 해서 시간 여유도 있고 조식을 든든히 먹었다.\n부모님도 \"눈 오는 날 결혼하면 잘 산대\"라며 좋아하셨다.\n우리 둘과 드레스 고르는 일을 도와줄 우리 부모님을 제외하고 모두 당일 비행기로 올 예정이었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가족과 친구들 중 인천공항에서 홋카이도 치토세 공항을 통해 오는 사람들은 오전 8시 35분 출발 진에어 그룹, 10시 5분 대한항공 그룹, 11시 20분 제주항공 그룹, 12시 10분 티웨이 그룹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외 도쿄에서 오는 친구와 에어부산을 타고 김해공항에서 오는 친구들 몇 명이 있었다.\n10시 그룹엔 신랑의 가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식을 마치고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대한항공 그룹이 아직 비행기를 못 탔다는 연락을 받았다. 10시가 되기 몇 분 전이었다. 10시는 비교적 여유 있는 항공편이어서 2시간 정도 지연되어도 오후 5시 반 예식에는 문제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n먼저 방으로 들어가 동생과 통화를 한\n신랑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n치토세 공항 오늘 폐쇄래...","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6","published_date":"2016-12-15T08:2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1,"source":"brunch","title":"05화 내 결혼식보다  더 기억에 남을 결혼식","content":"하객으로 참석했던 한 친구는 자신의 SNS에 이렇게 썼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결혼식”이라고. 그 친구는 또 피로연 자리에서 “내 결혼식보다 더 기억에 남을 결혼식”이라고도 했다. 정확한 표현이었다.\n나는 일의 경중을 따지며 이른바 ‘야마’가 될 내용부터 글을 써내려가는 걸 업으로 삼고 있다. 매번 쉽지 않은 일이다. 세상사는 생각보다 빈약하다. 빈약한 콘텐츠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에 살을 붙이곤 하면서 야마를 작위적으로 뽑아낸다. 가끔 수작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억지전개가 되기 일쑤다.\n그러나 이번엔 조금 다르다. 내가 당사자라서만은 아니다. 말도, 탈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많았단다. 이중에서 무엇을 먼저 써야 할지, 무엇을 빼야 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n- 2016. 12. 14 아오모리 국제호텔에서","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7","published_date":"2016-12-15T11:4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2,"source":"brunch","title":"06화 피 떨어진다 피 떨어져","content":"아침 일찍 진에어를 탄 친구들이 한 시간 정도 지연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착륙은 하였다. 뉴스를 틀어보니 대설경보 자막이 흐르고 있었고, 공항에서 오타루까지 오는 JR 기차도 운행을 했다가 안 했다가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의 친구들 두 명은 렌터카를 예약해 둔 신랑의 친구들과 합류하여 한 차를 타고 식장으로 오기로 했다. 평소 도로 상황이었으면 1시간 30분 거리. 다섯 명이 탄 차는 시간당 30킬로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충 봐도 오후 5시 반 예식에 맞춰 도착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n일단 홋카이도에 있단 사실만으로 진에어팀의 걱정은 덜어두기로 했다. 신랑의 부모님이 타고 계신 대한항공팀, 나의 여동생과 친구들이 탄 제주항공팀, 신랑의 친구가 탄 티웨이팀은\n연락 두절.\n휴대폰을 놓을 수 없었지만 정해진 스케줄을 벗어날 수 없어 운하로 촬영을 나갔다. 눈보라가 내리치고 있었고 웨딩슈즈는 미끄러웠다. 나가자마자 눈인 줄 알고 밟은 땅이 얼어 있어 웨딩드레스를 입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모두가 놀라 나를 진정시켰다. 심호흡을 하고 아빠의 부축을 받으며 조심조심 걷기 시작했다.\n갑자기 엄마가 뒤에서 목이 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엄마의 얼굴이 눈만큼이나 하얗게 변해 있었다.\n- 왜 그러세요?\n- 너 피 난다 피 나.\n- 어디에서 피 난다.\n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사색이 된 얼굴을 보고는 되레 겁이 났다.\n- 어디 다쳤는데 지금 추워서 정신없어 모르는 것 같아 피가 뚝뚝 떨어져 있어.\n'하혈인가?'\n'발목이 까졌나?'\n정신을 가다듬고 아픈 곳을 떠올리려 해도 아무 곳에서도 감각이 없다. 전신이 얼어 있었다.\n- 괜찮은 것 같은데요?\n스태프들이 일단 천천히 걸어보자며 걷기 시작했고 몇 미터 되지 않는 첫 번째 촬영 장소에 겨우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줄지어 사진을 찍고 있었고, 신랑 신부를 마주치니 신나 했다. 배경을 찍다 말고 우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n다음 날 아침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길을 걸어보니, 빨간 열매가 떨어져 터져있었다.\n피가 뚝뚝 떨어진 것처럼 보이긴 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8","published_date":"2016-12-17T01:24+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3,"source":"brunch","title":"07화 29년 만의 폭설, 65cm가 쌓였다","content":"日 홋카이도에 역대급 눈폭탄…2천500명 공항서 발묶여\n삿포로 65㎝로 29년만의 최고 적설량 기록日 홋카이도 폭설에도 즐거운 관광객 (삿포로 교도=연합뉴스) 일본 북부 홋카이도(北海道) 지역에 지난 10일부터 ...\n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8883265&sid1=001\n12월 10일.\n우리들의 결혼식날 기사다.\n대한항공은 치토세 공항 착륙이 위험할 것이라 판단.\n탑승을 20,30분 남기고 이륙을 다음날로 미뤄버렸다.\n오늘이 결혼식인데 비행기가 내일 뜬다니... 당황한 신랑이 결혼식을 미룰 수 있는지 물어보자고 했다. 고토 씨에게 신랑의 가족들이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인데 오늘 결혼식을 취소하고 내일이나 모레 가능한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대관 일정, 미용사, 사진사, 사회자 등 여러 명의 스케줄이 맞아야 했다. 일정을 확인해 본 고토 씨는 가장 빨라도 돌아오는 월요일 저녁에나 가능하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전했다.\n계약서상 천재지변과 관련된 내용이 들어 있던 것 같다. 그러나 \"신랑, 신부가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식장에 오지 못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결혼식 취소는 불가하다\"라고 했다. 매뉴얼대로 진행하는 그들에게 온정주의를 호소하는 것은 무리였다. 오히려 \"오실 수 있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식을 잘 진행해 봅시다\"라며 우릴 진정시켰다.\n머릿속은 이미 선택할 수 없는 가정들로 가득했다.\n- '부모님은 무조건 전날 오시도록 했었어야 했는데...'\n- '차라리 식을 일요일로 잡을걸...'\n가족과 친구들에게 충분히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고 싶었던 마음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n신랑의 가족들과 친구는 서둘러 게이트, 면세점을 빠져나와 12시 이륙으로 예정된 티웨이 항공권을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분초를 다투며 넓은 인천공항을 빠져나와야 했으므로 짐이 타는 카트를 타시고... 나중에 어머님은 '아들 결혼식에 못 갈까 봐 부끄러움도 잊었다'라고 하셨다.\n반면 제주항공에 탄 여동생이 \"잉? 언니 비행기 뜨는데?\"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회항하게 될 수도 있지만 아예 다음날 비행기가 뜨는 것보단 낫다. 대한항공팀은 처음부터 티웨이를 끊은 신랑의 친구와 합류하여 다섯이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n티웨이도 12시 이륙을 감행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n교환학생으로 요코하마에 갔을 때 만난 십년지기 친구 마나미와는 매년 한 번 정도는 만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에 있을 땐 같이 나고야를 여행했고,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는 수원, 경주를 다녀왔다. 재작년엔 둘이 핀란드 여행도 했다. 여행할 때도 느꼈지만 늘 철저한 준비가 돋보이는 친구라, 이번 결혼식에도 완벽한 스케줄로 도착한 유일한 참석자였다. 도쿄에서 탄 새벽 비행기로 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여, 삿포로 미용실에 들러 머리까지 했다. 오타루에는 우리 촬영 일정 전에 도착하여 촬영을 돕기로 했다. 결혼식 다음 날엔 오타루 유리공방에서 개최하는 체험 프로그램도 신청해두었다고 한다.\n결혼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신랑 신부 대신 마나미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내 핸드폰과 신랑의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연락이 오면 가져다주고, 중간중간 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기까지 했다. 일본어를 못 하시는 부모님의 손과 발이 되기도 했다. 헤어 메이크업을 예약하신 엄마는 식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화장을 계속 안 받고 계셨는데, 마나미가 중간에서 열 번이고 통역을 해드렸다고 한다. 드레스를 입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난 그런 상황인 줄도 모르고 신부대기실에 앉아있었는데, 동생의 연락이 들어왔다.\n언니...\n우리 도쿄 나리타에 내려줬어...\n오후 4시 15분.\n결혼식을 1시간 15분가량 남긴 시점이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39","published_date":"2016-12-19T11:1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4,"source":"brunch","title":"08화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부모가 못가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content":"오타루 결혼식장까지 오신 길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식장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긴박하고 초조했던 상황을 신랑의 선배가 자세히 글로 적어 보내주었습니다.\n글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고 웃었는지 모릅니다.\n그의 결혼이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것이었다.\n고민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어디서하든, 언제하든.\n그런데.. 이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어디서하든, 언제하든\"이 항공편 결항된 눈보라 속에서 불과 6시간 후라면???\n공항에는 일찌감치 도착했다. 전날 미리 짐을 싸고. 주말동안 집을 비우는게 미안했던 나는 아내를 처가에 데려다 주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 4시에 일어났다. 맨날 아침에 일어나던 내가 이날은 눈을 번쩍 뜨고 아내를 태워다주는게 신기했는지 올림픽 대로를 달리는 중 아내는 내가 무척 독한 사람이란걸 깨달았단다. 5시에 송파의 처가에 도착한 뒤 아내를 내려다주고 곧바로 집으로 오자 6시. 일본이 가깝다지만 국가간 이동을 하면 오후까지 제대로된 식사를 못하리란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에 없는 시간을 쪼개 짧게 아침식사를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갈 채비를 하고서 집을 나선게 6시 40분. 겨울에 접어든 하늘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모두가 자고있을 토요일 새벽 골목은 고요해서 나의 캐리어 끄는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퍼지는 듯 해 민망한 마음마저 들었다. 큰 길가로 나오자 공항 리무진이 운좋게도 마침 도착했다. 날씨도 추운데 타이밍이 맞자 기분이 좋았다. 모든게 순조로웠다.\n공항에 도착하자 8시가 되었다.  모두가 앞으로 써낼 미지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은 아침의 공항 탑승동은 항상 설렌다. 아내를 생각해 저녁 결혼식만 보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바로 돌아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정장과 구두를 넣은 작은 캐리어만 들고 왔다. 충분히 기내에 들고탈 수 있을 정도의 짐이었고, 티켓은 모바일로 체크인을 하였기에 별도의 수속을 밟지 않고 나는 곧바로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그에게 내 모바일 탑승권을 보여주니 그는 자기 부모님도 같은 편을 타고 온다고 알려주었다.\n나는 우연에 반가워하였지만 그는 아들 친구 만나면 공연히 이것저것 챙겨주실 부모님 덕에 친구가 여행시간을 빼앗길까봐 그냥 모른척해달라고 하였다.\n그래도 나는 인사를 드리기 위해 게이트로 조금 일찍 가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면세점에서 별다르게 산 것도 없이 비행기 출발 50분 전에 게이트로 갔다.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라지만 한국인이 안보이고 일본인들이 다수인 듯 하였다. 늘 일본인이 한국인과 비슷하리라 생각했지만 이날 내 눈에 보인 이들은 일본인에 대한 구별이 이렇게 잘 되는 나 지신이 신기할 정도로 일본인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특별히 행색이 다르다기보다는 시야 안에 보이는 이들은 누구든지 간에 모두가 미묘하게 얼굴 골격이나 표정들이 한국인들과 달랐다.\n공항에 도착해서 만난 그의 아버지는 연신 초조한 표정이었다.\n\"삿포로 행 비행기 어떻게 된 건가요?\" 그러고 보니 게이트 위 화면에 삿포로가 사라지고 웬 모스크바와 오키나와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n항공사 직원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강설로 일본 현지 공항이 폐쇄된 상태이고 몇시간 연착 수준이 아니라 내일이 되어야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니 오늘 저녁에 내 아들이 결혼을 하는데 부모가 못가면 결혼을 어떻게 한단 말이오?\" 하면서 안타까워 하셨다.\n이 사실을 그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비행기 연착 정도로 생각했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이내 깨닫고 당황했다. 항공사 직원이 가족의 여권을 회수해 대책을 마련하려 하자 그제서야 나도 \"앗, 저도 일행입니다. 저는 친구입니다.\" 하면서 자기 소개를 하였다. 그러나 다급했던 아버지는 항공사 직원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이야기를 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첫 인사지만 받는둥 마는둥하고 계속하여 항공사 직원에게 말머리를 향하셨다. 항공사 직원과의 대화는 내 생각보다 비관적으로 흘러갔다. 오늘 비행기가 뜰 수 없고, 다른 항공편을 알아봐줄 수 없으며, 우리는 탑승동으로 나가서 알아서 표를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이 항공사의 일본 내 기상 상황이 좋은 다른 공항, 이를테면 도쿄나 센다이로 가서 신칸센을 타고라도 들어가는 방안을 이야기하였다.\n참으로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모든 논의가 탁상공론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결코 싸지 않을 신칸센 비용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육상 교통의 한계상 7시간 반내에 식장까지 그렇게 해서 가는 것이 불가능하여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자연상황이 허락을 않는데 대통령을 동원해서 띄운다 한들 그건 명백한 안전불감증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오늘 안에 아들의 결혼식장에 가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1,400km 떨어진 그곳까지 7시간 30분 내에 가야만 하였다. 그러나, 항공사 측에서는 다른 항공편으로 어떠한 옵션이 있는지, 나아가 현재 삿포로로 다른 어떤 항공사들이 있는지 등의 후속 대책을 위해 필요한 정보에 대하여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항공사 직원은 그저 해당 삿포로행 티켓의 기상상황 악화로 인한 결항취소 및 100% 환불로 모든 조치를 마무리하려고 하였다. 겉보기에는 무리없는 마무리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아무런 지연 예고도 없이 출발 직전이 되어서야 일방적으로 결항을 선언하고 탑승동 밖으로  우리를 내보내 깔끔하게 손을 털려고만 하는 항공사 직원의 태도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내보내면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게 따지기도 했으나, 항공사 직원의 외면하는 눈빛에 더이상 이 항공사에서 해답을 얻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나가서 다른 항공편을 알아보는게 유일한 해결책이라면 이 항공사를 붙잡고 따지기보다는 한시라도 빨리 마무리를 짓고 나가야만 했다. 항공편을 취소할 뿐 아무런 후속 대책을 세워주지 않는 항공사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카트에 올라 탑승동을 나오기로 하였다.\n나와 그의 아버지, 어머니, 동생은 한 카트에 태워져 나왔다. 카트가 걷는 것보다 편한 이동수단이기에 언뜻보면 편의를 받는 듯 보이지만 기실은 질질 끌려나오는 것이나 다를바 없어 이동하는 내내 모욕감을 느꼈다.\n운전하는 항공사 직원의 어떻게든 빨리 골치아픈 고객을 처리해버리려는 마음이 표정에 드러났기에 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구매한 티켓의 환불을 묻자 미리 말해주지도 않다가 내가 물어보니 그제야 한다는 말이 자동으로 환불이 되지 않고 ARS로 신청하라고 하자 어이가 없어졌다. 화가 무척 났지만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 빨리 나가서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두고보자 하고 가슴에만 품은채 갈 길을 서둘었다.\n탑승동에 다시 나온 시간은 10시 30분이었다.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7시간, 삿포로 공항에서부터 결혼식장까지 이동시간을 2시간 정도 고려하면 남은 시간은 5시간 정도였다.\n급히 알아보니 다른 결혼식에 참석할 친구인 Y의 12시 10분 출발 저가항공편은 아직 취소 등의 소식 없이 수속을 밟고 있다고 하였다.\n이날 정말로 삿포로를 들어가야 했던 사람이 하필 이날 저녁 소중한 사람의 결혼이 있던 나와 그의 가족 외에 또 있었을까.","url":"https://brunch.co.kr/@istandby4u2/40","published_date":"2016-12-19T13:2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5,"source":"brunch","title":"11화 신랑이 입장하자 함성소리가 들려왔다","content":"치토세 공항에서 시속 30km로 달려온(?) 다섯 명의 친구가 도착하자마자 결혼식을 시작하기로 했다.\n오후 6시.\n초대한 가족과 친구들 22명 중 9명은 아직 도쿄 나리타에 있다.\n나리타와 오타루의 직선거리는 약 800km.\n식순은 한국과 비슷했다.\n- 신랑 입장\n- 신부와 신부 아버지 입장\n- 사회자의 개식 선언\n- 윤동주의 '새로운 길' 시 낭독\n- 웨딩 반지 교환\n- 신랑 신부 키스\n- 친구들의 증인 선언\n- 신랑 아버지 좋은 말씀\n- 샴페인 건배사\n- 웨딩 케이크 커팅\n- 폐식 선언\n- 퇴장\n단지 일본인 사회자라 일본어로 식이 진행될 뿐이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이 도움을 주어 식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n식장의 커다란 문이 열리고 신랑이 입장하였다. 함성과 박수, 신랑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수 십 명은 있는 듯했다.\n가족과 친구들이 아직 다 오지 못한 상황에 속상할 우리를 위한 친구들의 속 깊은 배려였다. 아빠와 입장하니 신랑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했다.\n다른 일정은 변경 없이 가능했지만 신랑 아버님께서 해주시기로 한 좋은 말씀의 대체 요원이 필요했다. 식전에 이 부분을 어떻게 할지 물어온 스태프에게 우리 아버지께 부탁드리겠다고 말해두었다. 신랑이 입장하고 보니 아직 아빠에게 이야기를 못 드렸단 사실이 떠올랐다. 신부 입장을 하며 아빠에게 말했다.\n“아! 건배사랑 하객에게 감사 인사 아빠가 해주셔야 하는데?\"\n신랑이 내게 처음으로 준 선물은 녹음기였다. 인턴기자였던 우리의 역할 중 하나는 ‘녹취 풀기’였다. 선배 기자들의 인터뷰나 취재에 따라가 녹음을 하고, 사무실에 돌아와 녹음된 말을 다시 들으며 글로 타이핑했다. 동의를 받아도, 녹음기가 탁자 위에 올려져 있으면 의식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왕이면 잘 안 보이는 것이 좋다. 안 보이게 두면 음성이 멀어진다. 작고 성능이 좋은 녹음기. 학생에겐 고가인 제품이었지만,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되어 샀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신랑은 꼭 필요한 선물을 기념일과 관계없이 꼭 필요한 날에 해주곤 한다. 녹음기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녹음기가 아니다.\n이 녹음기를 준 곳은 그가 나와 같이 가보고 싶어 한 장소였다. 연세대학교 안에 있는 윤동주 시비 앞에서 첫 선물을 건넸다. 평소 하고 있는 생각, 좋아하는 것,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장소와 선물을 통해 전했다. 늘 뭐가 들어있나 궁금했던 그의 무거운 책가방엔 때때로 윤동주 평전, 윤동주 시집이 들어 있었다. 국과수 부검 견학을 가서도 겁이 많은 나에게 몇 편의 시를 보여주며 마음을 다스리게 했다.\n우리 결혼식에 윤동주 시의 등장은 필연이었다. 물론 결혼식에 걸맞은 시를 선택하는 일은 꽤 난항을 겪었다. 일본에서 식을 하는데,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를 읊을 순 없지 않은가. 마침 영화 ‘동주’ 포스터에 ‘새로운 길’이 새겨 있어 다행이었다.\n‘동주’의 촬영지 왕곡마을 사진을 미리 식장에 보냈더니 혼인서약서의 배경도 근사하게 들어갔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41","published_date":"2016-12-22T15:15+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6,"source":"brunch","title":"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content":"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np.7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 민음사) 중\n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입 중 하나로 손 꼽히는 장면을 실제로 눈에 담았다. 그날 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아름다운 문장을 낳은 료칸에 묵기로 했다.\n진눈깨비가 덮기 시작한 야마가타현 아쓰미온천\nあつみ温泉\n에서 출발했다. 먼저 니가타 역으로 가서 기차를 갈아타고 에치고 유자와\n越後湯沢\n까지 가는 일정이었다. 우중충했던 아쓰미 온천의 아침과 달리 니가타는 화창했다. 니가타 역을 출발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깜깜한 터널로 들어갔다. 옆자리에서 신랑이 단잠을 자고 있었다. 대화할 사람도, 구경할 창밖 풍경도 없어져 심심해졌다.\n기나긴 터널이 끝나고 빛이 기차로 스며들자 나도 모르게 탄성을 토했다.\n신랑을 흔들어 깨웠다.\n“말도 안 되는 풍경이야.”\n창밖엔 설원이 펼쳐져 있었다. 분명 터널로 들어가기 전에는 파란 하늘 아래 황톳빛 땅이 뻗어 있었다.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어둑어둑한 하늘 밑에 순백색이 깔렸다. 소설 《설국》의 시작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川端康成 는 우리와 정반대 편 도쿄에서 출발하여 에치코 유자와에 닿았다. 아름다운 시작을 만든 충격적인 풍경은 반대편에서 달려간 우리에게도 선사되었다.\n《설국》은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작품 안에 ‘유자와’라는 지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가 여행에서 만난 인연을 바탕으로 집필하였으며,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화재(火災) 역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 밝혔다. 소설의 주인공 시마무라는 특별한 직업 없이 여행을 다니는 청년이다. 때때로 서양무용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한다. 어느 날 산행을 마치고 내려간 온천 거리에서 게이샤 고마코를 만난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녀를 만나기 위해 같은 마을을 찾아간다. 어느 해 마을로 향하던 기차에서 요코라는 여성을 마주치고, 그녀에게도 마음이 끌린다. 여느 작품과 달리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이야기의 흐름보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름다운 소설이기 때문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작품을 계기로 196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n시마무라가 머무는 료칸은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된다. 작가는 실제로 에치고 유자와의 다카한 료칸 高判旅館 에 머물며 설국을 집필했다. 증축을 한 다카한은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지만 위치는 그대로여서 소설의 묘사와 이질감이 없다. 예약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전날 예약이 가능했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눈이 펑펑 내리는 길을 걷고 싶다는 신랑을 만류하고 료칸에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n길은 얼어 있었다. 마을은 추위의 밑바닥으로 고요히 가라앉았다. 고마코는 옷자락을 걷어올려 오비에 찔러 넣었다. 달은 마치 푸른 얼음 속 칼날처럼 투명하게 빛났다.\n“역까지 가요”\n“돌았군. 왕복 십 리 길이야”\n“당신은 곧 도쿄로 가잖아요. 역을 보러 가는 거에요”\n⁃ 《설국》 중에서\n십 리는 4km가 채 되지 않는 거리. 에치고 유자와 역에서 료칸까지는 실제로 ２km 남짓. 눈이 많이 쌓여 있어서 30분은 걸어야 다다를 수 있다.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트렁크를 질질 끌며 이 길을 걷자니…… 무모한 신랑의 모습이 고마코와 겹쳐졌다. 료칸에 짐을 맡기고 나서야 눈이 쏟아지는 온천마을을 걸어볼 마음이 들었다. 눈이 이렇게나 많이 왔는데 차가 다니는 길엔 눈이 쌓이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로 위에 줄줄이 뚫린 작은 구멍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거리엔 인적이 드물었다. 폭설로 스키장 운영이 어려운 것일까?\n역 근처에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나오니 눈발이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엔 택시에 올랐다. 하루에도 같은 길을 몇 번이고 다닐 기사 아저씨에게 말을 붙였다.\n“12월엔 항상 이렇게 눈이 많이 오나요?”\n“음…… 매년 달라요. 어떤 해엔 정월이 되도록 눈을 전혀 볼 수 없을 때도 있고, 조금 이를 때도 있죠? 올해는 적설이 일찍 시작되었네요. 12월 초부터 이렇게 쌓이기 시작하니.”\n올해 일본에 눈이 빨리 다가온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오타루에서 올린 우리의 결혼식 날엔 폭설로 공항까지 폐쇄되었으니…….\n료칸 2층에는 이제는 없어진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머문 방이 재현되어 있다. ‘가스미노마 かすみの間’라는 이름을 가진 방이다. 옆에는 자료관이 꾸려 있다. 작가와 작품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좋은 공간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 고마코의 실제 모델인 마쓰에 (본명 : 고다카 키쿠 小高キク)의 사진. 대단한 미인은 아니지만 확실히 관능미가 흘렀다.\n외관은 바뀌었어도 우리가 머문 객실 구조는 가스미노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도 내려다봤을 겨울 풍경을 밤늦도록 구경했다.\n여전히 어두운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이 더 펑펑 내리고 있었다. 따뜻한 물을 뿜어내는 장치도 소용이 없어지고 있다. 아무도 없는 대욕탕에서 온천욕을 했다. 언제 《설국》을 처음 만났더라…… 기억을 더듬어 본다. 고등학생 때 처음 읽은 《설국》은 사실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이토록 눈이 많이 내리는 고장에 가보지 못했고, 수려한 문장 사이사이에 감춰진 남녀의 감정을 들춰내지 못 했다. 밖을 내다보며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앉아 있으니 이곳까지 들어오며 만난 풍경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소설이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n한 밤을 보내고 다시 기차에 올랐다.\n긴 터널을 통과하여 눈의 고장을 빠져나오니 겨울햇살에 눈이 부셨다.\n국경의 산을 북쪽으로 올라 긴 터널을 통과하자, 겨울 오후의 엷은 빛은 땅밑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낡은 기차는 환한 껍질을 터널에 벗어던지고 나온 양, 중첩된 봉우리들 사이로 이미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산골짜기를 내려가고 있었다. 이쪽에는 아직 눈이 없었다.\n⁃ 《설국》 중에서\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url":"https://brunch.co.kr/@istandby4u2/43","published_date":"2016-12-27T14:5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7,"source":"brunch","title":"09화 비행기 밖 공항으로 나가지도 못하였다","content":"오타루 결혼식장까지 오신 길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식장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긴박하고 초조했던 상황을 신랑의 선배가 자세히 글로 적어 보내주었습니다.\n글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고 웃었는지 모릅니다.\n나는 그의 아버지에게 다른 친구가 12시 10분 저가항공편인데 아직까지 결항 등의 이야기 없이 수속을 정상적으로 밟고 있다고 말하며 표를 알아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저가항공 카운터로 다시 뛰어갔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내 핸드폰의 건강 앱의 일일 걷기 목표치가 이때 벌써 달성되었다. 저가항공 카운터에서는 불과 1시간여 후에 출발할 항공편임에도 4장의 표가 남아있고 무엇보다 30분 후까지만 온다면 캐리어를 부치고 수속을 밟아주겠다는 고마운 이야기를 해줬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n지연되지 않고 계획대로만 도착해준다면 계산상으로 결혼식을 아슬아슬하게라도 볼 수 있는 마지막 비행기 티켓이었다.\n모든 일을 겪고 난 지금 돌이켜보면 회의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회항을 하고 몇 시간을 대기한 끝에 마침내 들어갔으며 날을 넘기기 전에 부모님이 아들과 만나 부모 없는 결혼식이 벌어지는 참사는 막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메데타시 메데타시\"였을지 모르지만, 삿포로 현지의 상황이 어땠는지를 알게 된 지금 돌이켜보면 위험천만하게 아슬아슬한 상황을 수없이 겪은 끝에 간 것이었다. 그러한 선택은 결코 다시 권유할 수가 없으며,\n오로지 전체 상황을 정확히 몰랐기에 감히 할 수 있었던 용감한 선택, 아니 무식한 선택이었다.\n아까까지만 하더라도 대한항공에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하고 싶었으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서 한시라도 빨리 관계를 마무리 짓고 새로운 항공사로 옮겨가야만 하였다. 나는 짐을 따로 부치지 않았기에 당장이라도 표를 살 수 있었지만, 캐리어를 부쳤던 그의 가족은 아직 짐을 다시 받지 못한 상태이었다. 남은 시간은 어느새 20여분 뿐이었다. 항공사 직원의 떠넘기기를 한번 겪고 보니 넋 놓고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시간 내에 짐을 못 받겠다는 생각이 들었다.\n카운터의 항공사 직원에게 몇 번을 반복해서 짐을 빨리 꺼내 달라고 이야기하였다. 현장에 이미 3번 이상 전화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n다행히 저가 항공사와 약속한 시한을 10분 앞두고 짐을 다시 받을 수 있었다. 결혼식에 제 시간 맞춰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생긴 순간이었다. 모두가 다 같이 희망에 차서 저가 항공사의 카운터로 달려갔다. 저가 항공사에서는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약속대로 우리 일행의 티켓 구매를 진행해 주었다.\n탑승 수속은 별다른 지연 없이 제시간에 이루어졌다. 이 편보다 1시간 빠른 11시 출발 예정이던 또 다른 저가항공사에는 신부의 동생과 친구들 4명이 타고 있었는데, 제시간에 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n불과 1시간 후에 이렇게 다른 항공편이 출발할 것을 왜 대항항공에서는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이날 하루의 항공편을 일찌감치 취소한 것일까 원망이 들었다\n. 좌석에 앉고서 같은 비행기 편 티켓을 소지한 후배 Y를 찾았다. 전화를 해보니 급하게 들어온 내가 오히려 Y보다 먼저 비행기를 탔다. 깔끔하게 정장을 입은 Y의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짧은 대화를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n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우리 일행은 각자 띄엄띄엄 좌석을 배정받았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꽉 찬 비행기에서 어떻게 4개의 좌석이 남았는지도 신기하다. 모든 것이 어찌 보면\n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섭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적으로 이루어졌다\n. 비행기가 다행히 제시간에 출발을 하자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제시간에 떴다. 이제 제시간에 갈 수 있겠다. 긴장이 풀렸다. 새벽부터 6시간이 넘도록 긴장상태의 연속이었다. 점심도 먹지 못한 상태이었다. 신라면 컵라면을 하나 4천 원을 주고 샀다. 하늘 위에서 먹는 라면이 그렇게 맛있다 하는데 허기까지 지니 한 젓가락만에 다 먹어버린 기분이었다. 바닥의 국물까지 다 마셔버린 뒤 속이 든든해지자 귀에 이어폰을 꼽고 시끄러운 메탈 음악을 틀고서 잠을 청했다.\n이때가 이날의 유일한 안식의 순간이었다.\n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잠들어 있는 나를 Y가 깨웠다. \"형, 이럴 때가 아니야.\"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어보자\n비행기가 착륙을 하지 못하고 삿포로 근처 하늘을 돌다가 도쿄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n그동안 여러 차례 비행기를 타면서 이렇게 다른 공항으로 회항한 적은 처음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n비행기에 연료가 부족해져서 간다는 말은 너무나 무섭게 만들었다.\n처음에는 비행기 출발 시 잠시 좋아졌던 기상이 다시 악화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막무가내로 비행기가 출발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리타로 향하는 내내 얼마 전 대회 결승전에 진출한 축구팀 선수단 전원을 싣고서 연료 부족으로 어처구니없이 추락해버린 브라질의 항공사고 뉴스가 떠올랐다.\n비행기가 다행히 나리타 공항의 활주로에 랜딩을 하는 순간, 나뿐만 아니라 다들 얼마나 항공 사고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일정대로 못 가게 되었다 같은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하고 단지 사고가 안 나서 너무나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곧바로 휴대폰의 로밍을 켜고 그과 접속을 시도하였다. 이미 오후 5시가 되어서 결혼식을 30분 앞둔 시간이었다. 두어 시간 결혼식을 연기하는 정도로는 그 안에 도저히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결혼식을 오늘 할지 또는 다음날로 미뤄야 할지 날짜 수준에서 고민을 해야 하는 문제이었다. 신부의 부모님은 이미 어제 그, 신부와 함께 결혼식장이 있는 오타루시에 들어가 있었고, 친구들도 생각보다 많이 와 있다고 하였다. 그렇게 사람들이 와 있었다면 결혼식의 날짜를 미룰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랑의 부모님도 없이 결혼을 선언하는 것도 이상한 노릇이었다. 다행히 그의 아버지께서 과감히 결혼식을 계획대로 정해진 시간에 진행하라고 결단을 내려주셨다.\n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혹시나 두세 시간 정도 연기한다면 부모님에게 결혼식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모를까 하는 미련을 가졌지만, 결국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였다.\n결혼식에 못 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런 연락도 하지 못했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보면 차라리 이렇게 서로 이해를 구하고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통신이라도 한 것이 다행으로 생각되었다.\n나리타 공항에서는 우리 비행기에 대하여 승객들의 항의가 없도록 협조를 구하는 메시지를 수회에 걸쳐 반복하여 전달하였다. 우리는 비행기 밖 공항으로 나가지도 못하였다. 어느새 아침식사를 한 지 12시간이 되어가는데 제대로 된 식사를 여태 한 게 없었다. 나가서 무어라도 사 먹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n게다가, 승무원들 또한 비행기가 하늘 위 정상 궤도에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렇게 활주로 위에 멈추어 있는 상태이더라도 음식을 팔 수 없다고 하였다.\n답답한 상황이었다. 창문을 통해 활주로를 보니 우리보다 1시간 먼저 출발한 다른 저가항공사의 비행기가 우리와 나란히 서 있었다. 일단 띄우고 보았던 저가항공사의 용기인지 무대책한 행동인지 덕분에 나는 어쨌거나 이렇게 일본 땅 위에 있기는 하였다. 하염없이 승무원들의 다음 조치를 기다리면서 차라리 이대로 서울로 돌아가더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n정말로 마음을 비웠다.\n비행기 안에는 단체 관광객이 많았다. 겨울 북해도에 온천 관광을 온 장년층이 다수였다. 비행기에는 이들을 인솔할 가이드 또한 함께 동행하고 있었다. 대다수의 단체 관광객들은 서울로 돌아가도 받아들일 듯한 분위기였다. 어차피 아무런 관광 서비스를 받은 것도, 나아가 목적지 공항까지 도착한 것도 아니기에 여행비도 항공비도 모두 환불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였다. 그러나, 승무원과 가이드는 서울로 결코 돌아갈 수 없었다.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기름을 추가로 보충하고도 아무런 매출 없이 모조리 환불하게 생겼고, 여행사의 입장에서도 꼼짝없이 환불을 해주어야 하였다. 그러한 절박감 때문이었을까. 승무원들은 결코 나리타 공항을 떠나지 않고 끈기 있게 신치토세 공항과 연락을 시도하였고, 가이드 또한 북해도 내의 직원과 연락을 시도하며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하였다. 북해도 내 직원과 연락을 한 결과에 의하면 하필 이날 북해도에 29년 만의 대폭설이 내렸다고 한다.\n하필 그의 결혼 날에 29년 만의 대폭설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n보통 조상들이 결혼식날 가장 날씨 사나운 경우로 기껏 이야기하는 게 비 오는 정도인데, 29년 만의 대폭설이라니...\n다들 반쯤 포기하고 있을 무렵 생각지 못한 긍정적 소식이 들렸다. 신치토세 공항의 눈이 잦아들어 현재 착륙 허가가 내려졌고 나리타 공항으로부터 서류만 받으면 곧바로 출발할 수 있으며 출발을 하면 1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였다. 몇 시가 되든 오늘을 넘기지만 말았으면 했는데 참 반가운 소식이었다. 밤 10시든 11시든 오늘만 넘기지 말고 새신랑 새신부의 얼굴을 봤으면 하였다. 그에게 서울로 가지 않고 오타루에 오늘 갈 수 있을 거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6시 반이 되자 드디어 비행기가 출발하였다.\n가자 가자.","url":"https://brunch.co.kr/@istandby4u2/44","published_date":"2016-12-28T12:3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8,"source":"brunch","title":"10화 기묘한 조합의 일행이 의지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content":"오타루 결혼식장까지 오신 길이 얼마나 고되었는지 식장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긴박하고 초조했던 상황을 신랑의 선배가 자세히 글로 적어 보내주었습니다.\n글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고 웃었는지 모릅니다.\n나리타에서\n신치토세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벌써 7시 가까워진 시간에 마지막 남은 한국돈인\n2천 원으로\n감자칩을\n사 먹었다.\n원래 현찰을 잘\n안 갖고\n다니기는 하였다. 비행기 안에서 현찰로 음식을\n사 먹는\n상황이 되자\n천 원\n한 장이\n아쉬웠다. 전날 지갑에 있던 만원을\n쓴 게\n너무 아쉬웠다. 비행기는 어느새 착륙을 시작하였다\n.\n이번에는 정말 착륙을 할까.\n폭설과 눈보라가 아직도 있지 않을까. 갖가지 걱정이 들었다. 비행기 안의 모두가 그러한 걱정을 하였다. 부디 안전히 착륙하기를.\n© T.H.Kim\n다행히 큰 시간 소요 없이 비행기는 무난히 착륙을 하였다. 한참을 활주로를 달려 비로소 비행기가 멈췄다. 하루 종일 그토록 오고 싶었던 이곳에 우여곡절에 착륙을 하니 정말 신기했다. 난 분명 삿포로행 비행기표를 샀고 삿포로에 향하는 비행기를 탔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삿포로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비웠었다. 이렇게 무사히 삿포로에 착륙을 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비행기를 나와 공항으로 통로를 이동하면서\n얼핏 바깥을 보니 그야말로 눈의 나라였다.\n아직도 채 치우지 못한, 아니 아직도 쌓이고 있는 눈이 곳곳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짐을 찾는 곳에 오니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일행과 이야기를 하였다. 신부의 동생과 친구들이 탄 항공편은 우리보다 나리타에서 늦게 출발하여 아직 도착하지 않은 듯하였다.\n© T.H.Kim\n© T.H.Kim\n오타루로 가는 JR을 타기 위해 이동하면서 그의 아버지는 대단히 마음이 급해 보였다. 앞에 느긋하게 가는 관광객들을 제치고 빠르게 앞으로 걸어갔다. 유달리 공항의 통로가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긴 통로 끝에 마주한 것은 폭설로 인해 모두가 JR만을 타기 위해 끝이 안 보이도록 길게 늘어선 줄이었다. 비행기 어렵게 타고 이렇게 내렸는데 아직도 오타루까지 갈 길이 멀겠다는 생각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일단 JR 티켓을 사야만 하였다. 자판기 앞에 서니 삿포로행과 오타루행 티켓이 팔리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만 엔 지폐를 넣으며 가족과 나, 그리고 Y의 티켓을 사주셨다. 긴 줄의 맨 뒤로 가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언제쯤 열차를 탈 수 있을까. 그는 오타루 역 앞의 이자카야를 빌렸다고 한다. 피로연이라도 너무 늦지 않게 가야 할 텐데.\n플랫폼으로 서니 어느 게 오타루로 가는 것인지 분간이 쉽지 않았다. 삿포로행만 있고, 또한 어느 게 급행 인지도 알 수 없었다. 마음이 급하니 모든 게 당황스러웠다. 각자 짧은 지식을 서로 이야기하며 간신히 삿포로행 일반 열차 자유석에 탔다. 구글 맵에는 나오는 급행이 왜 안 보이는 건지도 모르겠고 모든 게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열차는 모든 역에 하나하나 서면서 천천히 갔다. 폭설로 JR 또한 지연되면서 평소보다 많이 느리게 간 듯하였다. Y와 같이 의자에 앉았는데, 엉덩이가 따뜻해지는 게 이내 잠이 몰려올 것 같았다. 배가 고파서 초콜릿을 계속 먹었다.\n열차의 창 밖에 하얀 것이 휘몰아치는 게 설마 눈보라일까, 먼지 때문에 창이 뿌연 것이 아닐까 하였는데, 시간을 두고 보니 엄청난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이었다.\n한국에서는 본 적도 없는 눈보라였다\n. 그의 막냇동생이 메신저를 통해 \"형, 엄마가 형 사진 보고 싶대\" 하면서 결혼식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자 그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사진을 보내줬다. 아마도 색시 모습이 이뻐 죽겠었나 보다. 열차는 어느새 삿포로에 도착하였다. 앉아있으면 그대로 오타루로 가는 열차편도 있다고 구글에서 보았는데, 모두들 내리니 따라 내렸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 없었다. 삿포로 역 플랫폼에 내리니 철도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다가오는 열차는 얼마나 험한 눈보라를 헤치고 달려왔는지 기관차가 흡사 사람 얼굴이 눈으로 뒤덮인 듯하였다. 오타루 역 기차가 언제 있냐고 더듬더듬 물었는데 역무원이 마치 이 차가 막차 이기라도 한 듯이 이야기하였다. 이미 사람으로 가득 찬 열차였는데 정신없이 끼어 탔다. 공항에서 삿포로에 올 때와 달리 이번 열차는 사람으로 가득 차서 서서 가야 하였다. 문가에 간신히 서 있었는데 문이 한번 열릴 때마다 시베리아 벌판 같은 바람이 쌩하고 들어왔다. 이번에도 모든 역에 서는 열차였다. 오타루로 가는 길은 흡사 강남역에서 2호선을 타고 신촌역까지 가는 길 같았다. 노선표도 초록색이고 참 길고 지루한 게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나마 Y와 이야기하면서 가니 시간이 덜 고통스럽게 흐른 듯하였다.\n일행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니 참 기묘한 조합의 일행이 서로를 의지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n나는 만약 그의 가족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왔을까. Y는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처럼 험난하고 복잡한 길을 알아서 잘 찾아갔을까. 그의 가족은 아들 친구들인 우리와 가는 것이 아니었다면 결혼식에 제시간에 가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정신이 무너지지 않고 이렇게 끈기 있게 올 수 있었을까. 참 다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누구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되는 조합을 만들어 왔다. 덕분에 긴 시간 여정을 그나마 덜 고통스럽게 이동하였다. 삿포로에서 오타루로 가는 길에 어느 순간 그의 아버지께서 비행기에서 내린지도 벌써 3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10시를 넘었었다. 비행기 시간만 몇 시간을 소요한 줄 알았는데, 실은 비행기에서 내린 뒤에도 굉장히 긴 시간을 보낸 것이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과 달리 열차에서의 시간은 그처럼 고통스럽게 시간의 경과를 느끼지 못하였다. 불확실성이 해소되었고, 이제는 확실히 갈 수는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버지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다 온 줄로만 생각했는데 아직도 끝이 나지를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열차에서 급격히 컨디션이 떨어지신 듯하였다. 급기야는 구토 증세가 있다며 매 정거장에서 열차 문이 열릴 때마다 열차 밖으로 나가서 찬 바람을 마시고 다시 열차에 타기를 반복하였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열차는 오타루에 다가갔다. 오후 10시 50분이 되어 오타루 역에 도착하였다.\n오전 10시 10분 비행기를 놓친 이후로 12시간이 넘게 고생을 한 끝에 도착한 것이었다.\n© T.H.Kim\n© T.H.Kim\n© T.H.Kim\n© Y.H.Lee\n마침내 오타루 역에 내리니 너무 반가웠다. 눈으로 뒤덮인 기차 앞에서 기념 촬영도 하였다. 플랫폼을 나가니 역사에 그와 장인이 나와 있었다. 반갑게 우리 일행을 맞아주셨다. 항상 보던 같은 국적의 친구를 이렇게 이국에서 만나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무척 들뜬 듯하였다. 역사를 나서니 눈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온 세상이 하얗고 인적이 드물었다. 역사 앞에 넓은 도로의 사거리가 있었지만 차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사거리 앞에 나와 Y가 묵을 호텔이 있었고 길 건너에 피로연 장소 이자카야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짐을 대신 들으면서 아버지에게 바닥이 매우 미끄러우니 조심하셔야 한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눈의 나라가 너무 신기하여서 나는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나머지 연신 카메라를 찍어댔다. 눈으로 뒤덮인 횡단보도를 건너 피로연 장소 이자카야에 도착했다.\n마침내 안전한, 아늑한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45","published_date":"2017-01-01T06: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59,"source":"brunch","title":"12화 11시 59분. 이자카야에서 진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content":"우리의 오타루 결혼식에 오기 위해 가족들과 친구들은 열 시간 동안 비행기 안에서, 네 시간을 눈길 위에서, 혼란이 극에 달한 기차 안에서 세 시간을 보냈다.\n제주항공 팀이 오타루 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40분이었다. 나의 여동생과 친구 셋을 드디어 만나게 된 것이다. 유럽도 아닌\n일본까지 13시간이 걸렸다.\n신랑의 친구들이 역까지 마중을 나가주었다.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은 네 명을 본 순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n© H.K.SHIN\n© T.H.Kim\n근처에 갈만 한 곳도 마땅하지 않아 담배냄새로 가득 찬 이자카야에 모여 있던 우리.\n12월 10일.\n두 사람의 ‘진짜’ 결혼식을 시작합니다.\n사회를 맡은 신랑 친구가 시작을 알렸다. 신랑의 친구들은 근처 편의점을 돌고 돌아 토치를 구하고, 숙소에서 초를 빌렸고, 간단한 부케까지 만들어 두었다. 여전히 밖은 춥고 눈이 한참 쌓여 있었는데...\n양가 어머님께서 토치로 작은 초에 점화를 해주셨다. 결혼식과 피로연 내내 굳어 있던 엄마의 얼굴에 조금씩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사진을 잘 찍는 나의 친구는 열 시간을 비행기에 갇혀 있었으면서 협소한 장소를 구석구석 옮겨 다니며 셔터를 눌렀다. 신랑 아버님께서는 결혼식장에서 하시지 못한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마음에 새겼다. '생일 축하합니다’를 ‘결혼 축하합니다’로 바꿔 모두가 같이 축가도 불렀다. 우리 아버지는 그날 건배사만 세 차례나 하셨다.\n© T.H.Kim\n양가 부모님께 인사도 드렸다. 따뜻하게 안아주셨다.\n두 시간 전 결혼식에서는 하지 못한 모든 일을 할 수 있었다. 진짜 결혼식이었다.\n남편과 함께 온 신랑의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남편을 다음날 오타루 시내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는 이자카야에 모두가 모인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고 했다.\n\"제가 가장 먼 사람인데 차마 울 순 없잖아요. 참느라 혼났어요.\"\n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n앞으로 우리는 이 빚을 어떻게 갚으며 살아가야 할까.","url":"https://brunch.co.kr/@istandby4u2/46","published_date":"2017-01-01T12:0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0,"source":"brunch","title":"라멘이 너무 좋아","content":"라멘과 생맥주.\n각각 먹어도 맛있고 함께 먹으면 더욱 좋다. 일본에 갈 때면 일정 중 한 번 이상은 라멘집엘 간다. 요즘엔 라멘 DB\nラーメン DB\n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여 부근에 있는 라멘집 중 평점이 가장 높은 곳을 찾아가곤 한다.\n라멘 DB에서는 몇 가지 옵션을 선택하여 검색할 수 있는데, 자가제면\n自家製麺\n, 무화학조미료\n無化調\n라는 선택지까진 이해가 되었지만, '지로계\n二郎系\n'라는 것이 궁금해졌다.\n'지로? 라멘의 대가인가?'\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지로 라멘 (* 참고로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추가로 시킨 부추김치입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47","published_date":"2017-01-07T05:4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1,"source":"brunch","title":"생각해보니 하코다테에서 고양이도 만나지 못했네","content":"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많은 가정을 했다.\n무언가가 내 생활에서 사라지는 것에 대한 가정.\n홋카이도에 가서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알렸더니, 평소 나의 여행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동료가 솔깃한 정보를 전해주었다.\n“하코다테 가실 거면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영화 보고 가세요.”\n결혼 준비로 정신이 없던 때였다. 영화를 틀어 놓곤, 식장에 회신을 보내느라 도통 스토리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마음에 남았다. 주인공 ‘나’  (사토 타케루 역)는 서른 살의 우편배달부다. 어느 날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집에 돌아오니 자신과 동일한 모습을 한 악마가 찾아와 있다. 악마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없앤다면 생명을 하루씩 연장해 주겠다 제안한다. 그렇게 하루에 한 가지가 없어지기 시작한다.\n첫째 날, 세상에서\n전화\n가 사라진다.\n다음날, 세상에서\n영화\n가 사라진다.\n그리고 그다음 날, 세상에서\n시계\n가 사라진다.\n마지막에 악마는\n고양이\n를 세상에서 없애겠다고 한다.\n사진 출처 : Daum영화\nDaum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n나(사토 타케루)는 올해 서른, 우편배달부입니다. 자전거 사고로 찾아간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날 밤,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의문의 존재’가 찾아왔습니다.나에게 남은 날이 하루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수명을 하루씩 늘리기 위한 방법이 있다며, 묘안을 내놓았습니다.내가 하루를 더 사는 대신,세상에서 어떤 것이든 한..\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3296\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들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하코다테 아침시장에서 브런치\n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 istandby4u2.","url":"https://brunch.co.kr/@istandby4u2/48","published_date":"2017-01-15T08:3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2,"source":"brunch","title":"조선의 나폴리,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content":"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빛은 맑고 푸르다.\n-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시작\n땀이 뻘뻘 나던 한여름에 다녀온 후 두 번째 통영행이었다. 그해 여름도 통영은 맑고 깨끗했다. 한겨울에 다시 찾아간 그곳은 더욱 투명하고 푸르렀다. 한여름과 한겨울 그 사이에 박경리 기념관도 개관해 있었다.\n영화 '김약국의 딸들' 중, 1960년대 통영항 풍경.\nhttps://youtu.be/FLh9Lb3G8JU\nDaum영화 <김약국의 딸들>\n경남 통영에서 20여년 간 한약국을 경영해온 김씨. 그에겐 네 명의 딸이 있다. 첫째 딸은 결혼을 했으나 청상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오고, 둘째 용빈은 유학을 갔으나 집안이 기울기 시작하자 학교를 그만두려 생각한다. 그에겐 셋째 용란이 가장 근심덩어리로 아직 혼처도 없는 상태에서 남자들과 연애를 일삼고 있다. 가장 막내인 넷째..\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2379\n내려가는 길엔 1963년도에 개봉한 흑백영화 ‘김약국의 딸들’을 보았다. 원작 소설이 1962년에 발표되었는데, 바로 다음 해에 영화로 제작된 것이다. 21살의 용빈 역할을 맡은 배우 엄앵란 씨가 여든을 넘기셨다.\n프레임에 담긴 통영의 과거는 지금보다 아름답다.\n나의 상상력만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는 과거의 이야기라, 글로 표현된 묘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반갑기도 하다.\n영화 '김약국의 딸들' 중\n영화 '김약국의 딸들' 중\n“가스등만 보면 정말 통영에 온 것 같아. 참 다정스럽고 슬프고…….”\n그러나 용빈의 얼굴은 조금도 슬프게 보이지 않았다.\n“생이는 가스등이 참 좋은가 배요. 전에도 그런 말을 하던데.”\n-p.84  ‘김약국의 딸들’ 중\n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은 기구한 운명에 의해 몰락해 가는 가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 김성수는 다섯 딸(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을 두었다. 약국을 접고 어장을 열었지만 동네 사람들은 여전히 성수의 집을 ‘김약국네’라 부른다. 과부가 되어 간통을 저지르고 아이를 살해한 딸, 단정하지 못한 행실로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딸, 시아버지의 겁간을 피하다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딸… 누구 한 명 비극적이지 않은 삶이 없다.\n스토리는 가슴이 탁 막힐 듯 답답함의 연속이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와 공간의 묘사가 치밀하여 읽고 나니 한 편의 역사서를 읽은 것과 같았다.\n박경리 기념관은 자료가 아주 많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과 닮아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었다. 은행원을 하다가, 신문기자를 하다가,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평소 궁금했던 꼼꼼한 취재력의 기원을 이력에서 발견했다.\n‘김약국의 딸들’에서 페이지당 한 두 개씩은 등장하는, 나로서는 그 뜻을 바로 알지 못하는 우리말과 표현에 흠뻑 빠져있었는데, 기념관에 걸린 그의 일본어 원고를 보고 흠칫 놀랐다. 아… 작가는 1926년생. ‘당시 지식인들은 교육을 일본어로 받아 글을 일본어로 썼겠구나…’ 이유 모를 거리감이 들어섰다. 작가의 생각을 좀 더 알고 싶어 기념관에서 만난 그의 다른 저작 ‘일본 산고’를 주문하였다.\n‘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며 소박한 묘지를 만들란 작가의 뜻이 투영된 듯한 공간을 뒤로하고 서문고개로 향했다. 서문고개가 있는 서피랑은 통영의 객사 건물인 세병관을 기준으로 서쪽에 있는 벼랑이다.\n통영성의 서포루가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n군대 행렬 앞에 세우는 둑이 있던 곳이어서 '뚝지먼당'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n“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n한실댁은 코를 풀고 멍멍한 소리로 말하며 마당으로 내려와 용란의 손을 잡았다. 눈물을 짜고 달래면 또 따라나서는 용란이다. 용란은 보따리를 끼고 집을 나섰다. 어두운 골목을 빠져 나와 그들은 서문고개를 넘는다. 물 긷는 처녀, 각시들로 밤길은 어수선하였다. 보따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우죽우죽 따라가는 용란의 모습은 염소처럼 순하고 어질어 보인다. 용란이 친정으로 올 때마다 이 고개를 울먹울먹 넘어가는 한실댁은 양지기만 같았다.\n-p.84  ‘김약국의 딸들’ 중\n영화 '김약국의 딸들' 중. 서문고개를 넘어 용란을 집에 데려다 주는 한실댁\n박경리생가\n경남 통영시 충렬1길 76-38\n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던 동피랑과 달리 서피랑은 인적이 드물었다. 사람이 와도 피하지 않고 되레 먹을 것을 달라는 듯 노려보는 고양이들이 있는 동네가 있는 반면,\n서문고개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와 큰 고양이는 우리를 보자마자 두려운 눈빛을 하더니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n가파른 고개를 걸어 올라가 지금은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 내부를 볼 순 없는 박경리 작가의 생가에 닿았다. 1926년 출생인 작가가 태어난 곳이라고 하니 건물도 전혀 달랐을 것이라 내부는 굳이 들어가 볼 필요가 없다. 생가터를 지나 서포루를 향해 걸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온몸을 관통했다. 벽에는 작가가 세상에 남기고 떠난 문장이 새겨있었다. 지는 해를 담기 시작한 서피랑에 제 때  찾아온 듯하다.\n그래. 이곳은 조선의 나폴리,\n바다 빛은 여전히 맑고 푸르다.\nINFORMATION\n박경리 기념관\n주소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n개관시간 : 09:00 ~ 18:00\n박경리 생가터\n생가터에서 3,4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서포루에 올라갈 수 있다.\n주소 : 경상남도 통영시 충렬1길 76-38","url":"https://brunch.co.kr/@istandby4u2/49","published_date":"2017-01-21T03:18+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3,"source":"brunch","title":"트리하우스 만나러 이시가키 섬으로","content":"나만의 공간.\n나는 막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출퇴근을 했다. 갓 사업을 시작한 부모님을 따라나선 것이다. 그때 기억이 매우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 사무실 한쪽 벽면 중간에 안으로 움푹 파인 곳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공간이 무슨 용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내 방으로 쓰게 되어 그 안에 상도 두고 이불도 두고 지냈다. 공간의 구성이나 모양, 규모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굉장히 따뜻하고 아늑했던 기억만이 뚜렷하다.\n소설 ‘ 트리하우스’에서 커다란 나무 위에 오두막집을 올려 살고 있는 카메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 나의 작은 공간이 떠올랐다.\n'나무잖아요?’ 사미에게 눈으로 얘기하자, 사미는 무릎을 구부리고 몸을 낮추며 나무 위의 한 곳을 가리켰다.\n“저기, 위쪽에 트리 하우스 있는 거 안 보여요?”\n“정말이다! 나무 위에 오두막이 있어요!”\n-p.53 ‘트리하우스’ (오가와 이토) 中\n오키나와 나하에서 이시가키로 들어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 작은 초록섬 주위에 에메랄드빛 바다가 둘러있었다. 에메랄드빛의 끝은 짙은 카키색 마지막엔 흰 선에 둘러있고, 그 밖은 검은 바다다. 이시가키에 가까워질수록 그러한 색의 규칙에 의해 둘러진 섬들이 여럿 보였다. 나는 어린 시절 따뜻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 소설의 배경을 찾아, 이시가키 섬 石垣島으로 향하고 있었다.\n‘트리하우스'는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마리아가 주인공이다. 마리아는 결혼 전 남편과 함께 가본 적이 있는 하트 모양의 섬을 찾아가 아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하트 모양의 섬에는 도쿄에서 조산사를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츠루카메 조산원을 열게 된 카메코 선생님과 선생님의 일을 돕는 사미, 에밀리, 파쿠치, 그리고 그곳을 찾아오는 손님들과 그들 손에 들린 맛있는 요리가 있다. 2012년에는 NHK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었기에 영상으로 먼저 이야기를 만났다. 사실 드라마로 보았을 땐 내용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그리곤 원작 소설을 읽어보니, 아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리아가 느끼는 심리 변화, 각각의 주인공들의 과거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드라마에서 느꼈던 어색한 장면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nTV프로그램 <츠루카메 조산원 ~남쪽섬으로부터~>\n오키나와 지방에 있는 가상의 섬을 무대로 하는 이야기\nhttp://movie.daum.net/tv/main?tvProgramId=60948\n꽃이며 산록이며 푸른 하늘은 전부 오노데라의 배경이었다.\n그래서 섬에 대한 기억도 거의 없고, 섬 이름조차 잊고 있었다. 다만 상공에서 보면 섬이 하트 모양으로 보인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어서 그 정보를 단서로 섬 이름을 알아냈다.\n한 달 전, 오노데라는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듯이 자취를 감추었다.\n- p.8  ‘트리하우스’ (오가와 이토) 中\n야후 재팬에서 검색해보니, 오키나와 주변 섬이란 언급만 있을 뿐 구체적인 지명을 밝히지 않은 이 섬을 구로 지마 黒島 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허나 드라마는 이시가키, 다케토미 등 오키나와  본 섬에서 멀리 떨어진 몇 개의 섬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n드라마의 도입부, 마리아는 동생을 낳으러 츠루카메 조산원으로 향한 엄마를 뒤따라 가는 꼬마 아이를 만나게 된다. 이 장면이 촬영된 이시가키의 우간자키\n御神崎\n등대를 찾아갔다. 이곳은 카메코와 마리아가 아침 산책을 하는 곳이기도 하며, 카메코와 마리아의 남편 오노데라가 절벽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마리아를 발견한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소설에서 이러한 인위적인 설정은 없다.)\n파도와 바람이 시원하게 내리치던 이곳 등대는 1983년에 세워졌다. 절벽 밑에는 남색 물감이 흰 물감을 만나 잠깐 내는 비취색이 아름다운 바다가 있었다. 북적거리는 관광지는 아니어서 시원한 풍경과 바람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n등대 앞엔 조난자들을 기리는 비석이 있었는데, 1952년 나하에서 이시가키로 들어오던 배가 계절풍으로 인하여 조난되어 35명의 희생자를 낳은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을 추모하는 비석이 지금은 등대와 함께 바다의 안전을 기도하고 있다.\n222.25 km² 정도 크기인 이시가키 섬은 즐길거리에 비하여 볼거리가 많은 섬은 아니다. 또 다른 등대 히라쿠보\n平久保\n를 찾아갔다. 오키나와 여행을 준비하며 챙겨본 오키나와 타임스\n沖縄タイムス\n에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등대'로 선정되었다는 기사를 본 후라 내심 기대를 했다.\n일본 로맨티시스트 협회\n(무엇을 하는, 무슨 목적의 협회인가 굉장히 궁금하다)\n가 전국 3천여 개 등대 중에서 21개 등대를 '사랑의 등대'로 선정했다고 하는데, 히라쿠보등대\n平久保崎灯台\n도 그중 하나로 뽑인 것이다. 과연 급하게 마련한 듯한 하트 모양의 판자가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이시가키 섬은 하트 모양이 아니지만 섬 안에서 하트를 두 개나 만난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몰려든 먹구름으로 인하여 과연 '이곳에서 사랑의 기운이 느껴지는가'에 대해 조금 회의적이 되어 버렸다. 앞으로 이곳엔 사랑의 자물쇠 같은 것이 주렁주렁 달리려나?\n그리곤 이시가키를 떠나기 전, 트리하우스를 닮은 레스토랑 ‘green’에서 소설 속 맛있게 묘사된 음식들에 견줄만한 카레를 만났다.\nINFORMATION\n이시가키 섬 石垣島\n- 가는 법 : 나하에서 국내선 비행기 JTA, ANA로 1시간 소요\n우간자키등대 御神崎灯台\n절벽 위에 위치하여 아찔한 풍광이 특징, 봄에 가면 백합이 예쁘게 피어 있다고 한다.\n- 주소: 〒907-0452 沖縄県石垣市 石垣島埼枝\n히라쿠보등대 平久保崎灯台\n아름다운 바다색을 볼 수 있는 등대로 유명.\n- 주소 : 〒907-0331 沖縄県石垣市 石垣島平久保\ngreen\n구운 카레(焼き カレー）가 유명한 레스토랑. 카레 피자도 맛볼 수 있다.\n- 주소 : 〒907-0451 沖縄県石垣市桴海大田148-47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51","published_date":"2017-01-29T04:1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4,"source":"brunch","title":"아키타에 하치를 만나러 갑니다","content":"“왜 없지?”\n“뭐가?”\n“아키타현에 왔는데 아키타견이 한 마리도 없어”\n“음.. 진도에 가면 길에 진돗개가 흔한가?”\n언제, 어디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있던 신혼여행의 다른 한 참가자가 꼭 들러야겠다고 한 곳이 아키타현이었다. ‘아키타현까지 왔는데 아키타견이 없다’고 투덜대며 앞서 걷는 그를 따라 아키타견 보존회로 향했다. 작년에 영화 ‘하치 이야기’를 다시 본 우리는 한동안 아키타견 앓이를 해왔다.\n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23년 11월 아키타 현 오다테에서 태어난 아키타견 다섯 마리. 그중 한 마리가 두 달 만에 도쿄 시부야에 사는 우에노 교수 집으로 가게 된다. ‘하치’라는 이름을 얻게 된 강아지는 주인의 출퇴근을 책임진다. 매일 아침 시부야 역까지 따라나서고, 퇴근 시간이면 역 앞으로 마중을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에노 교수가 뇌출혈로 쓰러져 하치가 기다리고 있는 역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하치는 그로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10년을 매일 역 앞에서 교수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시부야 역에는 동상이 되어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하치가 있다.\nDaum영화 <하치 이야기>\n우에노 교수는 제자로부터 하얀 강아지 한마리를 선물받는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강아지는 단번에 식구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우에노 교수는 힘차게 땅을 박차고 서있는 이 강아지를 보고 八자라는 뜻의 '하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하치에 대한 우에노 교수의 사랑은 부인도 질투할 정도로 각별했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하치는 매일같이 시부야 역으로 교수를 배웅하고 마중을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에노 교수는 강의 도중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이를 알지 못한 하치는 여전히 역에 나가서 그를 기다리는데...\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3677\n해당 글은 책으로 엮이게 되었습니다.\n글을 내리게 되어 죄송한 마음에, ﻿책에는 미처 다 담지 못한 사진을 듬뿍 남깁니다.\n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n영화 속 주인공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골목길. 소설에서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했던 낡은 오두막. 작품을 보면서 설레고, 슬프고, 행복했던 감정들은 고스란히 추억이 된다. 작품에 대한 감동이 깊을수록 작품 속 배경은 손에 잡힐 것처럼 더욱 생생하다. 아무리 흔한 배경이라도 그 배경 속에 이야기가 깃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 이 책은 저자가 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이야기다.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그 여행의 배경 속에서 자신이 만난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어 어느새 또 한편의 작품이 된다. 담담하고 소소하지만 다정한 어떤 여행의 배경이 된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471548\n아키타견 ⓒ istandby4u2.","url":"https://brunch.co.kr/@istandby4u2/52","published_date":"2017-02-07T15:03+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5,"source":"brunch","title":"봄비에 젖은 낡은 종이 냄새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content":"'장서의 괴로움’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책을 좋아하는 저자의 집엔 책이 너무 많다.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질 것 같아 '장서술(책을 간직하는 기술)’이 필요하단다. 괴롭다며 비명을 지르지만, 표지 그림을 보아도, 내용을 읽어보아도\n‘행복한 비명’으로 들린다.\n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 속에 파묻혀 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어떤 일보다 행복한 일이 리라. 작가는 무려 3만 권의 책을 갖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학식이 뛰어난 학자들에게만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사가독서제라는 제도만 보아도 책을 한껏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짐작해 볼 수 있다.\n장서의 괴로움\n어느새 점점 쌓여가는 책 때문에 집 안은 발 디딜 틈 ...\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91185153032&g=KOR\n다시 '장서의 괴로움' 이야기로 넘어와서. 작가 오카자키 다케시\n岡崎武志\n는 자신을 '진보초계 라이터'라고 소개한다. '책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n대체 일본의 진보초는 어떤 곳일까.\n오차노미즈 역에 내려 진보초를 지나가면서 언제나처럼 서점과 헌책방을 산책했다. 역시 마음이 허전했기 때문일까. 바로 전날 겨우겨우 1천2백 권을 처분한 주제에 여기저기 마음이 이끌려 헌책을 열일곱 권이나 사버렸다.\n- '장서의 괴로움' 中\n도쿄에선 친구와 식사를 하기로 한 일을 빼곤 특별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진보초\n神保町\n에 가보기로 했다. 간다에 있는 진보초는 서점, 헌책방,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n세계 최대의 책방거리다\n. 간다 책방거리라고도 불린다. 1880년대 주변에 일본 법률학교, 메이지 법률학교 등 대학이 생기면서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법률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들이 들어섰다. 헌책방 거리의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거의 200여 채의 서점이 남아 있고, 그중 약 140여 곳이 헌책방이라고 한다. 매년 가을에는 헌책 축제도 열린다.\n메이지 대학이 보인다\n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은 책방이 줄 지어 있었고, 각각의 책방이 저마다의 특색이 있었다.\n낯섦에서 오는 불안과 아마추어의 냄새를 풍기고 싶지 않은 기분이 뒤엉켰다.\n오랜 시간 머물기 머쓱했다. 쭈뼛쭈뼛 대다 대형서점 산세이도\n三省堂\n를 발견. 그곳에 들어가니 그제야 겨우 한시름 놓았다. 보고 싶은 책이 모여 있는 코너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까의 헌책방에선 책에 손을 대는 일 조차 두려웠는데, 산세이도에선 마구마구 뽑아 든다. 사가지고 갈 책을 모으고, 아마존에서 주문할 책을 기록했다. 이런 마음은 나만의 마음은 아니었다. ‘아주 오래된 서점’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담겨 있었다.\n산세이도 三省堂\n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어디에나 헌책방이 있으며 그 헌책방들은 왠지 손님이 가게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느낌이어서 내가 늘 향했던 곳은 ‘산세이도’나 ‘쇼센그란데’라는 일반 서점뿐이었다.\n(… 중략…)\n매우 오랜만에 찾아간 비 내리는 진보초는, 역시 당시와 마찬가지로 쌀쌀맞은 책의 거리다.\n- ‘아주 오래된 서점’ 中\n아주 오래된 서점\n헌책도의 대가 오카자키 다케시는 3만 권에 이르는 책을...\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54644334&g=KOR\n이 책은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가 오카자키 다케시의 지령에 따라 헌책방을 순례하며 쓴 수필이다. 진보초 외에도 다이칸야마, 와세다, 가마쿠라 등의 헌책방 구석구석 살핀다. 심지어 해외 헌책방까지 진출한다!\n물론 순례의 시작은 진보초. 마지막도 진보초였다.\n‘아주 오래된 서점’, ‘장서의 괴로움’ 둘 다 좋은 책이지만 사실\n진보초까지 내 발걸음을 움직인 장본인은 영화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이었다.\n영화를 보고 원작 소설까지 하루에 다 읽어 버렸다. 작품의 주인공은 디자인 일을 하는 다카코. 어느 날 갑자기 애인으로부터 ‘나 결혼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충격을 받아 회사까지 관두며 애인과 회사를 동시에 잃게 된 다카코. 어른이 되어서는 왕래가 없던 외삼촌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허리가 좋지 못하니 진보초에 와서 고서점 일을 도와달라는 것이다.\n2층은 빈 방이라 숙식도 해결할 수 있단다.\n외삼촌의 헌책방은 작지만 6,000권에 달하는 책으로 채워있었다. 도쿄에 진보초라는 마을이 있는 줄도 몰랐던 다카코는 그곳에서 생활을 시작하며 책방 거리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간다.\nDaum영화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n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로 일본 도쿄의 헌책방 거리의 작은 서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을 담은 작품.\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2827\n아무래도 분위기가 묘했다.\n큰길(외삼촌이 가르쳐준 야스쿠니 거리)을 따라 서점만 죽 늘어서 있었다. 오른쪽으로 봐도 서점, 왼쪽을 봐도 서점.\n...산세도, 쇼센 등 눈길을 끄는 대형 서점도 있지만 더 이채로운 것은 작은 헌책방들이었다. 그것들이 주르륵 늘어선 모습에서는 어딘지 모를 당당함마저 느껴졌다.\n-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中\n영화와 책으로부터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왔다. 실제 배경은 더욱 따스했다. 외삼촌의 책방 배경이 된 건물은 더 이상 헌책방은 아니었다. 창고로 쓰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2층 다락방에서 다카코가 내려다봤을 풍경 안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n영화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출처 : Daum영화)\n영화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 (출처 : Daum영화)\n진보초.\n흩뿌리고 떠난 봄비에 거리가 살짝 젖어있었다.\n여전히 남은 습한 기운과 낡은 종이 냄새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54","published_date":"2017-02-24T14:5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6,"source":"brunch","title":"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content":"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n동네 분위기는 드라마 속 여유로 충만했습니다.\n굉장히 부자동네까진 아닌 듯 보였지만 구석구석 기품 있는 옛 주택도 있었고, 세련된 집들도 간혹 있었습니다.\n따스한 햇살이 동네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n건너편에는 마마의 ‘해피’도 외형을 그대로 하여 남아있었습니다.\n물론 가게로 쓰이진 않는 듯 합니다.\n감독은 이곳을 어떻게 발견 했을까, 너무나도 궁금해 졌어요. 실제로 주변은 많이 낡았고, 앵글에 따라서는 드라마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은 것들이 프레임 안에 들어와 버립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55","published_date":"2017-03-22T14:33+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7,"source":"brunch","title":"\"이젠 설득되지 않아요\"","content":"일본에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읽고 토론하고 소논문을 쓰는 수업을 들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소리 내어 읽어 준 작품이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로 몇 차례 접해서 재미있게 영어공부를 할 수 있겠단 생각에 수강신청을 했다. 소논문으로 '오만과 편견'에 등장하는 인물 중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캐릭터, 오히려 미움을 받는 캐릭터인 미스터 콜린의 '중요한' 역할 6가지를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영어고 일본어고 모두 실력이 부족하여 제출한 논문엔 빨간 펜 글씨가 빽빽하게 채워 있었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소논문'으로 선정되었다. 여러모로 고단했던 교환학생 시절, 소소한 추억이 되었다.\n영국 시골 한 구석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사회적, 역사적 시류와 무관하게 남성에 대한 환상, 연애감정 놀이에만 빠져 써내려 간 소설. 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사소한 사적 경험 덕분에 제인 오스틴을 좋아한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열성적인 팬도 많고, 셰익스피어 다음의 '최고의 문학가'라 손꼽는 사람도 있다.\n1775년 목사의 딸로 태어난 제인 오스틴은 영국 남부 햄프셔에서 크고 자랐지만,\n여동생 카산드라와 런던의 근교도시 바스를 자주 방문하였고, 1801년부터 1805년까지는 바스에 거주하기도 했다.\n제인 오스틴의 소설 중 '노생거 사원'과 '설득'은 바스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노생거 사원(2007년 개봉)'에 바스가 담겨 있을까 해서 찾아 보았지만, 영화 속에는 바스의 풍경이 거의 담겨 있지 않았다. 세트장을 연상케 하는 똑같은 거리만 반복해서 나왔다.\n'노생거 사원'은 17살의 주인공 캐서린이 부유한 이웃의 초대로 바스 여행을 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n캐서린은 바스의 화려한 사교계에 발을 들인다. 그곳에서 여러 인물들과 얽히게 되고 사랑하고, 우정을 나눈다.\n통풍에 바스의 온천이 좋다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다. 앨런 씨 부인은 성격이 좋은 데다 몰런드 양을 좋아했다... 몰런드 양에게 그들과 함께 바스로 여행을 가자고 초대했다.\nㅡ  '노생거 사원' 中 (제인 오스틴 | 펭귄클래식 코리아)\n노생거 사원\n영국 BBC의 지난 천 년간 최고의 문학가 조사에서 셰...\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74283032&g=KOR\n영화에서 바스를 만날 수 없어 실망을 하고, 제인 오스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인 감정 묘사를 만나 보고자 책을 펼쳤다. 바스의 거리, 건물 등 장소적 배경이 세세하게 그려 있어 그곳을 거닐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오히려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영상미가 소설에서 흘렀다.\n(너무 영화의 부정적 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만, 노생거 사원은 아주 아름답게 담겨 있습니다.)\n바스는 런던 패딩턴에서 약 180km 정도 떨어진 도시다. 2000년 전에 만들어진 로마시대 유적으로 1987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특히 로마인들이 만든 온천이 유명한데, 18세기에 온천의 효능이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오랜 기간 휴양도시로 사랑받아 왔다. 하루면 충분히 바스 대부분의 명소를 돌아볼 수 있다.\n제인 오스틴의 흔적을 따라 걷는 워킹 투어도 마련되어 있지만, 특별한 관심이 없는 친구와 동행하였으므로 '제인 오스틴 센터' 정도만 나 혼자 다녀 오기로 했다. 자료관에서는 18세기로 시간이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직원들은 제인 오스틴이 그린 '완벽한 남성과 여성'과 같이 말쑥한 얼굴을 하고 있고, 삽화에서 거둬들인 듯한 드레스를 입고 있다.\n본격적인 자료실 관람에 앞서 제인 오스틴의 삶과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 시간이 있다. 안내인의 말투도 18-19세기 느낌\n(? 실은 잘 못 알아 들어서... 나의 영어가 너무 시대가 앞서간 것으로 생각하기로.)\n제인 오스틴이 바스에 머문 것은 불과 5년 남짓이지만 자료를 보고나면 도시 전반에서 그녀를 느낄 수 있다.\n영화 '노생거 사원'에서 도시 바스를 회상할 수 없었던 아쉬움은 영화 '설득'을 통해 해소할 수 있다. 역시 제인 오스틴의 동명소설이 원작으로, 후반부에 여주인공 앤 엘리어트 (샐리 호킨스 分) 가 쉼 없이 뛰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스의 구석구석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n이제 남은 것은 일요일의 고통을 묘사하는 것이고, 이것으로 한 주가 마감될 것이다. 클리프턴 계획은 취소된 것이 아니라 연기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오후 크레슨트 거리를 걸을 때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되었다.\nㅡ 노생거 사원' 中 (제인 오스틴 | 펭귄클래식 코리아)\n가장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n로열 크레센트.\n30채의 건물이 반원으로 늘어선 이 긴 건축물 앞 크레센트 거리를 샐리 호킨스가 열심히 달렸다. 나는 다리가 아파서... 중간까지도 가지 못하고 끝자락에서 셔터를 눌렀다.\n오른쪽 건물이 광천수홀\n다시 '노생거 사원'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서.\n소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바스의 명소는\n'광천수 홀'\n이다. 영어로 '펌프 룸\nThe Pump room\n'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광천수를 마시며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장소로, 바스의 '만남의 광장'과 같은 곳이다.\n광천수를 마신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궁금하였는데, 로만 바스 안에 온천수를 시음할 수 있는 장소가 있던 것이 기억났다. 시음한 온천수는 미지근하고 조금 비릿했지만,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n소설 속 주인공들이 마신 광천수도 이 맛과 비슷했을까?\n그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광천수 홀의 뜰을 지나 유니언 거리 맞은 편의 아치 길에 이르렀지만 그곳에서 멈춰야만 했다. 바스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지점에서 칩 거리를 가로지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잘 알 것이다.\nㅡ '노생거 사원' 中 (제인 오스틴 | 펭귄클래식 코리아)\n유니언 거리와 칩 거리 건널목\n이 장면은 '노생거 사원'의 주요 인물 몇 명의 첫 만남 장소로, 영화에서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캐서린의 친구로 나오는 이자벨라가 길을 건너기 난감하여 굉장히 짜증을 내는데, 마침 정확히 이 장소를 카메라에 담았었다. 현재의 이 거리는 다른 의미로 길 건너기가 번거롭다. 사람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n인파를 헤치고\n유니언 스트리트\n를 지나 올라가다 보면,\n밀 섬 스트리트\n가 나온다. 이 곳 역시 소설 속에 담겨 있는데, 난 이 거리에서 '워터스톤즈\nWaterstones\n'라는 책방에 들어갔다.\n책방에는 왠지 바스에서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제인 오스틴 특별 에디션과 바스의 풍경이 담긴 학용품들이 잔뜩 있었다. 이것들은 나를 계속해서 유혹했다. 여기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바스 기념품은 사가야 하지 않겠냐고. 평소 같았으면 주렁주렁 사서 나왔을 나. 그러나 나는 영화 '설득'의 주인공 앤처럼 말해야 했다.\n\"이젠 설득되지 않아요.\"\n파운드가 부족하기 때문이죠.","url":"https://brunch.co.kr/@istandby4u2/56","published_date":"2017-04-06T00:35+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8,"source":"brunch","title":"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content":"'줄 서서까지 먹는 이유를 모르겠어'\n돌아와선 허세를 잔뜩 부렸지만,\n쟁반 한 가득 사서 돌아왔고, 다시 가도 한참을 줄 서 있을 것 같은 내 모습.\n군산의 유명 빵집 '이성당'은 기원을 해방 1945년도로 두고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라고 한다.) 실제로 일본인 히로세 야스타로가 세운 빵집 '이즈모야' (1910년 개업)를 인수한 것이라고 한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58","published_date":"2017-05-03T07:3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69,"source":"brunch","title":"생명이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content":"척박한 땅에서도 생명이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n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Joshua Tree National Park)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약 2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면적은 3,196 ㎢. 미국의 국립공원 치고는 작은 편이라고 하지만 서울 면적에 무려 다섯 배에 달한다. (여행을 하면서도 절실히 느꼈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상당히 컸다.)\n공원 입구에 들어서니, 광활한 규모의 땅 위에 기묘하게 생긴 식물들이 듬성듬성 서있었다. 이제까지 조금이라도 닮은 식물을 보았다면 '무언가를 닮았다'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묘사조차 난해하다.\n양은 굉장히 많아(?) 한눈에 이들이 ‘조슈아 트리’인 줄 눈치챘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59","published_date":"2017-05-03T07:33+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0,"source":"brunch","title":"몇 번 보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다","content":"처음 만나면 괴기스러워 흠칫 놀라지만.\n몇 번 보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다.\n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시드니의 루나 파크(luna park). 1935년에 문을 열었다. 1979년 유령 열차(Ghost Train)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서 6명의 어린이와 1명의 어른이 사망했다. 몇 차례 폐쇄되었다가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한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60","published_date":"2017-05-05T14:5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1,"source":"brunch","title":"호텔 바로 옆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었다","content":"노르웨이 베르겐의 새벽.\n백야로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다 겨우 잠이 들었다.\n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n‘불이 났으니 대피하라’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n꿈인가 싶어, 다시 자려는데 방송이 멈추지 않았다.\n눈곱도 안 떼고 잠옷 바람에 카메라, 아이패드, 여권만 겨우 챙겨 나갔다.\n호텔 방문은 이미\n도어록이 해제된 상황이었다.\n옆 방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의심 많은 한국인 티를 잔뜩 내며 거듭 물었다.\n\"진짜예요? 진짜예요?\"\n내가 머문 호텔 바로 옆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었다.\n브뤼겐(Bryggen)\n브뤼겐(Bryggen). 아름다운 목재 건물들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n14세기~16세기 중기 독일의 뤼베크를 중심으로 한 상업 동맹, 한자동맹이 꽃을 피울 당시, 노르웨이 베르겐의 항구 역시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다고 한다. 1070년 경 형성된 항구는 1350년경 한자동맹 소속 상인들이 활동을 시작하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당시 세워진 가옥들은 대부분 3층 목조 가옥 형식으로, 뒤쪽엔 창고나 저장고를 두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62","published_date":"2017-05-09T03:1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2,"source":"brunch","title":"빛에 따라 다른 색을 내뿜는  초가지붕의 마을","content":"흐린 날엔 회색빛이 도는 지붕을 만날 수 있고,\n따스한 봄날엔 주황빛이 빛나고,\n해가 질 무렵엔 가을의 색감을 띄는 낙안읍성의 초가.\n낙안읍성 여행드로잉 ©istandby4u2\n순천 낙안읍성은 왜구의 침입을 피해 쌓은 읍성으로, 조선시대 가옥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n마을을 걷다 보면, 하교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밭을 매는 할머니, 툇마루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 낮잠을 자다 일어난 황소,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황구를 만날 수 있다.\n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풍경 속에\n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에,\n몰래 엿보는 기분이 되어버리는 마을.","url":"https://brunch.co.kr/@istandby4u2/63","published_date":"2017-05-14T13:4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3,"source":"brunch","title":"‘바닷마을 다이어리’에 숨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마을","content":"길었던 열흘간의 여행도 막바지에 들어섰다. 가나자와 역에 내리니 아쉬움은 접어두어도 괜찮다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홋카이도에서부터 출발한 우리는 어디쯤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고마쓰 공항을 발견했다. 작은 공항이지만 매주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마다 인천을 오가는 비행기 편이 있었다. 재작년부터 요시다 아키미의 만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시리즈에 흠뻑 빠져 있던 나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주요 배경인 가마쿠라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리고 나니 만화에 숨겨진 또 하나의 아름다운 도시를 언젠가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졌다. 그곳으로 향하는 일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n바닷마을 다이어리엔 네 명의 자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가마쿠라에 살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 셋의 아버지는 어린 딸들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다른 여자가 좋아졌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스즈라는 딸을 낳는다. 스즈의 엄마는 몸이 약해 일찍 세상을 떠났고, 또다시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버지가 죽었단 소식이 사치, 요시노, 치카에게 전해졌다. 셋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부모님을 모두 잃은 스즈를 만나게 된다. 사치의 제안으로 가마쿠라에 살게 된 스즈는 어느 날 본가와 연을 끊고 살던 친엄마의 가족들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유산 문제를 정리하자는 것이었다.\n바닷마을 다이어리 세트\n카마쿠라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네 자매의 따스한...\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2909100680406&g=KOR\n스즈의 외갓집이 있는 이시가키 현 가나자와\n金沢\n는 교토만큼이나 일본의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다. 쌀이 맛있고, 가가 요리라 불리는 전통 요리가 발달되어 있으며, 금박공예, 염색 등 전통 공예도 유명하다. 언니들과 함께 가나자와 역에 내린 스즈는 역 앞에서 이모를 기다린다. 넷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 뒤에 담긴 역 건물이 굉장히 독특하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마주한 가나자와 역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벌집을 닮은 커다란 돔으로 뒤덮여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우산은 필요 없었다. 이 거대한 돔은 비나 눈이 잦은 가나자와에서 우산을 슬며시 내어주는 가나자와 사람들의 정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해설을 읽고 나니 도시의 첫인상이 더욱 따뜻하게 다가왔다.\n유산 문제인 만큼 어른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나자와 시내 구경을 가게 된 스즈와 셋째 언니 치카. 스즈의 사촌오빠인 나오토가 동행한다. 나오토는 가나자와에서 가장 유명한 두 개 명소인 21세기 미술관, 겐로쿠엔(兼六園)을 제안한다. 그러나 털 낚싯바늘에 관심이 있는 치카의 취향대로, 셋은 낚싯바늘을 사러 간다. 가나자와는 새의 깃털을 이용해서 화려하게 만든 털 낚싯바늘 공예도 발달해 있다고 한다. 만화에 그려진 낚싯바늘이 신기해서 실물이 궁금하긴 했지만 내 주변엔 치카처럼 낚싯바늘 선물에 기뻐할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일본의 3대 정원이라고 하는 겐로쿠엔을 향해 걸었다.\n\"3대 정원이라는데?\"\n\"다른 2개는 어딘데?\"\n\"모르지. 흐흐.\"\n\"남의 정원인데 뭐. 내 정원이어야 좋지\"\n역시. 내 곁엔 마냥 신난 내가 날아가지 않도록 찬물을 적당히 끼얹어 중심을 잡게 하는 남편이 있었다. 이곳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분수도 있고, 석등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남편 말대로 내 것이 아니라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좋은지 잘 모르겠다. 다만 나무들이 우산을 쓰고 있는 모습이 굉장히 귀여웠다. 눈이 많이 내릴 때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장대를 세우고 밧줄을 내려 만든 원뿔 모양의 나무 보호대, 유키즈리\n雪吊\n라는 것이었다.\n가나자와 여행기를 정리하다 보니, 바닷마을 다이어리 8편이 나왔단 소식을 알게 되었다. 번역을 기다리기엔 다음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일본어판을 주문했다. 스즈가 언니들의 품을 떠나, 가마쿠라에 친구들을 두고, 시즈오카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맏언니 사치와 함께 가본 학교 주변엔 녹차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 싱그러운 풍경 속에서 또 어떤 이야기가 피어오를까. 나는 다시 시즈오카로의 여행을 꿈꾼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64","published_date":"2017-05-21T06:0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4,"source":"brunch","title":"싱그러운 한낮의 기억,당진 필경사","content":"그\n날 나는 얼음이든 주스를 마시며 동네 책방에서 사 온 <상록수>를 읽고 있었다. 창밖엔 초록빛이 싱그러웠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유리잔에 물방울이 맺혔다. 그날 신선했던 공기와 소설이 잘 어울렸던 탓인지 어린 나는 <상록수>에 흠뻑 빠졌다. 다 읽고 나니 아쉬워져서 비슷한 책을 더 사러 나갔다. 이광수의 <흙>, 강경애의 <인간문제> 등을 이어서 읽었지만, 처음 읽은 <상록수>만큼 산뜻한 느낌을 받진 못했다.\n소설 <상록수>에는 1930년대 농촌계몽운동을 하는 박동혁과 채영신이라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둘은 모 신문사에서 주최한 학생 농촌계몽운동에 다녀와서 감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그 후 영신은 청석골에서 교회 건물을 빌려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동혁은 한곡리에서 농우회를 조직하고 경작사업에 힘쓴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가지만 영신은 몸이 약하고, 동혁은 동생의 잘못을 대신하여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n상록수(베스트셀러한국문학선 8)\n농촌계몽운동을 주제로 한 심훈의 장편소설. 농민의 실상...\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73811786&g=KOR\n<상록수>를 읽은 날 만큼이나 맑았던 5월의 한낮. 당진으로 출발했다. 당진에는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한 필경사가 남아있다. 1932년 심훈은 서울 생활을 접고, 아버지가 살던 당진 부곡리로 내려가 집필활동을 하기로 한다. 우린 황금연휴에 출발한 탓에 목적지까지 얼마 남겨두지 않고\n아산호, 삽교호 부근 도로에서 한참을 갇혀 있었다. 창문을 열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오래도록 맞다가 늦은 오후에나 필경사가 있는 부곡리에 들어섰다. 마을에 들어서니 질박한 농촌 풍경이 이어졌다. 표지판이 제대로 없어 길을 잘 못 들어선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소설의 묘사와 마을이 매우 닮아 있어 차를 돌릴 필요는 없었다.\n<상록수>의 두 주인공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다. 박동혁은 심훈의 조카이기도 한 심재영 선생, 채영신은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샘골(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서 농촌운동을 한 최용신 선생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박동혁이 땀 흘려 일하는 농촌 ‘한곡리’란 지명도 심훈이 머문 ‘부곡리’와 바로 옆에 있는 마을 ‘한진리’를 합한 것이다. 부곡리는 산촌마을이지만 아산만을 곁에 두고 있어 가까이에 ‘한진 포구’가 있다. 채영신은 건강이 안 좋아져 요양을 할 겸 동혁이 있는 부곡리를 찾아간다. 영신이 내린 ‘한곡 부두’는 현재의 한진포구가 모델이었을 것이다.\n이윽고 파아란 뺑키칠을 한 똑딱이가 선체를 들까불며 들어온다. 갑판 위에서 손수건을 흔드는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가 보인다. 동혁은 손을 높직이 들며 허공을 저었다. 조그만 거루는 선객과 짐을 받아 식도 선창으로 들어와 닿았다. 동혁은 반가운 웃음을 얼굴 가득히 담고 영신의 손을 잡아 뭍으로 끌어올렸다.\n“이번 비, 참 잘 왔죠”\n한마디가 첫밗에 하는 영신의 인사였다.\n“잘 오구말구요. 그래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허셨에요”\n하며 동혁은 영신의 얼굴빛을 살핀다.\n- <상록수> 중에서\n필경사에 도착했다. 심훈이 직접 설계한 필경사(筆耕舍)는 붓 “필”에 밭 갈 “경” 자를 써서 ‘붓으로 논밭을 일군다’는 뜻이 담긴 집이다. 초가지붕이 소담하게 올라가 있는 목조 집이 마을과 잘 어우러져 있었다. 들어가 볼 순 없어서 들여다보니 오랜 흔적이 남아있었다. 마당엔 다정한 모습을 한 심훈 선생이 한 손에 책을 펼쳐 들고 앉아 있었다. 뒤에는 ‘그날, 쇠가 흙으로 돌아가기 전에 오라’고 적힌 나무 모양의 조형물이 하나 서있는데, 조형물의 그림자 자리엔 잔디가 돋아 있었다. 동혁과 영신의 모습도 보인다.\n곁에 심훈기념관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모든 자료를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크기의 기념관. 소설가로만 알았던 심훈은 굉장히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신문기자로 일했고, 영화에 관심이 많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 <장한가>의 연기자로도 활동했다. 잊고 있었지만 그는 교과서에서도 만난 시 <그날이 오면>을 쓴 시인이기도 했고, 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n다양한 얼굴의 심훈을 만났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상록수>란 아름다운 소설을 낳은 소설가로 오래 기억할 것 같다. 물론 다시 <상록수>를 펼쳐보아도 어린 날 느꼈던 싱그러운 기분을 온전히 되살릴 순 없었다. 그때 나는 동혁과 영신의 애틋한 사랑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겠지만, 아마 소설에 자세히 담긴 농촌 풍경이 좋았던 것 같다. 난 막 걷기 시작했을 때 시골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는데, 그때 기억 덕분에 시골마을을 좋아한다. 소설을 읽었을 땐 시골에서 지냈을 때의 기억이 지금보다 더욱 생생했던 날이었을 테니. 더욱 그 소설 속 풍경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어쨌든.\n나는 싱그러운 날에 상록수의 마을을 걸었다.\n당진필경사\n충남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url":"https://brunch.co.kr/@istandby4u2/65","published_date":"2017-05-30T13:3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5,"source":"brunch","title":"촘촘하게 생겨난 틈새","content":"베이징 후통피자 ©istandby4u2\n베이징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터전인 스허위엔\n四合院\n사합원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네 면이 모두 막힌 폐쇄적인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 가옥이다.\n밖에서 보면 집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n대문은 일부러 낡은 문을 달아 두기도 한단다.\n(도둑의 표적이 될 수 있으므로)\n그리고 밖으로 나오면 다닥다닥 붙은 스허위엔들이 형성한\n골목길, 후통\n胡同\n이 열린다.\n폐쇄적 전통가옥이 켜켜이 겹쳐진 곳에 촘촘하게 생겨난 틈새.\n맛있는 피자집이 후통 안에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다.\n가게 이름도,\n후통피자\nhutong pizza\n여기 진짜 피자 파는 곳인가?\n간판이 없었다면 알아보기 힘든 가게 입구.\n문 앞에는 거대한 닭 한마리가 지키고 있어서\n10분 가량 닭과 정면으로 대치하다가 겨우 들어갔다.\n숨겨진 공간에 맛있는 피자도 숨어있다.\nHuTong Pizza\n后9号院 Yindingqiao Hutong, ShiChaHai, Xicheng Qu, Beijing Shi, 중국 100009\nhttps://www.google.co.kr/maps/place/HuTong+Pizza/@39.937876,116.393344,15z/data=!4m5!3m4!1s0x0:0x770e6a4aaea348ad!8m2!3d39.937876!4d116.393344?sa=X&ved=0ahUKEwjZl_u3rK7UAhXCj5QKHdqZAr4Q_BIIgQEwDg&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66","published_date":"2017-06-08T13:25+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6,"source":"brunch","title":"장미를 보니 떠오른  그날의 희미한 기억은","content":"신록에 빙 둘러싸인 길을 오르면 커다란 돌로 만든 별장의 문이 나타난다.\n(중략) 지금의 후작이 일본식과 서양식을 절충시켜 12개의 객실이 있는 저택을 세우고, 테라스부터 남쪽에 펼쳐진 정원 전체를 서양식으로 바꾸었다. 남쪽으로 향한 테라스에서는 정면에 오오시마가 멀리 보이고...\n- 미시마 유키오, ‘봄의 눈’ 중에서\n青葉に包まれた迂路を登りつくしたところに、別荘の大きな石組みの門があらわれる。\n（中略）現侯爵はただちにそのあとへ和洋折衷の、十二の客室のある邸を建て、テラスから南へひらく庭全体を西洋風の庭園に改めた。南面するテラスからは、正面に大島がはるかに見え…」\n-「春の雪」より (新潮社)\n꽃 정기구독으로 오로라 장미가 배송되어 오고, 거리에도 장미가 슬슬 보이기 시작하니 몇 해 전 일본에서 만난 장미의 기억이 떠올랐다. ‘장미를 보러’ 간 곳이 아니어서 갑자기 만나버린 장미 더미가 놀랍기도 하고 굉장히 반가웠던 기억. 그 해 장미는 여느 해보다 일찍 꽃을 피운 탓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운이 좋았다. 홀로 장미밭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n장미를 만난 곳은 가마쿠라 문학관\n鎌倉文学館\n. 가마쿠라는 일본 작가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온 마을로, 문학관은 가마쿠라와 연이 깊은 작가들의 이야기로 꾸며 있었다. 이곳은 1890년 무렵 마에다 후작의 별장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원래 초가로 지은 집이었는데 1910년에 불에 타 없어졌고, 서양식으로 다시 세워졌다. 한때 일본의 전 총리 사토 에이사쿠\n佐藤栄作\n가 빌려 별장으로 썼다고도 한다. 그 시기에 미시마 유키오\n三島由紀\n가\n사토 총리 부인의 친구였던 어머니를 따라 이곳에 방문했고, 크게 매료된 듯하다.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장편소설 ‘풍요의 바다\n豊饒の海\n의 1권, 봄의 눈\n春の雪\n에 이곳을 등장시켰다.\n豊饒の海(第1卷)春の雪\nhttp://www.yes24.com/24/goods/251703\nDaum영화 <봄의 눈>\n운명에 이끌린 사랑이 시작되다. 후작 가문의 젊은 후계자 ‘키요아키’와 백작 가문의 아름다운 딸 ‘사토코’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 사이다. ‘사토코’는 시간이 흐를수록 ‘키요아키’에 대한 자신의 사랑도 함께 커져가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계속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사랑을 자각하지 못한 ‘키요아키’는 그녀의 ..\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1404\n한국어 번역본이 아직 없고, 해외배송으로 책을 받아본 뒤에 사전을 찾으며 읽다간 장미가 시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2005년에 개봉한 영화를 통해 줄거리를 만났다. 주인공은 츠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한 마츠에다 후작 가문\n松枝候爵家\n의 후계자 키요아키\n清顕\n와 다케우치 유코가 연기한 아야쿠라 백작 가문\n綾倉伯爵家\n의 딸 사토코\n聡子\n다. 키요아키와 사토코는 어린 시절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성인이 된 둘은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사토코의 사소한 장난이 키요야키의 자존심을 크게 상처 입힌다. 키요아키는 사토코에게 냉랭한 태도를 일관하고, 사토코는 황족 집안과 결혼이 약속되어 버린다. 그때부터 둘의 사랑은 무한히 깊어만 가고… 사토코는 키요아키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결국 사토코는 집안과 키요야키의 미래를 생각하여 아이를 지운 후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간다. 사토코를 만나고 싶어서 절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던 키요아키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다.\n가마쿠라 문학관은 키요아키 집안의 별장 건물로 등장하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듯했다.\n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갈 듯한 초록빛 터널을 통과하니 앙증맞은 색감의 건물이 보였다. 키요아키의 별장이었구나! 뒤로는 산이 둘러있고, 주변은 녹음만이 우거져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건물 앞에 잔디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앞에는 장미들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나는 문학관 구경을 잊고 장미밭으로 달려갔다. 노랑, 분홍, 빨간색 장미가 무리 지어 피어있었다. 별장 건물은 장미들에 파묻혀 있는 것 처럼 보였다. 정원 앞으론\n멀리\n바다가 펼쳐져 있는 듯했지만 건물의 노후화로 테라스에 올라가 볼 순 없다고 했다. 내부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관람을 해야 했는데,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서 삐그덕 삐그덕 좋은 소리가 났다.\n글을 쓰다가 우리 집 책장을 보니, 해외배송으로 주문하려고 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봄의 눈’이 떡하니 꼽혀 있었다.\n‘어찌 된 일이지?’\n갑자기 한 아주머니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가마쿠라 문학관 출구 곁에 있는 기념품샵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였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나를 바라보아서 예의상 뭐라도 물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n\"혹시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책도 이곳에 있나요?\"\n일본인 특유에 친절과 근면을 무장하고 열심히 찾기 시작한 아주머니는 몇 가지 책을 추천해주었고, 나는 그 중 제목이 마음에 든 책을 골라 들었다. 그 책이 바로 ‘봄의 눈’이었던 것이다. 늘 여행에서 호기롭게 원서를 사서 돌아오지만 그 호기는 집에 돌아온 순간 사라져 버려 나의 책장 두 세칸은 한 장도 펼쳐지지 않은 책들이 채우고 있다. ‘봄의 눈’ 역시 누가 쓴 소설인지, 가마쿠라가 어떻게 담겨있는지, 또 이토록 센스 있는 추천이었는지 모른 채 책장에 서 있던 것이다. 장미를 보며 떠오른 그날의 희미한 기억은 ‘봄의 눈’의 발견으로 더욱 선명해졌다.\n별장에서 나왔을 땐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문학관 구경보다 장미밭을 먼저 보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더욱 짙어진 나무 냄새를 내던 초록의 터널을 빠져나왔다.\nINFORMATION\n가마쿠라 문학관은 에노덴전차 유이가하마 역 由比ヶ浜駅 에서 도보로 7분 정도 소요된다. 정원에 피어 있는 봄의 장미는 5월 중순에서 6월 하순까지, 가을 장미는 10월 중순에서 11월 하순까지 볼 만하다고 한다.\n홈페이지\nhttp://kamakurabungaku.com\nKamakura Museum of Literature\n일본 〒248-0016 Kanagawa-ken, Kamakura-shi, Hase, 1 Chome−５−３\nhttps://www.google.co.kr/maps/place/Kamakura+Museum+of+Literature/@35.315523,139.5367073,17z/data=!3m1!4b1!4m5!3m4!1s0x601845eded49c2e7:0x1fe86172a502662f!8m2!3d35.315523!4d139.538896?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67","published_date":"2017-06-04T05:3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7,"source":"brunch","title":"콩쥐팥쥐는 잔혹했다","content":"한 때 크레이지 아케이드(줄여서 크아)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좀처럼 하지 않는데, 크아는 캐릭터가 귀여워서 여동생과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우린 모니터와 키보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닉네임을 만들어야 한다길래, 설화 ‘콩쥐팥쥐’에서 착안하여 나의 닉네임을 '콩주세요', 동생의 닉네임을 '팥주세요'라고 정했다.\n내 성격이 팥쥐에 더 가깝기 때문인지\n로그인할 때마다 누가 ‘콩주세요 였지?’ 서로 헷갈려하곤 했다.\n조선 시대 중엽, 전라도 전주 서문 밖에 최만춘이라는 한 퇴직 관리가 아내 조씨와 이십여 년을 같이 살아왔건만 슬하에 자식이 없어 근심하며 기도와 불공도 하고 곤궁한 사람에게 적선도 하였는데, 그러는 사이에 하늘이 감동하였는지 하루는 부부가 신기한 꿈을 얻고 이내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다.\n- ‘콩쥐팥쥐전’의 시작\n콩쥐팥쥐전\n조선시대 중엽 전라도 전주 근방에서 최만춘이라는 퇴리(退吏)와 부인 조씨, 딸 콩쥐가 즐겁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부인이 병을 얻어 죽자 과부 배씨를 후처로 맞게 되었다. 그 뒤 배씨는 팥쥐라는 딸을 낳게 되었는데 배씨는 갖은 방법으로 마음씨 착한 콩쥐를 학대했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콩쥐는 뒤에 선녀의 도움으로 감사의 후실이 되었는데, 이를 질투한 배씨와 팥쥐는 흉계를 꾸며 콩쥐를 연못에 밀어넣어 죽게 했다. 그리고 팥쥐가 대신 콩쥐 행세를 하게 되었는데 한동안 이 사실을 모르던 감사는 기어코 자기 아내가 콩쥐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 음모도 밝혀지게 되었다. 감사가 연못에 빠진 콩쥐의 시체를 찾아 내자 콩쥐는 되살아났다. 감사는 팥쥐를 죽여서 그 시체를 배씨에게 보내니, 배씨 또한 놀라서 죽어 넘어졌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nhttp://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ink?barcode=480130000249P\n동생과 '내가 콩쥐다, 아니다 내가 콩쥐다' 낄낄대며 놀았던 기억도 있고 해서 나는\n콩쥐팥쥐 이야기를 좋아했다.\n그래서 실제로 설화가 탄생한 곳으로 추정되는 마을이 완주에 있단 이야기를 듣자마자 콩쥐팔쥐마을에 가보고 싶어 졌다.\n콩쥐팥쥐마을\n전북 완주군 이서면 은교리\n토요일 오후 전라북도 완주로 향했다. 완주군에 있는 앵곡마을은 콩쥐팥쥐 안에 들어있는 문장대로 ‘전주 서문 밖 30리 정도’ 떨어진 곳이다. 또한 검은 소의 이야기를 듣고 콩쥐가 ‘하탕에 가서 발을 씻고, 중탕에 가서 손을 씻고, 상탕에 가서 낯을 씻은’ 세 개의 못이 근처에 있다.\n출발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나는 비라 아쉬움보다는 반가움이 컸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신기하게도 비가 잠시 그쳐주었다. ‘위치가 콩쥐팥쥐 배경일뿐 평범한 시골마을이겠지’란 생각으로 기대 없이 간 탓인지 생각보다 알차게 그려있는 벽화에 놀랐다. 마을 벽에는 콩쥐팥쥐전의 전체 내용이 입구부터 차례대로 그려져 있었다. 또 중간중간 전혀 다른 화풍으로 그린 콩쥐의 실루엣 그림이나, 꽃 그림도 볼만했다.\n팥쥐는 참 못생기게도 그려놨고, 콩쥐는 착해 보였다.\n게다가 비가 한 차례 지나간 덕분에 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이 더욱 맑은 색을 내고 있었다.\n(콩쥐팥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n↓\n)\n마지막 벽화를 보며, “이야기가 너무 갑작스럽게 마무리되는데?”라고 말하는 나에게 남편이 콩쥐팥쥐의 원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아는 콩쥐팥쥐 이야기는 ‘팥쥐와 계모는 개과천선하고, 콩쥐는 원님이랑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였는데… 원작에서는 팥쥐가 콩쥐를 연못에 빠뜨려 죽이고, 콩쥐 행세를 한다. 그러다 콩쥐가 다시 살아 돌아와 감사(원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화가 난 감사가 팥쥐를 찢어 죽이고 송장을 젓갈로 만들어 팥쥐 엄마에게 보내버린다.\n잔혹하고 충격적인 결말이었다.\n한 편 김감사는 콩쥐에게 자기의 밝지 못했던 허물을 사과하고 이웃 노파에게 상급을 후히 내린 다음 다시 콩쥐와 더불어 다 하지 못한 인연을 이으니 아들 셋을 낳고 딸도 낳아 화락한 나날을 보냈다.\n- ‘콩쥐팥쥐전’ 중에서\n아무리 의붓동생이라지만, 동생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인 남성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콩쥐란 여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url":"https://brunch.co.kr/@istandby4u2/68","published_date":"2017-06-25T00:5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8,"source":"brunch","title":"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시작을 만나다","content":"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아마기 고개에 다가왔구나 싶었을 무렵, 삼나무 밀림을 하얗게 물들이며 매서운 속도로 빗발이 산기슭으로부터 나를 뒤쫓아왔다.\n-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즈의 무희’의 시작\n이즈의 무희 천 마리 학 호수\n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초기와 원숙기의 대표작들 『이즈의 ...\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32403694&g=KOR\n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소설 '설국'의 첫 문단은 아름다운 시작으로 자주 손꼽히곤 한다. 나는 그의 초기 작품인 ‘이즈의 무희’마저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으로 시작할 줄 몰랐다. 처음부터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었던, 이런 감성을 가지고 살아간 그가 부러웠고 샘이 났다. 그리고 이 작품의 시작이 '설국'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어떤 풍경을 보면 이러한 문장을 낳을 수 있을까. 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장을 따라 일본 시즈오카 이즈반도로 향했다. 시즈오카 공항에서 내려 예약해 둔 료칸 유모토칸\n湯本館\n까지 가려면 차로 두 시간을 달려가야 했다.\n그러나 나의 안일한 여행 준비로 인하여 우리의 여행은 처음부터 난항을 겪었다. 공항에 빌릴 수 있는 렌터카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내일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단다. 가장 가보고 싶은 숙소였던 만큼 첫날에 예약해버린 나의 성급함과 게으름을 탓하며 렌터카 회사 창구에 앉아있던 아저씨에게 사정을 했다. 아저씨는 나의 끈질김에 심상치 않은 웃음을 짓더니 두 시간 정도 기다리면 한 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료칸에 전화를 걸어 저녁식사는 포기하겠다고 전했다. 료칸 주인은 곤란해하면서 일단 출발할 때 연락을 달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저녁 6시를 훌쩍 넘겨 출발하며 다시 전화를 걸어 “정말 저녁은 괜찮다”라고 했지만, 주인이 포기가 안되는지, “누마즈에 도착하면 다시 전화를 달라, 그때 다시 상의해보자”라고 했다. 누마즈에서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땐, “거기서부터는 40분 정도이니 오자마자 저녁식사를 30분 내에 마칠 수 있겠냐”라고 물었다. 료칸 주인의 끈기 있는 기다림 덕분에 우리는 가이세키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왜 여러 차례 전화를 걸라고 했는지, 료칸이 있는 마을에 들어서고 보니 깨달았다. 그곳은 아무것도 없는 시골마을이었다.\n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짧게나마 료칸 설명을 들었다.\n- 가와바타 야스나리 선생님을 아시나요?\n- 네. 좋아합니다.\n- 이 마루 위에서 무희가 춤을 추는 모습을 선생이 바로 이 계단에 앉아서 바라본 것입니다.\n‘이즈의 무희’에 '그런 장면이 있었나?' 싶었던 나도, 소설을 읽기 전이었던 남편도 동시에 “와!”하고 감탄했다. 평범해 보이던 계단과 마루가 특별하게 변한 순간이었다. 벽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계단에 앉아 찍은 사진이 걸려있었다.\n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무희’는 그의 실제 경험을 바탕을 쓰였다. 19살의 고등학생 가와바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이즈반도로 여행을 떠났다. 1918년 10월 30일부터 11월 7일까지 8일간의 여행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경험을 소설로 썼다. 유모토칸은 어딘지 모르게 지난겨울에 다녀온 설국의 배경, ‘다카한(高半)’과도 닮아있었다. 료칸의 주인들이 작가의 흔적을 소중하게 남겨두고 있기 때문일 수 있고, 가와바타의 취향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취향에 흠뻑 빠졌다. 번잡스럽지 않고 조용한 마을에 위치한 아늑한 료칸. 관광객의 발길이 오래전에 끊긴 듯했고, 그날은 금요일 밤이었음에도 다른 숙박객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n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n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배경, 유자와 다카한료칸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p.7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민음사) 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입 중 하나로 손 꼽히는 장면을 실제로 눈에 담았다. 그날 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아름다운 문장을 낳은 료칸에 묵기로 했다. https://youtu.be/CuUBl3ad5K\nhttps://brunch.co.kr/@istandby4u2/43\n늦은 밤 온천욕을 하고 이층 가와바타 야스나리 방에 올라가 보았다. 우리가 머문 방보다는 훨씬 작은 방이었는데, 무려 10년 동안이나 그의 방으로 쓰였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이즈반도를 여행한 후 1927년까지 거의 매년 이 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무희들의 사진과, 관련 자료를 보니 흐릿했던 소설 내용이 다시 생생해지기 시작했다. 옆 방에는 자료관이 있었지만 가와바타의 자료관이 아닌 이곳을 머문 다른 작가들의 글이나 그림이 걸려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벽에 걸린 수국 그림이 근사해서 사진을 찍어두었다.\n센스 있게도 방 안에 ‘이즈의 무희’ 문고본이 놓여 있었다. 가물가물한 소설 내용을 완벽히 떠올릴 수 있도록. 이미 한국어로 읽은 후여서 원작이지만 읽을만했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이즈 여행 중 유랑 가무단을 만나고, 일행 중 춤을 추는 소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가무단의 남자가 말을 걸어와 이야기를 나누다 동행이 되기로 한다. 많은 마을에서 묵게 된 밤. '나'는 머물고 있는 방까지 들려오는 술자리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는 무희가 더럽혀지지 않을까 괴로워한다.\n나는 유모토칸에서 아침을 먹고 노천온천탕에 나가보았다. 굉장히 공개된 공간이었다. 바로 앞에 하천이 흐르고 있어 물이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가 크게 들렸다. 누가 올만한 곳은 아니겠지만 가림막도 없어 노천온천은 포기하기로 했다. 소설에는 벌거벗은 무희가 온천을 하다가 주인공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장면이 있다. 이 온천탕을 보니 소설의 그 부분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n그때까지 나는 그들 일행을 두 번 보았다. 처음에는 유가시마 온천으로 가는 도중에 슈젠지로 가는 그녀들과 유가와 다리 부근에서 만났다. 그때는 젊은 여자가 세 사람이었는데 무희는 북을 들고 있었다. 나는 몇 번이고 돌아보면서 여정이 내 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유가시마에서 이틀째 밤을 보낼 때 그들은 가무단을 부를 사람이 있나 여관에 들렀다. 나는 무희가 현관마루에서 춤추는 것을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중턱에 앉아서 열심히 보고 있었다. 처음 본 게 슈젠지였고 오늘 밤 유가시마로 왔으면 내일은 아마기 고개를 남쪽으로 넘어 유가노 온천으로 가겠지. 아마기 고개 칠십 리 길에서 틀림없이 따라잡을 수 있을걸. 나는 이런 공상을 하며 길을 서둘렀는데 비를 피하려고 찻집에 들렀다가 딱 만나 버렸기 때문에 당황했던 것이다.\n-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즈의 무희’ 중에서\n유모토칸이 있는 유가시마에서 무희를 마음에 둔 주인공은 아마기 고개를 넘어 유가노로 향할 것으로 예상되는 무희 일행을 따라잡으려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한다. 나도 주인공의 행로를 따라 여행을 시작했다.\n(2편으로 이어집니다.)\n그 장면 안에 서있으니,  나도 쿡쿡 웃음이 나왔다\n'이즈의 무희'의 배경, 시즈오카 후쿠다 료칸과 시모다 항구 | 무희 일행을 따라잡으려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한 ‘이즈의 무희’의 주인공을 따라, 우리는 차를 타고 열심히 달렸다. 아마기 고개를 곁에 두고 뻗어 있는 도로를 달려 도착한 한 료칸. 시즈오카 유가노 온천 湯ヶ野温泉 에 위치한 이곳은 무희들과 일행이 된 주인공이 머문 숙소, 후쿠다야 福田家 다. 료칸 바로 앞으로 하천이 흘러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운치 있는\nhttps://brunch.co.kr/@istandby4u2/75","url":"https://brunch.co.kr/@istandby4u2/69","published_date":"2017-07-07T14:0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79,"source":"brunch","title":"가와즈에서 맡은 신선한 향기","content":"흔히 먹는 튜브 속 와사비와는 전혀 달랐다.\n가끔 생와사비를 사용한다고 하는 횟집의 와사비와도 달랐다.\n처음 맡아보는 야채의 향기였다.\n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는 구스미 마사유키가 쓰고, 그림은 다니구치 지로가 그려서 1994년부터 연재한 작품. 2012년부터는 도쿄TV 에서 드라마로 제작하여 방영하고 있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수입 잡화상을 운영하는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거래처에 갔다가 갑자기 배고픔을 느낀다. 그리고 주변에 맛있는 식당을 찾기 시작한다. 식당에 들어가 홀로 맛있는 음식을 만끽한다. 음식점과 메뉴가 달라질 뿐 이야기는 매 번 똑같지만 중독성이 있다.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좋고,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멍하니 보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고 나면 무언가 먹을거리를 찾기 시작한다.\nTV프로그램 <고독한 미식가 시즌3>\n1인 무역회사의 대표이자 독신주의자인 이노가시라 고로가 홀로 소박하고 오래된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일본 고유의 음식 맛을 즐기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nhttp://movie.daum.net/tv/main?tvProgramId=63579\n고독한 미식가 시즌3의 3화를 보게 된 날은 조금 신기한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우연히 후지산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하나 읽었고, 전날 밤부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라는 소설을 읽고 있었다. 낮잠을 자려는데, TV에서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화면이 나와서 눈길을 멈추고 낮잠을 잠시 마뤄두기로 했다.\n이노가시라는 보통 도쿄의 음식점을 찾아가기 때문에 드라마 배경이 주로 회색 풍경인데,\n그날은 어쩐 일인지 화면 안에 초록빛이 가득했다.\n시즌3의 3화에서 이노가시라는 시즈오카로 출장을 간다. 미팅을 마치고, 여행객 기분이 되어 이즈반도의 유명한 폭포를 찾아가고 주변에서 맛있는 음식점을 발견한다.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시즈오카와 관련된 콘텐츠를 다량으로 섭취했기 때문에, 문득 시즈오카에 가고 싶어 졌다. 두 번이나 다녀온 지방이지만, 가봐야 할 곳이 많이 생겼다.\n우린 이노가시라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걸었다. 폭포로 향하는 입구에는 수학여행지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을 팔고 있었고, 이노가시라는 ‘요즘 중학생들도 이런 것을 살까’ 궁금해한다. 이곳은 일곱 개 폭포가 있기로 유명한 가와즈\n河津\n의 나나다루\n七滝\n다. 그중 하나 쇼케이다루앞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이즈의 무희’의 남녀 주인공 동상이 서있다. 고로는 이 폭포 앞에서\n‘음이온 탓인가’ 배고픔을 느끼고 서둘러 걸어 나와 맛집을 찾는다.\n우린 아침을 먹은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고로가 들어간 식당 ‘와사비원 가도야\nかどや\n’에 들어갔다. 테이블은 손님들로 거의 다 차있었다. 나는 고로가 두 그릇이나 비운 와사비 돈부리 맛이 궁금했다. 그것만으로는 아쉬워 소바도 나오는 세트메뉴를 주문했다.\nストーリー│孤独のグルメSeason3：テレビ東京\nテレビ東京「孤独のグルメSeason3」公式サイト　ストーリーのページです。\nhttp://www.tv-tokyo.co.jp/kodokunogurume3/story/\n와사비가 상어가죽 강판과 함께 나왔다. 미리 갈아 두어야 한다. 전에 시즈오카에 왔을 때 와사비란 식물을 실제로 봐 두었기 때문에 죽순처럼 생긴 줄은 알고 있었다. 모양은 충격적이지 않았다. 남아 있는 잎을 떼어내고 떼어낸 부분부터 갈기 시작하면 된다. 드라마에서 동그랗게 동그랗게 갈아야 한다는 조언을 보고 왔으므로, 원을 그리며 열심히 갈기 시작했다. 굉장히 강렬한 향이 올라왔다. 처음 맡아보는 야채의 냄새였다. 튜브에 들어 있는 와사비와는 전혀 다른 향기였기에 다소 충격이었다. 이 향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을까.\n와사비를 가는 일은 생각보다 중노동이었다. 쉽게 갈리지 않았다. 게다가 기대한 것만큼 많은 양이 나오지 않았고 조금 묽었다. 손목이 아파왔다. 가는 것이 귀찮아진 남편이 남은 와사비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n\"어때? 안 매워?\"\n\"전혀 안 매워. 약간 알싸한 정도인데?\"\n잠시 뒤.\n\"오오오 올라온다\"\n남편의 콧 평수가 넓어지며 흡사 공룡 같이 변했다!\n와사비를 아직 다 갈기도 전인데, 돈부리와 소바가 나와버렸다. 와사비에 간장이 닿지 않게 뿌려서 먹으라는 조언이 뒤따랐다. 흰 밥과 와사비와 가쓰오부시에 약간의 간장으로 간을 한 평범하고 평범한 요리. 그런데 정말 맛있다. 흰 밥과 가쓰오부시의 맛과 향이 튀지 않는다. 오로지 와사비 향에 집중할 수 있었다.\n다른 요리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와사비가 주연이 된 요리!\n‘고독한 미식가’에서 밥친구들이라 불린 네 가지 와사비 반찬도 주연을 도와준다. 와사비김, 와사비된장, 와사비절임, 와사비줄기초절임. 이 중 와사비 된장은 매운맛이 살짝 돌아서 우리나라 볶음 고추장 맛과 비슷했다. 내 입맛에 딱이라 한국에 사가지고 오고 싶었지만, 여행이 많이 남아 있었기에 아쉬웠다.\n와사비 돈부리를 즐긴 후, 대나무 통에 나온 소바도 먹어 본다. 와사비 향이 평범한 소바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소바까지 신선하게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남은 와사비를 씹어먹어 보라'는 남편의 권유에 못 이겨, 살짝 먹어보았다. 식감은 무 같았다. 처음에는 살짝 단 맛이 돌다가 마지막에 코로 확 올라왔다.\n식사를 마치고 나와, 우리는 후식으로 와사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아이스크림이라 전혀 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꽤 매웠다. 코끝을 시원하게 하는 와사비가 아이스크림을 더욱 시원하게 만들었다. 초록빛으로 가득한 이즈에서 맡은 와사비의 신선한 향기. 온몸이 정화된다.\n이곳을 떠나려는데, 너무나도 귀여운 집이 하나 있었다.\nINFORMATION\n와사비원 가도야\nわさび園　かどや\n와사비 돈부리, 와사비 소바, 와사비 소주 등의 메뉴가 있다. 매주 수요일이 정기휴일이며, 재료가 다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n- 주소 : 〒413-0501　静岡県賀茂郡河津町 梨本371-1\n- 영업시간 : 식당 09：30～14：00 / 상점 09：00～17：00\n- 홈페이지 :\nhttp://www.wasabien-kadoya.com\n나나다루 쇼케이다루 폭포\n初景滝\n높이 약 10m의 폭포로, 입구에서 걸어서 8분 거리에 위치에 있다.\n주소 : 〒413-0501　静岡県賀茂郡河津町 梨本\n홈페이지 :\nhttp://www.nanadaru.com/","url":"https://brunch.co.kr/@istandby4u2/70","published_date":"2017-07-18T14:5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80,"source":"brunch","title":"호수는 그의 삶과 닮아 있었다","content":"친구의 여동생을 쇠망치로 때려죽인 오빠를 둔 여자가 있다. 학창 시절엔 따돌림을 당했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연인으로부터 ‘전화 번호를 지워달라’는 말과 함께 차였다. 25살의 예쁘장한 얼굴이지만 옷차림은 후줄근하고 어깨는 굽어있다.\n호숫가에 살고 있는 한 남자. 친구와 야한 비디오를 빌려보고 싶어서 연날리기를 하며 놀자던 여동생을 집에 혼자 두고 나갔다. 여동생은 그날 밤 호수에 시체로 떠올랐다. 사건이 있고 15년이 지났다. 머리는 산발에 식사는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다. 호숫가에서 낚시도구를 빌려주며 살고 있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오래전 집을 떠났고 딸을 잃은 아버지는 건강도 정신도 온전하지 못하다.\nTV프로그램 <그런데도 살아간다>\n친구에게 동생을 살해당한 남자와 그 친구의 여동생이 15년만에 만나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드라마.\nhttp://movie.daum.net/tv/main?tvProgramId=58515\n이 두 명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호수를 찾아가는 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내가 이제까지 가장 감명 깊게 본 드라마의 두 주인공, 히로키와 후타바다. 2011년 일본 후지 TV에서 방영된 '그래도 살아간다\nそれでも生きて行く\n’는\n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의 삶을 이야기한다.\n사카모토 유지가 쓴 시나리오, 시나리오 속 대화를 주고받는 배우들의 연기가 현실감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은 저렇게 살아가겠구나’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게다가 오다 카즈마사가 부른 드라마 OST도 스토리와 굉장히 잘 어우러져서 기운이 없을 때면 자주 듣곤 한다.\n드라마에선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n뉴카사 호수\n入笠湖\n주변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n. 건물 한 채는 아예 무너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는 경고문만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이곳에 살던 남자 주인공 히로키의 생활과 닮아 있었다. 여러 크기의 새들이 날아다니고, 오랜만에 맡은 사람 냄새에 흥분한 벌레들이 눈 앞에서 윙윙 거렸다. 갑자기 비가 퍼붓기 시작했고, 드라마의 어두운 분위기가 한껏 전해져 왔다. 남편과 차에 앉아 드라마를 다시 돌려보며 장면을 겹쳐 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비가 그쳤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녹음이 짙어져 있었다.\n호수를 찾아가기 전 날, 우린 한 농장에 다녀왔다. 농장은 살인자 소년 A가 소년원에서 나와 일을 한 곳이기도 하고 다시 사건을 일으킨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년 A의 여동생 후타바는 농장에 가서 자신의 오빠 때문에 깨어나지 않는 엄마를 두게 된 아이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오빠의 속죄를 대신하는 장소. 나는 이 농장에서 찍은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 없기에 꼭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었다. 비록 다른 계절 다른 시간대라 드라마 영상 속 아름다운 그림을 그래도 얻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소년 A 가 따던 과실이 영글고 있었고, 후타바가 바라본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관광으로 갈만한 곳은 아닌 시골마을. 나의 외갓집 풍경과도 닮아 있었다.\n드라마에는 흔한 키스신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둘은 호감을 느끼지만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사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밤, 한 차례 포옹을 하고 이별한다. 마지막 대화를 애틋하게 나눈 배경을 찾아 도착한 곳는 후지노미야에 있는 공원. 근처에 신사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나가노현에서 시즈오카현까지 달려오느라 배가 꽤 고팠다. 드라마에 야키소바까지 등장해서 더욱 배가 고파졌다. 후타바가 배가 고프다고 하자 히로키가 컵라면으로 된 야키소바를 내온 것이다. 도착하면 야키소바를 먹기로 했다.\n공원 옆에 있는 신사가 꽤 유명한 곳인지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우린 드라마 배경을 보러 온 것이었으므로 신사엔 들어가지 않고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날 수나 있을까 싶은 뚱뚱한 비둘기가 구구 울고 있었다. 후타바와 히로키가 앉아 있던 벤치를 찾고, 서로를 떠나보내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재현해 보기도 했다. 둘은 그 길로 헤어지지만 우리는 나란히 걸어 야키소바를 먹으러 갔다. 신기하게도 공원 바로 앞에 야키소바 거리가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우연하게 떠올린 메뉴였는데 마침 야키소바로 유명한 곳이라니.\n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그래도 살아간다’를 쓴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장치였을까.\nINFORMATION\n#히로키가 사는 그곳 -\n뉴카사 호수 (入笠湖)\n마쓰모토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관리되고 있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n주소 : 長野県諏訪郡富士見町富士見 入笠湖\n#후타바가 일하게 되는 그곳 -\n시오다히가시야마 관광농원 (塩田東山観光農園)\n마쓰모토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관광지가 아니라 일반 농장이다.\n주소 : 長野県上田市富士山 塩田東山観光農園\n#후타바와 히로키가 헤어지는 그곳 -\n간다가와후레아이 광장 (神田川ふれあい広場)\n걸어서 10분 거리에 니시후지노미야 역이 있고, 가까이에 센겐신사(浅間大社)도 있고, 야키소바 거리도 있어 가볼만하다.\n주소 : 静岡県富士宮市大宮町 神田川の御手洗橋","url":"https://brunch.co.kr/@istandby4u2/72","published_date":"2017-07-24T14:1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81,"source":"brunch","title":"01화 하루키 신작 보고 출장 루트 짜신 거예요?","content":"기회가 있다면 이야기해 보고 싶었습니다.\n왜 '배경여행'이란 것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n효행 사례 발표대회, 환경보호 사생대회. 초등학생(혹 국민학생) 일 땐 이런 대회가 매년 열리곤 했다. 4학년 때로 기억한다. 늦은 밤까지 정성 들여 써서 제출한 글이 '에너지 절약 웅변대회' 예선을 통과했다는 이야기를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글쓰기 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고, 또 준비물을 안 가져가도 절대 학교로 가져다주는 법이 없던 엄마는 글을 다듬어 주기는커녕 읽어 보지도 않았다. 매사 자신감이 없던 내가 생애 처음 주목을 받게 된 사건이었다. 웅변대회이니 본선에선 선생님들과 친구들 앞에서 큰소리로 읽어야 했다. 가는 목소리로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겨우 읽어 내려갔다.\n우수상을 받았고, 최우수상을 받은 친구는 학교 대표가 되어 나의 문장을 들고 더 큰 대회에 나갔다. 그땐 그게 뭔가 잘못되었단 자각도 없이, 작은 나의 목소리를 탓하며 엄마를 졸라 웅변학원에 다녔다. 그때부터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 아나운서란 꿈을 키우며 언론정보학과에 진학. 학과 수업을 듣다 보니 아나운서는 글보다는 말을 더 잘 해야 하는 직업이었다.\n아뿔싸.\n학과를 잘 못 선택한 것 같다.\n방향을 틀어 기자를 준비했다. 3학년 땐 한 시사 잡지사에서 인턴기자를 하며 경험도 쌓았다. 일본어를 할 줄 안 덕에 인턴기자 신분으로 일본 출장까지 다녀왔다.\n그때 처음으로 써본 여행 기사는 현직 기자 선배들이 재미있게 잘 읽었단 칭찬을 해준 유일한 기사였다.\n일본 시즈오카현 紀行 : 월간조선\n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0907100052\n그렇게 순탄히 기자가 될 줄 알았는데, '언론고시'라고까지 불리는\n신문사 입사시험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n언제까지 백수로 지낼 수 없다며 들어간 곳이 백과사전 회사였다. 기사는 아니지만 ‘글을 쓸 수 있는 회사겠지’란 생각에 입사했다. 그러나 기업에 소속된 백과사전 팀인지라 직접 글을 쓰는 일보단 다른 업무가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가끔 글을 쓰기도 했지만\n백과사전 형식에 맞춰 쓰는 차갑고 건조한 문장이었다.\n틀에 정보를 끼워 넣는 일에 가까웠다. 물론 직접 자료조사나 취재에 나서는 일도 많아 국내외를 많이도 다녔다.\n막연하게 쓰고 싶었던 무언가가\n수면 위로 떠올랐다\n입사 후 3년 정도 지났을 때, 아직 백과사전에서 많이 다루고 있지 않은 일본의 도시를 찾아 자료 수집을 하러 가게 되었다. 출장을 가기 전엔 어떤 표제어가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지 조사를 하고, 일정을 계획한다.\n나고야에서 출발해서 비와호 주변 소도시를 훑고, 하마마쓰란 도시에 들렀다가 도쿄 도서전을 보고 돌아오는 일정을 짰다.\n출장에서 돌아와서 도쿄 바나나를 팀원들에게 돌리는 데 한 동료가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n\"하루키 신작 보고 일정 짜셨나 봐요?\"\n\"…… 엥? 하루키 신작 나왔어요?\"\n무라카미 하루키 팬임을 자처하는 내가 신작이 나온 사실을 몰랐다니. 일단 마음이 상하고 봤다. 게다가 매우 성대하게 출간 소식을 알렸는데!\n\"아주 난리던데요? 슬쩍 봤는데 출장 기안에 적으신 도시랑 소설에 등장하는 도시가 완전히 일치해서 읽고 다녀오신 줄 알았어요.\"\n퇴근길에 곧장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서서 읽기 시작했다.\n다섯 명의 친구가 등장하고 이들은 나고야 출신.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 진학한다. 도쿄에 있는 쓰쿠루를 빼고 네 명의 친구는 비와호 여행을 가기도 한다. 피아노를 치는 시로는 하마마쓰에 가서 학원 선생님이 된다.\n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n전 세계가 기다려 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대형 베스트셀...\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37487927&g=KOR\n책 표지를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 본 소설의 배경 도시 지도\n이 우연의 일치 덕분에 나는\n이제까지 막연하게 쓰고 싶었던 글이 무엇이었는지 찾게 되었다.\n그리고 '책, 영화, 드라마 속 그 곳, 그 맛, 그 말'이라는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그곳에 여행기를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책의 배경이 되었거나,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면 무조건 소재가 되겠다 싶었는데, 작품이나 장소에서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쓰면 글이 시시해졌다. 그래서 일단 마음에 남은 '작품 속 그곳만 써보자!’ 란 생각으로 하고 있다. 책, 영화, 드라마를 계속해서 봐야 하고 배경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고, 여행을 계획해야 하고, 다녀와서 글과 사진을 정리하고 때때로 그림까지 그린다. 요즘 같은 시대에 빠릿빠릿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못 된다.\n그래도 나는 스스로 ‘배경여행’이라 이름 붙인 여행에 푹 빠졌고, 좋은 작품을 만나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해져 견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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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않다. 올해 초 블로그에 올린 '설국' 여행기가 유독 큰 주목을 받았고, 덕분에 막연하게나마 꿈에 그리던 책 출간에 근접해가기 시작했다. 여행기는 포털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몇 차례 올랐다. 그러자 출판사 몇 곳으로부터 출간 제안 메일이 들어왔다.\n책을 내보고 싶었지만 출간을 할 만한 글인가 자신이 없었던 나는 메일을 받으니 기대가 생겼다.\n한 가지 욕심도 부리고 싶어 졌다. 여행 에세이를 출간한 적이 있는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었다.\n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니 설국이었다\n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의 배경, 유자와 다카한료칸 |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p.7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민음사) 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입 중 하나로 손 꼽히는 장면을 실제로 눈에 담았다. 그날 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이 아름다운 문장을 낳은 료칸에 묵기로 했다. https://youtu.be/CuUBl3ad5K\nhttps://brunch.co.kr/@istandby4u2/43\n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출간의 과정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장을 어떤 방향으로 수정해 가는지, 본문 구성은 어떻게 해야 매력적인지, 출간 마케팅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등.\n책이라는 것을 처음 내보기 때문에 많은 것이 궁금했다\n. 여행 에세이를 처음 내는 출판사와 일을 하게 된다면 세세한 부분을 배우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쉽게도 제안을 받은 출판사 중에는 여행 에세이를 출간했던 곳이 없었다.\n서점에 가서 나와 비슷한 결의 글이 담긴 책을 찾았다. 그 책들을 낸 출판사를 리스트업 했다.\n몇 곳에 기획안\n(*\n5화에서 공개합니다!\n)\n과 샘플 원고를 첨부하여 투고했다. 대부분의 출판사가 친절하고 정중한 답변을 보내주었다. '편집 회의 결과 출간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회신이었다. 그러다 어느 한 출판사로부터 '우리 출판사에서는 낼 여력이 없으나, 친한 편집자에게 기획안을 보냈으니 답변을 기다려보라'는 메일을 받았다. 나는 그 친한 편집자의 회신을 기다리고 있던 중 꿈의지도란 출판사로부터 '함께 책을 만들어 보자'는 희보를 듣게 되었다. 그렇게 꿈의 지도와 연이 닿게 되었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n유럽을 그리다\n우연히 함께 여행하게 된 두 남녀의 가슴 뛰는 여행이야...\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91186581360&g=KOR\n비가 내리던 프로방스 아비뇽\n아비뇽의 새벽\n다시 첫 일주일의 밤으로 돌아와서.\n원고를 쓰기 시작하며 잠도 못 자고 출근을 하게 만든 책은 배종훈 작가의 ‘유럽을 그리다’였다. 나는\n새벽에 꺼내 든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마지막 장을 넘기자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n나와 같은 도시를 다녀온 작가. 그에겐 정말 매력적인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남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한 여자를 만났고 동행이 되었다. 반면 나의 여행기 안엔 바캉스 로맨스 따위 생길 리 없는 동행, 여동생이 있다. 다른 데에선 매력적인 여성인지 모르겠지만 내 글 안에서 동생은 비를 맞고 낄낄 웃고 있을 뿐이었다.\n사흘을 아비뇽에 머물며 한 차례 갑작스러운 장대비를 만났다. 속옷까지 모두 젖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상점 난간에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호텔로 뛰어가는 사람은 나와 내 동생뿐. 모두들 우리를 쳐다보았다. 온몸이 다 젖어 방에 도착해서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낄낄 웃었다.\n‘무엇이 그리도 급해서 서둘러 왔을까?’\n- 다정한 여행의 배경 (가제) 중에서\n나는 책을 쓰기 시작한 첫 일주일의 밤을 지새웠다. 남의 여행과 문장들을 흠모하고 질투하다가, 한 편 글도 제대로 고치지 못한 채.\nㅡ\n첫 책을 쓰는\n일주일의\n밤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74","published_date":"2017-08-01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83,"source":"brunch","title":"그 장면 안에 서있으니,  나도 쿡쿡 웃음이 나왔다","content":"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시작을 만나다\n시즈오카 이즈반도에 위치한 료칸, 유모토칸 | 꼬불꼬불한 산길로 접어들면서 마침내 아마기 고개에 다가왔구나 싶었을 무렵, 삼나무 밀림을 하얗게 물들이며 매서운 속도로 빗발이 산기슭으로부터 나를 뒤쫓아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즈의 무희’의 시작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쓴 소설 '설국'의 첫 문단은 아름다운 시작으로 자주 손꼽히곤 한다. 나는 그의 초기 작품인 ‘이즈의 무희’마저 이렇게 아름다운 표\nhttps://brunch.co.kr/@istandby4u2/69\n무희 일행을 따라잡으려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한 ‘이즈의 무희’의 주인공을 따라, 우리는 차를 타고 열심히 달렸다. 아마기 고개를 곁에 두고 뻗어 있는 도로를 달려 도착한 한 료칸. 시즈오카 유가노 온천\n湯ヶ野温泉\n에 위치한 이곳은 무희들과 일행이 된 주인공이 머문 숙소, 후쿠다야\n福田家\n다. 료칸 바로 앞으로 하천이 흘러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운치 있는 공간이었다. 하천 건너에 족욕탕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서 재미난 이야기가 피어났다.\n“저쪽 탕에 우리 애들이 와 있네요. -저기 좀 보세요, 이쪽을 봤는지 웃고 난린데요.”\n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나는 냇가 건너편 공동탕 쪽을 보았다. 김이 오르는 와중에 일고여덟 명의 나체가 어렴풋이 떠올라 있었다.\n어둠침침한 욕탕에서 갑자기 알몸의 여자가 뛰어나오는가 싶더니 탈의장 끝에서 냇가로 뛰어들기라도 할 것 같은 자세로 서서 양손을 쭉 펼치고 무엇인가 외치고 있다. 수건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그 무희였다. 어린 오동나무처럼 다리가 쭉 뻗은 흰 나체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에 샘물을 느껴 후우 깊은숨을 내쉬고 나서 쿡쿡 웃었다. 어린애잖아.\n-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즈의 무희’ 중에서\n이즈의 무희 천 마리 학 호수\n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초기와 원숙기의 대표작들 『이즈의 ...\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32403694&g=KOR\n소설의 주인공 ‘나’는 무희가 벌거벗은 모습을 보기 전날 밤, 료칸에 앉아서 늦은 시간까지 그치지 않던 유흥의 소리를 들었다. 그 자리 있던 무희가 더럽혀질까 봐 초조해한다. 아이 같은 무희의 모습을 보고 안도하는 장면 안에 서있으니 나도 괜히 쿡쿡 웃음이 나왔다.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것보다 냇가 건너편이 가까웠기 때문일까.\n영화 '이즈의 무희'\n소설 ‘이즈의 무희’는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내가 본 1960년 개봉작에도 후쿠다야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원작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물론이고, 무희를 연기한 여배우들이 후쿠다야에 머물렀다고 한다. 우린 ‘두 번째 밤은 이곳에서 머물 것을 그랬다’고 아쉬워하며 료칸 옆에 세워져 있는 문학비의 문구를 읽으러 걸어갔다. 문학비에는 ‘이즈의 무희’ 중에서 이곳 지명이 남긴 문장이 새겨 있었다. 물론 가와바타의 문장과 달리, 유가노의 집들엔 더 이상 초가지붕이 얹어 있지 않았다.\n유가노까지는 가와즈 천의 계곡을 따라서 삼십 리쯤 내리막길을 가야 했다. 고개를 넘고부터 산은 물론 하늘색까지가 남쪽 지방답게 느껴졌다. 나와 남자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아 매우 친해졌다. 오기노리, 나시모토 같은 작은 마을들을 지나 유가노 마을의 초가지붕이 기슭에 보이게 되었을 무렵 나는 시모다까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고 작심해서 말했다. 그는 무척이나 기뻐했다.\n-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즈의 무희’ 중에서\n문학비 바로 곁에 빨간 지붕을 쓰고 있는 작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했다. 위치가 너무 근사해서 남편에게 ‘이곳에서 카페 하나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무도 안 올 것 같은데?”라고 화답했다.\n음 그건 그렇지.\n그래도 11월에는 문학제도 열리고 하는 것 같은데?\n후쿠다야\n이미 무희 일행과 매우 가까워진 주인공을 계속따라 우린 시모다\n下田\n로 향했다. 그곳에서 소설 속 ‘나’는 무희와 활동사진을 보러 가기로 한다. 시모다로 향하는 길 옆에 커다란 공장 굴뚝이 하나 보였는데, 그곳에도 무희가 그려져 있었다. 페인트 색이 이미 많이 바래고 뜯겨 있었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이곳이 얼마나 들썩였을지 상상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주인공 ‘나’는 여비가 다 떨어져 시모다 항구에서 도쿄로 돌아가는 배를 타야 했다. 무희 일행에게는 학교에 일정이 있다며 둘러댄다.\n무희가 허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둘의 활동 사진전 데이트는 이뤄지지 않는다. '나'는 배에 오르고, 마지막으로 무희를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때 배가 출발함과 동시에 멀리서 손을 흔드는 무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무희가 손을 흔들던 항구는 이미 굉장히 세련된 모습이 되어 있었다. 나는 떠나는 배가 아닌 화려한 크루즈선이 들어오는 모습을 만났다. 소설과는 사뭇 다른 풍경. 그 풍경에 서서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n무희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배 안에 들어온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눈물을 흘렸다.\n시모다 항구\nINFORMATION\n후쿠다야\n료칸 바로 옆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비가 있고, 하천 건너에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족욕탕이 있다. 이곳은 이즈의 무희 하이킹 코스의 거점이기도 하다.\n- 주소 : 静岡県賀茂郡河津町湯ヶ野236\n- 홈페이지 :\nhttp://fukudaya-izu.jp/\n시모다항\n유람 섬을 타지 않으면 항구 주변에서 특별히 즐길 거리는 없다. 가까이에 해수욕장이 많다.\n주소 : 静岡県下田市外ヶ岡１番地の１\n홈페이지 :\nhttp://www.kaikokushimodaminato.co.jp/","url":"https://brunch.co.kr/@istandby4u2/75","published_date":"2017-08-03T13:1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84,"source":"brunch","title":"03화 붉게 변해버린 글씨들이  눈앞에 뒤엉켜 있다","content":"눈앞에는 붉은 글씨들이 한 데 모여 뒤엉켜 있었다.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첫 피드백을 받은 날이었다.\n백과사전 편집자로 5년 가까이 일하면서 어림짐작 만으로도 수백 장에 달하는 글에 첨삭을 했다. 나의 주요 업무는 집필자들이 써온 백과사전 글을 다듬는 일이었다. 첨삭 과정에 인간미 따위 없었다. 비문, 오탈자가 나오면 글씨를 붉은색으로 칠해버리고, 때론 줄을 쫘악 그어버렸다. 바로 삭제해버리는 일도 부지기수다. 원고 하단에 기입하는 코멘트도 가차 없이 날렸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겨 화가 났음’을 한껏 드러내며.\n“일부는 수정을 했습니다만, 비문이 너무 많군요. 내일 오전까지 전체적으로 다시 손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n그리고 책을 쓰기 시작한 나는 정반대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n내가 쓴 원고를 첨삭받게 된 것이다. 일곱 편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며칠 뒤, 나의 원고들은 붉은 글씨를 가득 안고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보자 갑자기 내 눈 앞에는\n지난날 내 손으로 붉게 바꿔버린 글씨들이 잔뜩 모여들어 뒹굴고 있었다.\n그 글씨들은 나를 향해 화를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난 것처럼도 보였다. 가슴이 미어졌다.\n‘일단 검은 글씨가 많은 페이지만 봐야지.’\n이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거의 모든 페이지에 붉은색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체가 붉은 글씨로만 가득한 페이지를 만나자, 또 그 안에 맞춤법까지 틀려 있던 것을 발견하자 나는 한계에 다다랐다. 물론 '한글을 굉장히 잘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하진 못하지만. 그러기에 나는 여러 방법을 동원해서 글을 완성시켰다.\n우선 문서작성 프로그램에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맞춤법 검사기. 틀린 문장과 단어에 그어지는 빨간 줄을 꼼꼼히 본다. 그리고\n다음\n과\n네이버\n두 곳의 맞춤법 검사기를 각각 돌려본다. 서로 다른 부분을 짚어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총 세 번의 검사기를 돌렸음에도! 틀린 한글은 들어 있었고, 담당 편집자의 눈을 피해가지 못했다.\n붉은색 글씨 중에는 표현과 단어를 다른 방향으로 제안한 내용도 있었다. 읽어보니 제안을 받은 방향으로 수정을 하면 의미가 훨씬 명확해지는 경우가 많았다.\n그런데 나의 원고 속 단어와 표현들... 사실 단어의 바닷속에서 고르고 고른 아이들이다.\n얼마 전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보다가 '맞아 맞아' 소리를 내며 공감했다.\n아는 한자와 어휘의 수가 빈곤해서 유사어 사전이 아주 도움이 됩니다.\n'놀라다'의 유사어는....... '혼비백산하다', '간담이 서늘하다'...\n- 마스다 미리, '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 생활' 중에서\n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n『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은 공감만화와 에세이로 ...\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91186195413&g=KOR\n나도 유의어 사전의 큰 도움을 받아 글을 썼다. 물론 웹사전을 이용하기 때문에, 마스다 미리처럼 종이사전을 펼쳐볼 필요는 없다. 같은 단어가 너무 많이 반복된다는 느낌이 들 때, 내가 사용한 어휘가 문장에서 유독 튄다 싶을 때, 하고 싶은 말이 백 프로 표현되지 않았을 때. 유의어 사전에서 보물을 발견하곤 했다.\n'덧없이'를 쓸까, '하릴없이'를 쓸까 꽤 망설였다. (출처: 낱말 - 우리말유의어사전)\n'덧없이' : 네이버 국어사전\n[부사]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가는 시간이 매우 빠르게.\n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9564101\n아무튼.\n나의 글은 거르고 걸러, 고치고 고쳐 완성되었다.\n그럼에도 불긋불긋하게 돌아왔다. 도저히 첨삭 내용을 읽을 자신이 없어서 파일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부엌에 가서 인스턴트커피 두 봉지를 뜯어 아이스커피를 만들었다. 얼음도 잔뜩 넣었다.\n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멍 때리기를 20분.\n......\n...\n.\n?\n!\n카페인과 설탕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문득 감사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내가 쓴 문장을 다른 누군가가 이토록 꼼꼼하게 읽어준 적이 있던가. 아니, 단지 읽은 것뿐 아니라 이렇게 세심하게 고민해주다니. 굉장히 행복한 일이었다.\n붉은색은 가장 따뜻한 색이다.\n세상에 나온 대부분의 책들은 붉은 글씨를 품은 후 탄생했을 것이다.\n행복한 기운이 돌자 문득 한 도시가 떠올랐다. 나는 미국 세도나에서 이토록 따뜻한 붉은빛을 만난 적이 있다.\n맙소사.\n붉은 암석들이 마을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자연의 얼굴이었다. 이런 선물이 기다리는 줄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구나……. 대개 미국 서부 여행하면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나, 그랜드캐니언의 장엄함, 여유가 넘치는 해변 풍경을 떠올린다. 이들은 나의 상상력 범주 내의 풍경이다. 영화나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미 많이 접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문교나 그랜드캐니언을 마주했을 때 대단한 감탄사가 내뱉어지진 않았다. 대략 예상했던 풍경이었다...\n- '다정한 여행의 배경' (가제) 중에서\nㅡ\n첫 피드백\n그리고,\n붉은 풍경","url":"https://brunch.co.kr/@istandby4u2/76","published_date":"2017-08-08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85,"source":"brunch","title":"04화 지키지도 못할 나와의 약속과 싸우다","content":"책에 넣을 원고를 워드 파일로 정리해서 보내달라는 메일이 왔다.\n기한은 봄까지.\n해가 지면 문을 닫는 미술관 자작나무숲\n오후 6시, 7시가 아니라, '일몰 시에 문을 닫는다’는 수목원이 있다. 정말 근사한 안내라고 생각했다. 나의 원고\n마감도 근사하다. ‘봄’이라니.\n그런데 봄이 오면일까? 여름이 시작되기까지 일까? 봄의 기준은 온도 몇 도 정도일까?\n출판사에 보낸 총 50여 편의 여행기 중 국내여행을 제외하고 41편의 원고를 다시 정리해야 했다. 한꺼번에 하면 지쳐버릴 것 같아서. 또 ‘전체를 한 번에 보내주시면 수정이 힘들어지므로 나눠서 보내주세요’라고 들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총 5차에 거쳐 원고 묶음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여섯 편에서 열 편 정도의 원고들을 하나의 그룹으로 묶었다.\n제1그룹에서 제5그룹까지. 그룹 배정을 하기 위해선 현황 파악에 들어가야 한다. 41개 원고를 다시 읽으며 고쳐쓰기 난이도를 평가했다. 다녀온 지 조금 된 여행기이거나, 인용한 작품이 난해한 경우나, 분량이 너무 짧은 글은 다시 쓰기 까다로우므로 ‘상’, 조금 수월한 원고는 ‘중’, 거의 고쳐쓸 것이 없는 원고를 ‘하’로 분류했다.\n(나중에 깨달았지만 거의 고쳐쓸 것이 없는 원고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n각 그룹에 상, 중, 하의 원고를 적절히 배분했다. 한 그룹에 속한 원고들을 수정하고 다시 쓰는 데는 2주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n(나 자신에게)\n그런데 이런 작업… 굉장히 많이 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시험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문구점에 예쁜 수첩을 사러 간다. 그에 걸맞은 색깔 펜도 고른다. 내가 강점이 있는 과목과, 잘 못하는 과목이 있다. 어려운 단원이 있고, 쉬운 단원이 있다. 그들이 자연스레 상, 중, 하로 분류된다. 하루에 공부할 수 있는 분량을 감안하여\n(물론 포부가 한껏 더해져)\n그룹이 지어진다. 배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므로 정교하게 이뤄진다. 그렇지 않으면 잘 하고, 관심 있는 과목만 공부하게 될 수 있으니까.\n이렇게 시험 대비 계획을 세우는 일 만으로 반나절이 족히 지나간다. 아직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공부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피곤해지니 침대가 나를 부른다.\n결국 첫날부터 계획은 지켜지지 않는다.\n2,3일이 미뤄지고, 1주일이 미뤄지고… 밀린 계획들은 시험 전 주에 걷잡을 수 없이 모여들었다. 시험을 목전에 둔 날들엔 해야할 공부가 여백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선다. 결국 시험 전날은 벼락치기로 밤을 지새운다.\n한 달 전부터 열심히 적은 글씨들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던 것일까.\n수첩에 적을 시간에 공부를 했다면 조금 더 좋은 점수를 받지 않았을까. 그것이 모여 보다 나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을까.\n이 학생은 그대로 성인이 되었다\n나는 이미 첫 번째 그룹부터 스스로 만든 마감일을 지키지 못했다. 2차, 3차 원고 그룹의 마감일이 한 주씩 밀어지는 것은 다반사였다. 마지막 그룹에 포함되어 있던 여섯 편의 원고를 고치는 데는 한 달 넘게 소요되었다. 마감일이 미뤄질 때마다 나는 굉장히 초조했다.\n(출판사에서는 ‘봄’까지만 달라고 했을 뿐인데!)\n기온이 올라가고, 옷이 얇아지자 예민함이 절정에 다다랐다.\n평년 같았으면 더디오는 봄을 무척이나 기다렸을 텐데, 올해 봄은 유난히 나를 향해 돌진해 오는 것처럼 느껴졌다.\n결론적으로 거의 매일 같이 수정해가며 공을 들인 나의 초고 완성 계획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상, 중, 하로 분류했던 원고들은 모두 '상'으로 수정되었고, 마지막 그룹에는 그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원고들이 모여들었다. 학생 때부터 안고 있던 문제를 여전히 반복하고 있는 나.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공부량, 원고량을 미리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약 4,5년간의 여행 기록이다 보니 한 책에 담기엔 전체적인 톤이 맞지 않았고, 통으로 들어내야 하는 문단도 많았다. 내가 쓴 문장에 스스로가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다. 처음에 고쳐쓰기 난이도 ‘하’로 분류한 원고임에도!\n드라마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속 그곳 - 휴무.\n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 속 그곳 - 역시 휴무.\n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속 펜션 - 흔적도 없이 사라짐.\n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속 해바라기 풍경 기억나시나요? - 해바라기 없음.\n초고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나의 여행이 대략 예상되실 것이다.\n굉장히 빼곡한 계획 아래 시작되지만,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된다.\n늘 허술하고 비효율적이다. 가고 싶은 곳, 가야만 하는 곳이 노트를 한가득 채우고 있지만 보통 하루에 한 작품 속 한 명소를 다녀오면 해가 지곤 한다. 그마저도 실패할 때가 많다. 가는 길이나,\n(그곳이 문을 열고 닫는 장소라면)\n영업시간이나,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는가 등에 대해 거의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떠나기 때문.\n쏟아지던 졸음을 참으며 겨우 가게에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휴일이었다. 나는 사전에 준비를 제대로 해가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가게 영업일 운이 유독 좋지 않다. 차로 두 세 시간을 달려 찾아갔는데, ‘직원 야유회로 오전만 영업을 한다’는 안내가 붙어있다든지, 단체 예약으로 식사가 어렵다든지 하는 일을 빈번하게 만난다. 미리 영업일을 알아보고 전화를 걸어서 예약을 하고 가면 되는 일이겠지만 그러면 왠지 가기가 싫어진다. 참으로 번거로운 청개구리다.\n- '다정한 여행의 배경' (가제) 중에서\nㅡ\n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n청개구리가 초고를 쓰는\n과정","url":"https://brunch.co.kr/@istandby4u2/77","published_date":"2017-08-15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86,"source":"brunch","title":"옥자가 뛰어오른 계곡","content":"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n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오후가 돼서야 출발했다.\n영화 ‘옥자’를 보고 나서는 ‘돼지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는 마음보다 ‘어떻게 저렇게 맑은 곳이 있지?’란 생각이 앞섰다. 영화 ‘옥자’의 주인공은 강원도 산골에 살고 있는 소녀 ‘미자’와 그녀의 가족 ‘옥자.’ 깊숙한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 미자에게 옥자는 친동생보다도, 친구보다도 가까운 존재다. 옥자는 사실 ‘미란도’라는 기업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낸, 슬픈 운명을 갖고 태어난 돼지다. 미란도 기업은 전 세계 26개 농가에 옥자와 같은 슈퍼돼지를 한 마리씩 보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키우도록 한다.\nDaum영화 <옥자>\n우린 집으로 갈거야, 반드시 함께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에게 옥자는 10년 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자연 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가고,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작정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7728\n옥자는 강원도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투명한 물에서 헤엄치며, 야생에서 자라는 열매를 먹고 건강하게 자랐다. 미자가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소리치면 못에 ‘풍덩’ 하고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고, 데굴데굴 굴러 감나무에서 감을 떨어뜨려 준다.\n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옥자’의 촬영지가 당연 외국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강원도 화천, 영월, 삼척, 정선 등지에서 촬영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리뷰가 많았다. 나도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남아있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옥자가 폴짝폴짝 뛰어다닌 계곡 풍경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옥자가 미자에게 물고기를 선물한 계곡은 삼척에 있는 이끼계곡이라고 한다. 그곳은 당분간 탐방로 조성으로 접근이 어렵다는 소식을 접했다. 삼척 말고도 영월의 계곡도 옥자에 담겼다고 하니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기사에 촬영지가 ‘영월 칠량이 계곡’이라 나와 있었다. 칠량이 계곡은 캠핑장까지 마련되어 있는 곳. ‘옥자’ 속 자연을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일 듯한데…….\n칠량이 계곡 풍경\n칠량이 계곡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옥자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옥자 속 계곡은 돌에 이끼가 잔뜩 낀 초록빛 풍경이다. ‘헛걸음을 하고 돌아가야 하나’ 슬퍼졌다.\n출처 : 영화 '옥자'\n영월 상동 이끼계곡\n“오늘 뭐하니?”\n“저희 강원도 가고 있어요.”\n“지금 출발하는 거니? 강원도 어디 가는데?”\n“… 우리 어디 가지?”\n라며 부모님과 통화를 하던 남편이 칠량이 계곡에 도착하고 나서야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이끼계곡’이라는 다른 계곡이 하나 더 있단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우린 그곳에 접근하는 방법을 같이 찾기 시작했다.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국토 재해대비 비상숙소’란 곳에 차를 대고 산길을 걸어 올라가니 왼쪽으로 이끼계곡이 보였다. 이곳이야 말로 옥자가 뛰어놀던 풍경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곳인 듯했다. 중간중간 계곡이 잘 보이는 곳에서 한 두 사람이 튀어나오곤 했는데, 모두 삼각대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야 삼각대도 없고, 오래도록 기다리며 사진을 찍을 정도의 인내와 기술도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포기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대체 얼마나 좋은 스폿이길래 선점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이끼가 더 빽빽하게 덮여 있었다고 한다.\n과거의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n충분히 신선하고 맑은 곳이었다.\n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란 만화를 읽고 몇 해 전부터 숲 앓이를 해온 나는 드디어 제대로 된 숲을 만난 것 같다. 잘 정비된 휴양림이 아닌, 수목원이 아닌, 국립공원이 아닌 진짜 숲. 풀과 나무가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고 있는 야생에 가까운 풍경. 오랜만이었다.\n맛있는 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이 온통 초록빛이어서 눈의 피로가 녹아내렸다. 초록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것이 보였다. 버섯 머리를 하나 발견하자, 다른 버섯이 보이고, 또 다른 색의 버섯이 보이고. 붉은색이 앙증맞은 뱀딸기가 보이고, 혹시 뱀이 나오면 어쩌지 걱정하고.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이지만 이곳의 개망초는 분홍빛이 살짝 돌아 더욱 예뻐 보였다. 매연에 시달리지 않아서 일까.\n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았지만, 삼척처럼 제대로 된 탐방로가 조성되면 좋겠다.\n작은 식물들이 밟힐 걱정 없도록. 방문객들이 밟을 걱정 없도록.\n이끼계곡\n강원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url":"https://brunch.co.kr/@istandby4u2/78","published_date":"2017-08-13T08:5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87,"source":"brunch","title":"05화 ‘소개’하는 글. 굉장히 좋아합니다","content":"무언가를 소개하는 글을 좋아한다.\n소개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n쓰는 일은 더욱 좋아한다.\n대학입시를 준비할 때도, 회사에 지원을 할 때도, 시험이나 면접은 싫었지만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은 정말 신이 났다.\n지금도 아마 비슷한 상황일 테지만 언시생\n(* 고시라고까지 불리는 언론사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n이 많을 때였고, 경력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인턴기자 모집공고가 하나라도 나면 지원자가 꽤 몰렸다. 기자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시사상식 문제에 강하지도 않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근사한 글을 써내지도 못했다. 게다가 면접 울렁증이 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면접장에 들어가서도 나오는 길에는 매번 급체를 했다. 이런 나에게 비교적 자신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n대학도, 인턴도, 회사도 오로지 자기소개서 하나로 들어갔다.\n(라고 생각한다.)\n경쟁률이 꽤 높았던 인턴기자로 채용이 되었을 때도 ‘자기소개서가 인상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급기야 ‘잘 쓴 자기소개서’로 잡지에 실리기까지. 자기소개서는 입사 후에 쓴 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월급 외 원고료를 따로 챙겨 받았다. 아마 글을 써서 받은 생애 첫 금전적 보상이었을 것이다.\n다시 읽어보면 ‘내 자기소개가 맞나’ 싶은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이 면접관 마음에 들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찌 됐든. 이직을 하고 나는\n한동안 소개하는 글에 굶주려 있었다.\n그러다 출판사에서 오래 일한 동료의 출간 기획서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n‘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구나!’\n내 여행기를 소개하는 글을 써보고 싶어 졌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출간 기획서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n소개문 : 글에 대한 소개, 저자 소개\n목차 : 책을 구성할 대략적인 목차\n참고도서 : 내고자 하는 책과 비슷한 도서 조사\n마케팅 : 책을 홍보할 수 있는 방법, 주요 독자 타깃\n원고 분량 : 보유하고 있는 원고의 분량, 완성률\n샘플원고 : 완성된 원고의 전문\n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출간 기획서에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만 있으면 막연한데, 앞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출간 기획서를 본 덕분에 그림이 빠르게 그려졌다. 그리고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 글을 소개하는 일에!\n배경여행 중 가장 가슴이 떨렸던 공간\n제일 먼저 비슷한 콘셉트의 책을 읽어보고\n내가 쓸 책에 어떤 점을 반영하고 싶은 지 정리\n했다. 평소 눈여겨봐 둔 책이 많아서 이 일은 생각보다 쉽게 끝이 났다.\n목차와 샘플원고\n역시 이미 써둔 여행기가 있었으므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소개문 쓰기. 내가 가장 격하게 동요했던 배경여행의 장소를 떠올리며 써내려 갔다. 여행 에세이 분야의 트렌드를 이야기하고, 그\n트렌트 속에서 나의 글이 어떤 강점을 갖고 있는지 어필\n했다. 주제가 닮은 책을 조사한 결과를 간략히 정리한 후, 그 책들과 비교해서 나의 책은 ‘이러한 책이 되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로 소개문을 마무리 지었다.\n잘 쓴 소개문이라고 하기엔 자신이 없고, 출간 기획서에 정답이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출간 기획서에는 이러이러한 요소가 담겨야 한다’는 정보만 있으면 각각의 요소 안에 어떤 내용을 녹여야 하는지 막막하다. 그 심정을 잘 알기에 부족한 기획서지만 첨부를 하였다. 물론 좋은 기획서를 볼 기회가 없었다면 나의 출간 기획서 역시 고리타분한 보고서가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n(인영님 고맙습니다!)\n어찌됐든 무언가를 소개하는 글쓰기는 여전히 재미있고, 즐거운 작업이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79","published_date":"2017-08-22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88,"source":"brunch","title":"06화 갑자기 뛰쳐나가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사 온 날","content":"아주 조금 아픈 이야기를 시작한다.\n물론 지금은 괜찮다. 아프지 않다.\n힘겨운 월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회색 벽으로 둘러싸인 회의실 가장 끄트머리에 앉아 수첩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리고 있다. 매주 있는 월요일 주간회의인데, 그날은 유독 숨이 막혔다. 빨리 나가고 싶었다.\n입사를 하고 처음 일 년 동안은 긴장한 탓에 아픈 줄도 모르고 출근길에 올랐다. 1년 정도 지나자 극심한 위장 통에 시달렸다. 지하철 안에서 위장이 뒤틀려 몇 번이고 쓰러졌다. 목적지가 아닌 역 안 벤치에 신세를 지다가 꾸역꾸역 출근을 했다. 3년 차에 들어서자 위장 통은 잠잠해지고 피부가 뒤집어졌다. 내장에 머물러 있던 억눌림이 얼굴로 다 올라가버린 것일까. 성인 여드름으로 불긋불긋한 얼굴은 더 큰 스트레스로 돌아와 피부과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사람들을 만나기가 꺼려졌다. 그리고 3년이 지나자 피부는 조금 진정이 되었지만, 열이 머리까지 치민 듯했다. 만성두통에 시달렸다. 때때로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 되곤 했다.\n나는 대한민국의 사회 초년생이었다.\n3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하루 종일, 거의 24시간 내내 회사원으로만 살았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 내가 실수한 일, 사람들에게 실망한 일을 퇴근길에 남자 친구에게 이야기했고, 집에 가서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잠들기 전에는 혼자 떠올렸다. 그날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계속 재현시키면서…. 그래도 감정 정리가 되지 않으면 그것을 일기장에 적기까지 했다. 당시 썼던 일기장에는 갖은 나쁜 감정들이 쌓여있다. 잠에 들어서도 끝내지 못하고 온 일을 처리하거나, 상사와 불편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하는 꿈을 꾸곤 했다.\n업무와 인간관계 스트레스로부터 24시간 내내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n그리고 숨이 탁탁 막히던 어느 월요일 아침. 회의실에서 나왔다. 숨이 정상적으로 쉬어지지 않았다.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 없어 밖으로 나갔다. 회사 건너편에 있는 화방에 가서\n충동적으로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샀다.\n지금도 그때 왜 하필이면 화구를 샀을까?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그날 저녁 회사 동기들을 만나 맥주를 한 잔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날 먹은 맥주와 안주를 그렸다. 결혼을 앞둔 동기의 얼굴도 그려 보았다. 집중해서 그리다 보니…\n회사에서 잘 풀리지 않았던 일,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혼난 일, 신경 쓰이는 사소한 말실수 등을 떠올리지 않고 밤을 보내고 있었다!\n방금 그린 그림 속 스팸 초밥을 먹을 때만 해도 나는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며 동기들에게 투덜대고 있었는데.\n그날 이후부터 누군가에게 힘들었던 하루를 이야기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 시간에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는 손을 바삐 움직여야 하고, 눈과 머리는 오로지 그림에 집중을 해야 한다.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전혀 없다. 회사 생각을 완전히 내려 놓을수있는 유일한 시간이자, 굉장한 치료제였다.\n부정적인 감정은 누군가에게 말한다고 덜어지지 않는다.\n듣고 있는 사람도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서 감정이 증폭될 뿐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3년 내내 내뱉어왔다. 하소연하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혼나야 하는 일은 혼나야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사의 언행을 바꿀 순 없다. 처리하지 못한 일은 내일 출근해서 처리하면 된다. 회사 일을 집에 와서 떠올리지 않아도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회사를 떠올릴 시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며, 늘 예민해 있던 나는 마음에 여유가 조금씩 생겨났다. 놀랍게도 각종 질환들이 가라앉기 시작했다.\n근무 중에 ‘오늘 퇴근해서 뭐 그려볼까’ 떠올리는 일만으로도 신이 났다. 처음엔 일상을 그렸지만, 일상은 아무래도 일과 연결고리가 있으니 회사를 다시 떠올리게 될 수 있다. 다른 소재를 찾았다. 휴가 때 다녀온 곳을 그려보기로 했다.\n그렇게 여행을 그림으로도 기억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n. 그림을 통해 행복한 기억을 더욱 극대화시킬 수 있었다.\n회사원인 나의 여행은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물론 핀란드의 호수를 보고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져서 현지에서 스케치북을 덜컥 산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n정말 그리고 싶은 것들은 퇴근 후의 시간을 위해 남겨 둔다.\n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시작된 고난한 하루를 마치고, 행복했던 기억을 그려낸 손그림들이 한 장, 두 장 쌓이기 시작했다.\n지면에 한계로 <다정한 여행의 배경>에는 수록되지 못한 많은 손그림들!\n이렇게 차곡차곡 모인 손그림들이 <다정한 여행의 배경>에도 담겨 있습니다.\n눈치채셨겠지만... 표지 역시 저의 손으로 그린 오타루의 기억입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 예약판매 기간 중에 책을 구매하시면 에코백을 드린다고 합니다. ^^)\n꿈의지도_『다정한 여행의 배경』출간이벤트\n이벤트 대상 도서 구매 시 에코백 증정(포인트 차감)\nhttp://www.yes24.com/eWorld/EventWorld/Event?eventno=144879\n-\n행복의 증폭제.\n여행, 손그림으로\n다시 그리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80","published_date":"2017-08-29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89,"source":"brunch","title":"07화 솔직히 고백하면, 다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다","content":"꽤 많은 작품이\n나의 여행에 동행이 되어 주었다.\n영화와 드라마는 빠져있지만, 『다정한 여행의 배경』 속 여행을 함께한 동행\n이 책을 다 읽었냐고요?\n물론이죠!\n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사실 이 안에는 다 읽지 못한 책이 한 권 있다.\n(이 글이 끝나기 전까지 맞춰보셔도 좋습니다.)\n나는 책에 둘러싸인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비브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을 보고 배경이 된 일본 가마쿠라의 서점을 찾아가 보기도 했고,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을 읽고는 세계 최대 고서점 거리인 도쿄의 진보초에도 다녀왔다. 『장서의 괴로움』을 읽고는 그렇게 책이 많지도 않으면서 책장정리를 하기도 하였다.\n- 『다정한 여행의 배경』 중에서\n책, 영화, 드라마 등 작품 속 배경으로 떠나는 배경여행을 하려니, 다양한 작품을 끊임없이 봐야 했다. 처음엔 책의 배경이 되었거나,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면 무조건 소재가 되겠다 싶었는데, 작품이나 장소에서 큰 감동을 느끼지 못하면 글이 시시해졌다. 내가 20여 년간 산 동네엔 커다란 공원과 방송국이 곁에 있어서 가까이에 드라마 촬영지가 많다. 아침드라마부터 주말드라마까지. 주변에 소재가 넘쳐났지만, 가까운 곳은 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n(동네 산책도 근사한 여행이 되곤 한다)\n, 주변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 중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왕이면 '마음에 남은 작품 속 그곳만으로 해보자!'란 생각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 여행까지 가볼 마음이 드는 작품을 만날 확률은 높지 않다. 그런 작품을 만나기 위해 나는 많은 책을 읽는다. 가 아닌\n산다.\n실은 책을\n사는\n일을 굉장히 좋아한다. 책에 둘러싸이는 일이 즐거운 것이다! 책을 사는 일 만으로도 반은 읽었단 기분이 들어버린다.\n배경여행을 시작한 후부터는 구매하는 책들을 기록해 두는 일도 시작했다. 아직 읽진 못했어도, 언제 어느 책에서 여행의 소재를 얻게 될지 모르니.\nBooklog - 책·영화·드라마 속 그곳,그맛,그말\n책, 영화, 드라마 속 인물들이 다녀간 장소를 직접 가보고, 묘사된 요리도 맛보고, 좋은 문구는 적었습니다. 책, 영화, 드라마를 보고 느낀 마음의 여운을 다시 한 번 느껴보시길 바랍니다.\nhttp://www.istandby4u2.com/booklog\n‘책 속 그곳’으로 떠나는 일은 영상으로 만난 영화, 드라마보다 더 기대되는 여정이다. 텍스트를 읽으면서\n머릿속으로 상상해온 배경을 들고 실제 장소에 도착\n한다. 주인공인 된 듯 감격스러울 때가 많지만, 작품에 묘사된 모습과 사뭇 달라 실망할 때도 있다.\n물론 배경을 먼저 보고 돌아와 작품을 만나는 일도 자주 있다. 존 스타인백의\n『\n분노의 포도\n』\n는 늘 '읽어야지, 읽어봐야지'만 했던 작품이었다. 미국 서부여행 중 시간이 남아 우연히 가게 된 셀리그먼이라는 마을이 66번 도로\nroute 66\n의 거점지였다. 66번 도로는 『분노의 포도』의 주요 무대고. 66번 도로를 달리고 나니, 차일피일 미뤄 왔던 『분노의 포도』를 하루빨리 읽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n한편, 대체 ‘어떤 모습을 한 장소이길래 이토록 어려운 작품을 탄생시켰을까’ 궁금해서 가본 곳도 있다. 남프랑스의 에즈.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영감을 얻은 마을이다.\n다 읽지 못한 책 한 권은 바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n나는 이 책을 두 권이나 갖고 있다.\n(한 가지 궁금한 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표지는 왜 둘 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일까?)\n십 년 간 고독한 사색을 하던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와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내용, 문체, 구성, 형식, 주제... 모든 것이 전무후무한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 나는 『다정한 여행의 배경』을 쓰며 이 책을 세 번째로 펼쳤다.\nhttps://goo.gl/Y3Hb8Q\n처음 읽은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자고로 대학생이라면 '이 정도 책은 읽어야겠지'라며 호기롭게 사 왔다. 두세 페이지를 읽어보니\n대학생이 되었다고 순식간에 똑똑해지는 것이 아님\n을 깨달았다. 그리고 에즈 여행길에 오르며 다시 펼쳤다.\n대학을 졸업했다고 해서 니체를 이해하게 되는 건 아님\n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에즈 여행 글을 정리하며 다시 책장을 넘겼다. 혹시나 쉽게 번역되어 있는 책이 있지 않을까 다른 출판사의 책을 사보기까지 했다.\n사회인이 되었다고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n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집중력 쇠퇴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다.\n결국 나는 40편의 동행 중 한 작품의 앞선 걸음을 따라가지 못한 채,\n『다정한 여행의 배경』\n을 완성했다.\n언젠가는 읽을 수 있겠지.\n이해할 수 있겠지.\n-\n『다정한 여행의 배경』은\n사진 속 책들과 함께 하시면\n더욱 재미있습니다.\n아마도.","url":"https://brunch.co.kr/@istandby4u2/81","published_date":"2017-09-05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0,"source":"brunch","title":"08화 와, 진짜 백과 사진 같네요","content":"반나절 동안 찍고 나와 카메라 화면에 찍힌 숫자를 확인했다.\n4,231장\n. 집을 나설 때만 해도 단 한 장도 들어 있지 않은 빈 SD카드였다.\n말이 되냐고?\n내가 봐도 거짓말 같은 숫자였다.\n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을 데가 어디 있나?\n모터쇼에 가서 찍었다.\n이 정도로 단시간에 무리해서 사진을 찍으면 발생하는 현상. 계단을 오르내릴 때 지옥을 경험한다. 일주일 동안.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은 다행이지만, 문제는 지하철이다. 역 안에서 지상으로 올라올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계단. 다리를 한 번 들어 올리기도 벅찬데, 정확히 특정 부위가 아픈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을 쓸 수가 없다. 파스도 애매하다. 시간이 치유해주길 기다릴 뿐.\n첫 직장은 이토록 많은 사진을 찍어야 하는 곳이었다.\n내가 카메라를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한 것은 백과사전 회사에 입사하고부터다. 그전까지는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있긴 했지만, 풍경 속에 들어간 내 모습을 담아두는 정도였다. 옛날에 찍은 사진을 찾아보면 작품이 따로 없다.\n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건물. 심오하다...\n회사에 들어가서 DSLR 카메라라는 것을 처음으로 들어보았다. 매우 무거웠다. 물론 나의 주요 업무는 백과사전에 수록할 표제어를 선정하고, 프로젝트를 꾸리고, 집필자를 섭외하고, 원고를 받아 편집하는 일이었지만. 사진을 담당하는 직원은 따로 있었지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입사 때 ‘무얼 잘 해서’ 들어왔는지, 나는 '무엇을 담당'하는 사람인지.\n크게 중요하지 않단 사실. 뭐든 다 해야 하고 하게 된다.\n심오한 작품사진을 찍던 나도 백과사전에 수록할 사진을 찍어야 했다.\n‘백과\n百科\n’라는 한자에서 알 수 있듯 백과사전에 담길 수 있는 정보의 범위는 굉장히 넓다. 인물이든, 사물이든, 사건이든, 현상이든, 개념이든\n무언가를 ‘정의 내릴 수 있다’ 면 일단은 백과사전에 수록될만한 후보가 된다.\n물론 여러 제약조건이 있으므로 먼저 수록되어야 할 대상이 선정되고, 차례차례 등재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백과사전에 수록될 잠재력을 갖고 있으니 자료는 모을 수 있을 만큼 모아두는 것이 좋다. 책을 사고, 어디 가면 팸플릿을 챙기고, 안내문, 설명서를 읽고. 사진은 무조건 많이 찍어둘수록 좋다. 생물, 물건, 명소, 풍경 등\n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다각도에서 찍어두어야 나중에 사전에 등재할 때 정의 내리고, 설명하기 쉽다.\n나의 사진은 무\n無\n에서 시작되었다. 노출이고, ISO이고, 셔터스피드고… 매번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되고, 막상 찍을 땐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n그냥 무조건 많이 찍었다.\n믿을 것이라곤 튼튼한 두 팔뿐. 한두 장 찍은 후 카메라 화면을 보고 아주 하얗거나 어둡지만 않으면, 그때부턴 조리개를 열고 닫고, 셔터스피드를 느리게 빠르게 조정할 것도 없이. 대부분 자동으로 조정되게 둔 후 버튼이라곤 무조건 동그란 셔터만 눌러댔다.\n(물론 요즘에는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에 대한 지식이 아주 조금 생겨서 버튼 세 개 정도는 다룰 수 있게 되었다.)\n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야경. 삼각대도 없이 200장 ~ 300장 찍어서 한 장 건졌다.\n백과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터쇼에서 찍는 사진은 으리으리한 수억 대의 슈퍼카가 아니라, 가슴을 한껏 모아 올린 레이싱 모델이 아니라, 주로 이런 사진이다. 사이드미러, 헤드라이트, 타이어, 휠, 범퍼, 손잡이, 주유구, 와이퍼 등등. 이들은 모두 백과사전 표제어가 될 가능성이 있고, 또 이미 등재되어 있다. 게다가 이러한 개념들은 텍스트로 설명하는 것보다 사진 한 장이 명료하다. 그렇게 차 한 대 당 30,40장은 기본으로, 또 전시된 자동차 관련 부품들을 다각도에서 찍었다.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4천여 장이 될 때까지.\n이런 습관은 당연\n여행으로까지 이어져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도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는다.\n친구들로부터 '여행을 좀 즐기라'는 핀잔도 많이 듣지만, 습관적으로 셔터를 계속 눌러댔다. 요즘엔 체력도 좀 떨어졌고, 의욕도 꺾여서 신입사원 때만큼은 못 찍지만 그래도 많이 찍는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와 친구들과 찍어온 사진을 교환하다 보면, 나의 사진이 유독 튄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 찍어서 튀는 것이 아니라\n(당연),\n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조금 지루해 보이기도 했다.\n얼마 전 회사에서 진달래 사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내가 찍어둔 사진을 내보인 적이 있다. 그때 한 동료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n“와 정말 백과사전 사진 같네요.”\n'동네 산책하다 찍은 사진인데…'\n드디어 답을 찾은 듯하다. 왜 내 사진이 친구들의 사진과 달라 보였는지.\n내가 찍은 사진은 백과사전 같구나!\n[덧붙임] 백과사전 사진이라고 크게 특별할 것은 없지만, 가장 큰 특징은 아름다운 모습만을 부각하지 않는 것일 듯합니다. 그리고 아름답게 보정하지 않습니다. 주관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코스모스를 찍는다고 하면 위의 두 장의 사진처럼 줌을 당겨서 꽃만 찍는 게 훨씬 더 화려하고 보기에 좋습니다. 노출을 높이거나, 색을 보정하면 더욱 예쁘죠.\n그러나 백과사전 사진은 한 장의 사진 안에 최대한 많은 설명이 담겨 있을수록 좋습니다. 식물이라면 꽃, 잎, 줄기의 모양, 전체적인 크기, 꽃이 차지하는 비중, 서식지를 알 수 있는 주변 풍경 등이 포함되어 있으면 좋죠. 최대한 많은 정보가 포함된 사진은 대표 사진이 됩니다. 꽃잎의 색도 식물의 종을 구분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므로 육안으로 본 색과 가까운 색을 남깁니다. (물론 이론상 그렇습니다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예쁜 사진에 마음이 끌리기 마련입니다. 실천은 꽤 어렵습니다.)\n이러한 미묘한 특징은 <다정한 여행의 배경> 속 여행사진에도 담겨 있을지 모르겠습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 속 사진은 화려하거나 근사하진 않지만 편하게 보실 수 있습니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 배송이 시작되었습니다.  ^^ 곧 만나요!","url":"https://brunch.co.kr/@istandby4u2/82","published_date":"2017-09-12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1,"source":"brunch","title":"09화 세상의 마지막 날 읽을 책이 생겼다","content":"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n띵동. 초인종이 울렸다.\n\"택배요!\"\n남편이 물었다.\n\"뭐 시켰어?\"\n\"아니 시킨 거 없는데?\"\n박스를 열어보니 똑같은 얼굴을 가진 책 20권이 들어 있었다. 저자 증정본. (그럴 리 없지만)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듯 따뜻했다. 지은이에 나의 이름이 적힌 책과 함께 캐나다 여행을 갈 수 있다니! 한 권을 챙겨 여행길에 올랐다. 유독 사람이 많던 공항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고,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누구보다도 나의 책을 기다린 아빠가 재빨리 가져갔다. 자리 조명을 켜고 열심히 읽고 계신 아빠의 모습을 보니 지난날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블로그에 올리고, 웹매거진에 기고를 하고, 출판사에 투고를 하고, 계약을 하고, 표지를 선정하고, 교정을 본 시간들... 모든 과정이 설렘의 연속이었기 때문일까.\n막상 책을 받고 나서는 두근대는 마음보다는 안도와, 혹시나 이상한 점은 없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이 뒤엉켰다.\n기묘한 기분이었다.\n책 출간의 과정을 돌아보면 가장 설렜던 순간은 표지를 결정할 때였다. 카카오톡에 시안이 나왔다는 메시지가 떠있었다. 오전 회의 중이었다. 평소 회의시간에 그리 적극적이지도 호의적이지 않은 내가 입가에 미소를 띠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가슴이 콩닥거리는 것을 억누르기 위해서. 회의실에서 나와서도 바로 열어보지 못했다. 점심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바로 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밥을 먹고 시안 파일을 열었다.\n'와아 근사하다!'\n몇 개 안이 와있었지만 이미 내 마음에 쏙 든 표지는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도, 역시 그 표지로 표가 몰렸다. 오타루 손그림이 담긴 표지. 남편과 결혼식을 올린 오타루였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야 늘 즐겁지만, 이제까지 보낸 그림시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n행복한 마음을 충분히 누리며 마음을 다해 그린 그림.\n엄마는 '원본 그림에도 눈이 있는지' 물었다.\n\"물론이죠!\"\n다 쓴 칫솔에 흰색 유성 물감을 잔뜩 묻혀서 흩뿌린 눈이었다. 내 생애 오타루에서 만큼 많은 눈을 맞았던 적이 없으니까. 눈은 충분히 뿌려야지. 복도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아 있는 아빠 손에 든 <다정한 여행의 배경>의 표지는\n그 밤들을 떠올리게 했다. 신나게 칫솔을 튕겼던 밤, 가스 등불이 두터운 눈 위에 내려앉아있던 오타루의 밤.\n쿡쿡 웃음이 났다.\n우리 가족은 작년에도 같은 방향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 LA에 닿았다. 그곳에서 우린 '더 라스트 북스토어'란 책방에 들어갔다.\n\"서점의 아름다움은 ‘책을 어떤 배경과 액자로 보여주느냐’를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라고 조시는 말한다. 지구의 마지막 날, 어떤 책을 읽고 싶을지를 생각하며 서점 안 서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n- 시미즈 레이나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n나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처럼 두근거리는 미국의 도시여행을 꿈꿨다. 그러나 커다란 코리아타운을 안고 있는 이 도시에 와버렸다. 가까이에 할리우드가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LA에는 꼭 가보고 싶었던 작품의 무대가 없었다. 딱히 갈 곳이 없었다. 그때 책 한 권이 불현듯 생각났다. 구성이 아름다워 소장용으로 사둔 시미즈 레이나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었다.\n- 『다정한 여행의 배경』 중에서\n더 라스트 북스토어에서 시간을 보낼 때만 해도 나는\n'세상의 마지막 날엔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무척이나 고민했다.\n내가 좋아하는 하루키를 읽어야 할까. 당시 너무나도 깊이 빠져있던 미즈무라 미나에의\n『\n본격소설\n』\n을 읽어야 할까.\n-\n이젠 세상의\n마지막 날이 온다 해도\n고민하지 않아도 괜찮다.\n『\n다정한 여행의 배경\n』\n이\n세상에 나왔으니까.\n다정한 여행의 배경\n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기! 『다정한 여행의 배경』은 전업 여행작가도 아니고 매일 아침 정시에 출근 해야 하는 직장인인 저자가 5년간 책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감동의 공간을 찾아 다닌 기록을 담은 책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의 아름다운 문장을 쓴 일본의 에치고 유자와 다카한 료칸,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에 등장한 런던의 이탈리아 가든, 미국 나바호족 인디언 거주 지역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 등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화려하진 않지만 개성 넘치는 그림이 담겨있다. 같은 장소 같은 배경이라도 사진과 그림이 각각 다른 감성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작품의 배경을 찾아 떠난 여행이 내가 본 작품에 대한 감상을 보다 풍성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여행을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n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496496","url":"https://brunch.co.kr/@istandby4u2/83","published_date":"2017-09-19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2,"source":"brunch","title":"10화 읽어도 읽어도, 다시 읽어도","content":"교정을 본 주는 하루에 거의 3시간씩 자며 원고를 보았다. 마지막 교정을 끝내고 나서는, 차마 다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고치고 싶은 부분이 계속 보일 것 같았다. 자려고 누우면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아 두려움이 엄습했다.\n내 글을 고치는 내내 생각했다.\n'아… 이젠 제발 다른 사람의 문장을 보고 싶다.'\n'그림을 좀 그리고 싶다. 글자는 지겹다.’\n책을 완성하기까지 글은 여러 차례 고쳐졌다. 출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휘갈겨 쓴 초고는 노트북으로 옮겨져 몇 번이고 수정되었고, 블로그에 공개하기 위해 매만져졌다. 아리송한 표현은 기자인 남편에게 물어보곤 했다. 또 내가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나투어 웹진에는 편집 담당자가 있어 오탈자 등을 체크하고 발행해주었다. 이 과정 안에만 해도 지은이 나 외에 많은 사람이 있다.\n이제까지 '배경여행가'랍시고 작품 이야기만 해왔는데 사실 나의 첫 책 안엔 고마운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있다\n. 부족한 문장을 살펴봐준 사람들 뿐 아니라, 여행의 추억을 완성시켜준 많은 이들.\n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눈 앞에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나의 친구가 서있다.\n(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에 갔다.)\n우린 결혼식에 다녀온 한 일본 여성을 헬싱키의 사우나에서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에스토니아 탈린에서는 총각파티를 하고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n주문을 하고 화장실(남녀공용)에 들어가려는데, 한 청년이 나오면서 “냄새가 심하게 나요. 하지만 저 때문이 아니에요”라고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넸다. 속으로 ‘이런 일로 오해받기 싫은 마음은 전 세계 공통이구나’ 생각하며 웃었다.\n‘냄새를 공유했다’는 데 연대감을 느꼈던 것일까? 새우요리를 한참 먹고 있는데, 나보다 앞서 화장실을 사용한 청년이 우리 테이블로 와서 말을 건넸다.\n“친구가 곧 결혼을 해서 파티 중인데요. 아무 말이라도 괜찮으니 수첩에 메시지 하나만 적어주세요.”\n일본인 친구와 나는 각자의 언어로 ‘결혼 축하합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시길 기원합니다’라고 적었다. 대여섯 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옹기종기 모여들어 작은 수첩을 들여다봤다. 서로 줘보라며 돌려 보았다. 한글과 한자가 섞인 히라가나를 어찌나 신기해하던지……. 붉은 볼에 순수한 미소를 띤 청년들이었다. 내 마음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진심으로 신랑과 그의 친구들의 행복을 빌었다.\n- <다정한 여행의 배경> 중에서\n그리고 여행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 글로 남겨둔 덕분에 그들의 얼굴은 머릿속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n스토브 바로 옆은 이미 할머니 한 분과 할아버지 두 분의 여행 조합에 의해 선점되어 있었다. 스토브가 있는 열차에서는 유니폼을 입은 안내원이 가는 여정 내내 함께했다. 오징어를 주문하면 오징어를 구워주고,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었다. 다자이 오사무도 안내원과 수다를 떨며 집으로 향했을까?\n할아버지 할머니 그룹은 일본의 남쪽 도시 후쿠오카에서 혼슈의 최북단인 이곳 아오모리까지 여행을 왔다고 했다. 스토브 열차의 낭만을 충분히 이해하는 연령대인지 오징어도 샀다. 나는 옆에서 남편이 “스토브 하나 붙어 있다고 400엔이나 더 받는 것은 도둑”이라며 툴툴대고 있었기 때문에 맥주 두 캔만 주문했다.\n할머니가 다 구워진 오징어를 휴지에 담아 나눠주셨다. 여행을 하다 보면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세련된 호의를 베푸는 어른들을 만나곤 한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싶다 생각했다.\n- <다정한 여행의 배경> 중에서\n다정한 여행의 배경\n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기! 『다정한 여행의 배경』은 전업 여행작가도 아니고 매일 아침 정시에 출근 해야 하는 직장인인 저자가 5년간 책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감동의 공간을 찾아 다닌 기록을 담은 책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의 아름다운 문장을 쓴 일본의 에치고 유자와 다카한 료칸,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에 등장한 런던의 이탈리아 가든, 미국 나바호족 인디언 거주 지역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 등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화려하진 않지만 개성 넘치는 그림이 담겨있다. 같은 장소 같은 배경이라도 사진과 그림이 각각 다른 감성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작품의 배경을 찾아 떠난 여행이 내가 본 작품에 대한 감상을 보다 풍성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여행을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n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496496\n물론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은 몇 자의 언어로 표현하기엔 오히려 마음이 가벼이 보일 것 같아 걱정이다. 여행의 동행은 물론, 배경이 된 작품을 함께 본 후 감상 교환, 원고 교정작업 등 모든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다.\n책이름을 결정해야 할 때 처음엔 ‘배경 여행’ 혹은 ‘여행의 배경’, ‘배경을 천천히 거닐다’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정한'이란 수식어가 붙은 책 제목을 받아보고 주변에 의견을 물었다. 모두들 나의 살갑지 않고 냉정한 성격을 비웃으며 “안 어울린다”라고 놀려댔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n붙어야 할 단어가 붙었단 생각이 든다.\n아마도 이 제목은 한 작품에 빠져들어 유명한 관광지도 아닌 곳들을\n혼자만 신나서 앞서 걷던 내 곁에 따뜻이 있어준 고마운 사람들\n덕분에 붙었을 것이다. 아니, 붙었다.\n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n다른 사람의 카메라에 담긴 내 모습은 늘 앞서 걷는 뒷모습뿐 일 때가 많다.\nㅡ\n다음 주 수요일에는\n다시 시작하는 배경여행 이야기로\n찾아오겠습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84","published_date":"2017-09-26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3,"source":"brunch","title":"11화 태풍이 다가오던 맑은 날, <태풍이 지나가고> 배경에서","content":"“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n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n“아빠는.\n아직 되지 못했어.\n하지만 되고 못 되고는 문제가 아니야.\n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n“정말?”\n“정말이야. 정말. 정말.\n….\n정말이야.”\n- <태풍이 지나가고> 중에서\n<태풍이 지나가고>를 처음 보았을 땐 이 장면의 의미를 놓쳤다. 두 번째 보면서 주인공 료타가 왜 네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는지 알아차리고 무릎을 쳤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왜 그렇게까지 울컥했을까. 내가 쓴 첫 책 <다정한 여행의 배경>이 바로 앞에 꽂혀 있었기 때문일까. 밴쿠버행 비행기에서 <태풍이 지나가고>를 볼 수 있어 너무나도 반가웠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고 아껴두었다.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캘거리에서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었으니까. 그리고 도쿄에는 이 영화의 배경이 있으니까.\nDaum영화 <태풍이 지나가고>\n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한 채유명 작가를 꿈꾸는 사설탐정 ‘료타’는태풍이 휘몰아친 날,헤어졌던 가족과 함께 예기치 못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아직 철들지 않은 대기만성형 아빠 ‘료타’조금 더 나은 인생을 바라는 엄마 ‘쿄코’빠르게 세상을 배워가는 아들 ‘싱고’그리고 가족 모두와 행복하고 싶은 할머니 ‘요시코’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 알 수 없는 ‘료타’의 인생은태풍이 지나가고 새로운 오늘을 맞이할 수 있을까?\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2483\n기내에서 다시 보게 된 <태풍이 지나가고>는 이미 줄거리를 알고 있음에도 잠시도 게을리 볼 수 없는 영화였다. 매분 매초 이야기가 꽉꽉 차있다. 새로운 장면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고, 몰랐던 의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n영화의 주인공은 한 가족이다. 아니 가족이었다고 해야 하나. 아빠 료타와 엄마 쿄코는 이혼했다. 료타는 젊은 시절 문학상을 하나 받았고, 그때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유명 작가가 되길 꿈꾸며 가난하게 살고 있다. 생계를 위해 사설탐정 일을 하지만, 글을 쓰기 위한 일종의 취재라고 말한다. 아들 싱고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고, 엄마에겐 새 남자친구가 있다. 싱고와 료타는 한 달에 한 번 만난다. 태풍이 다가오던 날, 료타는 싱고를 데리고 자신의 엄마이자 싱고의 할머니인 요시코의 집으로 향한다.\n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여 말하는 아빠에게 싱고도 엄마도 눈을 흘기며 이야기한다. 세 번 연속으로 말하면 거짓말 같다고. 둘은 아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늘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일’이라 말하는 아빠에게 “정말이냐” 묻는 싱고. 그 말에 또 다시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며 대답해버린 아빠. 마지막에 한 번 더 “정말이야”를 덧붙인다. 영화관에서 보았을 땐 왜 이 장면이 보이지 않았을까.\n나는 새로이 발견한 장면의 의미를 몇 번이고 되새기며, 싱고의 할머니집이 있는 단지로 향했다. 단지란 '생활, 산업 등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를 집중시켜 모아둔 구획'이란 뜻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쓰는 아파트 ‘단지’. 일본에서는 이 ‘단지’가 영화나 드라마, 만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고, ‘단지’를 주제로 하는 잡지도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주거문화라 ‘이런 게 소재가 되나’ 싶지만, 단독 주택이 많은 일본에서는 단지 생활과 문화를 조금 더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n<태풍이 지나가고>의 무대가 된 기요세 아사히가오카 단지\n清瀬市の旭ヶ丘団地\n는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실제로 9살부터 28살까지 산 마을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도쿄 도에 속해 있지만, 도쿄 역에서 전차를 타고 1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 이곳을 찾아가며, 나는 도쿄가 둥글지 않고 횡으로 기다란 도시임을 알게 되었다. 베드타운 성격의 마을이기 때문에 도심으로부터 한참 떨어진 이곳까지 가기 위해 나는 전차에 앉아 두 시간을 보냈다. 니자라는 역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10분을 더 가서 아사히가오카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부터는 ‘이곳이 과연 도쿄가 맞나’ 싶은 풍경이 이어졌다. 밭이 늘어서 있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 파주 외갓집으로 향하는 기분이 되었다.\nGoogle 지도\nGoogle 지도에서 지역정보를 검색하고 지도를 살펴보거나 운전경로 정보를 검색합니다.\nhttps://www.google.co.kr/maps/place/%E5%9B%A3%E5%9C%B0%E3%82%BB%E3%83%B3%E3%82%BF%E3%83%BC%EF%BC%BB%E6%B8%85%E7%80%AC%E5%B8%82%EF%BC%BD%EF%BC%88%E3%83%90%E3%82%B9%EF%BC%89/@35.7907306,139.535294,17z/data=!4m19!1m13!4m12!1m6!1m2!1s0x6018e86c5583ba75:0xf39eb3e31185947c!2z7J2867O4IOOAkjM1Mi0wMDIxIFNhaXRhbWEta2VuLCBOaWl6YS1zaGksIEF0YWdvLCAzIENob21l4oiSNywg5Zuj5Zyw44K744Oz44K_44O877y75riF54Cs5biC77y977yI44OQ44K577yJ!2m2!1d139.5409!2d35.79465!1m3!2m2!1d139.5392952!2d35.7930646!3e2!3m4!1s0x6018e86c5583ba75:0xf39eb3e31185947c!8m2!3d35.79465!4d139.5409?shorturl=1\n료타가 홀로, 또 싱고와 함께 내린 단지센터 버스정류장에서 우리도 내렸다. 한적하고 오래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n(아사히가오카 단지는 1967년부터 입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n태풍이 오기 전엔 날씨가 유난히 맑다고 했던가. 찬연한 날이었다. 맑은 하늘이 투명한 햇살을 뿌리고 있었고,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매미가 크게 우는 소리, 가끔 자전거가 지나가며 내는 소리 정도였다. 무엇보다 기쁜 일은 영화 속 배경과 모든 것이 똑같이 남아있단 사실이었다. 주인공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오른 정류장도, 맞은편에 있는 빵집도, 아들을 배웅하러 나온 요시코와 료타가 걷던 길도, 싱고가 복권인 줄 알고 주운 종이가 있던 잔디도, 요시코가 손을 흔들던 아파트 난간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그대로였다.\n영화에도 등장하는 주민들은 거의 노인뿐인데 실제로 아사히가오카에서 마주친 주민들도 거의 70,80세는 되어 보였다. 영화 속 모습에서 조금 더 나이가 든 것만 같이. 료타가 요시코에게 사다준 몽블랑 케이크를 사러 양과자점 호른\nホルン\n에 들어갔다. 얼핏 보아도 오래된 공간에서 나는 주인 할아버지께 “벤치에 앉아서 먹고 싶은데 일회용 포크를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할아버지가 건네준 포크가 든 비닐엔 갈색 때가 잔뜩 껴있었다. 일본에서 보기 드문 모습을 한 그 포크 비닐이 이곳의 낡음을 더욱 깊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데 였다면 바꿔달라고 했을 만도 한데, 감사히 받아 들고 나왔다. 기분이 상하지 않았고, 다른 포크를 받아도 비슷할 것 같았다.\n마을을 떠나는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남편은 곁에서 기다리던 할머니들께 먼저 타시라고 양보했다. 할머니들은 도리어 “왜 안 타느냐?” 물었고, “먼저 빨리 타라”고 다그쳤다. 한 분은 다음 정류장에서, 다른 한 분은 다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다음 정류장까지는 200 ~ 300미터 거리. 느리게 걸어도 5분이면 도착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걸음으로 메울 수 있는 간격이었다.\n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영화에서 료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배경이다. 기요세 역\n清瀬駅\n에서 료타는 서서 먹는 저렴한 소바를 사먹고 버스에 오른다. 나는 그 가게를 구경만 하고 전차에 탔다. 일본 남부 지역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던 태풍은 곧 이곳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태풍은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과연 꿈을 이루었는지, 꿈을 품고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없다. 료타처럼 첫 책이 세상에 나와 있지만.\n다정한 여행의 배경\n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기! 『다정한 여행의 배경』은 전업 여행작가도 아니고 매일 아침 정시에 출근 해야 하는 직장인인 저자가 5년간 책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감동의 공간을 찾아 다닌 기록을 담은 책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의 아름다운 문장을 쓴 일본의 에치고 유자와 다카한 료칸,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에 등장한 런던의 이탈리아 가든, 미국 나바호족 인디언 거주 지역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 등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화려하진 않지만 개성 넘치는 그림이 담겨있다. 같은 장소 같은 배경이라도 사진과 그림이 각각 다른 감성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작품의 배경을 찾아 떠난 여행이 내가 본 작품에 대한 감상을 보다 풍성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여행을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n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496496","url":"https://brunch.co.kr/@istandby4u2/85","published_date":"2017-10-03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4,"source":"brunch","title":"태풍이 지나가고 ","content":"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에서도 위험하단 이유로 폐쇄해둔\n문어 미끄럼틀은 이젠 아예 철거되어 실물을 볼 수 없다.\n료타가 성장한 마을은 그대로지만.\n물론, 배경여행은 계속됩니다\n태풍이 다가오던 맑은 날, <태풍이 지나가고>의 배경에서 |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아빠는.아직 되지 못했어.하지만 되고 못 되고는 문제가 아니야.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정말?”“정말이야. 정말. 정말.….정말이야.”- <태풍이 지나가고> 중에서 <태풍이 지나가고>를 처음 보았을 땐 이 장면의 의미를 놓쳤다. 두 번째 보면서 주인공 료타가 왜 네\nhttps://brunch.co.kr/@istandby4u2/85","url":"https://brunch.co.kr/@istandby4u2/86","published_date":"2017-10-08T06:1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5,"source":"brunch","title":"12화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content":"밴쿠버 공항에 도착하니 꽤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토요일 점심에 탄 비행기는 시계를 다시 토요일 아침으로 돌려두었다. 한국보다 16시간이 느린 캐나다에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우리 가족은 우선 렌터카를 빌려 린 캐니언 공원\nLynn Canyon Park으로\n향했다. 책을 마무리하느라 여행 준비가 부족했던 나는 밴쿠버에서 가보고 싶은 곳을 딱 한 곳 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만지고 있었다. 지난해 다녀온 제주의 비자림이 떠올랐다. 폭우가 쏟아져 우비를 입고도 흠뻑 젖었던 기억. 이번에도 만만치 않게 고생스러운 숲 산책으로 캐나다 여행의 문을 열게 될 듯하다.\n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n한층 더 성숙하고 현실적인 색채로 그려진 한 장의 아름다운 사진 같은 이야기! 《달팽이 식당》의 저자 오가와 이토의 소설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진 세 여자가 회피하듯 떠나 새로운 풍경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진실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세 편의 단편을 엮은 것이다. 위태로운 삶에서 탈출한 세 여자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가슴 울리는 문장들로 엮어진 지독한 아픔과 희망의 이야기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은 이 슬픔에도 언젠가 끝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젖을 채 떼기 전에 아이를 잃고 삶의 의지도 잃어버린 요시코. 우연히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성적인 의도 없이 수유를 해 주는 ‘모유의 숲’이라는 기묘한 가게를 알게 되고, 그곳에서 일하게 된 요시코의 이야기를 담은 《모유의 숲》, 어릴 적 엄마에게 방치되어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었고, 평생 증오하던 엄마가 죽자 그녀가 남긴 꽃무늬 슈트케이스를 들고 어린 시절을 보낸 캐나다로 떠나게 된 가에데의 이야기를 담은 《서클 오브 라이프》, 우연히 만난 첫사랑과 무작정 몽골로 떠난 미미의 이야기를 그린 《공룡의 발자국을 따라서》를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자신과 타인을 위로하는 진정한 방법을 가르쳐 준다.\n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25560854\n긴 휴가를 낸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캐나다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마침 오가와 이토의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이란 단편소설집을 읽고 있었다. 오로라가 근사하게 그어진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사온 책이었다. 첫 번째 단편소설부터 독특한 설정이 무척 인상 깊어서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처음 수록된 소설에는 돈을 내고 모유를 아기처럼 빨아먹을 수 있는 가게가 나온다. 퇴폐업소는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n'서클 오브 라이프’에 들어서니 주인공이 걸은 숲, 린 캐니언 공원에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n밴쿠버 외곽에 있다고 한다. 마침 캐나다로 떠나는 가족 여행에 며칠이나마 합류하기로 하고, 비행기표를 끊었다.\n걷기 힘들 만큼 위험한 곳에는 조그만 길이 만들어져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연 그대로였다. 규모 또한 상당했다. 그런데도 이곳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이 아니라 밴쿠버라는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공원이었다.\n-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 서클 오브 라이프> 중에서\n1912년에 문을 연 린 캐니언 공원은 현재 250 헥타르 규모로 밴쿠버에서 가장 크고 인기 있는 공원이라고 한다. 소설 속 문장처럼 밴쿠버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 비가 그치기 전 공원에 도착해 버렸다. 첫날부터 우비를 꺼내 입고, 비 냄새가 섞여 더욱 신선한 숲의 공기를 내뿜던 린 캐니언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n나무들이 좀처럼 휘지 않고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있었다. 위를 한참 올려다 보아도 얼마나 커다란지 가늠이 안 되는 크기. 중간중간 쓰러져 있는 나무의 몸통을 따라 뿌리에서 줄기 끝까지 걸어보았다. 그제야 나무들이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 있는지 헤아려진다. 땅에서, 돌멩이에서 시작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이끼도 깨끗하고 앙증맞다. 이곳에 오기 얼마 전 한국에서 차로 몇 시간을 달려 이끼계곡까지 다녀온 일이 무색해졌다. 이토록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이끼인데.\n린 캐니언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만날 수 있다. 깊은 협곡 위에 걸린 철제 다리, 서스펜션 브리지\nSuspension Bridge\n. 바닥에서 50m 위에 걸려 있는 다리에서는 밑을 내려보는 일은 고사하고 난간을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간다. 다리가 꽤 많이 흔들렸다. 사진은 찍어야겠고, 몸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한쪽 손은 난간에서 뗄 수 없고, 비가 내려 바닥은 미끄럽고... 겁쟁이인 나에겐 난이도가 높은 길이었다. 게다가 다리 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에 서둘러 건너기도 어렵다.\n<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의 두 번째 단편 '서클 오브 라이프’의 주인공은 가에데, 우리말로 '단풍'이란 이름을 가진 여자다. 히피문화에 빠진 가에데의 엄마는 단풍이 그려진 국기를 가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캐나다에서 가에데를 낳았다. 어린 가에데는 캐나다의 숲 속에서 자급자족을 하는 커뮤니티 안에서 성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아픈 기억을 갖게 된다. 엄마의 여동생인 이모의 도움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가에데가 다시 캐나다에 도착했다. 노숙자가 된 엄마가 죽었단 소식을 들은 뒤였다. 엄마가 남긴 유일한 유품, 낡은 꽃무늬 슈트케이스와 함께.\n밴쿠버에서 지내는 마지막 날 오후, 나는 다시 린 캐니언 공원에 가기로 했다. 왠지 모르게 가고 싶었다. 이번에는 꽃무늬 슈트케이스를 가지고 간다. 열쇠도 주머니에 넣었다.\n-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 - 서클 오브 라이프> 중에서\n첫 일정부터 무리할 순 없어 우리는 숲길을 잠시 산책하고 서스펜션 브리지를 다시 건너 돌아왔다. 호기심 많은 아빠가 현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자, 동생이 '모르는 사람 아니냐? 왜 먼저 아는 척을 하냐?'라고 핀잔을 주었다. 앞서 걷던 나는 뒤를 돌아 아는 척을 했다.\n“아니야. 괜찮아. 여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끼리 '헬로, 헬로' 하는 거래.”\n가에데가 그랬다.\n<\n다정한 여행의 배경\n>을 받아보고, 린 캐니언 공원을 걷게 되었을 때 나는 조금 안도했다.\n다시 시작하고 있구나. 배경 여행.\n책이 나왔다고 이 여행이 끝나 버릴까 봐, 시시해질까 봐, 의욕을 잃었을까 봐 내심 노심초사했던 모양이다. 동행 <이 슬픔이 슬픈 채로 끝나지 않기를>의 제목을 빌려 ‘이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세상에 좋은 작품은 계속해서 나올 테니. 그 안에 근사한 배경이 들어있을지 모를 테니.\n'<다정한 여행의 배경>을 엮다' 연재에 동행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배경 여행 이야기를 종종 들려드릴게요.\n다정한 여행의 배경\n감명 깊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을 찾아가는 소소한 여행기! 『다정한 여행의 배경』은 전업 여행작가도 아니고 매일 아침 정시에 출근 해야 하는 직장인인 저자가 5년간 책과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감동의 공간을 찾아 다닌 기록을 담은 책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설국》의 아름다운 문장을 쓴 일본의 에치고 유자와 다카한 료칸,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 열정과 애정에 등장한 런던의 이탈리아 가든, 미국 나바호족 인디언 거주 지역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포인트 등 저자는 마흔 개의 작품 속으로, 마흔 가지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흔 번의 여행을 떠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화려하진 않지만 개성 넘치는 그림이 담겨있다. 같은 장소 같은 배경이라도 사진과 그림이 각각 다른 감성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작품의 배경을 찾아 떠난 여행이 내가 본 작품에 대한 감상을 보다 풍성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여행을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n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87496496","url":"https://brunch.co.kr/@istandby4u2/87","published_date":"2017-10-10T15:0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6,"source":"brunch","title":"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content":"나는, \"수건인가?\"하고 아는 체 하려다 그(황수건)가 나를 보면 무안해할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휙 길 아래로 내려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었다. 그는 길은 보지도 않고 달만 쳐다보며, 노래는 그 이상은 외우지도 못하는 듯 첫 줄 한 줄만 되풀이하면서 전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담배를 다 퍽퍽 빨면서 지나갔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n- 이태준, <달밤>의 끝\n“이게 소설이라고? 일기 아니야?”\n남편이 물었다.\n“황수건이란 사람. 진짜 있었던 사람 같지?”\n황수건이 실제로 성북동에 살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린 반달이 환하게 밝은 밤.\n성북동에 닿았다.\n주말에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가 느지막이 일어나기도 했고, 단풍이 예쁜 곳이야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 그동안 가보길 별러 온 성북동을 택했다. 사실 난 4년 여동안 종로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성북동이 꽤 익숙하다. 한 땐 그쪽에 있는 칼국수 집에 꽂혀, 또 다른 한 때는 돈가스 집에 꽂혀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저녁을 해결하러 가곤 했던 동네.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든 곳이 어느 날 갑자기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회사에서 국내외 작가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다 발견한 이태준(1904 ~ 미상)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가 성북동에 살았고, 또 실제 살았던 집이 여전히 남아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몇 달간 성북동에 저녁을 먹으러가 아니라, 밤 산책을 하러 꼭 한 번 가봐야지 별러 온 것이다. 어서 밤이 오길 기다리며 이태준의 소설 <달밤>을 읽었다. 매우 짧은 단편이라 오래 걸리지 않았다.\n달밤\n한국 근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작가들의 작품...\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94353449&g=KOR\n<달밤>엔 황수건이란 아둔한 인물이 등장한다. 문안에서 성북동으로 이사 온 주인공 ‘나’\n(작가 이태준 자신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n는 황수건이란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신문배달 보조일을 하고 있는데, 그의 소원은 정식 배달원이 되는 것이다. 원래 학교에서 급사 일을 했지만 쫓겨났고, 지금은 형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나’는 눈치가 없고 미련하지만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황수건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싫지 않다. 어느 날 황수건은 ‘드디어 내일부터 정식 배달원이 된다’고 신이 나서 집에 찾아왔다. 그러나 결국 보조 배달원 자리마저 잃고, 실패는 거듭된다. ‘나’에게 삼 원을 받아 시작한 참외 장사도 망하고, 아내까지 집을 떠난다. 이토록 답답하고 슬픈 인생이 있나 싶지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과 같이 ‘황수건’의 순진무구함에 빠져들었다. 요령 없는 그가 조잘조잘 떠드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졌다.\n지금은 ‘수연산방’이라고 하는 전통찻집이 된 이태준의 집은 내가 이제까지 다섯 번은 족히 갔을 돈가스 집 바로 곁에 있었다. 돈가스를 먹으러 그렇게 자주 와놓고 이런 곳이 있단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니.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n달밤의 수연산방은 아름다웠다.\n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맡겨진 이태준은 가난에 허덕였다고 하는데… <달밤> 속 묘사와 달리 이젠 부촌이 된 동네에 위치한 탓인지, 아니면 집을 물려받은 자손들이 잘 가꾸어 온 덕분인지 굉장히 근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태준은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았고, <달밤>\n(역시!)\n, <돌다리>, <코스모스 피는 정원>, <황진이> 등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러다 1946년 7, 8월경에 월북해서 초기에는 평양조선문화협회 방문 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도 다녀오고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다 1956년 친일적인 작품을 썼단 죄목으로 함흥까지 쫓겨났다. 그곳에서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했다고 하는데, 이후 삶은 묘연하다.\n(참고 :\n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n)\n우린 수연산방에서 차 두 잔과 인절미 떡 하나를 시켰다. 이렇게해서 25,000원. 이곳의 높은 찻값이 이태준의 삶과 대비되어 거북한 마음이 들었다. 유감하였다.\n수연산방의 밤에서 빠져나와 와룡공원까지 올라갔다.\n반짝이는 서울땅 위로, 높이 솟은 서울 성곽 위로,\n반만 차오른 달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n수연산방\n서울 성북구 성북로26길 8","url":"https://brunch.co.kr/@istandby4u2/90","published_date":"2017-11-02T14:04+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7,"source":"brunch","title":"자흔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 빛이었다","content":"<채식주의자>를 먼저 읽은 남편이 정말 좋은 소설이지만 권하진 않는다고 했다. 울적해질 수 있다고. 게다가 나는 어떤 작가가 상을 받고 나면 모두가 우르르 같은 작품을 읽는 일을 싫어한다. 그렇다고 상 받은 작품을 싫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한동안 멀리 하다가 나중에야 읽고는 뒷북을 둥둥 두드린다. 남들은 이미 감흥이 식어버렸는데 나 혼자 ‘너무 좋다’며 흥분하여 떠들어 대곤 한다. 물론 호응을 얻지 못한다. 어쨌든 한강의 작품을 아직 읽고 싶지 않은 시기였는데, 여수 여행을 가려고 자료조사를 하다가 한강의 <여수의 사랑>이란 소설집을 발견했다. 그리고 몇 장을 넘기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한강의 문장을 읽지 않았던 나 자신이 안쓰러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n나의 모국어가 이토록 아름답고 다채로운 표현을 품고 있었음을 그의 작품을 읽고 깨달았다.\n꽤 섬뜩한 경험이었다. 지난 30년간 써온 나의 언어가 얼마나 미천한지 알게 된 사건이니까.\n여수의 사랑\n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의 첫 소설집 『여...\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32022802&g=KOR\n소설집 안엔 총 여섯 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소설이 ‘여수의 사랑’이고. 나는 여수로 떠나기 전날 밤 ‘여수의 사랑’을 다 읽고 나서, 바로 지도 앱을 켜서 소설 속 지명을 검색해보았다.\n가상의 지명일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곳은 실재했다.\n여수에서 가보고 싶은 곳은 오로지 한 곳으로 좁혀졌다. 그리고 가을의 문턱에서 나는 여수에 도착했다. 소설 속 정선이 여수로 향하던 날처럼 폭우가 쏟아지진 않았다. 새벽에 약한 비가 잠시 내리고 지나간 시간이었다.\n‘여수의 사랑’엔 두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자흔과 정선. 정선은 어릴 때 엄마를 잃고, 술주정꾼인 아버지에 의해 동생과 함께 바다에 내던져졌다. 자신만이 살아남았고, 그 기억은 극심한 결벽증을 낳았다. 집세를 나눠낼 룸메이트가 필요하지만 모두 정선의 끔찍한 결벽증을 보고 집을 떠났다. 그리고 어릴 때 기차에 버려진 사생아 자흔이 들어온다.\n둘은 ‘여수’란 공간의 기억을 공유하게 된다.\n소제\n전남 여수시 소호동\n여수에서 가봐야 하는, 가고 싶은 유일한 곳은 소제마을. 사람들이 북적이기 전에 가자고 새벽부터 집을 나선 우리는 너무 일찍 여수에 도착해버려 아침으로 게장을 먹고, 우선 향일암에 가보기로 했다. 그러나 향일암 진입로에서만 30,40분을 서있었을 정도로 사람이 많고, 주차할 곳이 한 곳도 없었다. 향일암을 눈앞에 두고 올라가 보기를 포기했다. 다시 여수항 근처로 와서 점심을 먹었다. 애초에 다른 일정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단 태도였다. 그러나\n소제마을 방문만큼은 완전해야 했고 반드시 저녁 무렵 이어야 했다.\n시간을 더 죽이려고 마을 입구에 차를 대고 긴 낮잠을 잤다. 눈을 뜨니 곧 해가 넘어갈 것 같은 시간이 되어 있었고 마을로 들어섰다. ‘여수의 사랑’ 속 자흔의 묘사처럼 ‘진짜 시골’이었다. 돌로 쌓은 담벼락을 타고 덩굴식물이 기고 있고, 대문들은 녹이 슬어 있다. 집마다 있는 감나무엔 탱글탱글한 감이 한가득 달려 있었다.\n저녁밥 짓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n동네에 사람이 많진 않아 보였지만 몇 명의 사내아이들이 마을회관 앞에서 축구공을 차며 놀다가 우리를 보고는 의젓하게 꾸벅 인사를 했다.\n평범한 시골 풍경인데 어딘지 모르게 곰살궃다.\n자흔이 이야기한 대로 마을은 앞에 둥그런 만과 바다를 두었고, 뒤로는 산이 부드럽게 이어져 있었다. 참 살기 좋은 곳이구나 생각했는데, 곧 이 지역에 휴양시설, 상업시설, 대규모 공동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역시나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구나.\n다시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고개를 넘어 내려가던 중 우린 소스라치게 놀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너무나도 따뜻하고 강렬한\n석양의 빛이 갑자기 쏟아져 들어왔기 때문이다.\n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답고 노오란 황혼을 본 적이 있던가.\n그것은 자흔의 눈시울을 붉게 만든 빛이었다.\n그때가 저녁 무렵이었는데…… 완만한 뒷산 능선에는 해가 지고 있었고 그 주위로 새 깃털 같은 구름이 노다지처럼 노랗게 번쩍이고 있었어요. 그 풍경이 어쩐지 마음에 들어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 봤지요.\n…… (중략) ……\n그냥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n- ‘여수의 사랑’ (한강) 중에서","url":"https://brunch.co.kr/@istandby4u2/91","published_date":"2017-11-09T12:2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8,"source":"brunch","title":"내 기억 속에  잊을 수 없는 눈이 있어요","content":"소설은 사실 삿포로가 아니라 대관령의 이야기다. 요즘 유독 우리나라 소설을 많이 읽고 있다. 이태준의 달밤을 보러 가기도 했고, 한강이 그린 여수도 만났다. 그리고 책장에 꽂혀있던 이순원의 작품을 얼핏 보고 나서 대관령에 다녀왔다. 책의 띠지 뒤에 적힌 황정은 작가의 ‘고백한 적은 없지만, 선생을 이룬 것 중에 내가 은밀하게 샘내는 것이 있다. 선생의 대관령이다’란 고백을 듣고 일단 가본 것이다.\n다녀와서 ‘삿포로의 여인’을 읽어 내려간 시간이 좋았다. 서울에 있지만 머릿속은 이미 대관령의 사계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에 (나와 남편은 강원도를 자주 가기 때문에 대관령의 사계절을 모두 만나본 듯하다) 그 배경 안에 주인공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주호, 연희, 주호의 이모부, 길 아저씨, 그리고 동네 사람들...\n‘삿포로의 여인’ 주인공 주호는 군대에 다녀와 학비를 벌기 위해 대관령에서 구판장을 하는 이모부 집에 2년 동안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구판장 맞은편에 있는 미라노 패션에서 일을 하는 연희를 만난다. 연희는 어딘가 이국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17살의 여자아이로, 주호는 중학생 때 어린 연희를 횡계 버스정류소에서 본 적이 있다. 그곳엔 국가대표 스키선수였던 연희의 아버지 유강표와 그를 사랑한 시라키 레이란 여자도 함께 있었다. 소설은 그들에 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다.\n한강의 글을 읽었을 때처럼 한글의 아름다움에 탄복하는 경험은 없었지만, 나는 ‘삿포로의 여인’을 통해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얻었다. 삶에 대한 생각과 생활 태도, 생의 존엄 등에 대해. 소설엔 내가 요 직전까지도 몇 명이나 지나쳤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을 범인 凡人 으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짧은 몇 문장 만으로도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소설 속 인물들을 보다가 내 생각에 빠져\n잠시 책을 덮어두는 시간이 필요했다.\n'난 누구처럼 살고 있지', '이 사람과 참 닮은 사람이 있어',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 특히 도배일을 하는 자유인 길 아저씨가 등장할 때마다 책은 어김없이 닫혔다.\n“이 사람은 수중에 돈이 떨어져야 연락이 되는구먼. 돈 있으면 어디 놀러 가고.”\n그건 길 아저씨와 삶의 규범이 완전히 다른 이모부의 어법이었다.\n(… 중략…)\n주호는 앞으로도 자신은 절대 따라갈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길 아저씨의 생활 태도가 조금도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사는 사람이 귀해 이모부 앞에서도 은근히 역성 들어 응원하는 쪽이었다.\n- ‘삿포로의 여인’ 중에서\n테시마 아오이, <마가목 ナナカマド＞ 연희가 주호에게 알려준 곡.\n그리고 나는 소설을 읽으며 거창한 풍경이 아니라\n앙증맞은 열매 하나가 반가웠다. 마가목.\n대관령엔 깊은 산속에 있다는 마가목이 삿포로에는 가로수로 있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르겠다던 연희의 편지글처럼 나는 마가목이란 단어를 보자마자 미소를 지었다. 지난해 홋카이도에서 결혼식을 올린 우린 이 마가목과 관련된 재미난 기억을 하나 갖고 있다. 29년 만에 홋카이도에 폭설이 내린 결혼식날 야외 촬영을 하러 웨딩드레스를 입고, 웨딩슈즈를 신고 밖으로 나간 나는 나가자마자 눈에 미끄러져 길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간신히 일어나 다시 걷고 있는데 뒤따라 오던 엄마가 내가 피를 뚝뚝 흘리며 걷고 있다 했다. 몸이 다 얼어버려 아무 감각이 없던 나는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빠른 시간 내에 촬영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야겠단 생각만으로 사진을 찍고, 다사다난한 결혼식을 마쳤다. 다음 날 남편과 나는 길을 따라 서있는 나무를 보고, 또 그 나무가 바닥에 떨어뜨린 열매를 보고 웃었다.\n마가목 열매들이 새하얀 눈 위에 새빨간 점을 찍고 있었다.\n연희는 모든 것이 낯설었던 삿포로 생활에서 유일하게 안심하게 만든 것이 마가목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도 마가목 열매를 보고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 연희와 같은 풍경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겠구나.\n(마가목, 자세한 이야기는)\n피 떨어진다 피 떨어져\n4편. | 아침 일찍 진에어를 탄 친구들이 한 시간 정도 지연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착륙은 하였다. 뉴스를 틀어보니 대설경보 자막이 흐르고 있었고, 공항에서 오타루까지 오는 JR 기차도 운행을 했다가 안 했다가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의 친구들 두 명은 렌터카를 예약해 둔 신랑의 친구들과 합류하여 한 차를 타고 식장으로 오기로 했다. 평소 도로 상황이었으\nhttps://brunch.co.kr/@istandby4u2/38\n주호가 처음 연희를 본 횡계버스터미널 풍경은 평창올림픽을 맞이해 사라져버렸다. 새 건물이 들어서 있다.\n주호가 기억하는 연희의 첫 모습이 담긴 횡계 버스정류장에 들렀다가 서울로 돌아와 삿포로행 비행기표를 샀다. 그리고 ‘삿포로의 여인’을 다 읽었다. 아쉽게도 주호와 연희가 함께 기억하는 소중한 추억은 삿포로가 아닌 강원도 안에만 있다. 삿포로에 다녀와서 주호와 연희가 길 아저씨의 차를 타고 대관령에서 강릉으로 가서 다시 7번 해안 국도를 따라 양양까지 갔던 여정을 따라 가보고 싶다 생각했다.\n내 기억 속에 잊을 수 없는 눈이 있어요.\n눈이 내리면 오빠는 어떤 일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n나는 첫눈이든 한겨울 눈이든 봄눈이든 내 기억 속 대관령의 어떤 눈이 떠올라요.\n그 눈은 내 나이 열일곱 살 봄에 내렸어요.\nー‘삿포로의 여인’ 중에서\n삿포로의 여인\n겨울눈처럼 운명적이고, 봄눈처럼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27807506&g=KOR\n물론 가는 길엔 연희 기억 속 가장 소중한 눈이 있는 하늘목장도 들러야겠다.\n내가 다녀왔던 곳은 하늘목장 옆에 있는 삼양목장.","url":"https://brunch.co.kr/@istandby4u2/92","published_date":"2017-11-26T05:58+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99,"source":"brunch","title":"항구마을에서 문어 샤부샤부로  몸을 녹이다","content":"낼 수 있는 주의보는 거의 다 낸 듯했다.\n적설 주의보, 강풍 주의보, 풍속 주의보, 파랑 주의보, 눈사태 주의보, 천둥 주의보\n더 낼 것 있나요?\n오쿠다 히데오의 『항구마을 식당』을 읽은 남편이 몇 달째 레분 섬에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우리가 레분 섬에 간다면 12월이어야 했다. 오쿠다 히데오도 12월에 갔으니까. 눈이 3,40센티미터는 가볍게 내리는 홋카이도의 겨울. 게다가 삿포로도 하코다테도 아니고 홋카이도 최북단에 있는 레분섬까지 간다. 숙박할 곳을 알아보았다. 고를 것도 없다. 그 시기 레분섬에 문을 연 숙박업소는 단 한 곳. 물론 현지에 가서 알아본다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한 곳은 펜션 우니\nペンション う〜に〜\n란 곳 딱 한 곳뿐이었다. 선택지가 없으니 편하다. 펜션을 예약하고, 도착 예정인 페리 시간을 알려두었다. 그리고 이미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항구마을 여행기, 『항구마을 식당』을 다시 펼쳤다.\n항구 마을 식당\n《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 《나오미와 가나코》...\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25560069&g=KOR\n원래는 렌터카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겨울철에는 못 빌려 준다고 해서 택시를 대절한 것이다. 택시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납득했다. 눈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길이 여기저기 얼었다. 익숙하지 않으면 금세 미끄러질 것 같다.\n- 『항구마을 식당』 중에서\n갈 수 있는 거 맞나요?\n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레분 땅을 밟지 못했다. 페리를 타기로 한 날 라디오를 트니 겨울에 낼 수 있을 만한 모든 주의보가 다 내려 있었다. 그래도 왓카나이까진 가보기로 했다. 물론 오쿠다 히데오의 여정을 따라. 왓카나이로 향하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일단 찻길임을 나타내는 표식은 오로지 공중에 달린 화살표뿐이었고 눈이 없는 길은 단 1m도 없다. 게다가 중간중간 눈보라가 내려 바로 앞 화살표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 여러 차례. 심지어 운이 나쁘면 화살표에까지 눈이 쌓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위험한 순간도 한 차례 만났다. 남편이 잠시 딴생각을 하던 찰나 차가 미끄러져 도로 위에서 네 바퀴 정도 빙글빙글 돌았다. 반대편에서 차가 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게다가 논(밭일 지도 모른다. 눈으로 덮여 있어 알 수 없다.) 위에 놓인 길이었기 때문에 밖으로 튕겼다면 꽤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된다. 빙글빙글 도는 동안 나는 ‘이거 크게 다치겠는데?’라 생각했고, 남편은 ‘어디에 전화해야 하지?’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고단한 길을 달려 왓카나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일본 최북단이라고 하는 소야 곶까지 더 갔다. 오쿠다의 말을 빌리면 '딱히 뭐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왓카나이에 온 사람은 누구나 가는 곳.' 여행객은 차치하고 사람 자체를 만나기 어렵다. 화장실을 쓰러 온 화물차 운전수 한 명 정도가 그곳에서 마주친 유일한 사람이었다. 가게도 모두 문을 닫았다.\n마미야 린조 동상이 서 있었다.\n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마미야 린조 혼자 가라후토(사할린)가 섬이란 걸 발견한 게 아니라 마쓰다 덴주로와의 공동 프로젝트였다. 둘이서 좌우로 갈라져 전진하다가 만나면서 ‘이곳은 반도가 아니라 섬이다’란 게 판명되었다고 한다.\n(… 중략…)\n마쓰다 덴주로, 마쓰다 덴주로, 마쓰다 덴주로를 기억해주세요.\n- 『항구마을 식당』 중에서\n마쓰다 덴주로까지 기억하기엔, 여기 서있는 마미야 린조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곳에선 날씨만 좋으면 저멀리 사할린도 보인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날은 각종 주의보에서 예상할 수 있듯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강풍이 불고 있었다. 여긴 꽤 북쪽에 위치한 것에 비해서 눈이 잘 쌓이지 않다고 하는데, 이 강풍 때문이라고 한다.\n시내로 돌아와 오쿠다 히데오가 먹은 문어 샤부샤부를 먹으러 구루마야 겐지\n車屋源氏\n에 갔다. 이 계절 왓카나이까지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차(어쩔 수 없이) 오는 것인지, 가게 앞에는 회사명으로 된 예약자 목록만이 가득 적혀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고 들어와 있는 손님은 우리와 현지 주민인 듯한 노부부가 유일. 친절함에 굉장히 엄격한 식당 같았다. 직원들이 모두 정장 혹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몸가짐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문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주문을 받는 태도도, 샤부샤부에 야채를 넣어주는 몸짓도, 문어를 데우는 방법 안내도 매우 공손했다.\n『항구마을 식당』에는\n‘쫄깃쫄깃한 문어와 사각사각한\n상추\n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식감도 근사하다’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n양상추\n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상추를 데워먹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데운 양상추는 굉장히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시킨 맥주가 재미있다. 가장 큰 사이즈 생맥주 두 잔을 주문했는데 큰 사이즈라고 해봐야 500cc가 조금 넘는 정도겠지 생각했다.\n그런데... 무슨 맥주 기계를 통째로 들고 오는 줄 알았다. 너무 무거워 들기조차 어려운 무게. 귀띔이라도 줬어야지... 물론 다 마셨다.\n구루마야 겐지에서 저녁을 먹고 오쿠다 히데오는 ‘미인 마담 미인 마담’ 노래를 부르며 ‘마돈나’라고 하는 스낵바로 간다. 부부끼리 스낵바에 가는 건 좀 이상하니 그 일정은 포기했다. 사실 에세이에선 그 부분이 제일 재미있으니 꼭 보시길!\n문어 샤부샤부. 문어를 넣고 육수 안에서 다섯 번 정도 왔다갔다 한 후 먹습니다.\n다음날 아침 밧카이항\n抜海港\n으로 갔다. 오쿠다 히데오가 ‘베리 귀엽다’, ‘몸짓도 큐트 하다’고 한 점박이물범을 보러 가는 것이다. 오쿠다의 경험담처럼 엄청난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닥에 쌓인 눈도 입자들이 한 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제방의 끝까지 걸어가야 물범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눈이 많이 쌓여 있고 걷기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불어대서 몇 분 시도해보다 물범과의 만남은 포기했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 바람을 뚫고 간 것인가?","url":"https://brunch.co.kr/@istandby4u2/94","published_date":"2017-12-17T05:53+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00,"source":"brunch","title":"그러고 보니 펭귄은  왜 수족관에 있지?","content":"펭귄이 날지 못하는\n새\n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n원래는 날 줄 알았지만, 헤엄치는 것이 효율적이라 날개가 점차 퇴화했단 것 역시 어딘가에서 들었다.\n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n날아오르는 모습\n을 상상해보지 못했다.\n펭귄을 날게 하라\n* 해당 도서는 본문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전문 성우가 녹음한 음원이 삽입된 e오디오북 형식의 컨텐츠로, 구매시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펭귄은 원래 새였다. 하늘을 날던 펭귄이 왜 바다에서 살게 된걸까? 펭귄의 위대한 선택과 변화와 창조의 위대한 열정 이야기' 펭귄을 날게하라' 눈이 내리는 홋카이도에 위치한 아사히야마 동물원. 1967년 개원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관람객 감소로 폐원 위기에까지 몰리다가 2006년 270만 명이라는 경이적인 관람객을 유치하여 일본을 대표하는 동물원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펭귄관은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걸어온 창조의 완성품이자 상징이다. 뒤뚱거리는 펭귄이 아닌 하늘을 나는 펭귄은 아이들의 상상력에서 나왔고, 창조의 열정으로 가득찬 사육사들은 고객의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일에 착수한다. 남극의 바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펭귄의 모습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모든 창조의 출발점이 되었다. 고객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과 스스로의 변화임을 일깨워주는 경영우화. 상상을 현실로 만든 꿈의 동물원, 아사히야마. 그 가슴 벅찬 감동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 출연자(성우) : 박종희(원장 역),신용우(신조 마사토 역),유경선(사유리 역),이종혁(유키 역),임진응(와타나베 역),곽윤상(구로사와 역),채정우(아톰 역),이지현(주부 역) - 재생시간 : 02:21:20\nhttp://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New.ink?barcode=4809050206723\n일본 홋카이도에 있는 아사히야마 동물원 旭山動物園 에 다녀와서 <펭귄을 날게 하라>라는 책을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았다. 어차피 ‘경영 우화’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라면 굳이 들어갈 필요는 없어 보이는 남녀 주인공의 러브라인을 빼고는 꽤 재미있다. 게다가 며칠 전에 다녀온 아사히야마 동물원 풍경이 아직 생생해서 영상을 함께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n<펭귄을 날게 하라>는 눈이 내리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신조는 이곳에 취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의사.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아사히야마 동물원은 1967년에 문을 열었지만 관람객이 점차 감소하면서 문을 닫아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때문에 직원은 10명이 채 되지 않지만 늘릴 수 없고, 동물들이 살고 있는 시설이 고장 나도 고치기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릴라와 여우원숭이가 에키노코쿠스증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관람객들의 신뢰까지 잃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2006년 300만 명이 넘는 경이적인 관람객 수(일본에서 도쿄 우에노 동물원을 제외하고 1위)를 기록한 기적 같은 이야기. 실화다.\nphoto by LKP\n아사히야마 동물원에 들어서면 어딘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우선 동물들과 관람객의 거리가 가깝다. 덕분에 나는 펭귄이 고약한 지린내를 풍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n우리만 동물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n동물들은 마냥 축 늘어져 있지 않고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 행동이 마치 우리를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부모님 참관 수업 날 열심히 손을 들며 발표하고, 급식도 남기지 않는 아이들 같이.\n펭귄관에 들어가니 제일 먼저 훔볼트 펭귄이 보였다. 유리에 부리를 대고 서 있다.\n무언가가 마음에 안 들어 보인다.\n가끔씩 슬쩍 눈을 떠서 우릴 쳐다보는 모습이 관심을 끌고 싶은가 싶기도 하고.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작정이지’ 궁금해 한참을 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하얀 눈 위에 서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무리 지어 있는 펭귄들이 있다. 조금 다르게 생긴 펭귄 한 마리는 무리와 떨어져 고독을 즐기고 있다. 중년의 뒷모습을 한 젠투펭귄. 가장 큰 특징인 긴 꼬리 때문인지 더욱 처져 보였다.\n우환이 있어 보이는… 젠투펭귄\n남편이 “쟤 이상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무리의 한 쪽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의 끝을 따라가 보니 아기 펭귄이 서 있었다. 두터운 갈색 털을 입고 있는. 펭귄이 성조가 되기 전에 이렇게 털북숭이인 줄은 알았지만 실제로 만난 아기 펭귄은 흥미로웠다. 생각보다 다 큰 펭귄과 크기 차이가 나지 않았고, 털도 굉장히\n따뜻하고 폭신해 보여서 만져보고 싶은 욕망을 누를 수가 없다.\n물론 코를 찌르는 냄새가 뻗어 가는 손을 자연스레 멈춰 준다. 다큐멘터리에서 보고 기억하고 있는 황제펭귄의 아기들은 회색털을 입고 있는데, 이들은 갈색 털옷이다. 알고 보니 킹펭귄. 황제펭귄과 킹펭귄. 생김새가 매우 닮아 크기 차이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기들이 이렇게 다르게 생겼다니. 사실 이곳의 명물은 펭귄들이 나와서 뒤뚱뒤뚱 걷는 펭귄 산책이다. 겨울철 펭귄들의 운동부족 때문에 생긴 이 이벤트는 눈이 쌓인 시기에만 진행된다. 우린 이벤트 시작 이틀 전에 가버린 탓에 펭귄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미 눈이 많이 쌓여 있었는데, 정말 아쉽다.\n폐관하기 직전까지 갔던 아사히야마 동물원이 다시 붐비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당연 ‘펭귄관’이었다. <펭귄을 날게 하라>에서 아사히야마 직원들은 펭귄을 새로이 들여오는 일에 대해 고민하며, ‘수족관과 어떤 차별점을 가 있을까’ 토론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잠시 멈칫했다. (때때로 굉장히 이상한 부분에서 ‘유레카’를 외치곤 한다.) 이제까지 수족관에 갈 때마다 ‘오우 펭귄이 다 있네’ 매번 말하곤 했는데, 이 대목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나에게 펭귄은 부드러운 털을 가진 엄연한 조류라, 수족관에서 만나는 일이 어딘가 모르게 늘 어색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일산 아쿠아리움엔 재규어도 있는 걸 보면, 수족관과 동물원의 경계란 원래부터 애매한 것일지도 모르겠다.\n조류이긴 해도 이미 날지 못한 지 오래된 펭귄을 어떻게 날게 할까.\n아사히야마 동물원은 터널로 된 원형 수조를 설치하여 펭귄이 그 안을 헤엄치게 했다. 터널 위로는 하늘이 비치게 하여 마치 펭귄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보이게.\n사실 중요한 것은 ‘펭귄’이 아니다.\n펭귄의 ‘몸짓과 생활’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행동 전시’\n라고 부르는 아사히야마 동물원의 기획은 동물원이 일반적으로 동물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치는데 반하여\n동물의 삶을 최대한 보여 주는 것이 핵심.\n동물들의 행동을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상상은 많은 곳에 실제로 구현되어 있다. 맹수가 있는 공간에 불쑥 튀어나온 창을 만들어 서로가 긴장하는 공간을 만든다든지, 투명한 원통 기둥을 만들어 바다표범이 그 사이를 헤엄쳐 솟아오르게 한다든지.\n사실 우리 부부는 동물원이 있는 아사히카와를 지나다가 이런 대화를 나눴다.\n“시간이 약간 남을 것 같은데, 동물원 들렀다 갈까?”\n“이제 와서? 왜 처음부터 가지 않고.”\n“그러게. 어쩌다가 보니까.”\n“갈 거면 아침부터 갔어야지. 충분히 볼 수 없잖아.”\n“그럼 관둘까?”\n“그래도 아사히카와를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동물원에 안 가본다는 건 좀 이상하지. 뭔가 신념이 있어 이제까지 안 간거야?”\n“아니. 뭐가 유명하다는 건지 모르겠어서 그래. 자연친화적인 동물원이라고 하는데…”\n아사히야마 동물원의 역사나 특징을 전혀 알지 못한 채 다녀온 것이었다. 편견 없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이곳이 ‘행동 전시’란 기획으로 위기를 극복했단 이야기를 접했다.\n고개를 갸웃했던 몇몇 장면의 퍼즐이 맞춰졌다.\n이 경험이 꽤 신선했다. 남편과 나는 굉장히 협소한 계단을 딛고 올라가 둥근 창에 머리를 내밀어야 한 이유가 궁금했고, '여긴 왜 이렇게 어지럽게 수조를 둘러둔 거야?' 서로에게 물었다.\n언젠가 다시 아사히카와를 지나게 된다면 아사히야마 동물원을 꼭 제일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다. 이제 정답을 알았으니,\n펭귄이 날아오르길, 맹수가 우리 머리를 향해 돌진하길 기다려 봐야지.","url":"https://brunch.co.kr/@istandby4u2/95","published_date":"2017-12-27T13:1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01,"source":"brunch","title":"볕이 바람을 마주할 때면  나무는 무거운 짐을 던다","content":"겨울방학 끝무렵 곰돌이가 그려진 이불 안에 들어가 방학숙제를 한다.\n따뜻한 방바닥의 온도가 금세 배에 전해진다.\n점점 어깨와 팔이 아파온다.\n조금 쉬었다 할까?\n어느새 스르르 잠에 들어버린다.\n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 위치한 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에 도착한 것은 어느 겨울밤이었다. 시간이 그리 늦지 않았지만, 홋카이도의 겨울은 4시면 해가 모습을 감춰버리기 때문에 이미 한밤중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비에이 료칸에서 이틀을 머물며 하루는 아사히카와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후라노의 한 카페에 들렀다가 아사히카와에 도착했다. 늦게까지 자버린 것도 문제지만, 화로가 곁에 있던 카페의 따뜻한 공기 때문에 엉덩이가 무거워져 버린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문학관 건물이 따뜻한 노란빛을 내고 있었다. 아직 들어가 볼 수 있겠다.\n빙점\n1922년 홋카이도에서 출생한 여류작가인 미우라 아야코의 대표적인 장편소설. 기독교 사상을 중심으로 인간의 원죄를 다룬 소설로 등장인물간의 인간사와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고 있다. 요오꼬의 고백을 통하여 인간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빙점이 무엇인가를 유려한 문체로 묘사하고 있다.  1964년 아사히신문 현상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다.\nhttp://www.yes24.com/24/goods/161737\n1922년에 태어나 1999년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미우라 아야코는 여러 병에 시달렸다. 결핵, 척추 골양, 심장발작, 직장암, 파킨슨병까지...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글을 써내려 갔고, 그중 <빙점>은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문학관에 걸린 여러 사진과 설명 중 ‘추위가 극심한 겨울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빙점>을 써 내려갔다’고 쓰여 있는 패널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n겨울날 매서운 바깥 날씨, 따뜻하고 아늑한 작은 공간. 같은 자세로 겨울방학 숙제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n그때의 온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한 기분이 되었다.\n미우라 아야코가 쓴 <빙점>은 ‘인간의 원죄’를 다루는 소설이다. 아사히카와 시에 살고 있는 주인공 요코는 갓난아기 때 쓰지구치 게이조와 나쓰에의 집에 입양된다. 이 집엔 원래 루리코라는 딸이 있었지만, 나쓰에가 게이조의 후배 무라이와 불륜을 벌이는 사이 유괴를 당하고 살해당했다. 게이조는 자신의 아내를 용서하지 못하고 보육원에 맡겨져 있던 유괴범의 딸을 양녀로 들여 나쓰에에게 키우게 한다. 물론 나쓰에는 양녀 요코가 유괴범의 딸인지 알지 못한 채 정성스레 사랑을 주며 키운다.\n바람이라곤 한점도 없다. 동녘 하늘 높이 햇빛에 반짝이며 떠있는 뭉게구름은 한 폭의 그림인 양 꼼짝도 하지 않는다. 땅 위엔 스트롬스소나무*들의 짧은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림자는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만 같다. 아사히카와 시 교외 가쿠라 읍에 있는 이 소나무 숲 바로 옆엔 쓰지구치 병원장의 저택이 조용히 서 있다. 반 양옥으로 지어진 이 집 근처에는 집이라곤 단 몇 채뿐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n- <빙점>의 시작\n(* 스트로브 잣나무를 칭하는 것으로 생각됨.)\n미우라 아야코 기념문학관 ©istandby4u2\n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이 반가운 이유는 소설의 주요 무대인 스트로브 잣나무 숲이 바로 곁에 있기 때문이다. 또 소설의 묘사처럼 스트로브 잣나무 숲을 지나 견본림에 들어서고, 300미터 정도 걸어가면 비에이 강이 보인다. 루리꼬가 눈을 감은 그 강변이다. 루리꼬의 죽음으로 이어져 있지만 요코에게는 추억이 깃든 숲이다. 숲에서 친구들과 줄넘기를 넘다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오기도 했고, 요코가 우유배달을 시작하며 매일 아침 5시에 눈을 떠서 제일 먼저 바라 본 창 밖 풍경이기도 했다. 나쓰에는 요코의 실제 아버지가 루리코를 죽인 사이시란 사실을 알게 되자 급식비를 제때 주지 않는 등 요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넉넉한 집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요코가 우유배달을 다닌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오빠 도오루의 친구 기다하라와 요코가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던 제방을 넘어, 요코 손에 들린 소설 <폭풍의 언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걸은 오솔길이 이어져 있다.\n그리고 내가 다시 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을 찾아간 것은 2년 뒤였다. 처음 찾아간 날 밤이 너무 깊어 있어 요코가 걸었던 숲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외국수종 견본림\n外国樹種見本林\n’이란 이름을 가진 이곳은 1898년 스트로브 잣나무 등의 외국 나무들을 홋카이도에서 키울 수 있을까 살펴보기 위해 조성한 인공 숲이라고 한다. 현재는 약 52종 6,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n2년 전 이곳에 왔을 때도 굉장히 고요한 느낌을 받았지만, 아침에 찾아간 숲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겨울의 햇살이 나뭇가지 위에 한 움큼씩 앉아 있는 눈덩이를 내리쬐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게 했다.\n가끔 그 볕이 겨울의 바람을 마주할 때면 나무는 무거운 짐을 덜어 낼 수 있었다.\n햇살을 좇아 나무 곁에 서 있던 남편은 몇 번이나 눈사람이 될 뻔했다.\n비에이 강을 향해 나있는 산책로를 따라 혼자 걸어 보았다. 이렇게 많은 눈이 쌓인 아침인데, 발자국이 찍혀 있다. 두세 사람 정도가 먼저 걸어간 듯했다. 얽힌 나무 사이로 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발자국이 끊겼다. 지금부터는 내가 길을 내며 걸어가야 했다. 세 발자국 정도 내디뎌 보았지만 운동화가 금세 축축해져서 그만두고 돌아섰다.\n제방에 가까워지니 어느덧 정수리 위까지 올라선 햇살 아래 여전히 서 있는 남편이 보였다. 당장이라도 눈 뭉텅이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데... 그늘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었나 보다.\n도오루는 요오꼬의 얼굴이 몹시 쓸쓸해 보여 몹시 놀랐다.\n\"눈은 참 깨끗하지, 오빠?\"\n\"응…….\"\n\"그렇지만 향기가 없어.\"\n\"이렇게 많이 쌓여 있는 눈에서 향기가 난다면 큰일이야, 요오꼬.\"\n도오루가 웃자 요오꼬도 덩달아 웃었다.\n- “빙점” 중에서\nINFORMATION\n미우라 아야코 기념 문학관\n三浦綾子記念文学館\n개관 시간 : 9:00~17:00 (입장은 16:30까지)\n*휴관일 : 6월~9월은 무휴 / 10월~5월은 월요일 (월요일이 휴일인 경우 다음날), 연말연시(12/30~1/4)\n홈페이지 :\nhttp://www.hyouten.com/\n위치  : 北海道旭川市神楽7条8丁目2番15号\n三浦綾子記念文学館\n★★★★☆ · 박물관 · 8 Chome-2-15 Kagura 7 Jō\nhttps://www.google.co.kr/maps/place/%E4%B8%89%E6%B5%A6%E7%B6%BE%E5%AD%90%E8%A8%98%E5%BF%B5%E6%96%87%E5%AD%A6%E9%A4%A8/@43.7535844,142.3480428,15z/data=!4m5!3m4!1s0x0:0xe1cfe755d78ae766!8m2!3d43.7535844!4d142.3480428?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96","published_date":"2018-01-14T08:14+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02,"source":"brunch","title":"작품의 배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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듯하고, 그의 단골식당에 찾아가 같은 음식을 먹으면 작품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n이처럼 이야기의 배경에 직접 찾아가 주인공의 그림자를 따라 밟는 작가가 있다. 스스로를 '배경여행가'라고 소개하는 이무늬 작가다.\n\"하루키 신작 보고 출장 일정 짜셨나 봐요?\"\n일본 출장을 다녀온 그녀에게 직장 동료가 건넨 말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출장의 행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의 배경 도시가 우연히 일치한 이후 그녀는 픽션 안의 장소를 찾아가는 여행을 해왔다. 그녀의 시선에 담긴 어떤 배경들은 때로 소설이나 영화를 뛰어넘어, 그 뒷이야기를 들려준다.\n배경이 된 이후의 풍경\n그 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n- 책날개의 ‘배경여행가’라는 표현이 재밌어요. 개성있고 독창적인 타이틀이라고 생각했습니다.\n감사합니다. 운영하고 있는 홈페이지 제목이 원래 ‘책·영화·드라마 속 그 곳, 그 맛, 그 말’이었는데, 너무 길고 직관적이지 않아서 누군가에게 소개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제목을 관통하는 단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붙이게 된 이름입니다. 또 ‘배경’이라는 단어와 제 이름의 이미지가 상반되는 듯한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무늬’라고 하면 다채롭고 화려한, 조금 인공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반면 ‘배경’이라고 하면 그와 반대되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고.\n- 책, 영화,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에 찾아감으로써 그 서사 너머의 이야기를 발견하시는 것 같습니다.\n당연하지만 제가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없고, 영화나 드라마 연기자가 아니니. 또 이야기가 생겨난 시점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났으니 새로운 이야기가 피어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엔 작품에서 묘사된 모습 그대로 배경이 남아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굉장히 컸습니다. 허구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갔으면서 현실에서 그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길 바랐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소설에 별장이 하나 등장해요. 주변에 특별히 관광지가 있지도 않고 접근성도 굉장히 안 좋아요. 어떤 사람이 넘쳐나는 돈을 달리 쓸 데가 없어 심심풀이 같은 마음으로 지은 건물인 거죠. 그렇지만 그 소설의 배경이 된 건물을 찾아가 보면, 그 안에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엄청나게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민박집을 열어 돈을 벌어야 하고, 심지어 주변에 유명한 관광지가 하나 있어 그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을 끌어오기 위해 세운 숙박업소죠. 처음 배경여행을 할 땐 이런 현실의 모\n습을 외면하고 싶었어요. 그냥 내가 본 이야기대로 고귀한 척을 하며 있어주길 바랐던 거예요. 그러나 배경여행이 거듭될수록 그게 얼마나 옹졸하고 터무니없는 여행자의 바람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또 이미 생활의 향기가 더해진 지금의 모습도, 이야기도 충분히 매력적임을 느꼈고요. 요즘엔 책, 영화, 드라마의 배경이 된 이후의, 그리고 그 이면의 이야기에도 귀를 많이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n더 많은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듬뿍 담겨 있습니다.\n반디앤루니스 온라인서점\nTrend of Intellectual Lifestyle\nhttp://minibandi.com/m/product/peopleCurationDetailView.do?bannerDpArea=205&type=main&artNo=45996733","url":"https://brunch.co.kr/@istandby4u2/99","published_date":"2018-01-29T14:0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04,"source":"brunch","title":"14화 양을 쫓아 홋카이도 북쪽 마을까지","content":"“양 박사의 옛날 목장은 어디에 있어요?”라고 그녀가 물었다.\n“산 위에. 차로 세 시간이 걸리지.”\n“지금 바로 가는 거예요?”\n“아니”라고 나는 말했다.\n-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중에서\n모험을 준비하다\n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삼부작 중 마지막 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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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팬이라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 있는 『양을 쫓는 모험』에는 중간중간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는데, 비후카 풍경이 담긴 문장들에 표식을 해둔 것이었다. 나는 이 문장들을 낳은 배경 위에 서 있었다.\n주인공 ‘나’는 열차를 여러 차례 갈아타고 작은 마을인 주니타키에 도착한다. 주니타키에서 목장 관리인을 만나 설명을 듣고 ‘쥐’가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산 위의 목장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곳은 한 때 양박사가 머물기도 했고 ‘쥐’의 아버지의 별장이기도 한 곳. 비후카 사람들은 하루키가 ‘주니타키’라 이름 붙인 마을이 ‘니우푸’라 추측하고 있다.\n하루키가 탔을 때도, 소설 속 묘사에도, 적자노선으로 그려진 비후카역에서 니우푸역까지 가는 열차는 이미 없어졌기에 우린 렌터카를 타고 니우푸로 향했다. 오후 네 시면 해가 지는 이곳에서 가로등도 없는, 눈이 30,40 센티미터는 족히 쌓인 길을 가야 했다. 소설 속에서 믿고 의지한 동행 ‘나’와 ‘여자 친구’처럼 나도 남편의 운전실력을 믿을 수밖에 없다. 큰 도로(이것도 그리 크지도 않지만)가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자 건물이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양 옆 풍경은 눈이 모든 것을 하얗게 지워두어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새카만 하늘, 그리고 새하얀 눈. 두 개의 색 만으로 표현된 풍경이 2.3킬로미터 정도. 그 길 끝에 저 멀리 노란 불빛이 반짝였다. 반가웠다. 드디어 목장에 도착한 것이다.\n양 사나이가 있는 건물에 도착\n사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양을 키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쓰야마 농장(松山農場)’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광활한 농장 안에 있는 '팜 인 톤토(ファームイントント)’란 나무집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팜 인 톤토는 하루키가 묘사한 ‘쥐’의 아버지 별장과 분위기가 꽤 닮아 있었다. 당연 하루키가 이 건물을 보고 글을 쓴 것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물론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n농장 주인 부부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짐을 푼 뒤 목욕을 했다. 그리고 농장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양고기 칭기즈칸 요리와 양젖을 넣어 만든 그라탱을 먹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은 농장 주인 야규 요시키 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규 씨가 이곳에 건물을 세운 것은 1995년. 『양을 쫓는 모험』은 1982년도에 쓰인 소설이다. 따라서 하루키가 이 건물을 보고 ‘쥐’의 아버지 별장을 이야기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야규 씨가 소설 속 묘사대로 건물을 재현한 것 역시 아니었다. 야규 씨가 소설을 읽은 것은 팜 인 톤토를 세운 이후였는데, 처음에는 이곳에서 소를 키우다가 여러 사정이 있어 양 사육으로 전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양을 쫓는 모험』은 양을 키우는데, 바이블과 같은 소설이라 권해서 읽게 되었다고. 그리고 야규 씨 스스로도 굉장히 놀랐다. 소설 속 묘사와 농장 분위기, 건물의 모습이 흡사했기 때문. 물론 별장 앞에 그려진 마을 모습도 니우푸와 닮은 점이 많다. 그때부터 니우푸는 무라카미 하루키 팬들의 성지가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건물이 나중에 세워졌단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하루키가 팜 인 톤토를 보고 쓰지 않았단 사실에 괜히 안도했다. 진짜로 똑같은 건물이 있어버리면 시시해지니까.\n마치 ‘쥐’가 정돈해 둔 것 같은 공간에서\n『양을 쫓는 모험』 속 개성 있는 캐릭터 ‘양 박사’가 실존인물일 수 있단 사실을 아시는지. 하루키가 실제로 인터뷰를 한 인물이 있었다. 히라야마 슈스케 (平山秀介) 할아버지. 야규 씨는 홋카이도 농업회(北農会) 기관지 북농(北農)에 실린 히라야마 씨의 글을 나에게 보여주었다.\n부부가 같이 반다나를 이마에 감고,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던 히피 스타일로 방문했다. 나는 양 사육에 관심이 있어 어쩌면 면양 생산자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해 열심히 답해주었다. 일 년 후 『양을 쫓는 모험』을 기증받을 때까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신초신인상에 약간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n- 북농회 기관지 ‘북농’ 제76권 제 2호\n‘와. 하루키는 정말로 『양을 쫓는 모험』을 쓰기 위해 이 지역에 와 있었구나.’\n글을 보여주고 나서도 야규 아저씨는 수다를 이어갔다. 이곳을 방문한 무라카미 하루키 팬 이야기라든지(러시아, 브라질 사람도 왔다 갔다고 한다.), 내후년 있을 무라카미 하루키 관련 행사라든지, 몇 년 동안 해온 노벨문학상 행사(하루키가 수상할 것을 기대하며 팜 인 톤토에서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는 이벤트) 등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 방송국에서 나와 이곳을 근사하게 담아간 프로그램이 있으니 밥을 다 먹고 양젖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같이 보자고 했다. DVD는 『양을 쫓는 모험』 속 배경을 여행한 ‘여행을 빌려주다 (旅、貸し出す)’란 다큐멘터리로 삿포로에서 시작해, 비후카, 니우푸, 팜 인 톤토까지 상세히 담겨 있었다. 중간중간 소설 속 음식도 등장하고, 1부, 2부로 나뉘어 1부에선 주로 삿포로를, 2부에선 주로 비후카 일대를 담았다. 1부를 한참 보다가 옆을 보니 야규 아저씨는 이미 숙면 중.\n난로 뒤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침묵을 깼다.\n“이거 이렇게 길었던가?”\n잠에서 깬 아저씨가 답했다.\n“그러게 굉장히 기네.”\n나는 혼자 생각한다.\n‘다 봐야 하는 거겠지……?’\n내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n“혹시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닌가요?”\n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n“전혀 전혀 괜찮아요.”\n아무도 이 상황을 끊을 자 없다. 모두가 끝까지 봐야 하는 것이었다. 2부 가장 끝에 아주 잠깐 드론으로 찍은 팜 인 톤토가 보였다.\n“가을도 근사하군요!”\n어쨌든 2시간 넘는 시간을 통해 ‘가을에도 이곳은 아름답다’는 정보를 얻었다. 가을이야말로 하루키가 묘사한 배경과 똑같은 모습이니까.\n눈이 소리를 다 흡수해 버려 고요하고 깊은 밤 방으로 올라왔다. 소설 속 별장은 ‘쥐’가 일주일 전 깔끔하게 정리해 두어 쾌적한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팜 인 톤토는 야규 아주머니가 정리해두신 것이겠지만, ‘쥐’가 매만져둔 것 못지않게 깨끗하고 편안했다. 농장이라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목욕탕도 따로 있고, 방 안도 료칸 못지않게 갖춰져 있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냉장고가 없어 사온 맥주가 미지근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방에 딸린 테라스에 이미 눈이 한가득 쌓여 있으므로 꽂아 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맥주\n(나는 하루키 글만큼 맥주를 부르는 글은 쓰는 작가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n를 마시고 침대에 누워 누가 어디론가 사라져도 모를 법한 깊은 잠에 빠졌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주인공이 잠든 사이 여자 친구가 사라져 버린다. 밤새 눈이 더 내렸다.\nファームイントント\n★★★★★ · 실내 숙박시설 · 660 Niupu\nhttps://www.google.co.kr/maps/place/%E3%83%95%E3%82%A1%E3%83%BC%E3%83%A0%E3%82%A4%E3%83%B3%E3%83%88%E3%83%B3%E3%83%88/@44.5578288,142.5942292,15z/data=!4m2!3m1!1s0x0:0xff5be8344cbc8e57?sa=X&ved=0ahUKEwiL7fyispbZAhUIObwKHZn5AMcQ_BIIogEwDw","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00","published_date":"2018-02-08T13:1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05,"source":"brunch","title":"브로크백 마운틴의 호숫가에 서서","content":"오직 여행의 영감을 위해 탄생한 책 <ARTRAVEL> 에\n영화 <브로트백 마운틴>의 배경, 캐나다 카나나스키스 여행글을 기고하였습니다.\n아트래블 TRIP 28. THE FIRST\n“네게 난 가끔 만나는 친구일 뿐이지만 난, 너를 20년이나 그리워했어.”\n“내가 널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데… 넌 내가 원하는 걸 주지도 않았잖아!”\n“일 년에 한두 번 너만 바라보는 건\n… 너무 힘들다고.”\n20여 년 간의 세월 속에서 잭은 에니스와 함께 하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했고 표현했다. 둘은 격렬히 다투다가 결국 모래 바닥 위에 쓰러져 부둥켜안고 울기 시작한다. 그 슬픔 뒤로 카나나스키스호수가 일렁였다. 둘의 슬픈 사랑을 안아주던 호수가, 그곳에서의 시간이 그립다. 그리고 그 호수 앞에서 얼굴 한가득 슬픔을 담았던 히스 레저도 그리워졌다.\n- <\n브로크백 마운틴의 호숫가에 서서> 중에서\n목차\nART\n〉〉〉\n12\n여태 마음이 쓰이는 일\n송인희\n34\n또 하나의 위대한 여행-세계의 결혼식\n편집부\n40\n프리다이빙, 첫 바다로의 초대\n박상준\n68\n프리다이빙 여행자 클럽\n편집부\n지구사용설명서\n〉〉〉\n76\n브로크백 마운틴의 호숫가에 서서\n이무늬\n92\n알버타 백과사전\n편집부\n102\n알버타行 여행인문학\n편집부\nTRAVEL\n〉〉〉\n108\n마치 처음 본 것처럼\n변종모\n132\n인생 첫 로드트립\n정이분\n148\n호주 로드트립\n편집부\n158\n그 여행이 내게 천 개의 처음을 주고\n박은애\n아트래블 ARTRAVEL (월간) : 28호 [2018]\nhttp://www.yes24.com/24/goods/59095380","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01","published_date":"2018-03-07T12:3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06,"source":"brunch","title":"이곳은 분명 숨은 보석일 거야","content":"봄날의\n배경여행\n이어 플러그가 귓속에서 점점 차오르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관광객들과 호객하는 상인들의 활기로 북적이던 거리에서 살짝 비켜간 골목길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지더니 헌책방 무시분코\n蟲文庫\n가 보였다. 나는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걷고 있었다.\n우린 오후 느지막이 구라시키에 도착했다. 여섯 시면 해가 떨어지는 이곳에서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는 우울함을 극복하지 못한 남편이 뭉그적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호텔방에 홀로 남겨두고 구라시키 미관지구에 들어갔다. 나 역시 여행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몹시 울적했지만 눈부시게 맑은 날의, ‘미관’이란 단어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이곳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다면 그땐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질 것 같았다.\n벌써 떨어지다니.\n오카야마 구라시키 미관지구\n구라시키 아이비 스퀘어\nMushi Bunko\n★★★★★ · 중고 서점 · 11-20 Honmachi\nhttps://www.google.co.kr/maps/place/Mushi+Bunko/@34.596654,133.774952,15z/data=!4m5!3m4!1s0x0:0xcfc5e0b84a58749b!8m2!3d34.596654!4d133.774952?sa=X&ved=0ahUKEwiSmvnk4ePZAhXEW5QKHYtIBnEQ_BIIrAEwCg&shorturl=1\n서둘러 맞은 봄 햇살은 무척이나 반가웠지만 바람은 여전히 싸늘하다. 물론 그 바람은 하얀 건물이 놓인 이곳 미관지구에 먼지 한 톨 내려앉지 못하게 하는 듯 더욱 깨끗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1979년에 미관지구로 지정된 이곳은 21헥타르 규모의 면적에 전통 건축물 보존지구와 전통 미관 보존지구가 함께 있다. 에도시대 초기에 막부의 직할지가 되고 대관소가 설치되면서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한다. 구라시키 강을 통해 물자가 활발히 오가고, 강변을 따라 흰 벽의 창고와 집들이 들어섰다. 그 후 현재까지 자연재해나 전쟁의 피해가 없어 건물과 경관이 오래도록 보존되었다.\n구라시키 미관지구는 오카야마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여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이기도 한 듯 기모노를 (아마도 대여해) 입은 젊은 일본인 커플도 많았고 외국인 관광객도 상당했다. 또 일본의 유명 관광지라면 빼놓을 수 없는 인력거꾼과 관광용 배의 노를 젓는 사람들까지. 전형적인 관광지의 시끌시끌한 모습이었다. 어차피 혼자 있어 감상을 나눌 사람도 없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는 이곳을 서둘러 빠져나가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굳이 구라시키에서 하룻밤을 자려고 한 이유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n너무 재미있게 읽어 한국어로 번역을 해보고 싶단 생각을 한 수필집이 한 권 있다. <나의 작은 헌책방\nわたしの小さな古本屋\n>은 오카야마 구라시키 변두리에 위치한 작은 헌책방 ‘무시분코’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20년 넘게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n다나카 미호 씨.\n책에는 책방을 운영해 나가는 이야기가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게다가 드문드문 등장하는 고양이와 강아지 등 동물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고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책장을 덮으며 ‘이곳은 분명 구라시키의 숨은 보석’ 일 거라 생각했다.\n“얼마 전에 일을 그만두게 되어서, 헌책방을 해보려고 합니다.\"\n어느 날 그때까지 2년 정도 일했던 아르바이트를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어찌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무의식적으로 헌책방에 갔습니다. 그리곤 친한 책방 주인에게 마음을 정하기도 앞서 말부터 내뱉어 버린 것입니다. 당시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집안 사정도 있고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취직을 했습니다만, 그 회사란 곳이 노동기준법을 완전히 무시하는 말도 안 되는 곳이라 근무한 지 10개월 만에 몸이 망가져 퇴직. 당분간 풀타임 근무는 어려워 찻집이나 선물가게 등에서 단시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요령이 좋지 못해, 계산이 서투르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낮은 편. 이미 ‘회사엔 적성이 맞지 않다’는 자각이 있었으므로, 언젠가는 내 가게를 차리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습니다.\n특별히 어떤 가게 주인이 되고 싶단 생각이 아니라 단지, 내가 있을 곳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헌책방 주인이 되자’고 결심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책을 좋아한다는 것과 자금이 없다는 이유도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책이라면 이미 주변에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우선 그것을 진열해 볼까, 라는 안이한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 일을 배우는 기간은 물론, 지식도 마음가짐도, 자존심도 야망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n- <나의 작은 헌책방>의 시작\n무시분코에는 체감상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에 해당하는 책이 많아 보였다. 일본 소설, 수필을 좋아하는 나는 선뜻 손이 가는 책이 많지 않았지만, 일을 하면서(백과사전을 만들 때) 참고로 한, 익숙한 사전들이 많이 보여 반가웠다. 그러고 보니 <나의 작은 헌책방>의 저자이자 이곳 책방 주인인 다나카 미호 씨는 이끼 애호가. 이끼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오카야마 이끼 모임'의 회원이기도 하고, <이끼와 걷다>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n관심이 가는 책이 하나 보여 집어 들었다가 다시 놓았다가 다시 돌아와 집어 들었다. 그러던 중 한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치바에서 왔다고 하는 아주머니는 책방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끼 연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듯한 아주머니는 깨끗한 이끼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단다. 그러던 중 이끼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다나카 미호 씨와 무시분코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언젠가 오카야마에 올 일이 있으면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두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버려 책을 고르던 손이 멈춰버렸다. 실제로 다나카 씨가 앉아있는 자리 뒤로 이끼가 살고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건물 뒤쪽에 산이 솟아 있어 이끼가 살기에 나쁘지 않은 환경이라고.\n역시 아까 봐 둔 책 보다 사고 싶은 책은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다구치 쿠미코의 <서점 번성기>란 책을 샀다. 다나카 씨의 양해를 구한 후 책방 내부를 사진에 담고나서 밖으로 나오니 봄빛을 뿜어내던 해가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빨리 호텔로 돌아가 남편을 데리고 나와야지.\n“여기다 여기.”\n청년 둘이 호들갑을 떨며 책방에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n◆蟲日記◆\n古本屋・倉敷「蟲文庫」店主の日記です。更新は時々ですが、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いたします。\nhttp://mushi-bunko-diary.seesaa.net/","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02","published_date":"2018-03-11T08:1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07,"source":"brunch","title":"13화 돌은 저 안에 있네. 문을 열게","content":"어두운 오솔길을 천천히 앞으로 나가자, 큰 떡갈나무 아래 조금만 사당이 있었다.\n샌더스는 손전등으로 그 사당을 비췄다.\n“돌은 저 안에 있네. 문을 열게.”\n-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n그곳에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물론 해가 진 후에 도착해야 정답이지만 (호시노 청년도 늦은 밤에 방문했으니) 내게 그럴만한 담력은 없었다. 깊은 밤에 신사라니.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신사란 곳은 한낮에 방문해도 서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시로미네 산기슭에 위치한 다카야 신사\n高屋神社\n경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저무는 해가 신사 입구에 서 있는 도리이부터 오렌지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신사를 가운데 두고 옆에 놓인 길들은 숲으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소설 <해변의 카프카> 속에서 호시노 청년은 이곳에서 만나야 하는 돌이 있다. 나 역시도 그 돌을 마주하고자 이곳까지 왔다. 물론 이 신사가 정말 <해변의 카프카>의 배경이라면 하는 말이지만.\n해변의 카프카(상)\n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해변의 카프카』상권. 하루키의...\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70128085&g=KOR\nGoogle Maps\nFind local businesses, view maps and get driving directions in Google Maps.\nhttps://www.google.com/maps/place/Takaya+Shrine/@34.3358639,133.9100891,17z/data=!4m13!1m7!3m6!1s0x0:0x0!2zMzTCsDIwJzA5LjEiTiAxMzPCsDU0JzQ0LjIiRQ!3b1!8m2!3d34.3358639!4d133.9122778!3m4!1s0x3553dd7b0478c7c3:0xaac094a0c2307078!8m2!3d34.3359415!4d133.9131025\n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 카프카 소년은 15살 생일을 맞으며 가출한다. 그의 아버지가 예언한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나와 육체관계를 맺는다’는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는 시코쿠 다카마쓰란 곳에 도착하여 고무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도서관에는 성동일성 장애를 가진 사서 오시마가 있다. 오시마는 도서관을 관리하는 사에키 씨와 논의하여 카프카 소년이 도서관에 머물 수 있게 돕는다. 사에키는 어릴 때부터 늘 함께 지내던 연인을 스무 살 때 잃은 50대 여성이다. 그녀는 카프카 소년의 ‘가설 상’의 어머니. 한편, 소설에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도쿄 나카노구에서 보조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나카타 노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떤 사고를 겪은 후 글을 읽지 못하게 되었으나 고양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나카타 역시 다카마쓰로 향하는데, 길 위에서 만난 호시노 청년과 ‘입구의 돌’을 찾고, 여닫는 일을 하게 된다.\n어디에 있을까.\n어디에 있을까.\n<해변의 카프카>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으로 등장하는 ‘입구의 돌’. 호시노 청년은 커낼 샌더스의 도움으로 신사에 있던 입구의 돌을 들어 올린다. 물론\n다카야 신사에 있는 돌은 ‘입구의 돌’이라고 추정되는 돌\n이다.* 우선 왼쪽에 있던 관음사부터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돌을 찾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니 돌만 찾으며 시간을 보내기엔 아쉬울 정도로 분위기가 꽤 근사했다. 꽃이 슬슬 피기 시작한 날씨지만 아기 돌부처는 앙증맞은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석양은 구석구석에 내리 꽂혀 건물의 빛깔을 더욱 곱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카타 노인과 호시노처럼 열심히 돌을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올라선 공간에서 돌을 발견했다. 소설 속 묘사와 같이 모양이 아주 둥그스름하지 않아도 크기가 딱 LP레코트판 정도에 하얗고 넓적한 돌이다. 호시노 청년은 다른 세계로의 통로를 의미하는 이 돌을 나카타 노인에게 가져간다. 입구의 돌을 보고 난 나는 이미 이곳이 <해변의 카프카>의 배경임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돌을 이렇게 가둬 둔 것은 어느 신사에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n다카야 신사\n가마다 공제회 향토박물관\n사실 이 확신은 앞서 다녀온 장소의 영향일지 모른다. 우리는 네 시를 살짝 넘긴 시간에 사카이데에 있는 가마다 공제회 향토박물관\n鎌田共済会郷土博物館\n에 도착했다. 네 시부터는 관람객을 받지 않아 내부를 관람하지 못했지만, 박물관 외관과 바로 옆에 있던 정원 고후엔 풍경만으로도 이곳이 <해변의 카프카> 속 고무라도서관의 모델일 것이란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학적인 것에 돈을 아끼지 않은 고무라 가문’이 세운 도서관이라는 소설 속 설정처럼 이곳은 일본의 실업가이자 귀족이었던 가마다 가쓰타로란 사람이 자선, 사회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건물이다. 정원 역시 가마다의 별장이었다. 고후원에 놓인 돌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었을 카프카 소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곳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꽤 사랑을 받는 공간인 듯 저녁 무렵이 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정원을 채웠다. 그중 몇 명은 정자에 앉아 석양을 기다리기 시작했다.\n그날 밤은 다카야 신사를 입구에 둔 시로미네 산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잠을 잤다. 전 날까지만 해도 날이 맑아 나카타 노인이 건너온 커다란 다리가 저 멀리 보였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빠른 속도로 몰려와 비를 뿌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아침에 들어간 노천 온천에서 나는 숲의 향기를 더욱 깊이 들이마실 수 있었다. 온천물의 표면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투명한 면봉이 속속 솟아오르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시로미네 산을 내려가며 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꿩을 한 마리 만났다. 파란빛의 몸통에 붉은 얼굴은 가진. 이곳 풍경에 있으니 꽤나 화려한 생명체였다.\n저멀리 세토내해대교\n고치로 향하는 길\n그리고 우리는 카프카 소년이 잠시 몸을 숨겨야 할 때마다 향했던 장소를 찾아 빗속을 달린다.\n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방향만이 정해져 있을 뿐.\n*) 다카야 신사도 가마타 공제회 향토박물관 정보도 <산책으로 느끼는 무라카미 하루키 さんぽで感じる村上春樹>(다이아몬드 사) 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03","published_date":"2018-03-21T13:5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08,"source":"brunch","title":"20화 그리고 나카무라 우동은 정말 굉장했다!","content":"목 넘김이 좋다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n면이 목으로 끊김 없이 술술 넘어간다.\n무라카미 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하루키의 여행법>에서 하루키는 2박 3일간의 시코쿠 여행 동안 다섯 곳 이상의 우동집을 순례한다. 그중 딱 한 곳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데, 책을 읽다 보면 그곳의 맛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다. 하루키의 <하루키의 여행법>에 실린 ‘우동 맛 기행’은 잡지 <하이패션> 편집자 마쓰오의 고향 자랑 때문에 탄생한 글이다. 자신의 고향 사누키 우동이 굉장히 맛있다고 줄곧 이야기하는 마쓰오를 따라 하루키와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는 가가와현으로 떠난다. 1990년 10월 말 가을. 사흘간의 우동여행.\n한편 우리들의 시코쿠 여행.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카무라 우동에서 먹은 우동은 우동에 대한 나의 생각을 180도 바꿔놓았다고도 할 수 있다. 우선 내가 ‘우동’하면 떠올리는 국물색. 짙은 갈색이란 편견. 우동의 본고장에서 만난 국물은 베이지색에 가까웠다. 자칫 심심하지 않을까 싶어 간장을 더 넣지 마시길. 간은 딱 맞다. 색깔은 옅어도 맛의 깊이는 얕지 않다. 멸치를 우린 듯한 국물에서 깊은 맛이 느껴졌다. 그리고 면. 나는 이제까지 우동면이란 것은 굵기가 어느 정도 있어 조금 오래 삶아도, 덜 삶아도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생각했다. 비교적 다루기 쉽다고 업신여겼다. 나카무라 우동집에서 먹어본 면은 이제까지 먹어온 우동의 면과 전혀 다른 식감, 질감이었다. 그대로 구현해낼 자신이 없다. 한 가닥 한 가닥이 탱글탱글하지만 목으로 넘기는 데는 막힘이 없다. 조금 많이 삶았다 싶은 날의 우동면 처럼 흐물흐물하지도 않고, 조금 덜 삶았다 싶은 날의 면과 같이 퍽퍽하지도 않다. 보통 마실 것을 이야기할 때 쓰는 표현. 목 넘김이 좋다는 표현이 국수에 적용될 수도 있다니. 나카무라 우동에선 면을 조금 더 익혀 먹고 싶으면 직접 데칠 수 있는데, 그때 점원이 “5초만 더 삶으시라”는 조언을 듣길 정말 잘했다.\n가가와 현 우동가게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셀프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다. 우선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어떤 우동을 먹을지 선택하여 점원에게 말한다. 우동 종류는 가케우동(뜨거운 국물, 차가운 국물 선택 가능), 쇼유우동(간장우동), 히야시우동(냉우동), 가마다마우동이 있다. 나는 가장 기본인 가케우동 소(小) 자를, 남편은 (방금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온 사실을 까먹었는지) 가장 비싸고 양 많은 가마다마우동 특대를 시킨다. 가케우동은 익힌 면을 찬물에 헹군 후 그릇에 담아주는데, 기호에 따라 조금 더 익혀 먹어도 좋다. 채에 면을 넣어 커다란 솥에 풍덩 후 약 5초. 그러고 나서 우동 위에 올릴 튀김을 선택한 다음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가면 2개의 커다란 육수통이 나란히 서있다. 뜨거운 국물, 차가운 국물. 그릇에 원하는 국물을 직접 붓고, 육수통 옆에 있는 생강, 파, 시치미를 적당히 뿌리면 완성. 무라카미 하루키가 방문했을 땐 다른 손님이 ‘파가 다 떨어졌으니 파 좀 달라’고 하자, 주인이 ‘뒷마당에 많으니 뽑아다 먹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셀프에 자유로운 분위기. 물론 요즘엔 파를 넉넉히 준비해두기 때문에 직접 뽑아먹을 일은 없다고... 남편이 시킨 가마다마 우동은 면을 삶은 후, 찬물에 헹구지 않고 먹는 가마아게우동에 달걀을 올린 것이다. 면에 붙어 있는 점액을 씻어내 쫄깃함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가게우동과 달리 면 표면에 끈적함이 남아 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불어 식감이 변화한다. 게다가 남편은 특대를 시켰으니 오래도록 먹으며 다양한 식감을 느꼈을 듯. 심지어 우동 위에 올리는 튀김도 3개나 골라, 점원이 그릇을 따로 챙겨주기까지.\n가마다마우동\n가케우동과 지쿠와튀김\n둘이 같이 해서 1,200엔 정도가 나오자, 계산을 해준 학생 옆에서 서 있던 남자(아마 나카무라 씨?)가 “그 정도 안 나올 것 같은데?”라고 말한다. 직접 포스기를 다시 두드리더니, 1,090엔으로 정정되었다. 이 상황을 겪고 보니 남편이 이야기해준 책 내용이 떠올랐다.\n역시 가가와 사람들은 점심 값으로 천 엔이 넘어가면 비싸다 여기는구나.\n가가와 현 사람들은 도시에서라면 당연한, 런치에 1000엔 이상 받는 가게에는 가려고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반드시 내뱉는 대사가 바로, “그 돈이면 우동을 ○○그릇 먹을 수 있겠다”이니까요. 다시 말해 우동 한 그릇이, 그들이 물건 가격을 따질 때의 단위라는 말입니다. ‘엔’이 아니라 ‘우동’인 셈이지요.\n시험 삼아해보세요. 우동은 엄청나게 리얼리티를 느끼게 하는 단위입니다. 엔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지만, 우동은 인간을 반나절은 확실히 살아남을 수 있게 합니다.\n- 이나가키 에미코 <퇴사하겠습니다> 중에서\n<퇴사하겠습니다>는 아사히신문사 기자였던 저자가 40살에 퇴사를 결심하고 10년 동안 준비하여 50살에 퇴사를 한다는 내용. 두 번째 장 ‘우동 현에서 행복해질 줄이야’에서는 저자가 가가와현 다카마쓰 지국장으로 지냈을 때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그때 경험이 그녀의 퇴사 결심에 큰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실제로 우동 현이라고도 불리는 가가와 현의 사누키 우동은 관광객들을 위한 상품이 절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의 삶에 아주 밀착해 있는 음식이자 식습관. 일본 전국에서 우동 소비율이 1위임은 당연하고, 주 1회 이상 우동을 먹는 인구가 90퍼센트 이상이라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n이런 우동을 한 번밖에 먹을 수 없단 사실은 내게 너무나 울적한 일이다. 나는 우동면과 간장을 사서 돌아왔다. 그리고 어젯밤 가쓰오부시 국물을 내고 청경채, 배추, 표고버섯, 팽이버섯을 넣은 후 나카무라 우동집에서 사 온 간장을 뿌려 간을 맞췄다. 함께 사온 생면은 5분 정도 삶아 찬물로 헹군 후 국물에 말았다. 나카무라에서 먹었던 것처럼 파도 듬뿍 넣고, 달걀도 반숙으로 익혀 올린다.\n아아. 이것까지 다 먹어 버렸으니 당분간 하루키의 ‘우동 맛기행’은 읽을 수 없다. 분명 나카무라 우동이 너무 먹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질 테니.\n‘우동 맛기행’의 마지막 문장.\n“그리고 ‘나카무라 우동’은 정말 굉장했다!”\n잔인하다!\nInformation\n나카무라 우동\nナカムラうどん\n가가와현 마루가메시 한잔초 니시사카모토 1373-3\n香川県 丸亀市 飯山町 西坂元 1373-3*\n매일 9시- 14시까지** 운영\nhttp://www.nakamura-udon.net/\n* 가까이 같은 이름의 가게가 하나 더 있으니 주의\n** 면이 다 떨어지면 문을 닫습니다.\n하루키의 여행법\n, 등을 펴낸 일본 인기작가가 귀중한 글쓰기 수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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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는 작은 숲 속 같은 그 곳에서 자급자족하며 농촌 생활을 시작한다. 직접 농사지은 작물들과 채소, 그리고 제철마다 풍족하게 선물해주는 자연의 선물로 매일 정성껏 식사를 준비한다. 음식을 먹으며 음식과 얽힌 엄마와의 추억을 문득 떠올리는 이치코에게 낯익은 필체의 편지가 도착하는데..\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90730\n리틀 포레스트. 1\n매일 아침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성찬이 시작된다! 《마녀》 《해수의 아이》로 압도적인 화풍을 선보인 천재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리틀 포레스트』 제 1권. 땀과 시간을 들여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먹는 즐거움이 생생한 농촌 생활 만화의 걸작이다.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일품인 이 작품에서 저자는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일본 동북 지방의 산골 마을에 직접 살아본 듯한 대리체험을 맛보게 한다. 일본 토호쿠 산간 지방의 작은\n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83719713\n이가라시 다이스케가 그린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이치코는 도쿄에서 살다가 도호쿠 지방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온다. 논과 밭을 일궈서 식재료를 얻고, 맛있는 요리를 직접 만들어 먹는다.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일본에서 제작된 영화는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나뉘어 있고 두 편씩 묶어 개봉했다. 촬영지도 도호쿠에 있는 오모리란 마을. 한편 올해 개봉한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엔 서울에서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지친 혜원(김태리 분)이 주인공으로, 회사에 다니다가 월급날이나 기다리며 살기 싫다며 퇴사를 하고 돌아온 재하(류준열 분), 고향에서 은행을 다니지만 서울에 가고 싶은 은숙(진기주 분)이 등장한다. 한 편 안에서 겨울부터 시작된 계절이 흘러간다.\n<리틀 포레스트> 세 명의 등장인물 (출처 : 다음 영화)\nDaum영화 <리틀 포레스트>\n“잠시 쉬어가도, 달라도, 평범해도 괜찮아!모든 것이 괜찮은 청춘들의 아주 특별한 사계절 이야기”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은 오랜 친구인 재하와 은숙을 만난다.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6307\n우리 외갓집이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면 담고 싶은\n나에게 <리틀 포레스트>가 각별한 이유는 나도 어린 시절 잠깐의 시간을 보냈고, 우리 엄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외갓집이 자연스레 겹쳐지기 때문이다. 외갓집은 시골이지만 내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 살았던 친정과 매우 가까워 우리 집 식탁에 산뜻한 영향을 끼쳐왔다. 요즘에도 엄마는 봄이 오면 외갓집에 가서 쑥을 캐와서 찹쌀가루와 설탕을 넣어 만든 쑥버무리를 해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 중 하나. 시장이나 마트에서 산 쑥으로는 절대 나오지 않는 향긋함이 입 안 가득 퍼진다. 몇 해 전 “에이 이미 쑥은 억세서 못 먹어. 지난주에 왔어야지.”라고 말하는 외삼촌의 모습을 보며, ‘쑥버무리가 맛있는 시기도 벚꽃만큼 짧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들빼기김치. 고들빼기는 꽃을 피우기 전에 뜯어서 김치로 만든다. 나는 고들빼기와 민들레를 구별하지 못하지만, 통통한 뿌리를 씹을 때 느껴지는 씁쓸한 맛을 좋아해 시도 때도 없이 엄마에게 “고들빼기김치가 있는지” 묻곤 한다. 엄마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줄 아니. 쓴 맛을 빼려면 오래 기다려야 돼.”라고 하면서도 때가 되면 해주시곤 한다. 고들빼기김치만 있으면, 아무리 맛없게 끓인 라면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아. 라면은 원래 맛있나. 아무튼. 고들빼기김치와 라면은 환상의 조합이다. 고들빼기는 가을에도 한 번 더 먹을 수 있는데, 가을이 오면 시골 밥상은 더욱 풍성해진다. 일본 영화에선 이치코가 버려지는 산수유 열매로 잼을 만드는 장면이 있다. 이치코는 설탕을 더 넣어야 할까 망설이는데,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잼도 매우 떫었다. 엄마의 잼은 보리수로 만든 것. 산수유와 보리수 열매는 굉장히 닮아 있지만 산수유가 조금 더 신 맛이 있다고 한다.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를 산수유로 유명한 경북 의성에서 찍었다고 해서 영화에 당연 산수유 열매 잼이 등장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외갓집이 있는 파주는 콩이 유명해서 가을에 수확한 콩, 산에서 주워온 도토리가 고소한 두부와, 탱글탱글한 도토리묵이 되어 겨울 식탁을 쓸쓸하지 않게 해준다.\n의성 산수유마을 ©moonee /  우. <리틀 포레스트> 속 장면 (출처 : 다음 영화)\n의성 산수유마을에서 만난 개나리와 마늘밭 ©moonee\n의성 산수유마을 ©moonee\n의성 산수유마을에서 만난 산수유 꽃 ©moonee\n화면보다 훨씬 아담한 공간\n파주 이야기만 늘어놓았는데, 사실 <리틀 포레스트>는 경상북도 의성과 군위를 배경으로 한다. 우린 우선 의성에 있는 산수유마을에 갔다.  산수유 축제 기간이라 주차장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고 주차관리를 하는 사람들도 서 있었다. 행사가 이미 끝났는지 광대 분장을 아직 지우지 않은 아저씨가 길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고, 천막과 플라스틱 테이블들이 비어있었다. 나는 지방에서 ‘00 축제, 00 공연, 전통놀이대회 등 각종 부대 행사’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고, 노점상을 열고, 트로트를 틀어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만드는 행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때마침 잘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축제를 보고 나온 듯한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오던 시간이었다. 온화한 봄의 햇빛이 노란 산수유꽃과 연둣빛 마늘밭에 내려앉기 시작한다. 주인공 혜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 길에 석양까지 더해진 풍경. 이곳에서 차를 타고 30분 정도 더 가면 군위군 우보면에 혜원의 집이 있다.\n<리플 포레스트> 영화 속 장면 (출처 : 다음 영화)\n<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집 ©moonee\n<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집과 집 앞 구천 ©moonee\n<리틀 포레스트> 속 혜원의 집 ©moonee\n70년 된 빈 집을 빌려 찍었다고 하는데 혜원의 집은 다시 빈 집이 되어 있다. 어쩜 이렇게 좋은 위치에 집이 있을까, 또 이곳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뒤로는 나지막한 산이 있고 앞에는 ‘구천’이라고 하는 낙동강의 지류인 하천이 흐른다. 이 하천에서 혜원과 재하(류준열 분)가 다슬기를 땄다. 주변 풍경과 집이 실재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데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가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신기했다. 화면에서 느껴진 것보다는 훨씬 더 아담한 공간. 누군가에 의해 관리되고 있거나, 관광객이 많이 다녀간 흔적은 없어 보였다. 촬영 소품으로 쓰였던 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혜원이 사용한 냉장고도 그대로. 이토록 현실감 있는 모습을 마주하니 ‘여기서 살아보고 싶은데?’ 꿈이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n* 구글 지도에 '혜원의 집' 옛 모습(2015년 사진)이 남아 있어요.\n무엇이 변했는지 비교해보세요.\nGoogle Maps\nFind local businesses, view maps and get driving directions in Google Maps.\nhttps://www.google.co.kr/maps/@36.1797811,128.6648055,3a,85.8y,256.52h,89.72t/data=!3m6!1e1!3m4!1sgYd4X-Me5nr64eCvu4EX2A!2e0!7i13312!8i6656","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06","published_date":"2018-04-09T14:05+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0,"source":"brunch","title":"12화 일요일 오후 따스한 햇살 아래에선 모두들 행복해 보였다","content":"아카시아와 밤나무 꽃향기가 은은하게 나는 일요일 봄날. 나오코와 와타나베가 걸어간 길을 똑같이 걷고 또 걸었다. 우리의 간격도 1미터 떨어져 있다. 두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n그러나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나오코의 발걸음이 너무 빠르고 진지했다. 그녀는 이다바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보리바타를 나서서 진보초 교차로를 건너 오차노미즈 언덕을 올라 그대로 혼고 쪽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전철 노선을 따라 고마고메까지 걸었다.\n-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에서\n다 걷고 나니 둘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걸을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보도가 끊김이 없이 주욱 연결되어 있다. 일단 걷기 시작하면 어디에서 그만두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좀처럼 멈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은 나의 상상으로부터 꽤 비껴가 있었고, 고마고메에 도착하니 정말 해는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소설 속 문장과 같이.\n《노르웨이의 숲》배경여행 - 요쓰야역 ©moonee\n《노르웨이의 숲》배경여행  ©moonee\n《노르웨이의 숲》배경여행  ©moonee\n산책의 시작. 아주 사소한 다툼이 나와 남편의 간격을 자연스레 1미터 정도 벌렸다.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나오코는 도쿄 주오선(도쿄역에서 나고야역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에서 와타나베를 우연히 만나 함께 걷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1미터를 앞서 걷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을 땐 복작대는 도쿄 풍경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탓인지 둘이 걸은 길이 좁고 조금 위험한, 회색빛이 감도는 길이라 상상했다. 그래서 요쓰야역에서 내려 제방을 따라 걷는 길을 만나자마자 굉장히 놀랐다. 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는 산뜻한 산책로였고 초록빛(일본어로 미도리!)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도심에 이런 길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잘 가꾸어져 있고, 길 양 옆엔 대학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산책로 중간중간 놓인 벤치엔 홀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프로 수준급의 기타를 연주하는 서양인 아저씨도 만났다. 봄바람이 상쾌해 연주할 맛이 나는 듯했다.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젊은 부부도 많았다. 아빠가 아이를 향해 내뿜는 비눗방울을 봄빛이 감싸고, 그 방울방울 사이를 걷는 아이의 모습은 몽환적이다. 하루키의 문장처럼\n‘일요일 오후의 따스한 햇살 아래에선 모두들 행복해 보였다.’\n노르웨이의 숲\n“나를 언제까지나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걸 기억해 줘.”하루키 월드의 빛나는 다이아몬드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기 위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페이지를 처음 펼치는 오늘의 젊음들에게, 그리고 오랜 기억 속에 책의 한 구절을 간직하고 있는 어제의 젊음들에게, 한결같은 울림으로 예민하고 섬세한 청춘의 감성을 전하며 영원한 ...\nhttp://www.yes24.com/24/goods/44499829\n이 길이 하나의 배경이 된 《노르웨이의 숲》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7년에 발표한 연애소설이다. 주인공은 37세의 와타나베 도오루. 그는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하는 보잉 747기 안에서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게 되며 19살 때를 회상한다. 19살의 와타나베 곁에는 자살한 친구의 여자친구였던 나오코와\n‘마치 봄을 맞이해 막 세상으로 튀어나온 작은 동물처럼 신선한 생명력을 뿜어내던’\n미도리가 있었다. 나오코는 옛 연인 기즈키의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산속 요양원에 들어가고 그곳에서 자신도 자살을 한다. 와타나베가\n‘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한다’\n고 느낀 약 3년간의 기억.\n나오코와 와타나베는 요쓰야에서부터 이어진 제방이 끝나는 지점인 이다바시에서 오른쪽으로 꺾는데, 이다바시는 우리가 숙박한 호텔이 위치한 곳. 전철을 타고 요쓰야까지 가서 다시 호텔로 걸어 돌아온 것이 우스웠지만, 멈추지 않고 나오코와 와타나베를 따라 걷는다. 그리고 진보초 교차로에 미치기 전에 한 재즈 카페(밤에는 재즈바가 되는 곳)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우린 19살이 아니라서 10킬로 가까이 되는 둘의 여정을 쉼 없이 걸을 순 없었다. 무엇보다 여름에 성큼 다가선 날씨였고, 목이 무척이나 말랐다.\n《노르웨이의 숲》배경여행  ©moonee\n재즈 몇 곡을 들으며(하루키도 전업작가가 되기 전까지 이런 재즈 카페를 운영했다) 목을 축인 후 다시 시작하는 산책. 책방이 줄지어 있는 진보초에서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사람들을 지나 오차노미즈 언덕을 올랐다. 왼쪽엔 세련되고 커다란 메이지 대학이 있다. 오차노미즈역 주변에는 학기 중이라 그런지 일요일임에도 젊은 사람들도 북적였다. 아까 전부터 길은 더 이상 산책로가 아닌 일반 보행로가 되어 있다. 오차노미즈역에서부터 약 20분 정도를 더 걸어서 도착한 곳은 도쿄대 아카몬(붉은 문). 정문보다 유명한 이 문을 지나... 가려했으나 맥주를 두 잔이나 마신 남편이 화장실을 들러야 했으므로 도쿄대학교에 잠시 들어간다. ‘나오코와 와타나베는 화장실 한 번을 안 가고 내리 걸었단 말이야?’란 생각을 하며 교정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이곳 역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공놀이를 하는 아빠나, 유모차를 벤치 곁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부부들이 봄날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n그리고 다시 걷고 또 걸어 고마고메까지. 도쿄대학 근처부터는 커다란 나무들이 길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어 지나온 진보초나 오차노미즈보단 걷기 좋은 길이 이어졌다. 그리고 중간쯤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무라카미 빵집과 무라카미 세탁소를 만난다. 물론 ‘무라카미’야 하나의 성이기도 하고, 지명이기도 해서 유난을 떨 일까진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속 배경을 걷고 있는 나에겐 두근거리는 장면. 게다가 그 근처에서 남편이 화장실을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해서(방금 전 카페에 들어가 맥주 한 잔을 더 마셨다!) 홀로 어슬렁대야 하는 시간이 길어 이 두 가게를 한참 구경했다. 세탁소엔 들어가 볼 일이 없지만 빵집 문이 열려 있다면 뭐라도 하나 샀을 텐데 아쉬워하며.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걸어 드디어 고마고메에 도착한다.\n《노르웨이의 숲》배경여행 - 고마고메  ©moonee\n《노르웨이의 숲》배경여행 - 고마쓰안  ©moonee\n고마고메에는 한껏 누그러진 봄 햇살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오코와 와타나베가 고마고메에 도착했을 때도 해가 저무는 따스한 봄날 저녁나절이었고, 둘은 소바집에 들어가 가벼운 저녁을 먹는다. 우리도 역 가까이에 있는 소바집 고마쓰안(小松庵 総本家 駒込本店)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1922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 이 가게는 최근에 리뉴얼을 한 듯 굉장히 세련되고 깔끔했다.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1968년에 들어갔을 가게와 모습은 다르겠지만, 맛은 비슷하리란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메밀 100%로 뽑아낸 소바는 고소하고 식감이 좋았다. 메밀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이왕이면 메밀 함유량이 높은 면을 주문하곤 하는데, 때때로 너무 거칠고 퍽퍽한 면을 만나 실망을 한다. 그러나 이곳의 면은 ‘정말 100%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완벽에 가까웠다. 그리고 여전히 목이 말라서 맥주를 두 병이나 더 마셨다. (대체 몇 cc나 마신건가...)\n“여기가 어디지?” 나오코는 문득 정신이 든 듯 나에게 물었다.\n“고마고메. 몰랐어? 우리 한 바퀴 빙 돌았어.”\n“왜 이런 데로 왔어?”\n“네가 온 거지. 난 그냥 뒤를 따라왔고.”\n-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에서\n그리고 우린 너흴 따라왔고.\n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배경여행  - Google 내 지도\n요쓰야에서 고마고메까지 나오코와 와타나베가 걸은 길\nhttps://www.google.com/maps/d/viewer?mid=12XjSEdTPrvJXhOviXEtNrkkJ6BnjHroG","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07","published_date":"2018-05-06T15:1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1,"source":"brunch","title":"그때 우린 세상이 넘칠 정도로 사랑했다","content":"사쿠타로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리츠코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우연히 뉴스 화면 속에서 리츠코를 발견한 사쿠타로는 그녀의 행선지가 시코쿠임을 알고 뒤쫓기 시작한다. 리츠코가 시코쿠까지 가야 했던 이유는 이삿짐 속에서 발견한 오래된 카세트테이프 때문이었다.\n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이미지 출처 : Daum 영화)\nDaum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n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찾아온 투명한 슬픔...결혼을 앞두고 있는 리츠코 (시바사키 코우)는 어느날 이삿짐 속에서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 하나를 발견하고는 약혼자인 사쿠타로(오사와 다카오)에게 짧은 편지 한 장만을 남겨두고 사라져버린다. 리츠코의 행선지가 ‘시코쿠’라는 것을 알고 그녀의 뒤를 쫓는 사쿠타로. 하지만 그곳은 ..\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0272\n우린 쇼도지마에서 배를 타고 나와 시코쿠 다카마쓰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장 작은 어촌마을로 향한다. 일본 가가와현 다카마쓰에 있는 아지초(庵治町).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먼저 두 주인공의 모습을 사진에 남겨준 시게 아저씨의 사진관에 들어갔다. 사진관은 이제 카페가 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간단히 브런치를 먹으며 숨을 돌리기로 했다. 나는 명란젓이 발라 있는 토스트를 남편은 감자가 올라간 토스트를 주문. 바삭한 빵에 적절한 소금기. 건강한 기분이 들게 하는 수제 요구르트. 평범하고 담백해서 메인 요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양배추 샐러드까지. 거기에 곁들인 맛도 향도 매우 진한 커피. 테이블 곁에 있는 커다란 창문으로 듬뿍 쏟아지는 햇살이 빵과 커피를 오래도록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시간.\n봄빛까지 머금은 이 작지만 완벽한 식사는 온몸에 따뜻한 기운을 돌게 했다.\n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곁에 있는 건물에서는 개의 해를 맞이해 강아지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 슬쩍 들어가 보았다. 키우는 강아지를 사진으로 찍어 걸어둔 마을 주민들의 소박한 전시. 화려하고 번지르르한 작품전보다 따뜻하다.\n가타야마 교이치가 쓴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일본에서 영화, 드라마로, 한국에서도 <파랑주의보>란 이름의 영화로 제작된 작품이다. 1986년 여름을 배경으로 흐르는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여주인공 아키는 얼굴도 예쁘고 우등생에 운동까지 잘한다. 그런 아키가 평범한 남학생 사쿠타로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사쿠에게 라디오 심야방송에 응모엽서를 보내 사은품인 워크맨을 타자고 제안하며 둘은 가까워진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해 견딜 수 없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다가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졌다. 그렇게 세상이 넘칠 정도로 사랑하다 아키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더 이상 아키가 없는 세상에서 남학생 사쿠타로는 어른이 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때 결혼을 약속한 리츠코 손에 들려 사쿠타로에게 전달된 카세트테이프에서 아키의 마지막 메시지를 듣는다. 우리가 도착한 마을 아지초에서.\n작품전을 보고 나와 언덕길을 올라 도착한 어느 신사. 항구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사실 목적지는 신사가 아니라 신사 바로 앞에 놓인 그네다. 아키와 사쿠타로는 이곳에서 그네를 타며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축제에서 줄리엣 역할을 맡게 된 아키는 자살시도를 실패하고 눈을 떴을 때 로미오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된 줄리엣이 어떤 심정이었을지 사쿠에게 묻는다. 그러고 보니 성인이 된 사쿠타로는 잠에서 깨어나며 처음 등장한다. 영화 곳곳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이 녹아 있었구나.\n근사한 위치에 걸린 그네였다. 마침 날이 좋아 하늘과 바다가 굉장히 깨끗했고 그네를 타고 높이 올라 더 먼 곳까지 굽어보았다. 힘껏 뛰어오르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주인과 벤치에 앉아 있던 비숑프리제가 쪼르르 다가왔다.\n복슬복슬한 친구와 헤어지고 내려와 잠시 멈춘 항구엔 늠름한 (아마도) 아키타견이 바다를 보고 앉아 있었다. 아지어항은 부모님 몰래 간 여행에서 쓰러져 돌아온 아키를 아키의 아버지가 마중 나온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 아키를 태운 차가 급히 병원으로 향하고, 그 차를 맨발로 뒤쫓으며 뛰어가던 사쿠. 그 길을 따라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갔다.\n그 길에서 나는 아키와 사쿠타로의 애틋한 사랑보다 남은 사람, 남은 삶을 생각했다. 사쿠타로와 결혼을 앞둔 리츠코가 이곳에서 보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둘의 사랑의 깊이를 모두 듣고 느낀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n아지초\n일본 〒761-0130 가가와 현 다카마쓰 시\nhttps://www.google.co.kr/maps/place/%EC%9D%BC%EB%B3%B8+%E3%80%92761-0130+%EA%B0%80%EA%B0%80%EC%99%80+%ED%98%84+%EB%8B%A4%EC%B9%B4%EB%A7%88%EC%93%B0+%EC%8B%9C+%EC%95%84%EC%A7%80%EC%B4%88/@34.3878303,134.1023185,13z/data=!3m1!4b1!4m5!3m4!1s0x35538d8116e4c715:0x91a81e000243e371!8m2!3d34.3875519!4d134.1303053?sa=X&ved=0ahUKEwj42_DDyILbAhVBUbwKHUA_DmsQ8gEIvgEwCg&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08","published_date":"2018-05-15T13:1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2,"source":"brunch","title":"눈부시게 찬란한","content":"충격적인 것은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란 사실이었다.  게다가\n실화\n는 더 믿기 어려운 사실로 가득하다.\n여러 해 전에 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작년에 출간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안에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장면을 만나서였다.\n사실 히에이(영화에서 차남 역할)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하지 않고 찍었습니다. 우선 히에이에게 “무선 조종기로 놀고 있으렴”하고, 유야에게는 말로 대사를 가르치면서 화를 내며 무선 조종기를 걷어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히에이는 진심으로 울컥해서 “물건에 화풀이하는 거 아냐”라며 평소에 실제 어머니에게 듣는 말 그대로 유야에게 호통쳤습니다.\n저는 컷을 외친 다음 히에이에게 “미안해. 멀리서 이런 장면을 찍으려고 일부러 유야한테 화내 달라고 했어”라고 설명했지만 두 아이는 한나절 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차를 타고 돌아가는데도 둘 다 반대쪽을 보고 앉아있어서 교코 역의 아유가 어이없다는 듯 “둘 다 바보 아냐? 연기란 말이야, 연기”라고 말했던 것이 그립습니다.\n-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중에서\n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n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자서전영화와 사람 그리고 세상에 대한 생각을 전하다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영화를 찍는 작가로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신이 영화를 찍으며 배우고 깨달은 것, 그리고 앞으로 작품을 계속해 가며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마치 자신의 영화...\nhttp://www.yes24.com/24/goods/57242213\n그리고 나는 이 문장들을 읽으며 영화 속 아이들이 실제로도 가깝게 지내며 촬영했다는 배경에 가볼 기회만을 노려왔다.\n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네 명의 남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키라, 교코, 시게루, 유키. 그리고 넷의 엄마는 아이들을 집에 남겨두고 남자 친구와 살기 위해 집을 떠난다.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오겠단 말을 믿으며 아이들은 매일매일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크리스마스는 지나가고, 막내 유키의 생일도 지나가고, 겨울도 끝이 나고, 봄이 오고, 더위가 찾아와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한동안은 보내주던 생활비도 받지 못하고 있다. 월세는 당연 밀려 있고 수도와 전기도 끊겼다. 돈이 없으니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지만 장남 아키라는 보호소에 신고가 들어가 동생들과 떨어져 지내게 되는 일이 싫다.\n영화 속 네 명의 아이들이 생활하는 아파트는 도쿄 나카노구에 있다. 누마부쿠로라는 고즈넉한 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간 곳이었는데 영화 속 모습 보단 훨씬 근사한 주거지였다. 아파트까지 걸어가는 길에 돌아본 마을 풍경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 살아 보고 싶단 마음까지 들었다. 한 줄기 하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곁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영화에서 아키라가 이 길을 걷는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한 번은 잠깐 집에 짐을 챙기러 온 엄마와 함께 걷는데, 그때 엄마는 ‘다시 곤란해지면 전 아빠들(아이들의 아빠가 모두 다르다)을 찾아가 돈을 꾸란’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마을엔 눈길을 끄는 으리으리한 주택도 있고, 세련된 새 맨션도 들어서 있었다.\n영화 <아무도 모른다> 속 아파트 ©moonee\n그래. 영화를 다시 떠올려보면 눈부시게 찬란한 화면들이 스쳐지나간다. 그들의 삶과 대조적으로 아이들이 있던 공간은 햇살로 가득 차있고, 여러 빛이 모여 영롱하단 인상을 준다. 어두운 줄거리 속에서 이런 찬란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에 담겨 있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접하고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어째서 장남은 동생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지 않았던 걸까요?’ 그는 남매들이 본 풍경이 비단 잿빛 ‘지옥’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상상한다. 물질적인 풍요는 없어도 남매들끼리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눴고 그들만의 성장과 희망의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내가 영화 속에서 본 빛들은 감독이 의도하여 쏟아낸 모습이었던 것이다. 마침 아이들이 살았던 아파트 벽면에 내리 꽂힌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한 것처럼 무지개색을 내고 있었다.\n아파트는 무려 1965년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하는데 많이 낡아 있었지만, 지저분하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공원에서 꽃씨와 흙을 가져와서 컵라면 용기에 심은 화분이 늘어서 있던 베란다. 베란다의 육각형 모양 난간도 똑같이 붙어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파트 담장에 입주자 모집 중이라고 쓰여있길래 월세가 얼마나 될까 찾아보았다. 한 달 9만 5천엔. 도쿄의 물가, 일본의 최저시급 등을 같이 생각해도 부담스러운 가격. 이 숫자와 영화 속 가족들의 생활은 도무지 연결 지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월세를 찾아본 덕분에 집 안 사진을 만났다. 들어 가볼 수 없었던 방 모습이 보이니, 자연스레 아이들을 하나둘 앉혀보게 된다.\n월세정보 :\nhttps://www.homes.co.jp/chintai/b-1167140129631\n아파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아이들이 물을 받기도 하고, 빨래도 하고,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공원이 나온다. 니시오치아이공원에는 <아무도 모른다> 속 시게루와 유키 나이 정도 되는 아이들이 엄마나 아빠와 함께 따뜻한 휴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가정적인 분위기로 충만해서 영화 속 네 남매가 이곳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면 굉장한 위화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n영화 <아무도 모른다> 속 계단 ©moonee\n영화 <아무도 모른다> 속 공원 ©moonee\n(영화 스틸컷 출처 :\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0283\n)\nDaum영화 <아무도 모른다>\n다시 돌아오겠다는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지금은 잘 지내고 있나요?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오겠다는 메모와 약간의 돈을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버린 엄마. 열두 살의 장남 아키라, 둘째 교코, 셋째 시게루, 그리고 막내인 유키까지 네 명의 아이들은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아키라는 동생들을 돌보며 헤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어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가 빨리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네 명\n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40283\n공원 곁에 가파른 계단이 하나 있다. 주인공 아키라가 자주 오르내리는 계단이지만, 나는 이 계단을 실제로 보니 막내 유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이 계단을 올라가는 게임을 하는데, 가장 밑에 있는 유키가 정말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만 한참 밑에 있고 위로 먼저 올라간 친구들이나 사촌들을 올려다볼 때 그 초조함. 이곳에 서 있으니 어린 시절 느꼈던 그 기분이 되살아나서 아랫배가 살짝 아파왔다.\n영화의 배경이 된 마을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따스해서 이곳을 걸으며 몇 달째 방치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일은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고, 몰랐다고 말하는 어딘가에서 실재했던 이야기다.\n<아무도 모른다> 배경 :\nhttps://goo.gl/maps/TqZFF5FxD3R2\nGoogle Maps\nFind local businesses, view maps and get driving directions in Google Maps.\nhttps://www.google.co.kr/maps/place/Nishiochiai+Park/@35.719941,139.6744781,17z/data=!4m8!1m2!2m1!1z6KW_6JC95ZCI5YWs5ZySIA!3m4!1s0x6018f2a699a8bb51:0x37926ed2ce0d373f!8m2!3d35.7195982!4d139.6772967?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09","published_date":"2018-05-20T07:24+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3,"source":"brunch","title":"<N을 위하여>가 시작되는 섬","content":"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다.\n모두가 가장 소중한 사람만을 생각했다.\n가장 소중한 사람이 가장 상처 입지 않을 방법을 생각했다.\n- <N을 위하여> 중에서\n金曜ドラマ『Nのために』\nTBSテレビ：金曜ドラマ『Nのために』の公式サイトです。2014年10月スタート、毎週金曜よる10時放送！\nhttp://www.tbs.co.jp/Nnotameni/\n크리스마스 이브. 도쿄의 초고층 호화 맨션에서 회사원 노구치와 그의 아내 나오코가 살해된다. 현장에는 네 명의 젊은이가 더 있었다. 모두가 이름에 N을 이니셜로 갖는 사람들.\n남편과 나는 <N을 위하여>라는 일본드라마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았다. 언젠가 시코쿠 여행을 하게 된다면 드라마가 시작되는 배경 쇼도시마를 제일 먼저 가볼 계획이었다. 그래서 오카야마 공항에서 내려 차를 렌트하자마자 망설일 필요도 없이 달려간 곳은 쇼도시마로 가는 배가 있는 항구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배를 타고 쇼도시마까지 간다. <N을 위하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섬에서 우리의 여행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늘 그랬듯 마음만 앞선 탓에 시간 계산을 실패하고 말았다. 항구에 도착하니 배가 부웅 소리를 내며 떠나가고 있었다. 다음 페리는 1시간 40분 뒤에나 출발할 예정이란다. 오카야마 시내에 가서 점심이나 먹고 돌아올까하다가 페리 매표소 바로 옆에 있던 간이식당의 우동냄새가 좋아서 그걸 점심으로 삼기로 했다. 물론 아직 오카야마. 우동현이라 불리는 가가와현에 닿지 못했지만.\n<N을 위하여>의 주인공 스기시타 노조미는 세토내해에 있는 섬에서 태어났다. 부잣집딸인 엄마와 능력 있는 아빠 사이에서 어려움 없이 성장한다. 어느날 아빠가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기 전까진. 아빠는 갑자기 ‘우리 집안은 수명이 짧으니 이제부터라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고 선언한 후 노조미와 남동생, 그리고 엄마를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 바닷가에 위치한 하얗고 넓은 집에 살던 노조미는 산중턱에 위치한, ‘유령의 집’이라 불리는 허름한 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그런 시기 노조미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눈 친구가 있었다. 나루세 신지. 둘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정자에서 장기를 두거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쇼도시마에 도착하자마자 그 정자를 찾아갔다.\n드라마에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닷풍경이 내려다 보이던 그곳은 실제로도 근사했다. 흐린 날씨가 아쉬웠지만,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둥근 만 뒤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살갑고, 바다 위에 드문드문 놓인 섬들이 앙증맞다. 이렇게 좋은 풍경을 매일같이 마주할 수 있었음에도 노조미는 늘 ‘수평선이 보고 싶다’고 말한다. 섬이 떠 있어 갇혀있는 느낌을 주지 않는 바다가 보고 싶다고. 이미 이 풍경도 충분한데.\n처음 그 자리를 배치 받았을 땐 적잖이 당황했다. 옆 자리 할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는데 옷과 메고 있던 가방이 음식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입에서는 뭔가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식사할 기분이 싹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되도록 그 쪽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하지만 조금만 몸을 부주의하게 움직이면 어깨가 닿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다) 조식을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한참 가방을 뒤적거렸는데 나는 그 가방에 한가득 붙어있던 음식부스러기인지 할아버지 입에서 나온 음식물인지 모를 것들이 우리 쪽에 떨어질까 전전긍긍했다. 가방에서 무언가를 겨우 꺼낸 후 또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우리 테이블에 불쑥 테블릿화면이 끼어들었다. 할아버지가 하고 싶은 말, 질문을 써서 내민 것이다. 굉장히 흘려 쓴 일본어는 읽기 어려웠고, 중간 중간 ‘젊은이’, ‘쇼도시마’란 한자 정도가 눈에 들어왔다. 함께 있던 할머니께 조금 읽기 어려운데 어떤 말이 쓰였는지 여쭙자, “으음 어떤 부분을 모르겠어요?”라며 되물었다. 전체적으로 다 읽어달라는 것도 죄송스럽고 또 우리가 할아버지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어 재빨리 신분(?)을 밝혔다.\n\"저흰 한국인이라 일본어를 아주 잘 구사하진 못합니다.\"\n할아버지의 행동에 관여하지 않으려하던 할머니는 그제서야 “이 친구들에게는 무리야”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나서도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식사는 계속되었다. 할아버지가 기침을 할 때마다 할머니는 \"에고고. 입을 다물고!\"라며 주의를 주었지만 할머니의 호들갑에 신이 난 할아버지는 입을 벌려서 음식물을 더 내보이며 낄낄 웃었다. 할머니는 “아흐흐흐흐. 달걀 떨어진다 떨어진다!!!” 소리를 지르면서도 닦아주진 않고 웃고만 있다. “아무래도 앞치마를 사야겠어. 앞치마를 사자.”\n우리가 식사를 마칠 때쯤 할아버지의 오른쪽 테이블에는 간난아이를 안은 엄마가 와서 앉았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를 쳐다보자 아이가 방긋 웃었다. 아이는 턱받이를 예쁘게 하고 앉아 있었다. 할아버지의 모습과 간난아이의 모습을 함께 두고 보니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시간 감각이 뒤죽박죽 되어 버린 기분이었다.\n<N을 위하여>에도 점점 아이처럼 변해가는 엄마가 등장한다. 아빠에게 갑자기 쫓겨난 엄마는 아빠가 자신을 다시 데리러 왔을 때 못생기게 하고 있으면 안된다면서 고가의 화장품과 옷을 사들이기 시작한다. 아빠가 매월 주는 생활비를 다써버리고, 신용카드까지 만들어가며. 노조미는 아이처럼 생떼를 쓰는 엄마를 어르고 달래며 점점 지쳐간다.\n남쪽으로 난 커다란 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렇다는 것을, 그곳에서 쫓겨난 후에야 알았다. 조금만 섬이 올록볼록 떠 있는 청록색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내게는 호흡이나 다름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숨을 쉴 수 없게 돼 버린 나는 조금 망가졌다.\n- <N을 위하여> 중에서\n하얀 궁전에서 쫓겨난 셋이 살던 집을 찾아가 보았다. 앞서 본 항구 주변 어촌 마을과는 사뭇 다른 산촌 풍경이 펼쳐 있었는데, 노조미가 살았던 집처럼 곧 쓰러질 듯한 집은 발견하지 못했다. 마을 풍경은 마치 청산도 구들장논을  떠올리게 했다. 노조미는 엄마가 또 다시 생활비로 사치를 부릴까봐 생활비가 입금되자 마자 마트에 가서 식료품을 왕창 산다. 그러나 그 많은 식료품을 혼자 들고 올라가기에 버거운 위치에 있는 집. 나루세의 도움을 받는다. 실제로 마을에 난 길들의 경사가 엄청나서 드라마 속 장면에 현실감이 더해졌다.\n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미나토 가나에가 쓴 원작을 사다 읽었다. 영상을 먼저 만나고 글을 읽으면 인물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움직이며 표정을 짓기 때문에 방해가 되곤 하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표정을 보며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고개를 몇 번이고 갸웃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는 주인공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그들의 표정과 속마음이 자연스레 겹쳐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n그리고 정말 반가운 문장을 만났다. 드라마에서는 안도와 스기시타 노조미가 노구치 부부에게 접근하기 위해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가는 장소가 ‘오키나와’라고만 언급되는데, 소설에선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으로 나온다. 몇해전 다녀온 이시가키는 바다빛이 맑고 깨끗한 아름다운 섬이었고 사람이 굉장히 적었다. 오키나와 본섬이 아닌 이 배경에 서 있는 네 명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니까.\n그나저나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무엇을 묻고 싶었던 것일까. '할머니에게 도움을 받아서 이야기를 나눠볼걸.'  쇼도시마를 나오는 배에서부터 든 후회는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르곤 한다.\n쇼도 섬\n★★★★☆ · 섬 · 일본\nhttps://www.google.co.kr/maps/place/%EC%87%BC%EB%8F%84+%EC%84%AC/@34.4897013,134.1140107,11z/data=!3m1!4b1!4m5!3m4!1s0x35547819147c76e5:0xdfa698771f086741!8m2!3d34.5056561!4d134.3047285?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11","published_date":"2018-05-27T13:5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4,"source":"brunch","title":"11화 고양이는 종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content":"\"가끔씩 헛간을 태운답니다.\" 그가 반복했다.\n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손톱 끝으로 라이터의 모양을 따라 더듬고 있었다. 그리고 마리화나 연기를 힘껏 폐 속으로 빨아들여 십 초쯤 그대로 있다가 천천히 뱉어냈다. 마치 엑토플라즘처럼 연기가 그의 입에서 공중으로 떠돌았다.\n- 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중에서\n무라카미 하루키 <헛간을 태우다> (출처 : 교보문고) | 영화 <버닝> (출처 : 다음영화)\n개봉하자마자 바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일이 좀처럼 없는 내가 서둘러 예매를 하고 《버닝》을 보러 간 이유는 하나였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글이 영상 안에서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n산책으로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n》란 책을 번역하면서 더욱 하루키 소설에 빠져 지내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영화 《버닝》과 소설 <헛간을 태우다>는 사뭇 달랐다. 그것은 하루키가 그린 주인공 ‘나’와 이창동 감독이 담은 종수가 전혀 다른 인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영화를 보고 실망할 것이란 생각은 섣부르다. 영화 곳곳에\n무라카미 하루키 팬이라면 눈치챌 법한 수많은 소재들이 아낌없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n148분의 러닝타임은 충분히 즐거웠다.\n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버닝》.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종수, 해미, 벤. 아르바이트를 하며 소설가를 꿈꾸고 있는 종수(유아인)는 배달을 갔다가 어린 시절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해미는 아프리카에 다녀오겠다며 그동안 자신의 자취방에 와서 고양이에게 밥을 주란 부탁을 하고 떠난다. 그리고 종수는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는 해미를 공항으로 마중 나가는데, 해미 곁에는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은 많은... 마치 개츠비 같은 수수께끼의 남자 벤(스티븐 연)이 서있었다. 원작 역시 ‘나’, ‘그녀’, ‘그 남자’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고 줄거리는 비슷하다.\n다만 벤은 ‘비닐하우스’를 태우고, 남자는 ‘헛간’을 태울 뿐.\n아침잠이 많은 내가 새벽 세시 반에 일어나 70km 거리를 달려 도착한 곳은 파주 만우리. 종수의 집이 있는 마을로,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 보고 있다. 영화에 대해 다룬 기사를 읽다가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매직 아워(Magic Hour).” 이 ‘마법의 시간’은 해 질 녘과 동틀 녘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카메라로 들어오는 빛이 부드러워 아름다운 화면을 만들 수 있는 시간대라고 한다.\n《버닝》의 절반 이상이 하루에 얼마 주어지지 않은 이 시간을 기다려 찍은 화면이라고 한다.\n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니 내가 이제까지 찍은 사진 중 정말 마음에 드는 하늘색이 담긴 몇 컷이 떠올랐다. (언젠가 책을 낸다면 그 색을 담은 사진이나 그림을 표지로 삼고 싶었다. 정작\n《다정한 여행의 배경》의 표지를 선정\n할 때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래서 해가 뜨기 전에 만우리에 도착해야 했던 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n매직 아워에 깔린 배경을 만나야 했다.\n서두른 덕분에 만우리 근처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고양이 한 마리였는데, 총총 뛰어가는 모습이 고양이답지 않아서 청설모나 다른 동물인 줄 알았다.\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영화 <버닝> 스틸컷 (출처 : 다음영화)\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서울에서 일을 하던 종수는 아버지가 폭행죄로 수감되어 고향인 만우리로 돌아오게 된다. 만우리는 종수와 해미가 성장한 마을이고, 해미가 어릴 때 빠졌다고 주장하는 ‘마른 우물’이 있는 곳. 해미는 우물에 빠졌는데, 종수가 발견해주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종수는 기억하지 못한다. 또 해미의 엄마와 언니도 그런 우물은 없었다고 말한다. 한편 종수가 어릴 때 집을 나간 엄마는 우물의 존재를 알고 있다.\n‘우물’, ‘동시 존재’, ‘세계의 끝’, ‘개츠비’, '고양이'와 같은 단어들은 모두 하루키 소설의 단골 소재다.\n《태엽 감는 새》의 주인공은 우물에 들어가 다른 세계를 만난다.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주인공은 갑자기 사라진 스미레가 우물 같은 곳에 빠졌을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경찰관은 이 동네엔 우물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또 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동시 존재’란 표현은 원작 소설에도 등장하는데 하루키가 자주 사용하는 장치다. 《1Q84》의 두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가 1984년과 기묘하게 다른 1Q84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한편 해미가 다녀온 '세계의 끝’은 아예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란 소설 제목에 담겨 있다. 그리고 종수가 벤을 보며 “한국에는 개츠비들이 너무 많다”고 한 장면은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에는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라고 말하는 나기사와란 인물이 등장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쓴 스콧 피츠제럴드는 하루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소설가 중 한 명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반가운\n고양이! <헛간을 태우다>에는 고양이가 등장하지 않지만, 하루키 대부분의 소설 속에 고양이가 살고 있다.\n만우리\n구석구석에 고양이들이 있었다.\n짧은 시간 동안 열 마리는 족히 만난 듯하다. 그중 대여섯 마리는 팔뚝만 한 새끼 고양이였는데 얼마 전에 다 같이 태어난 것처럼 보였다. 모두들 해미의 고양이처럼 수줍음이 굉장히 많아서 가까이 가기만 해도 재빨리 도망가버리거나 아이처럼 울어댔다. 이곳에는 고양이 말고도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매직 아워가 시작됨을 알리는 듯  “꼬끼오 꼬꼬 꼬꼬” 우는 닭들부터, 작은 발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개들. 아침이 온 것이 너무나 신나 견딜 수 없어 보이는 새들의 지저귐. 이런 소란 속에서도 외양간에 있는 젖소들은 잠이 덜 깼는지 멍하니 앉아 있다.\n아직 어두운 마을. 사늘한 아침 공기가 이상한 긴장감을 가져왔다.\n서울 일상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닭이 우는 소리를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로 착각한 나의 어깨 근육이 순간적으로 쪼그라들었다.\n아무래도 계속해서 머릿속에 《버닝》를 두고 있는 탓인 듯했다.\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영화 <버닝> 스틸컷 (출처 : 다음영화)\n영화에 담긴 종수의 집은 남아 있지 않았다. 영화를 위해 임시로 벽을 세우고 창문을 붙여 촬영을 했는지 주변에 떼어낸 창문과 문이 쌓여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종수가 벤의 차를 맞이하는, 또 해미가 석양빛 아래서 춤을 추던, 그리고 셋이 나란히 앉아 대마초를 피우던 마당은 그대로 있어 그 위에 서서 여러 장면들을 되새김질했다. 집 앞에는 양귀비가 몇 송이 피어 있었는데 물론 아편이 나지 않는 개양귀비겠지만 이 공간에 피어있다는 것이 재미있다.\n주인공들이 대마초를 나눠 핀 공간에 핀 아편꽃을 보며 생각한다.\n함께 대마초를 피는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설에서는 마리화나가 주인공에게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져다주는데, 그렇다면 ‘대마초’는 회상의 상징일까. ‘우물’은 실재할까. 벤은 진짜로 종수 집 근처의 ‘비닐하우스’를 태웠나.\n여러 질문들과 함께 종수의 집을 빠져나와 ‘비닐하우스’는 ‘여자’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남편과 마을의 비닐하우스를 찾아 돌아다녔다.\n태우고 달아나도 문제가 되지 않을 법한 비닐하우스는 없다.\n종수 역시 벤이 깨끗이 태웠다고 하는 비닐하우스를 찾지 못했고, 갑자기 사라져 버린 해미도 찾을 수 없다. 또 밥을 주러 간 해미의 방에서 한 번도 고양이를 만나지 못했다. 해미의 고양이 ‘보일’은 존재하는가?\n종수가 사는 마을에 가보니\n고양이는 종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n그것도 여러 마리나.\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영화 <버닝> 배경여행 ©moonee\n만우리\n경기도 파주시 탄현면\nhttps://www.google.com/maps/place/%EA%B2%BD%EA%B8%B0%EB%8F%84+%ED%8C%8C%EC%A3%BC%EC%8B%9C+%ED%83%84%ED%98%84%EB%A9%B4+%EB%A7%8C%EC%9A%B0%EB%A6%AC/@37.8220492,126.6699069,14z/data=!3m1!4b1!4m5!3m4!1s0x357c8b63bd3fdd35:0x738e110640b3fee!8m2!3d37.8184213!4d126.6969067?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12","published_date":"2018-06-03T10:0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5,"source":"brunch","title":"10화 하루키, 그, 와타나베의 청춘이 담긴 공간","content":"6월에 그녀는 스무 살이 되었다. 그녀가 스무 살이 된다는 건 뭔가 신기한 느낌이었다. 나나 그녀나 원래는 열여덟과 열아홉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게 옳을 듯했다. 열여덟 다음에 열아홉이고, 열아홉 다음이 열여덟-그건 이해된다. 그러나 그녀는 스무살이 되었다. 나도 오는 겨울에 스무 살이 된다. 죽은 자만이 언제까지나 열일곱이었다.\n- 무라카미 하루키 <반딧불이> 중에서\n반딧불이\n무라카미 하루키 초기 단편세계 작가의 개고, 미발표 ...\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54624534&g=KOR\n서른이 되어 떠올리는 스무 살, 마흔이 가까이 왔을 때 떠올리는 스무 살은 같은 시절의 나라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마흔은 멀리 있는 듯 보여 잘 알 수 없지만. 하루키의 단편 <반딧불이>와 장편 《노르웨이의 숲》을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같은 인물인데, 그 젊음은 닮은 듯 달리 보인다. <반딧불이>에서는 완전히 깜깜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희미한 빛을 닮은 청춘이라면 《노르웨이의 숲》은 어둠이 드리워 빛을 보다 선명하고 짙게 만든 것 같다. 지금 이 소설들을 읽으며 회상하는 나의 스무 살 무렵을 내가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 떠올리게 되면 분명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기에. 지금 떠오르는 기억을 적어둬야지.\n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단편소설 <반딧불이>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하루키는 1983년 1월 《중앙공론》이란 잡지에 <반딧불이>를 처음 공개했다. <반딧불이>의 주인공은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로 십사오 년 전 도쿄의 한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그는 갑자기 목숨을 끊어버린 가장 친한 친구의 여자 친구와 함께 보낸 시간을 회상하게 된다. 이 작품을 쓰던 하루키의 나이가 마침 서른둘, 셋 무렵. <반딧불이>에서 그와 그녀로 등장한 두 주인공은 와타나베와 나오코란 이름이 붙어 장편 《노르웨이의 숲》(1987년 10월 출간)에 다시 등장한다. 이곳에서도 둘은 주오선 전철 안에서 우연히 만나고, 요쓰야 역에서 내려 반나절을 걷는다. <반딧불이> 속 두 주인공이 걸었던 그 길을 똑같이.\n일요일 오후 따스한 햇살 아래에선 모두들 행복해 보였다\n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속 도쿄 산책 | 아카시아와 밤나무 꽃향기가 은은하게 나는 일요일 봄날. 나오코와 와타나베가 걸어간 길을 똑같이 걷고 또 걸었다. 우리의 간격도 1미터 떨어져 있다. 두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나오코의 발걸음이 너무 빠르고 진지했다. 그녀는 이다바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보리바타를 나서서 진보초 교차로를 건너 오차노미즈 언덕을 올라 그대로 혼고\nhttps://brunch.co.kr/@istandby4u2/107\n이 장면을 읽으며 나는 나의 대학시절 어느 날을 떠올린다. 그때 나는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고,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와 저녁을 먹거나 그 일정마저도 없으면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저녁을 먹고 학교 과제를 하고 잠을 자는 지극히 따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대학까지 와서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한 문제라도 더 맞으려는 여대생들의 치밀함이 조금 지루하고 시시해 보였다.\n그날은 유독 날이 좋았다. 신촌 일대를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셨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었다. 그 봄바람에 벚꽃잎도 흩날렸으니 아마도 소설 속 시간과 똑같이 5월이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청치마를 입고 학교 이름이 적힌 분홍빛 파일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다. 혼자서 날씨에 딱 어울리는 차림새란 생각을 했다. 남자 친구도, 약속도 없고, 같이 밥을 먹자고 할 친구도 결석이었다. 좋은 날씨에 영화관이나 도서관에 들어가 있는 일도 억울했다. 학교에서 뭉그적거려 보았지만 달리 할 일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n“너, 지금 어디야?”\n메시지를 받자마자 나는 버스에서 내렸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 동창이었다. 마침 신촌에 있는데 볼일을 마치고 혹시나 해서 연락을 해본 것이라고 했다. 몇 년 만에 만난 그 친구에게 말했다. 이렇게 좋은 날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너무 억울했다고. 그래서 일단 무작정 내려보았다고. 물론 그렇다고 와타나베와 나오코처럼 그 이후에도 매주 만나며 연인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그날을 평소와 같이 흘려보낼 수 없었다. 아니 날이 좋아서 무작정 버스에서 내릴 수 있는 젊음과 한가함이 내게 있었다.\n다시 서른을 넘긴 나로 돌아와서. 남편과 저녁 때가 다 되어 와케이주쿠를 향해 걸었다. 와케이주쿠는 작가 하루키, <반딧불이>의 주인공,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가 생활한 공간. 특정 학교의 기숙사가 아닌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소설에선 어딘가 우익의 냄새가 난다고 쓰여 있다. 꽤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만 도착할 수 있다. 이곳에 모여 살고 있는 이들의 젊음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경사였다. 이 언덕에 관해 하루키는 재미난 기억을 떠올린다.\n술에 취해 나가떨어지면 누군가 들것을 만들어 기숙사까지 운반해주었다. 들것을 만들기에 실로 편리한 시대였다. 여기저기 아무 데고 플래카드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한번은 메지로 언덕길에서 플래카드가 찢어지는 바람에 정신이 바짝 들 정도로 돌계단에 머리를 부딪힌 적이 있다.\n-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 중에서\n어디에 부딪혀도 아팠겠단 생각을 하며 도착한 와케이주쿠.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고요했다. 주변을 많은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나뭇잎끼리 사르르 사르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안에 탁 탁 탁 하는 커다란 소리가 담겨왔다. 소릴 따라가 보니 남학생 두 명이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야구 마니아 남편이 “꽤 잘하는데?”라며 뚫어지게 쳐다본다. 무척이나 하고 싶은 눈빛으로. 나와 보내는 시간은 다 좋은데 같이 캐치볼을 못 하는 게 아쉽다는 남편. 흐음.\n기숙사를 한참 구경하고 있는데, 애교 많은 고양이가 다가왔다. 학생들의 손을 많이 탄 고양이인듯,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해야 하는 행동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어떡하지. 네가 원하는 걸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은데. 한참을 그러다 아무래도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지 새침한 표정으로 돌아 앉았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하루키의 작품 속 배경을 걸으며 만나는 고양이는 소소한 기쁨이다.\n이곳에 이렇게 앙증맞은 고양이가 살고 있음에도 <반딧불이>엔 고양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반딧불이’는 등장한다. (당연한가?) 와케이주쿠 옆에 친잔소라는 호텔이 있는데, 이 호텔에서 매년 여름 정원에 반딧불이를 풀어놓는다고 한다. 소설에서 룸메이트가 반딧불이를 인스턴트커피 병에 넣어 ‘여자애한테 주면 좋아할 것’이라며 주인공에게 선물한다. 반딧불이는 희미한 빛을 내며 날아오르고 소설은 끝이 난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반딧불이가 날아가자마자 다른 여자 주인공\n‘마치 봄을 맞이해 막 세상으로 튀어나온 작은 동물처럼 신선한 생명력을 뿜어내는’\n미도리(초록)가 등장한다. 문득 '반딧불이의 초록빛은 미도리인가?' 란 느낌이 들었다.  아 생각해보니 《노르웨이의 숲》은 이렇게 끝났던가?\n“너, 지금 어디야?”\n공중전화 너머로 미도리가 와타나베에게 묻는 장면에서.\n“녹색 좋아해?” “그건 또 왜?” “녹색 폴로셔츠를 입었으니까. 그래서 녹색 좋아하는지 물어본거야.” - 《노르웨이의 숲》중에서\nWakeijuku\n★★★★☆ · 학교 기숙사 · 1 Chome-21-2 Mejirodai\nhttps://www.google.co.kr/maps/place/Wakeijuku/@35.7140894,139.7210983,17z/data=!3m1!4b1!4m5!3m4!1s0x60188d056ee9c291:0x536163a8d6c81c8c!8m2!3d35.7140851!4d139.723287?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13","published_date":"2018-07-15T03:0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6,"source":"brunch","title":"09화 1Q84의 세계로","content":"이곳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하루키를 찾아가는 여행》이란 책을 읽다가 생겨난 풀리지 않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하루키의 장편소설 《1Q84》에 등장하는 비상계단이 실제로 존재한단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저자가 적어둔 주소를 구글 지도에서 검색하여 몇 번이고 들여다보아도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아오마메는 비상계단을 내려와 산겐자야 역에서 전철을 타고 시부야역까지 간다. 그러나 저자가 찍어둔 비상계단 주소는 시부야역에서 1.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이곳에서 시부야를 가야 한다면 거꾸로 산겐자야까지 거슬러 내려가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시부야역으로 바로 걸어가는 것이 상식적으로 맞다. 거슬러 올라간다고 해도 산겐자야 보다 가까운 이케지리오하시역이 있다. 이런 깊은 고민(스스로도 왜 이렇게까지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속에서  《산책으로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란 책을 만났다. 이 책에 소설 속 이야기에 조금 더 가까워 보이는 위치가 담겨 있었다. 어차피 소설 속 가상의 공간이고, 하루키는 분명 실제로 없는 곳이라 할 테지만 여러모로 신경이 쓰여 직접 가보기로 했다. 결국 집착 쟁이는 도쿄 산겐자야역에 도착했다.\n2009년에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학원에서 수학 강사를 하면서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덴고와, 스포츠 강사로 일하면서 암살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아오마메. 둘은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다녔고, 각자 1984년과 미묘하게 다른 1Q84년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덴고는 후카에리라는 여고생이 쓴 《공기 번데기》란 소설을 고쳐 쓰게 되면서, 아오마메는 암살 의뢰를 받으며, 각자 ‘선구’라는 종교단체와 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한다.\n“현실은 언제든 단 하나밖에 없어요.”\nㅡ 산겐자야에서 택시기사가 아오마메에게 건넨 말\n《1Q84》배경, 비상계단\n1984년과 미묘하게 다른 1Q84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도쿄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 《1Q84》는 주인공 아오마메가 택시를 타고 수도고속도로에서 교통 체증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체증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자 택시 기사는 아오마메에게 246번 국도로 내려갈 수 있는 비상계단의 존재를 알려준다. 약속에 늦을 수 없다 생각한 아오마메는 계단을 내려가 전철을 타기로 마음먹는다. 산겐자야역에서 7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비상계단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소설에서처럼 지진이나 화재가 나지 않는 이상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나와있다. 나는 아오마메처럼 단련된 몸도 아니고, 또 괜한 짓을 해서 머리 아픈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여행자이기 때문에 사진만 꼼꼼히 찍으며 구경을 했다. 이미 그 공간에 한참 서있는 모습만으로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상태.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갔다. 한편 이곳에서 마주친 경찰의 제복과 권총이 아오마메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경찰들이 들고 다니는 권총이 리볼버에서 오토매틱으로 바뀐 것을 발견한 것. 이것은 아오마메가 1Q84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음을 암시하는 장치다.\n“달은 변함없이 과묵했다. 하지만 더 이상 고독하지는 않다.”\nㅡ 덴고가 고엔지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풍경\n《1Q84》배경, 고엔지\n저녁 무렵에 찾아간 고엔지는 젊은 사람들이 많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거리 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대학생 혹은 20,30대 정도로 젊었고, 가게에 놓인 물건들도 그 정도 연령대의 손님들이 찾을만한 것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생 때 이 근처 재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공간을 작품에 듬뿍 담은 것이다. 이곳에는 아오마메의 맨션이 있고, 덴고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공원이 있다. 우린 공원 벤치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달이 나오기를. 1Q84의 세계에선 달이 두 개나 떠있으니까, 두 개까진 못 보더라도 하나 정도는 보고 돌아가야겠지. 여전히 묽은 푸른색이 맴돌던 하늘 아래에서 벤치에 앉은 후로 한참이 지났다. 주변은 이미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상황. 달은 보이지 않았다. 맑은 날이었기 때문에 달이 구름에 숨어 있을 린 없다. 그렇다면 1Q84의 세계에서 달을 빼앗아간 것은 아닐까? 아 지금은 2018년이니 2Q18년이려나.\n“리틀 피플은 정말로 있어요.”\nㅡ 신주쿠에서 후카에리는 덴고에게 조용히 말한다.\n깜깜한 밤. 신주쿠에 도착한다. 세계에서 가장 북적인다고 하는 신주쿠역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다.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엔 암묵적인 흐름이 존재하기에 그 흐름을 벗어나는 일은 매우 까다롭다. 역류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들 어디론가로 매우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나침반이 되어주는 남편을 놓칠 수 있다. 하지만 화려한 이 거리는 한눈을 팔기에 좋은 것들을 듬뿍 안고 있다. 어떻게 갈 수 있었는지 신기하게도 기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에 도착을 했다. 하루키의 여러 작품 속 주인공들은 기노쿠니야를 즐겨 찾는다. 서점도 마트도 거의 기노쿠니야만 간다. 이제까지 기노쿠니야 서점과 마트가 같은 회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전혀 관계없는 두 개 회사라고 한다. 어쨌든 《스푸트니크의 연인》의 주인공과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은 기노쿠니야에서 장을 보고, 《1Q84》의 덴고는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책을 몇 권 산다. 정확히 이곳 기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에서. 기노쿠니야 신주쿠 본점은 서울의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같은 곳이라 한 번 가면 일단 사고 싶은 책을 한 두 권은 족히 발견할 수 있다. 나도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다. 이번에도 몇 권을 골랐다. 특히 요리책을 눈여겨보았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뭐라도 좀 만들어 먹어겠다는 생각이 들곤 하니까. 배고픔 대비용이다. 덴고는 책을 사고 이곳 건너편에 있는 레스토랑 나카무라야에 가서 후카에리를 만나 화이트 와인과 샐러드, 시푸트 링귀네를 먹는다. 우린 생맥주에 카레우동을 먹기로 했기 때문에 그 일정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n“그 일을 깊이 생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내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있다.”\nㅡ 아오마메는 시부야역 코인로커에 코트를 넣으며 생각했다.\n그러고 나서 기적적으로 확보한 시부야 코인로커에서 짐을 찾아 새벽 2시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했다. 아오마메는 자신의 아내를 지속적으로 폭행한 남성을 암살하기 위해 시부야역 코인로커에 짐을 넣어두고 시부야 도부 호텔로 향한다. 이 장면 때문에 “이왕이면 시부야역 코인로커에 짐을 맡길래”라고 하는 나와 “거기에 자리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남편은 한참을 냉랭하게 보냈다. 정말로 그 넓은 역에, 그 많은 코인로커 중 단 한 칸도 비어 있지 않은 듯했다. 30, 40분을 샅샅이 뒤져 겨우 발견한 딱 한 칸. 마침 동전까지 없어서 남편이 그 칸을 잡고 있고 나는 자판기로 뛰어가서 동전을 만들었다. 짐을 다 넣었을 땐 우린 이미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우리가 썼을 그 코인로커에 아오마메의 코트가 들어갔다 나왔을지도 모를 일인데!\n<1Q84>의 세계로 도쿄 여행을 떠나보세요!\n무라카미 하루키 <1Q84> 산책 - Google 내 지도\n위치 정보는 <さんぽで感じる村上春樹>에서 보고 정리하였습니다.\nhttps://www.google.com/maps/d/viewer?mid=1U-60B82wmS2M9NV-Cz4gupCZ33XCqrR9","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14","published_date":"2018-07-22T08:35+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7,"source":"brunch","title":"21화 할레쿨라니의 피나콜라다","content":"처음 보았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넘쳐나고 호텔은 왜 이렇게 낡고, 불친절한지. 심지어 거리에 걸린 오키나와 페스티벌 현수막은 뜬금없다. 우리가 가장 실망했던 여행지 나하를 떠올리게 했다. 정말 ⟪댄스 댄스 댄스⟫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비행기표를 바꿔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귀국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을까 항공사 사이트에 접속해보았다. ⟪댄스 댄스 댄스⟫에 나온 바에만 들렀다 돌아가버리자.\n하와이에 가보고 싶다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남편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이직을 앞두고 긴 휴가를 보내고 있던 나는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에게 무리한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어릴 때 이미 하와이를 다녀온 남편은 그곳이 얼마나 실망스러웠는지 기억하고 있다. 아니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인상에 남지 않는 관.광.지.라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하루키의 몇몇 작품과 문장에 무척이나 꽂혀 있었기 때문에 하와이 외에 다른 여행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몇 차례 설득 끝에 하와이에 도착했고, 나는 와이키키 중심가에 서서 남편의 의견에 백 퍼센트 동의했다.\n일단 숙소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이번 하와이 여행에서 내가 가장 중요시했던 일정은 카우아이섬이었고, 그 섬 안에서도 특히 하날레이 베이였다. 하날레이는 가장 최근에 만난 하루키의 문장ㅡ<뽀빠이>란 잡지에 실린ㅡ 속에 담긴 장소였고, 그곳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곧 일본에서 개봉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카우아이에서의 닷새를 제외하고, 오아후에서 머물기로 한 두 밤은 돈을 많이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비즈니스호텔급의 잠자리를 예약했다. 아마 그동안 내가 너무 일본만 오간 탓에 여행의 감각이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미국. 게다가 하와이. 돈이 지배하는 이곳. 숙소는 딱 지불한 돈에 걸맞은 공간이 제공되었다. 침대엔 머리카락(이길 바라고 싶은 털)이 앉아 있었고, 분명 청소를 했을 터인데 샤워기 옆엔 반창고가 떡하니 붙어있었다. 냉장고는 우렁차고 가스레인지엔 녹이 잔뜩 슬어 있다. 남편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외출복을 입은 채 대충 누워 잠이 들었다. 나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 시작한다. 호텔 예약 사이트를 뒤졌고 바로 건너편에 있는 체인 호텔에 스위트룸이 비어있음을 확인했다. 이곳보다 15만원을 더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 길로 프런트에 내려가 “내일 밤도 예약을 했지만 내일은 숙박하지 않으려 한다. 얼마를 환불받을 수 있냐” 따위의 질문을 했다. 다행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단 답변을 듣고 올라와 다른 호텔을 예약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최대한 아침 일찍 길을 건너 그곳으로 갔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지난밤 제대로 씻지 못한 나는 기분 좋게 시간을 들여 샤워를 했다. 나는 어지간하면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어쨌든 ⟪댄스 댄스 댄스⟫ 배경 여행을 이렇게 끝낼 순 없었다.\n1988년에 나온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나.’ 하루키의 초기 3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의 속편과도 같은 작품이다. ‘나’는 ‘키키’란 매춘부를 만나러 ⟪양을 쫓는 모험⟫의 주요배경인 삿포로의 이루카 호텔을 다시 찾아간다. 그곳에서 일하는 ‘유미요시’란 여자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소녀 ‘유키’를 만나게 된다. 80년대 일본의 도쿄, 삿포로, 쓰지도를 배경으로 고도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유키와 주인공이 유키의 엄마를 만나러 가는 하와이. 고도 자본주의 사회를 그리는데 필수 불가결한 배경이었을 것이다.\n포트 드루시 해변 공원\n와이키키\n하와이에 도착한 유키와 주인공 ‘나’는 유키의 아버지가 예약해준 아파트에 머물며 맛있는 밥을 해 먹고, 파도를 타거나 수영을 하거나 해변에서 뒹굴며, 그리고 할레쿨라니나 로열 하와이안 호텔에서 피나콜라다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낸다. 때때로 유키의 엄마를 만나러 간다. 우린 할레쿨라니에 가보기 전에 호텔 앞 포트 드루시 해변 공원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이곳은 예상대로 그저 그랬다. 횟집이 줄지어 있고, 모래사장에 술병이 뒹굴고 있지 않는다는 점을 빼면 우리나라의 해변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물이 조금 더 맑고, 파라솔이나 해변의자를 빌리는 자릿세가 없다는 점이 다르다 생각했는데, 그마저도 돈을 받는 자리도 있어 보였다. 어쨌든 이곳에서 유키와 주인공은 자리를 깔고 누워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n거기서 일주일 동안 한가로이 지내면서 실컷 수영을 하고, 피나콜라다를 마시고 돌아온다. 피로도 가시고, 기분 전환도 되겠지. 햇볕에 그을린 몸으로, 새롭게 시점을 바꾸어 사물을 다시 보고 생각하는 방법이 바뀔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생각하리라. 그래, 이렇게 생각하는 방법도 있군, 하고. 나쁘지 않다.\nー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n댄스 댄스 댄스(상)\n이 책은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집필한 소설이다.\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70128313&g=KOR\n⟪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 ‘나’는 ‘키키’를 찾아 헤매다가 여러 인물을 만나게 된다. 새단장을 한 이루카 호텔 프런트에서 근무하는 '유미요시'를 시작으로, 그 호텔에 머물던 '유키'. 그리고 키키가 엑스트라로 출연한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한 '고탄다'. 배우 고탄다는 주인공의 동급생으로, 또 다른 매춘부 ‘메이’를 소개해준다. 그러다 ‘메이’가 갑작스레 살해되며 '나'는 경찰 조사를 받는다. 경찰서에서 치른 곤욕으로 피로가 좀처럼 가시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기묘한 만남들에 지쳐가던 '나'에게 때마침 유키가 하와이행을 제안한다.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로마에 체류하며 썼다고 하는데, 그때 머문 방이 너무 추워서 하와이를 등장시켰다고 한다.‘하와이의 장면을 쓰다 보면 아주 조금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먼 북소리> 중에서) 하와이는 여러 이유에서 등장해야했던 것이다.\n할레쿨라니는 확실히 비싸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나는 호텔이었지만 그리 친절하진 않았다. 할레쿨라니의 비치 바에 석양이 내려앉기 전에 잘 도착했고, 분위기는 소설 속 묘사만큼이나 근사하고 우아했다. 처음엔 뒷자리에 광둥어를 쓰는 중국인 가족들이 일초도 쉬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고 있어서 비교적 가까이에 있는 무대 위 연주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다행히 30분 정도를 내내 떠들다 석양이 떨어지기 직전에 자리를 떴다. 앞에는 우리처럼 연주자들 곁으로 해가 넘어가기만을 기다리는 일본인 커플이 있었다. (이 자리 배치는 동아시아 지도를 고려한 것인가.)\n그리고 주인공이 몇 잔이나 마셔댄 이곳의 피나콜라다는 정말 맛있었다. 술이 세지 않고 아주 달콤했고, 하와이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여러 꽃냄새들과 잘 어울렸다. 지금 막 떨어지고 있는 석양의 빛줄기 가장 끝을 닮은 색을 띠고 있다. 언젠가 칵테일을 다시 마시러 간다면 꼭 이걸 마셔야지 생각했다. 물론 이 꽃향기와 석양빛 없이도 같은 맛이 날까.\n저녁 때마다 나와 함께 지내면, 일주일 만에 너는 일본에서 피나콜라다에 제일 밝은 중학생이 될 거야.\nー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nHalekulani Hotel\n★★★★★ · 해변 리조트 · 2199 Kalia Rd\nhttps://www.google.co.kr/maps/place/Halekulani+Hotel/@21.2780192,-157.8318163,15z/data=!4m7!3m6!1s0x0:0x45e508b16efd6f23!5m1!1s2018-09-30!8m2!3d21.2780192!4d-157.8318163?sa=X&ved=2ahUKEwi3q8PxzL_dAhUCObwKHYRfAMMQ_BIwDnoECAcQCw&shorturl=1\n⟪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2편. 마카하 가는 길로 이어집니다.\nhttps://brunch.co.kr/@istandby4u2/118\n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드라이브였다\n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2. 마카하 가는 길 |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드라이브였다. 우리는 카 라디오의 볼륨을 크게 틀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해안을 따라 뻗은 고속도로를 시속 12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달렸다. 모든 곳에 빛과 바닷바람과 꽃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ー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 ⟪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1편 : https://brunch.co.kr/@ist\nhttps://brunch.co.kr/@istandby4u2/118","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15","published_date":"2018-09-16T13:5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8,"source":"brunch","title":"08화 해변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content":"사치의 아들은 열아홉 살 때 하나레이 해변에서 커다란 상어의 습격을 받고 죽었다.\n- 무라카미 하루키 단편소설 <하나레이 해변>의 시작\n도쿄기담집\n무라카미 하루키식 리얼리즘이 빛나는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집 『도쿄기담집』. 가장 하루키다운 이야기라고 평가받는 이 소설집은 불가사의하며 기묘하고, 있을 것 같지 않지만 내게도 일어날지 몰라 납득할 수 있는 이상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라진 남편을 찾는 아내, 한쪽 가슴을 도려낸 여자, 하와이의 바다에 아들을 잃은 엄마 등의 인물들이 저마다의 상실을 기묘한 사건이나 신기한 우연을 계기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905154\n우두두 쏟아지던 빗길을 통과하여 하나레이 해변에 도착했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 북쪽에 위치한 하나레이 만. 그곳 안에 있는 해변에 도착하니 갑자기 비가 그치고 바다 위로 파란 하늘이 슬쩍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n사실 우린 하와이 같은 휴양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편을 졸라 하와이까지 온 이유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다. 몇 차례나 불만을 표하던 남편과 투쟁을 벌이고, 태풍 솔릭, 허리케인 레인을 뚫고 도착한 것 치고는 매우 평범한 해변이다. 조금 기운이 빠졌다. 차에서 쉬겠다고 하는 남편을 뒤로하고 나는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이곳까지 오는 일에 왜 그리도 집착을 했을까. 하나레이는 내가 가장 최근에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 속에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올해 여름에 발행된 일본 남성 패션지 뽀빠이에 실린 티셔츠에 관한 기고문. 그 글에는 하와이 카우아이 섬에 관한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는데, 하루키는 카우아이에서 한 달 남짓 체류한 적이 있다. 매일 아침 바다로 나가 서핑을 하고, 점심때는 차가운 소바를 만들어먹으며 휴식을 취한 시간. 특히 하나레이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n옛날의 하나레이는 꽤나 여유롭고 여하튼 멋진 동네였답니다. 하루 종일 해변에서 뒹굴며 파도와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았어요. 석양도 늘 눈부시게 아름다웠죠. 사람들이 우쿨렐레를 들고 비치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석양을 보고 있었죠. 지금은 많이 변했으려나 궁금합니다.\n- 잡지 뽀빠이 8월호 중에서\n그리고 아마 이때의 시간을 바탕으로 탄생한 소설이 《도쿄 기담집》에 엮여 있는 단편소설 <하나레이 해변>이다. 주인공 사치가 자신의 아들을 하나레이 만에서 잃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치는 도쿄에서 피아노 바를 운영하며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중년 여성. 자신이 피아노에 빠져 지냈듯 아들은 서핑에 빠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데카시는 하나레이에 가서 파도를 타고 싶다며 떠나버린다. 얼마 뒤 사치는 데카시가 상어에게 한쪽 다리를 물린 후 죽었단 전화를 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최근에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고 나는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며 하나레이 해변에 서 있다. 한참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는 하루키의 표현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가 이곳에 앉아, 그리고 소설 속 사치가 이곳에 앉아 보낸 시간의 감촉이 전해져 왔다. 하와이에 있는 다른 해변들과 비교해서 사람이 많지 않아 굉장히 여유로운 분위기.\n양산을 쓰고 벤치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담배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양산을 들어 올리고 뒤를 돌아보니 한 할머니가 피고 있던 담배를 급히 테이블 밑으로 숨겼다. 귀여운 몸짓. 괜찮답니다. 다시 바다를 바라보며 모른 체 하고 있자 다시 한동안 담배냄새가 났다. 그러다 할머니가 해변에 가있는 딸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 또 한 번 깜짝 놀랐다.\n“물 온도 좀 봐줘. 들어갈 수 있겠어?”\n카우아이 섬은 하와이 제도에선 드물게도 비가 많은 지역. 일 년 내내 비가 내린다고 해도 무방하단다. 이렇게 잠시 해가 날 때 바다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언제 폭우가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엄청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차로 돌아가며 ‘오늘 저녁은 돌핀 레스토랑에서 먹어야지’ 생각했다. 사치는 아들이 죽은 해변을 해마다 찾아간다. 같은 코티지에 머물며 같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해변에 앉아 서퍼들을 바라보며 보내는 시간. 그리고 하나레이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도 종종 피아노를 치곤하는데, 물론 소설에는 레스토랑 이름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진 않는다. 나는 하루키가 카우아이에 머물며 쓴 에세이집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등장한 돌핀 레스토랑이 어쩐지 소설 속 분위기가 매우 닮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돌핀 레스토랑은 하나레이 만 지역에선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 1970년대부터 스시, 해산물, 스테이크 등을 팔며 인기가 좋았던 이 레스토랑은 2012년에 카우아이 섬 남쪽에 위치한 포이푸에 두 번째 지점을 열었고, 현재는 포이푸에서만 영업을 하고 있다. 아쉽지만 포이푸에 가서 소설 속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했다.\n포이푸의 돌핀 레스토랑은 소설 속 묘사와 분위기는 조금 달라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식당이었다. 캘리포니아롤과, 스파이시 쉬림프 롤,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다. 물놀이로 지친 탓인지 커다랗고 시원한 병에 나온 아사히맥주에서 정말 꿀맛이 났다. 게다가 식사도 간이 딱 맞고. 미국에서 하는 식사 치고는 충분히 매콤한 점도 만족스러웠다. 하루키 역시 오전에는 달리기를 하고, 오후엔 수영을 한 뒤 돌핀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와 ‘왈루’라고 하는 생선 요리를 먹는다.\n이렇게 하나레이 해변에 앉아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고, 밥을 먹고. <하나레이 해변> 배경여행은 끝이 난다. 사실 이곳까지 온 여정을 떠올리면 이런 결말은 허망하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일주일 내내 태풍의 이동경로 지도만 수백 번은 족히 보았다. 그것도 일본 기상청, 미국 기상청, 당연 한국 기상청에서 나오는 모든 지도들을 비교해가면서....... 가기 싫다던 남편을 졸라 겨우 가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비행기를 타는 날 6년 만에 한반도를 관통하는 태풍이 온다니. 게다가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기 전날은 이사를 하기로 되어 있어 일정은 앞으로도 뒤로도 변경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회사는 재택근무를 한다는 공지가 내려왔고, 전국은 태풍 대비로 부산했다. 그러나 솔릭이 우려만큼의 피해를 주지 않고 지나가 인천에서 떠오를 비행기는 변경 없이 뜰 예정이었다.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이번엔 하와이에 26년 만에 대형 허리케인이 온단다. 하와이 주민들이 가솔린과 물을 사재기하고 있으며, 관공서는 휴무, 학교는 휴교 결정.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하와이를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식당과 마트도 모두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듣고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 불안한 상황을 이래저래 통과하여 겨우 도착한 하나레이 해변이었다. 그리 온 것치고 이곳은 너무나도 소박했다. 물론 이 소박한 풍경을 만나러 사치는 매년 가을의 끝 무렵 하나레이에 가서 삼 주를 머문다. 지금쯤 하나레이에 가신다면 해변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한 여자를 찾아보시길.","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16","published_date":"2018-09-30T14:1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19,"source":"brunch","title":"손바닥만 한 꽃들이 활짝 활짝 피어 있는 섬","content":"첫 유럽행은 출장이었다. 그때 사회인이 된 지 2년 차였던가 3년 차였던가… 유럽 출장은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기도 했고, 또 매우 긴장하기도 했다. 긴 출장을 떠나는 나에게 남자 친구는 <눈 뜨면 없어라>라는 에세이집을 쥐어주었는데, 속으론 ‘부장님, 대리님과 함께 가는 출장에서 책을 볼 시간이 과연 있으려나’ 하며 챙겨 떠났다.\n눈뜨면 없어라\n전 문화부장관 김한길의 내일을 위해 오늘을 내맡긴 청춘...\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73377831&g=KOR\n프라하까지 가는 긴 비행. 흥분과 긴장이 뒤섞여 좀처럼 잠들지 못했고, <눈 뜨면 없어라>를 펼쳤다.  그리고 그 항공길 위에서 나는 펑펑 울었다. 옆에 앉아 있는 선배가 다행히 잠들어 있었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 회사에서 끊어준 항공권이 이코노미 중에서도 등급이 높은 자리였는지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되어 승무원들의 눈길이 자주 닿는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나의 안색을 계속 살피는 통에 마음을 달래느라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 비행기에 내리고 나서도 나는 출장 일정 내내 <눈 뜨면 없어라> 속 문장들을 문득문득 떠올리며 울컥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선배들과 저녁식사에 기울이는 와인잔을 보다가도 눈물이 핑 돌았고(지금 생각하면 꽤나 오해를 샀을만하다), 스웨덴에서 노르웨이로 넘어가는 기차 안에서 다시 책을 꺼내 보다가 마음이 내려앉았다. 물론 지금 보아도 슬프고 좋은 문장이지만, 아직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때 느꼈던 막막함과 불안이 덧씌워진 문장들이 내 마음속 깊은 곳을 파고들었던 것 같다.\n<눈 뜨면 없어라>는 작가였고, 교사였고, 기자였고, 방송인이기도 했고, 정치인이기도 한 김한길이 20대에 쓴 일기다. 그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딸 故이민아와 결혼을 하자마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그리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보낸 이야기를 <미국 일기>라는 제목으로 '문학사상'에 2년 동안 연재했다. 이 책은 그 연재 글의 모음집이다.\nLA에서 보낸 김한길과 이민아의 신혼생활은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밤에는 주유소, 낮에는 햄버거 가게 쿡 헬퍼로 일하는 남편과 옷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하는 아내. 부부가 하루에 마주치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날도 많았다. 또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자존심의 상처를 입으며 고생하는 김한길의 모습도 애달프다.\n그들이 LA를 주 배경으로 고된 (물론 중간중간 매우 사랑스러운 모습도 담겨 있다) 나날을 보내기 전 하와이에 잠깐 들르는데(아마 이를 신혼여행으로 삼은 듯했다), 이때 배경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는 이토록 긴 서문을 쓰고 있다. <눈 뜨면 없어라>의 하와이 장면만큼은 환상적이고 아름다우며 재치 있으니까. 친구 부부와 인터내셔널 마켓에 간 김한길은 그곳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자를 쳐다보다가 미나(이민아)에게 야단을 맞는다.\n“금발이 걸친 것이라고는 달랑 엉성하게 엮은 그물천 원피스 하나가 전부였다. 속이 어지간히 들여다 보였다. 우리가 전에는 무식하게 ‘빤쓰’라고 불렀고 요즘엔 고상하게 ‘팬티’라고 부르는 것조차 입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는 마음껏 허리를 뒤틀어가며 우리 곁을 지나갔는데 내 고개가 그만 주착없이 금발이 가는 쪽으로 따라돌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나에게 꼬집힌 것이다.\n저 정도면 시간당 백 달러짜리는 될 거라고 소곤대며 중식이가 쿡쿡 웃었다. 검둥이 백둥이 황둥이 …… 없는 게 없어. 호모를 상대로 하는 남창들까지 색깔별로 다 있지. 그래서 내가 중얼거렸다. 과연 ‘인터내셔널 마켓’이구나.”\n- <눈 뜨면 없어라> 중에서\n인터내셔널마켓\n인터내셔널 마켓은 2016년 새단장을 했기 때문에 그가 보았을 풍경과는 사뭇 다른 곳이 되어 있었지만, 어쩌면 나는 김한길이 보았을 여자와 닮은 이를 이곳에서 마주친 듯하다. 너무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호텔을 잘못 예약하는 바람에 늦은 밤 방에서 내려가 프런트에서 환불 문의를 하고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머리카락이 이미 하얀 할아버지가 붉은 얼굴을 하고 먼저 타 있었다. 나의 슬픈 얼굴을 알아채고는 내게 “모든 것이 괜찮니? 너 괜찮은 거야?”라고 물었다. 애써 웃으며 “괜찮다”라고 답을 하곤 옆에 서있는 여자에게 눈길을 돌리니 그녀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눈썹에는 가짜 속눈썹이 수북하게 붙어있고, 옷매무새가 단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인형처럼 미소만 짓고 있는 금발의 아가씨. 볼륨감이 있는 몸매라 그렇게 느꼈겠거니 했지만 방으로 돌아와 <눈뜨면 없어라>를 다시 펼쳐보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여자와 이 문장이 겹쳐졌다. 물론 새벽같이 다른 호텔로 옮겨가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했던 나의 착각일 수 있지만.\n하와이 시내 야경\n다이아몬드헤드\n나무 밑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오면 어느새 차 지붕이 온통 꽃잎으로 뒤덮여 있는 곳. 나무에 겨울이면 헐벗어 추운 거리를 더 춥게 만드는 서울거리를 플라타너스만 한 나무에 손바닥만 한 꽃들이 활짝 활짝 피어 있는 섬.\n“저 끝에 보이는 게 다이아몬드 헤드라는 화산이야.”\n- <눈 뜨면 없어라> 중에서\n작가가 하와이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다이아몬드 헤드에 새벽부터 일어나 올라 가볼까도 생각했지만 와이키키 다운타운을 가득 채운 많은 사람들에 질려 버렸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이른 시간에도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인다고 한다.) 대신 전날 줄이 길어 포기했던 마루카메우동를 맛보기로 했다. 마루카메우동은 이미 시코쿠의 우동을 맛본 우리에게 그리 인상 깊은 맛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아침 일찍 이곳에 오는 이들이 한국인들뿐이란 사실이 재미있다. 부지런함 하나를 무기로 미국땅에서 단단히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눈 뜨면 없어라> 속 한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n마루카메 우동","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17","published_date":"2018-11-14T13:0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0,"source":"brunch","title":"07화 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드라이브였다","content":"더할 나위 없이 쾌적한 드라이브였다. 우리는 카 라디오의 볼륨을 크게 틀고,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해안을 따라 뻗은 고속도로를 시속 120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달렸다. 모든 곳에 빛과 바닷바람과 꽃 향기가 가득 차 있었다.\nー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n⟪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1편 :\nhttps://brunch.co.kr/@istandby4u2/115\n할레쿨라니의 피나콜라다\n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1. 하와이 와이키키 | 처음 보았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넘쳐나고 호텔은 왜 이렇게 낡고, 불친절한지. 심지어 거리에 걸린 오키나와 페스티벌 현수막은 뜬금없다. 우리가 가장 실망했던 여행지 나하를 떠올리게 했다. 정말 ⟪댄스 댄스 댄스⟫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비행기표를 바꿔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귀국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을까 항공사 사이\nhttps://brunch.co.kr/@istandby4u2/115\n유키의 엄마는 천재 사진작가로 무언가에 꽂히면 딸이 함께 있단 사실을 완벽히 잊어버린 채 어디론가로 떠나버리는 사람이다. 엄마 아메의 무신경함에 소녀 유키는 늘 상처를 받아왔다. 주인공 ‘나’는 삿포로 돌고래 호텔에서 유키를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때 역시 유키는 아메가 훌쩍 카트만두로 떠나버려 홀로 남겨진 상태였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자신에게 딸이 있단 사실이 떠올라 유키를 찾는 엄마. 유키와 주인공이 하와이에 가게 된 것도 아메가 갑자기 유키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n엄마를 만나러 가는 유키와 주인공의 길을 따라가는 드라이브. 차들로 빼곡한 와이키키 시내에서는 ‘이곳이 종로와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었고, 조금씩 외곽을 향해 달려가자 ‘이곳은 강변북로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러한 풍경 끝에 해변도로로 진입하니 이제야 하와이에 온 듯하다. 지금부터가 제대로 된 드라이브다. 왼편에 펼쳐진 에메랄드빛, 푸른 빛깔, 남색 바다 위엔 보기만 해도 탐스런 구름들이 하늘다운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 있었다. 유키를 내팽겨둔 채 외팔이 시인과 함께 마카하 부근 시골집을 하나 얻어 살고 있는 유키의 엄마. ⟪댄스 댄스 댄스⟫를 읽으면서는 그녀를 감싸고 있는 풍경이 어떨지 쉽사리 상상되지 않았기에 무척이나 기대를 안고 가는 길이었다.\n드라이브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차로가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반. 하교시간이다. 아이들을 데리러 간 부모들의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것이다. 누가 하와이에 살고 있고 누가 하와이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인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와이키키 풍경에서 벗어나 이곳에 오니 조금은 생활의 향기가 느껴졌다.  바로 앞차가 비상등을 켜고 잠시 차를 세우기에 기다려 주었다. 커다란 차는 이미 아이들과 물건들로 가득 찬 상태. 한 아이가 운전석을 향해 소리를 친 후, 옆에 있던 친구는 막 열린 트렁크 문 안으로 몸을 잔뜩 웅크리며 들어갔다. 그러고서는 방금 전 소리를 지른 아이가 트렁크 문을 닫고 뒷좌석에 오른다. ( “엄마 00이 트렁크에 타고 가도 돼?”라고 물어본 것이었구나) 하루 이틀 해본 솜씨들이 아닌 듯 호흡이 척척 맞아서 차가 비상등을 켜고 잠시 멈춘 뒤 다시 출발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거의 10초 남짓. 하교하는 학생들과 그들을 데리러 온 부모들을 한참 동안 보고 있으니 하와이에 백인이 참 적구나 싶다. 혹은 이 마을의 특징일까. 실제로 위키피디아에 찾아보니 마카하는 오아후섬내 다른 지역보다 하와이 원주민들과 다른 태평양 섬에서 온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개발이 많이 되어있지 않아 마카하 북쪽에는 마을도, 식당도, 주유소도 없다. 마을이 끝나가고 북쪽을 향해가자 오른편에 솟은 산들(마카하 밸리)이 더욱 선명해졌다. 이 산들은 이곳 오아후가 (다른 섬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화산섬임을 실감하게 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골짜기는 깊고, 토양은 척박해 보였다. 한편 왼쪽에 펼쳐진 바다 위 뿌려있는 다이아몬드 같은 햇살들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n좌우로 펼쳐진 환상적인 풍경 사이에 눈길을 끄는 장면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지저분한 천막이나 폐차가 모여 있고 그 사이사이 테이블 하나에 의자들이 둥글게 모여 있다. 머리가 헝클어진 사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기도 하다. 늘어진 줄에 티셔츠들이 걸려 있기도 하고, 찌그러진 냄비 같은 가재도구들도 널려있다. 노숙자들의 모여 사는 곳이었다. 지붕은 없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바다를 앞에 두고 사는 사람들. 지상낙원이라 불리는 하와이의 진짜 얼굴이었다.\n요코하마 베이\n아메가 살고 있는 마카하 부근 시골집 풍경\n다시 ⟪댄스 댄스 댄스⟫ 이야기로 넘어와서. 아메와 함께 살고 있는 딕 노스는 주인공을 만나자마자 호놀룰루가 얼마나 번잡하고 시끄러운지 질색이라 이야기한다. 아메와 딕 노스가 마카하 부근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단지 조용함 때문이었다. 유키와 엄마가 시간을 갖는 동안 딕 노스는 주인공에게 “주변에 근사한 해변이 있다”며 안내한다. 둘이 해변에 누워 차가운 맥주 여섯 병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해변. 우리는 관광지의 요란스러움이 없으며 볼품없는 나무들이 자라고 모래사장도 울퉁불퉁해서 하와이 분위기가 나지 않는 해변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카하 부근에는 작은 해변이 몇 곳 있었는데, 모두가 한결같이 인적이 드물고 물빛은 근사했다. 마카하 비치 파크는 마을과 인접해 있어 소설의 묘사와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물론 주변에 픽업트럭이 몇 대 주차되어 있고, 가족끼리 나온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단 묘사와는 정확히 닮아 있다. 소설 속 해변을 찾아 돌아다니며 가장 마음에 든 해변은 요코하마 베이란 곳이었는데,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펼쳐 있었다. 모래들이 부드럽고 깨끗하고, 바다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물론 딕 노스와 아메가 살고 있는 곳과는 다소 떨어져 있어서 이곳보단 와이아나 부근 비치가 더 이야기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딕 노스는 해변에 앉아 아메의 사진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n“그녀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두려워지는 때가 있어요.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토록 압도적이에요. 저 dissilient*라는 말을 알고 있어요?”\nー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n나는 요코하마 베이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아메의 사진이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했다. 너무나 아름다워 두려운 모습.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느낌.\n*여물어서 터지는, 탁 터지는 [벌어지는], 열개하는(봉선화의 씨 따위).\nhttps://youtu.be/M629kM2z2H\n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 하와이","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18","published_date":"2018-12-09T14:1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1,"source":"brunch","title":"06화 모든 것이 투명하게  비쳐 보일 것 같은","content":"버스 문이 쾅하고 닫히고 쌍둥이가 차창에서 손을 흔들었다. 모든 것이 되풀이된다……. 나는 같은 길을 혼자 되돌아와 가을 햇살이 넘치는 방 안에서 쌍둥이가 남기고 간 <러버 솔>을 들으며 커피를 끓였다. 그리고 하루 종일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11월의 일요일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비쳐 보일 것 같은 한 11월의 조용한 일요일이었다.\n-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중에서\n쌍둥이가 떠나간 11월. 나도 이곳의 투명한 가을을 걸었다.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었을 때만 해도 굉장히 엉성하단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들고 나온 두 번째 작품 <1973년의 핀볼>을 읽고 흠칫 놀란 기억이 있다. 두 번째 작품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데다 이 작품을 쓸 때까지 하루키는 여전히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었다.\n1973년의 핀볼\n무라카미 하루키 자전적 소설 무라카미 하루키 자전...\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70128030&g=KOR\n하루키 초기 3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의 주인공은 모두 ‘나’와 ‘쥐’. 그리고 제이스 바를 운영하는 중국인 J도 등장한다. <1973년의 핀볼>에서 주인공 ‘나’는 한때 즐겨했지만,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추억의 핀볼 기계 스페이스십을 찾고 있다. 소설은 도쿄 외곽에서 쌍둥이 여자\n(이름은 모르고 208번, 209번으로 구별한다)\n와 생활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와 고향인 고베에 있는 ‘쥐’의 일상이 병렬로 진행된다. 물론 시간은 1973년. 주제는 하루키 소설의 단골 주제인 상실감. <1973년의 핀볼>이 <미국의 송어낚시>를 쓴 미국 작가 리처드 브라우디티건의 오마주 작품이란 이야기를 듣고 <\n미국의 송어낚시\n>에 수록되어 있는 <호텔 ‘미국의 송어낚시’ 208호>를 읽어보았다. 208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등장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다른 고양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지구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양이’라 믿고 있는 빨간색 고양이. 작품 속 주인공은 고양이의 이름이 ‘미국의 송어낚시’란 호텔방의 번호에서 유래했다 생각한다.\n(물론 이대로 소설이 끝나버리진 않는다.)\n한\n편 <1973년의 핀볼>에 등장하는 두 쌍둥이가 208번, 209번이라 불리게 된 이유는 그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 208, 209란 숫자가 박혀있기 때문. 둘은 슈퍼마켓 개업 기념으로 티셔츠를 받았는데, “내가 209번째 손님이었어.” 209가 말했다. “내가 208번째 손님이었구.” 아쉽게도 <호텔 ‘미국의 송어낚시’ 208호>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한 마리뿐. 209번 고양이는 없었다. 아쉬운 일까진 아니지만.\n양을 쫓아 홋카이도 북쪽 마을까지\n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의 배경으로 떠난 여행 | “양 박사의 옛날 목장은 어디에 있어요?”라고 그녀가 물었다.“산 위에. 차로 세 시간이 걸리지.”“지금 바로 가는 거예요?”“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중에서 모험을 준비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삼부작 중 마지막 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따라 홋카이도의 겨울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소설에 묘사된 목장에 가볼\nhttps://brunch.co.kr/@istandby4u2/100\n<1973년의 핀볼>의 배경여행을 하기 위해선 <양을 쫓는 모험>을 다시 들춰봐야 했다.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지 않는 <1973년의 핀볼>에서 이야기가 이어지는 다음 작품 <양을 쫓는 모험>에 힌트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같은 주인공 ‘나’에게 대학시절(미타카 변두리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던 당시) ‘누구 하고도 자는’ 여자가 매주 화요일 저녁에 찾아온다. 둘은 저녁을 먹고 록 음악을 들으며 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에 잡목림을 걸어 국제 기독교대학(ICU) 캠퍼스까지 산책한다. 그러고 나서 2년 뒤, 1973년 쌍둥이가 미타카에 있는 주인공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n그녀들이 왜 내 집에서 지내게 되었는지, 언제까지 있을 작정인지, 아니 도대체 누구인지, 나이는? 태어난 곳은?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들도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우리는 셋이서 커피를 마시거나, 저녁때 떨어져 있는 공을 찾으면서 골프 코스를 산책하거나, 침대에서 노닥거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n-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중에서\n내가 ICU에 도착했을 땐 마침 쌍둥이가 주인공을 떠난 계절이었다. ICU는 주말이라 학생들보단 가족단위로, 친구들과 피크닉을 보내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처럼 가을 햇살이 캠퍼스 전체에 듬뿍 떨어지고 있어서 굉장히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해 보였고, 말씨는 부드럽게 들려왔다. 아무리 소설 주인공이라도 사는 곳 곁에 이렇게 근사한 공간이 있는 것은 정말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이곳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실제로 20대 초반을 보낸 장소다. 하루키는 이곳을 ‘공기가 깨끗하고 조금만 걸으면 아직 자연 그대로 남아있는 무사시노의 잡목림이 있어 굉장히 행복했다’는 문장으로 회고한다.\n국제 기독교대학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그 안을 산책하는 일만으로도 체력이 꽤나 소진되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플랫슈즈를 신고 있던 나는 미타카 역에 있는 무인양품에서 스니커즈를 하나 샀는데, 사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했을 정도로 긴 시간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나’와 쌍둥이가 산책을 즐기는 골프장은 현재 노가와 공원이 되어 있었는데, 소설에선 분명 ‘바로 곁에 있다’고 되어 있고, 지도상으로도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참을 돌아가야 다다를 수 있는 장소였다. 주인공이 왜 철조망을 넘어 쌍둥이들을 찾으러 갔는지 알만 했다. 이렇게 여행이 소설의 한 구석이 이해하게 해준다. 여러 차례 철조망을 뛰어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n<1973년의 핀볼>의 주요 무대 중 하나인 노가와 공원은 그 역사가 꽤 길다. 원래 비행기를 만드는 공장이 있었다가, 우유를 만드는 목장으로 쓰였다가, 기독교대학(ICU)의 골프장이었다가 지금은 공원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근처에 살았을 때, 그리고 <1973년의 핀볼> 속 주인공들을 둘러싼 배경은 이곳이 ‘골프장’이었을 때다. 공원이라 하지만 어딘가 골프장 같은 이곳에서 나는 가을 벚꽃을 만났다. 조가쓰자쿠라(ジュウガツザクラ)라는 종으로 봄에도 꽃을 피우고, 가을에도 꽃을 피운다고 한다. 가을에 만나는 벚꽃은 반갑기도 하면서도 어딘가 초조한 느낌을 준다. 이미 방학숙제를 다 끝냈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은 그날의 마음 같이.","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19","published_date":"2018-12-23T12:3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2,"source":"brunch","title":"17화 하루키는 40년 전 이곳에서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는다","content":"1978년 4월의 어느 쾌청한 날 오후에 나는 진구 구장에 야구 경기를 보러 갔습니다.\n(… 중략 …)\n1 회 말, 다카하시가 제1구를 던지자 힐턴은 그것을 좌중간에 깔끔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만들었습니다. 방망이가 공에 맞는 상쾌한 소리가 진구 구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주위에서 일었습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문득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n-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에서\n이제 와선 이유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그날 아침부터 화가 잔뜩 나있었다. 화가 난 상태로 진구구장(明治神宮野球場)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진구구장 바로 옆에는 치치부노미야란 이름의 럭비장(秩父宮ラグビー場)이 있었는데,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무작정 직진하던 나(=방향치)는 한창 경기 중인 럭비장을 가로지를 뻔했다. 뒤따라오던 남편(아마 내가 화가 난 원인 제공자였을 것이다)이 큰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n“뭐 하는 거야?”\n아니. 왜 아무도 나를 안 말린 거야?\n럭비 경기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경기였는지, 사람들이 자유로이 드나들고 있었다. 게다가 관중은 적었고, 필드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을 막는 직원이 한 명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럭비경기장에서 나와 한참을 돌아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그 날로부터 정확히 40년 후. 4월. 역시 쾌청한 오후에 나는 진구구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선 기대와 달리 프로야구가 아닌 대학야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누구와 누가 경기를 하고 있는지, 어느 팀이 홈팀인지, 좌석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일단 매표소에 가서 가장 싼 표를 두 장 끊었다. 나에게 이곳은 하루키란 소설가를 탄생시킨 자궁과도 같은 공간. 일단 들어가 보는 것이 목표다. 자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아니면 하루키가 있었던 외야석을 가려했는데, 아마 가장 싼 표가 외야석이겠거니 넘겨짚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 선택이 얼마나 섣부르고 어리석었는지는 정확히 10분 뒤에 밝혀진다.\n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가가 된 에피소드는 사실 최근에 발간된 에세이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도 등장하고, 하루키의 팬이라면(팬이 아니어도) 알려져 있는 이야기다. 남편(안티팬에 가까운)은 “소설가로 성공한 다음에 나중에 포장한 거지.” 의심하곤 했다.\n그게 하루키의 매력이라니까.\n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일본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야구장인 진구구장은 무려 1926년에 세워졌는데, 아직도 현역이다.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에 속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Tokyo Yakult Swallows, 하루키가 팬인 팀)의 홈구장이자, 도쿄 6 대학 리그, 도토 대학 리그 경기, 전 일본 대학야구 선수권대회가 이곳에서 경기를 한다. 일본 서부지역에 고교야구의 성지인 고시엔 구장이 있다면, 이곳은 대학야구의 성지. (양대 성지가 동부 서부 균형을 맞춰 있구나) 오래된 야구장이란 정보 없이 다녀왔는데 내외부가 깔끔하고 시설도 최신 야구장과 비교해서 엄청나게 뒤떨어진단 인상이 없어서 90년 넘은 구장이라는 사실을 듣고 매우 놀랐다. 오랜 기간 잘 가꿔온 듯하다.\n아무 생각 없이 500엔씩을 주고 야구장에 들어선 우리는 이 좌석이 싼 이유를 마주하게 된다. 이곳은 ‘응원석’으로 응원단과 함께 ‘매우 열심히, 온몸을 움직여 격한’ 응원을 해야 하는 자리! 자릿값을 적게 받는 이유가 있다. 잠시도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수 없다. 계속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손짓을 하고, 스케치북에 있는 응원 구호를 큰 목소리로 외쳐야 한다! 너무 지친 나머지 잠시라도 의자에 앉으면 응원단원 중 한 명이 우리 앞으로 와서 아주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응원을 유도한다. 불행 중 다행(이랄 것도 없지만)은 우리가 응원하는 팀이 5점 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덧 우리는 메이지대학 야구팀의 팬이 되기 시작한다.\n아니, 아니. 하루키 배경여행에 와서, 와세다(하루키 출신 대학, 곧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도 생길 예정이란다)를 상대로 이렇게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다니.\n‘링에 어서 오십시오.’\n이 문장은 왜 이 순간, 이 장소에서 떠오르는 것일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첫 번째 장 ‘ 소설가는 포용적인 인종인가’에서 하루키는 누구나 소설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첫 소설이 좋은 작품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쓰기란 어렵다 이야기한다. ‘쓰고 싶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사람만이 남아 소설을 지속적으로 쓴다고. 그런 사람이라면 소설가의 링 위에 올라오라는 것. 솔직히 이야기하면 하루키 작품이라면 무조건 좋아하고 보는 나에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만큼은 완독의 장벽이 다소 높았다. 우선은 지나치게 진지(그렇게 이야기를 전개하고 싶었겠지만) 해서 하품이 났다. 나에게 하루키는(그의 문장은) 영원히 30대에 머물고 있으며 냉소적이고, 음악을 듣고 이야기하고, 스스로를 그리 못 생긴 얼굴은 아니라 생각하며 여자에게 은근 인기가 좋고, 저녁엔 맥주를 마시고, 와인, 위스키, 칵테일에 해박하고, 그럼에도 수영 같은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이 탄탄한... 그런 모습으로 머물러 있었으면 한다. 이 책에는 60대, 그리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소설가의 모습이 너무 많이 스며들어 있었다. 위의 ‘링’ 이야기처럼.\n어찌되었든 무라카미 하루키는 정확히 40년 전 이곳에서 소설을 쓰기로 생각했다.\n누구라도 쓸 수 있다는 첫 소설을.\n직업으로서의 소설가\n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키스트’라는 조어가 생겨날 정도...\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72757719&g=KOR\n메이지진구 야구장\n★★★★☆ · 야구장 · 3-１ Kasumigaokamachi\nhttps://www.google.co.kr/maps/place/%EB%A9%94%EC%9D%B4%EC%A7%80%EC%A7%84%EA%B5%AC+%EC%95%BC%EA%B5%AC%EC%9E%A5/@35.6737358,139.7165445,15z/data=!4m2!3m1!1s0x0:0xf8fe5cab0f97a8d8?ved=2ahUKEwiDsZ25zcffAhXJ2qQKHVmoAHwQ_BIwDXoECAYQCA","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0","published_date":"2018-12-30T12:5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3,"source":"brunch","title":"나의 어린 시절, 나의 친구들","content":"우리 가족이 광명의 주공 아파트로 이사 한 건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광명에서 부천 역곡으로 안산 반월을 거쳐 다시 광명으로 돌아온 것이다. 엄마 아빠의 눈에 1988년식 신축 주공 아파트는 주거비 부족으로 서울에 진입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잊을 만큼 훌륭했던 것 같다. 깨끗한 새 아파트는 연탄을 때야 했던 구식 아파트와는 차원이 달랐고, 육층 남향집 거실에는 밝은 꿀빛 햇살이 고였다.\n- 최은영, <601,602>의 시작\n퇴근길 교보문고 신작소설 코너에서 몇 권의 책을 들춰보던 나는 이 소설의 첫 문장을 읽고 그대로 멈춰 섰다. 몇 분 동안 어린 내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 곁에 있던 두 명의 아이들을 그렸다. 한주영과 장기준\n(가명. <601,602> 속 인물들의 이름을 빌렸다. 소설 속 캐릭터와는 무관.)\n내 생애 최초 ‘친구들.’ 우리 셋은 광명에 있는 주공아파트 한 단지 안에 살고 있었고 동네 입구에 위치한 유치원을 함께 다녔다. 내가 가운뎃 동에 살고 있었고, 산에 가까운 뒷 동엔 기준의 집이 있었다. 앞 동엔 주영이가 살았다. 네살 터울의 어린 동생과 함께 엄마가 집에 있었던 나와 달리 둘의 부모님은 낮에는 집을 비웠다. 하지만 주영의 부모님은 (내 기억이 맞다면) 의사, 약사를 하고 있어 살림이 넉넉했고, 할머니가 주영을 하루 종일 돌보았다. 우리 집보다 더 큰 평수에, 보다 남쪽에 서있는 주영의 집은 늘 밝고 따뜻한 느낌이었고, 그 집의 분위기만큼이나 주영은 해맑았다. 단짝으로 지내는 내가 여자아이지만 키도 크고 달리기도 빠르고 힘도 셌음에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할머니, 부모님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티 없이 자라는 어린이였고 자주 웃었다. 한편 북쪽 동에 살던 기준의 표정엔 어딘가 그늘이 있었다. 나는 미즈무라 미나에의\n《본격소설》 속 주인공 아즈마 다로\n의 어린 시절 묘사를 읽으며 기준이 생각나곤 한다. 미즈무라의 문장을 빌려 말하자면 ‘어린아이답지 않게 까무잡잡하고 잘 다듬어진 얼굴’로 기억한다. 몇 번인가 놀러 간 기준의 집은 굉장히 어둡단 인상을 받았고, 부모님은 늘 늦은 시간에 돌아오는 듯했다. 그리고 기준의 아버지가 안 계셨을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주영에 비해 기준는 말수가 적고 우리 둘 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다른 여자 친구들도 몇 명 있었을 텐데, 이름이나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가장 친했던 이들은 기준과 주영, 두 명의 남자아이였던 것 같다. 운동회에서 이인삼각을 하거나, 짝을 지어 춤을 추는 학예회, 두 줄로 나란히 걸어야 하는 소풍 때마다 나는 둘 중 누구와 짝꿍을 해야 할지 망설였던 기억도 어렴풋이 갖고 있다. 어제 친정에 가서 앨범을 보니 나는 대부분 주영과 짝꿍을 하고 있었다. 사진에는 내가 주영을 떨어뜨려놓고 먼저 달려가고 있는 모습이나, 주영일 뒤에 앉히고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n《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되어 있는 <601,602>란 단편 소설에는 주영과 효진이 등장한다. 둘은 광명의 한 주공아파트 같은 동 같은 층에 나란히 살고 있다. 칠곡에서 온 효진은 다섯 살 터울의 오빠 기준과, 그 오빠에게 절절매는 엄마가 함께 살고 있다. 효진은 오빠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지만 그의 부모는 방관한다. 주영은 그 장면을 몇 번이고 목격하게 된다.\n광명은 마음먹고 가보지 않으면 갈 이유가 특별히 없는 동네다. 근처에 이케아가 있어 몇 번 가구를 사러 갔지만, 이케아의 가구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조립을 해야하므로 옛 동네를 둘러볼 여유는 없다. 그래서 살던 동네를 찾아가 보는 일을 몇 번이고 미루다가 지난 주말 마침 미세먼지도 없고 해서 찾아갔다. 함께 간 남편은 생각보다 오래된 느낌이 없어 놀랐다고 말했다. 내가 봐도 동네가 그리 낡은 느낌이 안 들었고, 주영과 기준과 다녔던 유치원도 기억보다 세련됐다. 아무래도 올해 남편과 내가 이사 온 도시에 어린 시절 살았던 곳보다 더 오래된 주공아파트들이 남아 있어서, 이런 풍경을 매일 마주하다 보니 그리 느꼈을지도 모른다. 동네 아이들은 이 추위 속에서도 모여서 놀고 있고,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이 아파트 입구를 드나들고 있었다. 쓰레기통은 가득 차있고, 어두워지니 집들 마다 불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머물기 겸연쩍었다. 나에게만 추억이지, 살고 있는 사람들에겐 일상이니까. 그리고 그 일상에 조금이라도 폐가 되어선 안 되니까.\n꽤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지만 떠올려보면 나는 광명시와 오랜 기간 연결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낼 때, 한일 친선 협의회장이자 시의원도 하고 있는 故곤도 슈지씨란 분과 가깝게 지냈다. 그때 곤도 씨가 나에게 서울의 위성 도시 중 일본의 한 도시와(그곳도 대도시 곁에 있는 위성도시) 자매결연을 맺을만한 곳이 없을지 추천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광명)와 살고 있는 도시(일산), 그리고 큰아버지가 살고 있는 도시(하남) 세 곳을 추천하였다. 살아 보았고, 자주 방문한 도시가 딱 그렇게 세 곳뿐이었으니까. 살고 있던 도시는 규모가 너무 커서 어려웠고, 나머지 두 곳을 실제로 가보고 싶다는 곤도 씨에게 우리 아버지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일본에서 학교에 나가야 했으니까. 그렇게 우리 아버지는 곤도 씨를 차에 태워 광명시와 하남시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의 야마토시와 광명시가 자매결연을 맺었단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기간을　광명시에서 보냈으니까 아마도 광명시를 더욱 긍정적으로 소개하지 않았을까. 신문기사를 찾아보니 그렇게 맺어진 연은 아직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광명시의 학생들과 야마토시의 학생들이 서로의 도시를 방문하기도 하면서. 최은영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쇼코의 미소>란 작품을 통해서였다. <쇼코의 미소>는 주인공 쇼코가 자매결연을 맺은 소유의 학교를 방문하고, 소유의 집에서 일주일간 머물게 되며 전개되는 이야기다. <601,602> 소설의 배경에서 <쇼코의 미소>와 같은 이야기가 피어나고 있을 상상을 하면 왠지 묘한 기분이 든다.\n광명시, 日 야마토시와 자매결연\n【광명=뉴시스】이승호 기자 = 경기 광명시는 일본 야마토시와 국제 자매결연을 체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야마토시는 가나가와 현의 중앙부에 위치한 특례시로 ...\n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3&aid=0002976867&sid1=001\n광명시-야마토시 청소년 ‘글로벌 우정’ 쑥쑥\n광명시-야마토시 청소년 ‘글로벌 우정’ 쑥쑥. 사진제공=광명시 광명시-야마토시 청소년 ‘글로벌 우정’ 쑥쑥. 사진제공=광명시 광명시-야마토시 청소년 ‘글로벌 우정’ 쑥쑥. 사진제공=광명시 ..\nhttp://www.fnnews.com/news/201808051149101090","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1","published_date":"2019-01-02T12:2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4,"source":"brunch","title":"05화 하루키를 따라 도쿄를 걷는 일","content":"그 여자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내 주위에 있는 모든 풍경이 한순간에 얼어붙어 버린 듯이 느껴졌다. 내 가슴속에서 공기 덩어리 같은 것이 목 언저리까지 솟아 올라왔다. 시마모토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n- 무라카미 하루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중에서\nhttps://www.youtube.com/watch?v=ciS5GikZ5Jo&list=PLqiKuvvuwk7wN8vJtmQ4sf3sYPsMCKuU5\n하루키 작품 중 두 번째 혹은 세 번째로 좋아하는 작품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음악과 함께 읽는 것이 좋다. 외동아들인 주인공은 어린 시절 자신과 똑 닮았으면서도 매우 다른 외동딸 시마무라를 만난다. 둘은 함께 하교하고, 시마무라의 집에서 시마무라 아버지의 오디오로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시마무라 아버지의 오디오는 근사한 신형이었지만 레코드는 열다섯 장 정도밖에 없다. 둘은 같은 레코드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대부분이 초보자용 클래식이었지만, 냇 킹 콜과 빙 크로스비의 레코드도 섞인.\nPretend you’re happy when you’re blue,\nIt isn’t very hard to do.\n‘고통스러울 때는 행복한 척해요.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요.’란 가사는 시마무라의 표정과 매우 닮았음을, 또 그 음악이 흐르던 시간을 주인공은 매우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시마무라는 태어나자마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조금 절었으며, 성적도 좋고 성격도 좋았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 주위에 방어벽을 높이 세우고 스스로를 강하게 지키는 인물이다. 둘은 매우 가까이 지내다 주인공의 가족이 이사를 하고, 서로 다른 학교에 진학하며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그 이후부터 주인공의 삶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자신과 매우 닮아 있다. 시내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등학교(하루키가 나온 고등학교 옥상에서도 고베 시내와 바다가 내려다보인다고 한다)에서 이즈미라는 이름의 여자 친구를 사귀고, 도쿄의 대학에 진학한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회사에 다니다 재즈바를 운영한다. 작가와 닮은 면이 많은 주인공이기 때문인지 하루키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주인공이 가장 멋있다.(고 나는 생각한다.)\n주인공이 운영하는 바는 예상보다 굉장히 번창해서 2년 후에 아오야마에 가게를 하나 더 내게 된다. 아오야마는 하루키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장소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 ‘나’와 뚱뚱한 손녀딸이 지하세계에서 도망쳐 나오는 곳도 아오야마 잇초메 역이고,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진구구장도 곁에 있다. 진구구장에 들렀다 아오야마를 걸었다. 아오야마에 있는 가게들은 쉽사리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왠지 여행객 차림으로 들어가기엔 민망하다. 위화감이 없는 쉐이크쉑에 들어가 햄버거를 하나 먹고 나왔다. 그리곤 줄곧 걷다 보니 육교를 하나 만났다. 가이엔 동쪽 길을 운전하던 주인공이 시마무라를 닮은 여자를 보고는 차를 세우고 무작정 뛰어 올라간 육교!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본 여자가 시마무라 일리 없단 사실을 깨닫고, 고등학생 때 사귄 이즈미를 보게 된다. 택시 안에 앉아 있는 그녀의 표정이 없는 얼굴을.\n그녀의 얼굴에서는 표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한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박탈되어 있었다.\n- 무라카미 하루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중에서\n이즈미에게는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빠져있다고 느낀 주인공은 아오야마 뿐만아니라 도쿄 곳곳에서 시마무라의 흔적을 좇는다. 시부야에서도 시마무라를 따라가다 누군가에게 잡혀 10만 엔이 든 하얀 봉투와 ‘그녀를 미행하는 건 이걸로 끝내라’는 말을 걷네 받는다. 시부야. 이토록 혼잡한 곳에서 시마무라를 미행하고 있는 주인공을 따라가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란 생각을 할 때엔 이미 도쿄의 밤이 깊어 있었다.\n<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란 책을 보다가 하루키의 단골 술집 ‘바 라디오(bar radio)’가 아오야마에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하루키가 ‘바 라디오의 블러디 메리는 마셔볼 가치가 있다’고 한 문장이 기억에 남아 있다.(정작 아오야마를 걸을 땐 깨끗이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마침 바 라디오는 나의 친구 집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렇게 나는 바 라디오로 향하기로 한다.\n이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단 말인가\n<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배경여행, 도쿄 아오야마 바 라디오 | 퇴근길에 종종 칵테일 한 잔 마시고 돌아가곤 해요. 물론 나는 이런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바 bar라는 곳을 태어나서 두 번 가봤나, 세 번 가봤나. 하는 정도. 칵테일도 그 정도 먹어보았을 거다. 맛있다는 건 잘 알지만 아직(앞으로 바뀔지도 의문) 내겐 너무 비싸다. 그 가격이면 편의점에서 수입맥주가 8캔, 와인 한 병도 충분히 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nhttps://brunch.co.kr/@istandby4u2/124","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2","published_date":"2019-01-12T16:0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5,"source":"brunch","title":"02화 그들이 삿포로까지 가야 했던 이유","content":"‘쥐’가 먼저 홋카이도로 떠난다.\n‘나’는 ‘키키’와 함께 홋카이도로 향한다.\n다시 나는 ‘키키’를 만나러 홋카이도에 간다.\n그들은 홋카이도까지 가서 무언가를 찾아 헤맨다.\n홋카이도에 무엇이 있단 말인가.\n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n서른넷이 되어 나는 다시금 출발점에 되돌아온 셈이다. 그런데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무엇을 하면 좋은가? 생각할 것까지도 없었다. 무엇을 하면 좋은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결론은 훨씬 전부터 짙은 구름처럼 내 머리 위에 빠끔하게 떠 있었다. 나는 다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결심을 할 수 없어서, 하루 또 하루 미루고 있었을 뿐이다. 이루카 호텔로 가는 것이다. 그것이 출발점인 것이다.\n-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중에서\n매년 겨울 홋카이도를 찾는다. 벌써 다섯 번째 해를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삿포로 구석구석을 두 발로 걸으며 돌아다닌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홋카이도청 구본청사를 가본일도. 삿포로 TV탑에 올라 오도리 공원을 내려다본 일도. 우선 삿포로는 도시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남편과 나에게 너무나도 큰 도시였다. 인구로 따지면 일본에서 5위고, 홋카이도 대부분의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니까. 그리고 그간 걸을 일이 없었던 이유는 늘 렌터카를 빌려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홋카이도는 전체 면적이 남한에 4/5 정도 되기 때문에 도시 간 이동에는 자동차가 필수다. 물론 기차나 버스란 선택지가 있지만 배차간격이 길어 일정에 제한이 생긴다.\n치토세행 비행기를 타기로 한 날 새벽 네 시였다. 남편이 화들짝 놀라며 깨더니 “국제 면허증 만료된 것 같아”란다. 오늘은 토요일. 재발급받을 방법은 없다. 그렇게 대부분의 코스를 렌터카 일정으로 짜둔 상태에서 뚜벅이 여행이 시작되었다. 하필이면 이 한겨울에! (《양을 쫓는 모험》 속 두 주인공은 아마도 가을에 갔다지. 그래도 춥다며 “우리는 빙하시대에 만나야 했던 게 아닐까요?”, “당신은 매머드를 잡고 나는 아이를 기르고.” 따위의 농담이나 던지고 있다니.)\n삿포로의 거리는 넓고 지겨울 정도로 직선적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직선으로만 구성된 거리를 걸어 다니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마모시키는지를 몰랐던 것이다.\n나는 확실히 마모되어 갔다. 나흘째에는 동서남북의 방향감각이 소멸했다.\n- 《양을 쫓는 모험》 중에서\n두 발로 걸어본 삿포로 시내는 차로 스쳐 지나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삿포로역 주변을 제외하곤 생각했던 것보다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이었고,\n자로 잰 듯 지나치게 정확히 구획되어 있어 더욱 차가운 인상을 주었다.\n며칠 전까지 머문 후라노, 비에이, 아사히카와(삿포로보다 북쪽에 있는) 보다는 기온이 높았지만 더 추운 느낌이 들었다. 빌딩 숲이 불러오는 바람의 감촉이 숲(후라노, 비에이에 있을 땐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에서 부는 것보다 사늘했다.\n무라카미 하루키는 초기 3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양을 쫓는 모험》에서 같은 주인공을 세워 이야기를 이어간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주인공 ‘나’와 ‘쥐’를 소개한다. 그다음 《1973년의 핀볼》에서 ‘나’는 ‘쥐’와 함께 즐겼던 핀볼 기계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나이를 조금 더 먹은 주인공은 ‘쥐’로부터 양 허리춤에 커다란 별이 그려있는 엽서를 한 장 받게 되고, 이 양을 찾으러 홋카이도로 떠난다. 《양을 쫓는 모험》의 다음 작품들-《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노르웨이의 숲》-을 보면 《양을 쫓는 모험》으로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일이 끝난 듯싶지만, 하루키는 《댄스 댄스 댄스》란 작품에 다시 초기 3부작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켰다. ‘나’는 다시 양을 쫓는 모험을 함께 했던 여자 친구 ‘키키’를 찾아 떠난다. 그녀와 함께 머문 삿포로에 있는 이루카 호텔로.\n이루카 호텔은 《양을 쫓는 모험》에서 두 개 손가락이 두 번째 마디부터 없는 남자가 손님을 받고 있는 낡고 볼품없는 호텔이었지만, 《댄스 댄스 댄스》에서는 새단장을 해 등장한다. 단정한 제복을 입은 직원들, 휘황찬란한 대형 유리와 스테인리스 기둥이 올라간 로비가 있는, 삿포로 시내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호텔이 되어 있다. 소설을 통해 이루카 호텔이 어디인지 유추해내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n이미 어느 도시에서나 만날 수 있는 호텔이 되어버렸기에 어느 호텔에서건 《댄스 댄스 댄스》를 느낄 수 있으리라.\n우리가 머문 호텔 역시 주인공이 묘사한 것처럼 거대한 쇼핑센터가 있고, 사우나도 있고, 레스토랑과 바가 있고, 리무진 서비스가 있었다. 아! 그리고 주인공이 만난 호텔 직원 유미요시처럼 아름다운 직원이 방까지 안내를 해주었다. 주인공은 이런 고급 도시 호텔에서 예전의 이루카 호텔을 그리워한다. 과연 《양을 쫓는 모험》 속 이루카 호텔 같은 곳이 어딘가에는 남아 있긴 한 걸까?\n무라카미 하루키는 초반에 작품을 쓸 때만 해도 현지 취재를 한 후 썼다. 이후부터는 먼저 배경을 상상하여 쓴 후 출간 직전에 돌아보며 현실과 맞지 않은 부분을 수정하는 스킬을 득한 듯하다. (나는 실제로 취재에 관한 내용을 하루키에게 직접 물어본 후, 답변을 받아본 적이 있다.\nLINK\n) 따라서 초기 작품들은 배경과 상당히 밀접해 있다. 내가 이 작품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경여행을 할 맛이 나니까! 하루키가 재즈바 운영을 접고 전업 소설가가 되어 쓴 《양을 쫓는 모험》. 이 작품을 쓸 때(198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장소라 하면 역시 홋카이도였다. (물론 오키나와도 있지만.) 그땐 드라마를 찍을 때도 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 로케이션 대신 홋카이도에 가서 촬영을 하곤 했다고 한다. 《양을 쫓는 모험》은 하나의 홋카이도 가이드북으로 삼아도 좋을 정도로, 홋카이도와 상당히 가깝게 맞닿아 있다. 우선\n주인공들이 찾고 있는 양의 몸에는 홋카이도 개척의 상징인 북극성이 박혀 있다.\n이 북극성은 1869년 홋카이도에 설치된 관청 깃발에 그려진 것인데, 삿포로시 시계탑, 도청사에도 같은 모양의 별이 들어갔다. 게다가 ‘양’이야말로 홋카이도의 명물. 홋카이도는 양고기를 구워 먹는 칭기즈칸 요리가 유명하다.\n주인공들은 몸에 별이 박힌 양을 찾기 위해 홋카이도청 축산과를 찾아간다. 홋카이도청 구본청사 옆에 있는, 신도청이라 하기엔 이미 무척이나 낡은 도청 건물에 축산과는 7층에 있었다. 물론 주인공들이 이미 양을 찾아냈으니까 (아 못 찾았던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비밀로) 우린 축산과에 물어볼 것이 없다. 그리고 물어보면 쫓겨나겠지.\n걸으면 걸을수록 더 와닿는 사실이었지만 하루키의 문장대로 삿포로는 철저히 직선으로만 이뤄진 계획도시다. 삿포로 TV탑에 올라가 보아도, JR 타워에 올라가 내려다보아도 부드러운 곡선을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널찍널찍한데 사람은 극히 적다. 그나마 관광객이 있지만, 아직 눈축제가 시작되기 전이라 많지 않다. 도시 전체가 규모에 비해 텅 빈 느낌이었다. 도시의 인상은 두 작품의 분위기와 매우 닮아 있었다. 이곳 삿포로 거리에서 《댄스 댄스 댄스》의 주인공은 ‘극지의 섬에 홀로 남겨져 있는 듯한 격렬한 고독감’을 느낀다.\n[함께 보시면 좋습니다]\n'쥐'를 만나러 산 속 별장으로\nhttps://brunch.co.kr/@istandby4u2/100\n양을 쫓아 홋카이도 북쪽 마을까지\n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의 배경으로 떠난 여행 | “양 박사의 옛날 목장은 어디에 있어요?”라고 그녀가 물었다.“산 위에. 차로 세 시간이 걸리지.”“지금 바로 가는 거예요?”“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중에서 모험을 준비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삼부작 중 마지막 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따라 홋카이도의 겨울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소설에 묘사된 목장에 가볼\nhttps://brunch.co.kr/@istandby4u2/100\n삿포로에서 만난 유키와 함께 하와이로\nhttps://brunch.co.kr/@istandby4u2/115\n할레쿨라니의 피나콜라다\n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1. 하와이 와이키키 | 처음 보았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넘쳐나고 호텔은 왜 이렇게 낡고, 불친절한지. 심지어 거리에 걸린 오키나와 페스티벌 현수막은 뜬금없다. 우리가 가장 실망했던 여행지 나하를 떠올리게 했다. 정말 ⟪댄스 댄스 댄스⟫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비행기표를 바꿔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귀국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을까 항공사 사이\nhttps://brunch.co.kr/@istandby4u2/115","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3","published_date":"2019-01-13T06:0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6,"source":"brunch","title":"19화 이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단 말인가","content":"퇴근길에 종종 칵테일 한 잔 마시고 돌아가곤 해요.\n물론 나는 이런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바\nbar\n라는 곳을 태어나서 두 번 가봤나, 세 번 가봤나. 하는 정도. 칵테일도 그 정도 먹어보았을 거다. 맛있다는 건 잘 알지만 아직(앞으로 바뀔지도 의문) 내겐 너무 비싸다. 그 가격이면 편의점에서 수입맥주가 8캔, 와인 한 병도 충분히 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추천을 듣고 도착한 바 라디오\nbar radio\n. 주변은 확실히 여유로움이 넘치는 동네였다. '여기는 목욕탕이야'라며 동네 구석구석을 소개하던 친구도 ‘사실 스파에 가깝지’라 정정한다. 바 라디오 바로 옆에 있는 미용실도 얼마나 비쌀지 상상조차 어렵다. 그래도 일단 바 라디오의 문을 열었다. 먼저 온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n“보시면 아시겠지만 (칵테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 설명을 좀 해주시면 좋아요.”\n‘이미 마실 것을 정하고 왔다’는 나의 말에 조바심을 느낀 친구는 지긋한 연세의 바텐터에게 말을 건넸다.\n“오늘 같은 날은 추우니 따뜻한 칵테일도 좋지요.” 로 시작되는 긴 설명과 간단한 질문들.\n내가 주문하려는 칵테일은\n블러디 메리\n. 하루키가 '맛있는 칵테일을 만드는 법'(<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에 수록)이란 에세이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n가게 홍보는 아니지만, 아오야마 '바 라디오'의 블러디 메리는 역시 마셔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n한 잔에 2000엔 가까이하는 블러디 메리는 생토마토를 직접 짜서 만든다고 한다. 매우 신선한 토마토를 사용하는 듯했다. 처음엔 채소의 향기가 나더니 그 끝에 매우 달콤한 향이 나기 시작했는데, 친구가 오랜 고민 끝에 주문한 칵테일에서 나는 향이었다. 초콜릿과 달걀이 들어간 칵테일로 따뜻하게 만들려면 꽤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손님이 많을 때 주문을 하면 조금 곤란하단다. 마침 손님이 우리밖에 없으니 괜찮다고.\n블러디 메리는 아주 희미하게 매운맛이 돌았다. 타바스코 소스가 들어갔으니까. 보드카 양은 조절이 가능하다고 해서 70,80퍼센트 정도로 해달라고 했는데, 증류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아주 적절한 양이었다. 추운 날씨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칵테일이지만 한국에 사는 나에게 이 정도 추위는 추위도 아니다. 딱 좋았다.\n첫 모금을 입 안에 넣을 때 살짝 느껴진 얼음의 감촉이.\n칵테일이 나오자마자 그때부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손님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세 커플과 남자 직장인 그룹. 사실 처음 들어갔을 땐 우리밖에 없어서, 또 친구나 나나 이런데 자주 오는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분위기인지 파악도 안 되고, 나는 ‘혹시 좀 더 좋은 옷을 입고 와야 했나’ 혼잣말을 했다. 하나둘 테이블이 채워지기 시작하자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음을 깨달았다. 점잔을 빼는 커플도 있었지만(잘 되어가는 분위기였다), 단골인 듯한 손님도 있고, 직장인 그룹은 굉장히 시끄럽게 떠들기도 했다.\n아무도 없었을 때부터 손님이 차기 시작하기 전까지의 시간은 우리에게(특히 내게) 큰 행운이었다. 바텐더 오자키 코지 씨와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 우리가 앞에 놓인 오자키 씨의 칵테일 사전에 관심을 갖자 그는 자부심에 찬 목소리로 “칵테일 제조는 물론이고, 그에 걸맞은 잔과 배치 등을 모두 직접 기획했다”고 말했다. \"요즘 요리인들이 그릇 선정이나 플레이트 등에 코디네이터를 붙여 쉽게 책을 내곤 하는데 잘 못 된 일\"이라 강경하게 말한다. 모든 걸 직접 해야 자신의 책이라고. 연륜, 업에 대한 자부심, 고집 등 많은 것들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책에 담긴 칵테일 사진 옆에는 사용한 잔의 원산지와 제작연도가 나와있었는데, 1880년에 만들어진 컵도 있곤 했다. 내가 “진짜일까”라고 친구에게 조용히 말하자 오자키 씨가 동일본 대지진 때 이야기를 꺼냈다. 그날 도쿄도 크게 흔들려 칵테일 잔들이 모두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렸다고. 컵들뿐만 아니라 앤티크 와인들도 많이 깨져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도쿄도 꽤 흔들렸단 이야기는 들었지만, 나로선 상상해보지 못한 피해가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있었겠구나 싶었다.\n또 칵테일 잔 아래 깔린 컵받침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 와다 마코토 씨가 그려준 것이라고 하는데, 오자키 씨가 원숭이띠라서 원숭이들이 서빙을 하는 모습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우리(용띠)는 만들려면 꼬리에 술병을 감아야겠네”라고 하자 친구는 “등에 올려도 되지” 했다. 바를 나오면서 “아까 오자키 씨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래. 우리처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냥 할아버지지만”라고 말하는 친구.\n우린 서로를 보며 쿡쿡 웃었다.\n일러스트레이터 와다 마코토, 와다 마코토? 와다 마코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데… 찾아보니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포트레이트 인 재즈>란 책을 만든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이렇게 연결되다니.\n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와다 마코토가 방금 우리 둘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단 말인가?\n아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친구가 책을 한 권 선물해주었는데, ＜무라카미 송\n村上ソングズ\n＞이라는 책이었다. 심지어 와다 마코토가 그린 표지! 정말 센스 있다니까.\n와다 마코토 씨가 그린 무라카미 하루키 책표지 :\nhttp://wadamakoto.jp/coverart/27.html\n和田誠 | わだまこと | Makoto Wada | オフィシャルサイト\n「ハイライト」のパッケージデザインや「週刊文春」の表紙絵を手がける、イラストレーター・和田誠の公式ページです。\nhttp://wadamakoto.jp/\n바 라디오에 가보시려면 :\nhttps://goo.gl/maps/Ak3VsanfrLR2\nBar Radio\n★★★★★ · 술집 · 3 Chome-10-34 Minamiaoyama\nhttps://www.google.co.kr/maps/place/Bar+Radio/@35.6659233,139.7124473,17z/data=!3m1!4b1!4m5!3m4!1s0x60188bbf4479bb9f:0x79524fc496734abf!8m2!3d35.665919!4d139.714636?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4","published_date":"2019-01-21T13:1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7,"source":"brunch","title":"04화 전화박스 안에 스미레를 슬쩍 넣어 보았다","content":"도쿄의 중앙선을 타면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속 배경여행의 7할? 8할? 은 완성할 수 있다.\n이번에도 나는 어느 맑은 토요일 아침 신주쿠의 호텔에서 나와 중앙선에 올랐다. 하루키 소설의 배경이 직선으로 길게 뻗어 있는 중앙선을 따라 곳곳에 숨어 있다. 이번엔 기치조지역까지 가서 내린다. 사실 기치조지는 몇 번인가 가보았는데 주로 상점가 구경을 했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이노카시라 공원까지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노카시라 공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푸트니크의 연인>에 등장한다.\n그녀는 기치조지에 방 한 칸짜리 아파트를 빌려 최소한의 가구와 최대한의 책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오전에 일어나서 오후에는 산속을 헤매는 행자마냥 이노카시라 공원을 산책했다. 날씨가 좋으면 공원 벤치에 앉아 빵을 먹고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었다.\n-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n<스푸트니크의 연인> 속 주인공은 총 세 명. 주인공 ‘나’와 ‘스미레’, 그리고 ‘뮤’가 등장한다. 나는 스미레를 좋아하고 스미레는 뮤를 사랑한다. 뮤는 하루키 소설에서 아마도 유일한 한국 국적의 여성. 다른 이야기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국에 이렇게나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음에도\n(나만 그렇게 생각하나)\n한국 땅을 밟아 본 적이 없다.\n(비밀리에 왔다 갔다면 미안합니다.)\n어쨌든 ‘뮤’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한국 북부에 있는 자신의 고향에 기부를 많이 한 덕에 동상까지 세워진 인물이다.\n(음. 한국 사람들은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면 동상을 세워주지 않는데 말이지.)\n한편 ‘뮤’를 사랑하게 된 ‘스미레’는 기치조지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살며 소설가를 꿈꾸는 아가씨. 종종 자신이 쓴 글을 한 아름 안고 주인공 ‘나’를 찾아가는데, ‘나’는 기치조지에서 중앙선을 타고 ５개 역을 더 가면 있는 구니타치에 살고 있다. 스미레는 뮤의 비서로 일하며 유럽 출장까지 동행하게 되고, 그리스의 한 섬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만다.\n내가 도착한 배경은 스미레가 뮤에게 흠뻑 빠져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버리기 전, 다소 와일드한 모습으로 걸어 다닌 이노카시라 공원이다. ‘집 곁에 이런 공원이 있다면 집이 조금 좁은 들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노카시라 공원은 좋은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가운데 있는 연못물은 그리 맑지 않고 공원 전체 크기도 아담한 편이었지만,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편안한 분위기로 충만했다.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공원은 인위적으로 조성해내기란 어렵다. 아마 오랜 시간을 거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리라. 조깅을 하거나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이 많았다. 종종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벤치에 앉아 전화통화를 하거나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는 남자도 있었다. 그가 여자이기만 했다면 나는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스미레를 만났어”라고 했을 것이다. 공원에 붙어 있는 맨션의 정문(인지 후문인지)은 공원으로 바로 이어져있었는데, ‘이렇게 큰 수혜가 있을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스미레가 이런 맨션에 살았을 리 없다. 그녀는 한 칸짜리 방에서 최소한의 가구와 최대한의 책과 함께 살았으니까. 조금 더 걷다 보니 작은 절, 벤자이덴에 도착했다. 그리고 벤자이덴 바로 앞에 공중전화가 진짜로 있었다.\n그녀의 아파트에서 이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전화박스가 있다. 스미레는 전화가 없기 때문에 늘 그곳까지 걸어가서 전화를 건다. 지극히 평범한 전화박스다.\n- 무라카미 하루키 <스푸트니크의 연인> 중에서\n물론 하루키가 이 소설을 쓴 해(1999년)에는 전화박스가 흔했겠지만, 요즘같이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세상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전화박스다. 이 전화박스에서 스미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 사랑에 빠졌어”라고 말한다. 날도 밝지 않은 새벽 네 시 십오 분에.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스미레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영화로 치면 ‘역사에 남을 명장면’ 중 하나로 손꼽힐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n(개인적인 의견)\n그리고 다시 ‘교환 가능하고 어디까지나 기호적인 전화박스’에서 스미레가 '나'에게 전화를 걸며 소설은 끝난다. 나는 전화박스를 눈앞에 두고 서서 소설의 여러 장면들을 떠올리며 전화박스 안에 스미레를 슬쩍 넣어 보았다.\n그러고 나서 구니타치에 가서 몽블랑을 먹었다. 스미레는 새벽의 전화를 끊은 뒤 그날 저녁에 주인공 ‘나’의 동네로 찾아가, 둘이 자주 들르는 커피숍에 앉아 자신이 사랑에 빠진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구니타치 역 가까이에 있는 하쿠주지에서 몽블랑 케이크를 팔고 있다. 하쿠주지는 확실히 ‘카페’라기보단 ‘커피숍’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곳으로, 1955년부터 있었으니까 스미레와 주인공이 이곳을 종종 들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몽블랑 케이크가 너무 달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작품 속 주인공들이 몽블랑을 즐겨 먹곤해서 어쩔 수 없이 먹을 때가 생긴다. 운이 좋게도 이곳의 몽블랑은 적당히 달아서 먹기 좋았다. 스펀지 케이크 위에 밤이 들어간 크림을 몽블랑산 처럼 쌓아 올린 전형적인 몽블랑. 커피도 전형적인 일본 커피맛이다. 호텔 조식에서 나오는 커피에서도, 이런 오래된 커피집에서 마시는 커피에서도 일본 특유의 맛과 향이 나곤 한다. 아마도 물과 흔히 쓰이는 기계의 영향이겠지. 비록 내 앞엔 사랑에 빠져 긴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괜찮다. “초봄의 몰다우 강처럼”\n*) 물론 해당 정보는 <산책으로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　さんぽで感じる村上春樹> (나카무라 구니오, 미치마에 히로코 저)를 통해 얻었습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5","published_date":"2019-02-03T03:44+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8,"source":"brunch","title":"《빙평선》 따라  홋카이도 동부 여행","content":"다리 난간에 붙은 가스등 아래를 지나 강을 건너오는 이미지가 그야말로 여자에게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n“여기 꽤 오래된 것 같은데 계속 오빠가 하고 있었어?\"\n“아뇨, 이번 달부터 시작했어요”\n- 사쿠라기 시노, <바다로 돌아가다> 중에서\n《호텔 로열》이라는 소설을 통해 사쿠라기 시노란 작가를 처음 접했을 때 그녀의 소설은 내게 과도하게 농밀해서 깊이 빠져들지 못했다. 언젠가 홋카이도 동부에 갈 일이 생긴다면 그때 마저 읽어야겠단 생각에 책을 덮어두었다. 그리곤 한참을 잊고 있었다. 그러다 올해 초  아사히카와에 있는 OMO7이란 호텔 책장에서 사쿠라기 시노란 이름을 다시 만났다. OMO7의 책장에는 홋카이도를 주제로 하는, 혹은 홋카이도 출신 작가들의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는데, 그 안에서 사쿠라기 시노를 발견한 것이다. 한국에 도착하는 날에 맞춰 사쿠라기 시노의 소설을 몇 권인가 집으로 배송시켜 두었다. 그리고 홋카이도 동부 여행을 할 계획을 세웠다. 《빙평선》란 단편 모음집을 읽던 나는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세계에 흠뻑 빠져 들기 시작한다.\n빙평선\n대자연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한 땅, 오랜 세월 그 엄혹한 환경에 맞서 터전을 일구어온 이들의 이야기!나오키상 수상 작가 사쿠라기 시노의 문학의 출발점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이후 저자의 소설을 조명하고자 할 때 반드시 거론해야 할 귀한 자료가 되어줄 소설 『빙평선』. 거친 유빙으로 뒤덮인 오호츠크해와 맞닿은 혹한의 북녘 땅. 한겨울 홋카이도의 황량한 대지만큼이나 척박한 삶 속에서 저항과 순응을 거듭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을 놀랍도록 선명하게\n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585469\n사쿠라기는 삿포로에서도 동쪽으로 300킬로미터나 떨어진 구시로란 도시에서 태어났다. 결혼 전에는 재판소 타이피스트로 근무했지만 결혼 후엔 계속 전업주부로 지냈다 늦은 나이에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작품 대부분의 배경이 구시로를 중심으로 하는 홋카이도 동부다. 소설을 읽다 보면 당장이라도 홋카이도 동부로 달려가 그 문장 그대로를 느껴보고 싶단 충동에 시달리곤 한다. 특히 《빙평선》이 그랬다.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는 이 책 마지막에 실린 <빙평선>에는 세이치로란 남자와 몸을 팔아 먹고사는 도모에란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도모에는 어느 날 갑자기 세이치로가 살던 마을에 와서 살게 되고, 어부로 살고 싶지 않은 세이치로는 독하게 공부를 해서 도쿄대에 합격한다. 그리고 둘은 10년이란 세월에 거쳐 관계를 갖게 된다. 나는 아바시리에서 시레토코로 가는 길에 눈을 크게 뜨고 함석집을 찾았다. 소설에서 도모에가 사는 함석집을 찾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관 앞에 하얀 깃발이 걸렸을 때는 손님이 있다는 뜻이야”라는 소설 속 이야기가 마치 진짜인 것처럼 깃발이 걸린 집이 없을까 찾았다. 물론 소설 속 문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을 만날 순 없었다.\n그렇지만 나는 ‘빙평선’을 보았다. 대지도 아닌 물도 아닌 하얀 얼음이 편평하게 뻗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선.　유빙이 떠내려오는 이곳 시레토코 앞바다가 아니면 만나기 어렵다. 바다는 좀처럼 얼지 않기 때문에. 도모에와 세이치로가 빙평선을 눈앞에 둔 장면에서 소설 <빙평선>은 막을 내린다. 빙평선을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다면 나는 이 소설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n빙평선을 한참이고 바라보다가 밤이 깊은 구시로에 도착했다. 이곳은 《빙평선》에 실린 또 하나의 근사한 작품 <바다로 돌아가다> 속 배경이다. 1974년 3월. ‘춘분 대설(봄에 내리는 큰 눈)’에 기네코가 이발소를 운영하는 게이스케를 찾아간다. 강 입구에 걸린 다리를 건너서. 이 다리는 구시로의 명물인 누사마이바시로 실제로도 굉장히 낭만적인 느낌을 주는 다리였다. 다리 위에 서 있는 4개의 여인 동상을 주황빛 등이 비추고 있었다. 4개 동상은 사계절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봄에 찾아와 여름에 떠나는 기네코의 모습과 겹쳐졌다. 원래 누사이바시는 나무다리였다고 한다. 지금의 모습을 한 다리는 1976년에 새로 놓인 것. 기네코의 향기가 게이스케의 방에서 사라졌을 무렵, 다리의 교체 공사가 시작된다. 그렇구나. 나는 기네코가 춘분대설에 건너온 다리를 영원히 만날 수 없구나.","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6","published_date":"2019-03-24T11:16+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29,"source":"brunch","title":"비로소 츠타야가 어떤 곳인지  어렴풋이 이해했다","content":"일본에 오면 하루가 일찍 시작된다. 이른 시간에 해가 뜨기도 하고, 혼자 자는 호텔방에서 혹여나 늦잠이라도 잘 까 봐 암막커튼을 치지 않고 자기 때문에 창문으로 강렬한 아침햇살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최근 도쿄로 출장을 올 일이 종종 생겨났다. 어제는 아침 6시에 잠에서 깨어나서 멍하니 앉아 있다 다시 잠에 들지 못했다. 출근시간은 한국에 있을 때처럼 10시이기 때문에 무려 4시간이나 시간이 남아 있다. 무얼 한담.\n머리맡에 놓인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하코다테에 있는 츠타야 서점에 들렀는데 내가 생각보다 츠타야에 대해 잘 모른단 사실을 상기하고 이번 출장길에 챙겨 온 책이었다.\n“잠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릴까요?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은 옛 야마테 거리와 마주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세 건물 사이에는 몇 갈래의 산책로가 있지요. 저는 그중에서 한 산책로에만 뒷길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 ‘가든 스트리트’라는 이름을 붙였고, 신사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이미지를 부여했습니다.”\n- 마스다 무네아키, 《츠타야, 그 수수께끼》\n츠타야, 그 수수께끼\n디지털, 온라인, 모바일 등으로 묘사되는 21세기의 비...\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91186137734&g=KOR\n문득 책에 나온 ‘뒷길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걸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 산책로는 마스다 무네아키가 신사의 도리이를 통과해 본전까지 가는 길을 떠올리며 츠타야 서점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사색의 시간을 선물하기 위해 의도한 기획이란다. 이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다. 호텔에서 다이칸야마가 생각보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고, 고맙게도 츠타야 서점은 아침 7시부터 문을 연다. 다시 이불로 들어가는 일은 포기하기로 하고 호텔을 나왔다. 다이칸야마 역에서 내려 츠타야 서점까지 걸어가는 길. 고요한 마을 풍경에 아침의 활기가 스멀스멀 더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단정히 차려입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졌고,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오자 차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섰다.\n츠타야 서점엔 이른 아침부터 이미 야외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물로 들어갔다. 자동차 관련서적들이 모여 있었는데, 차에 관심이 없는 나는 대충 둘러보고 나와 TRAVEL이란 글자가 적힌 건물로 옮겨갔다. 여행 잡지에서부터 가이드북, 각종 단행본들이 형태별이 아니라 지역별로 모여 있는 책장을 신나게 좇아갔다. 사실 이곳 여행 섹션의 구성 등이 좋거나 특별하다 느꼈다기 보단 나는 어느 서점에 가도 여행 책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 게다가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이 문을 연건 2011년. 이미 8년 전 일이다. 워낙 화제가 된 장소라서 이곳의 구성을 닮은 서점들이 한국에도 상당히 많이 생겨났기 때문에 신선함을 느끼지 못할 만도 하다. 가운데 여행 관련 상품이 놓여 있고, 주변에 관련 서적들이 진열되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갔다. 스토케에서 만든 어린이용 여행 가방이 있었는데, 장난감 말처럼 탈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알아보니 기내에서 아이용 침대로 변신시킬 수 있단다.) 내가 아이 엄마라면 정말 갖고 싶겠구나란 생각을 하며 주변에 놓인 책을 슬쩍 보니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을 주제로 한 책들이 있었다. 옆방으로 옮겨갔다. 여행용 파우치 등이 보였다. 에휴. 또 파우치인가. 조금 실망스러웠다. 한국 서점에서도 책장 곁에서 여행용 파우치를 파는 것을 많이 봤다. 따분해하며 지나가려다 사진에 나온 설명에 눈길이 멈춰 섰다. 어라?\n최근 출장이 잦아진 나는 매번 화장품 파우치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었다. 스킨, 수분크림, 선크림, 파운데이션, 아이섀도, 마스카라, 하이라이터 등을 담은 파우치는 항상 잔뜩 부풀어 올랐고, 호텔방에 딸린 좁은 화장실 안에서 흐물흐물해 제대로 고정이 안 되는 파우치에 손을 넣어, 이미 잔뜩 뒤엉켜 있는 화장품 중 하나를 빼서 쓰는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매번 뚜껑은 하나둘 날아가기 마련이고, 손가락이 끼여 아프고 등등. 이 파우치는 크게 펼쳐져서 간이화장대도 될 수 있고, 안쪽에 고무줄이 붙어 있어 몇 가지 화장품을 고정시켜둘 수 있는 것이었다. 고무줄 덕분에 화장품들이 뒤엉키지 않고, 펼쳐지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찾기도 편하다! 어쩌다 보니 파우치 홍보를 하고 있는데....... (사실 나는 이런 신문물 소식에 매우 느린 사람이다.)\n어쨌든 여행을 좋아하고, 종종 다니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심지어 그날 아침 화장품 파우치와 한바탕 씨름을 끝낸 사람이) 여행책들 사이에서 이런 상품을 발견한다면 분명 그냥 빠져나가긴 어려울 것이다. 나는 파우치를 사기로 마음 먹는다. 파우치도 샀는데 조만간 여행을 가야겠지. 어딜 갈까. 다음에 떠날 곳을 꿈꾸며 그곳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도쿄 근교에 있는 가마쿠라, 쇼난을 다루는 잡지만 해도 여러 권이었다. 그렇지만 2시간 뒤에 출근을 해야 하는 나에게 당장 출발할 수 있는 곳들은 그림의 떡. 홋카이도 책장으로 넘어가서 얼마 전 다녀온 삿포로 시계탑의 일러스트가 표지에 들어있는 《홋카이도 도감》을 펼쳐보았다. 곧 가볼 후라노의 라벤더 오일 추출방법이 그림으로 알기 쉽게 설명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여행 잡지들 사이에서 집어 든 삿포로를 특집으로 하는 잡지에서는 흔히 알려져 있는 수프 카레집이 아닌 색다른 수프 카레 가게를 다루고 있다. 츠타야 서점 안에 있는 스타벅스로부터 진한 커피 향이 풍겨 나왔다. 여기 앉아서 좀 읽다가 갈까. 나의 마음은 이미 홋카이도에 가있다. 행복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꼭 가야지. 마침 곁에 여행사(T-TRAVEL)도 있다. 대략 예산이 얼마나 필요할지 물어볼 수도 있다. 아！ 이곳은 이런 공간이구나. 나는 비로소 츠타야가 어떤 곳인지 어렴풋이 이해했다.\n파우치와 책 몇 권을 계산하고 나서, 점원에게 마스다 무네아키 씨의 책에 나온 가든 스트리트가 어딘지 물었다. 점원은 ‘그런 길이 있었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사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하던데…….” (전날 읽어 놓고 잘 못 기억하고 있는 나.) 점원은 신사가 바로 건너편에 있지만 길 건너자마자 바로 있기 때문에 특별히 산책로라 할 만한 길은 없을 거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든 스트리트는 신사 안의 길처럼 영감을 주는 길일뿐 실제 신사와는 전혀 관계없음을 깨달은 나는 문 앞까지 나와 친절히 설명해준 점원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은 건물들 사이사이로 산책로를 조성해두었고, 그중 하나가 마을 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가든 스트리트란 이 길을 의미하는 듯했다. 마스다 무네아키의 말대로 특별한 표식을 두지 않아 사색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방해하는 요소가 하나도 없다. 크게 들려오는 새소리는 오히려 더 깊은 생각에 빠지게 했다. 나는 이곳처럼 공간으로 구현된 배경여행의 형상을 상상하며 걸었다. 몇 가지 아이디어가 샘솟았고, 언젠가는 작지만 배경여행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란 꿈을 꾼다. 고민이 있거나 기획을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마스다 무네아키가 머물며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카페 ASO가 길 건너에 보였다.\n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n★★★★☆ · 서점 · Sarugakuchō, 17−５ ＤＡＩＫＡＮＹＡＭＡ Ｔ－ＳＩＴＥ蔦屋書店 １号館、３号館、２号館１階\nhttps://www.google.com/maps/place/%E4%BB%A3%E5%AE%98%E5%B1%B1+%E8%94%A6%E5%B1%8B%E6%9B%B8%E5%BA%97/@35.6490674,139.6973793,17z/data=!3m1!5s0x60188b4fc6ac5b49:0x4ceb5b05b48bad60!4m5!3m4!1s0x60188b4fbed0f881:0xd6f9dafad72a5ca9!8m2!3d35.6488704!4d139.6997597?shorturl=1","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7","published_date":"2019-07-06T14:28+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0,"source":"brunch","title":"14화 그래도 오타루에 눈이 없으니 좀 허전하지 않아?","content":"\"벌써 3년이 되어가네.\"\n작년 여름 한 출판사로부터 가이드북 집필을 제안받았을 때, 홋카이도에 대해 쓰는 일이라면 남편과 꼭 함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 그곳을 이야기할 순 없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올해 초부터 홋카이도 가이드북을 쓰기 시작했다. 자연이 주인공인 곳인 만큼 사계절을 다채롭게 담아보겠다는 포부 아래 겨울, 봄, 여름… 계절의 흐름을 카메라 안에 차곡차곡 쌓아 왔다. 그러다 올해 여름부터 한일관계가 심상치 않아지며, 출간 계획은 점차 불투명 해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출간 계약서란 엄연한 약속을 했기에, 우린 지난달 오타루로 향했다. 가이드북 취재란 명분으로 찾아갔지만, 오타루란 도시를 일로만 바라볼 순 없다. 바로 이 도시에서 우리가 결혼식을 올렸으니까!\n결혼식을 한 날엔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2,30미터도 걷기 어려운 날씨였다. (\n29년 만의 폭설, 65cm가 쌓였다\n) 그땐 잘 몰랐지만 오타루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알찬 관광도시였다. 도시 앞으로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뒤로는 산이 솟은, 온천까지 샘솟는 자연을 갖고 있는 데다, 오랜 역사적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어 가볼만한 곳도 풍성하다. 도시가 별로 크지도 않아서 대부분 걸어서 찾아갈 수 있다. 게다가 초밥으로 유명! (우리는 여기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왜 초밥 한 점 먹지 못했던가) 오르골이나 유리공예품 등 쇼핑천국인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이렇게나 즐길 거리가 많은 도시에서 우리는 3년 전 결혼식을 올린 후, 너무나도 지친 나머지 뜨뜻한 해산물 라멘(물론 이것도 굉장히 맛있었다)과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오르골당 정도만 구경을 한 뒤 후다다닥 떠나버렸다. 그리 급히 떠날 것도 없었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급히 하코다테로 가버렸다.\n결혼식을 오타루에서 했단 사실을 들은 많은 이들이 “오타루에 연고가 있으신가 봐요?”, “오타루에 계신 거예요?”(이 질문을 한 사람 바로 눈앞에 내가 서있는데도!), \"오타루에 가면 뭐 해야 해요? 뭐 먹어야 해요?\"라고 묻곤 했는데, 정작 오타루에 머문 시간이 길지 않아서 (심지어 우리 부부는 결혼식을 하기 전에도 오타루에 가본 적이 없었다. 결혼식장도 결혼식 당일에 처음 가본 곳이었다.) 대답이 궁색해지곤 했다. 이번 취재는 누군가 우리의 결혼식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서 질문을 던질 때 근사한 답변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n말이 취재지 오타루에 도착한 순간부터 우린 추억에 푹 잠겨버렸다. 친구들의 숙소로 예약을 했던(이번엔 우리의 숙소) 호텔에 주차를 하고 나오니 바로 앞에 진짜 결혼식을 올렸던 이자카야가 있었고(\n11시 59분. 이자카야에서 진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n), 그 옆엔 신랑이 구두를 신고 빠르게 걷다가 꽈당하고 넘어졌던 (진짜로 어딘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는데 멀쩡했다.) 눈길이 있었다. 물론 9월에는 눈이 없다. 넘어질만한 위험요소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길이라 둘 다 헛웃음을 지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결혼식을 올리기 전날 밤 머문 호텔이 나왔다. 호텔 앞에서 엄마가 해맑게 웃고 있는 우리 둘을 담아준 사진도 다시 찾아보며 “이때만 해도 다음날 공항이 폐쇄될 정도로 눈이 더 내릴 줄은 몰랐지”라며 웃어댔다.\n사이 좋은 캔터키 할아버지와 맥도날드 아저씨도 만나고.\n초밥이 유명한 곳이니 초밥도 맛보고 운하를 향해 걸어간다. 운하 곁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면서도 운하를 제대로 마주한 시간이 조금도 없었단 생각을 했다. 이곳을 배경으로 결혼사진을 찍긴 했는데 나는 웨딩슈즈를 신고 눈길을 걷다가 크게 넘어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만큼이나 많았던 관광객들이 운하로 향하던 카메라를 갑자기 우리 쪽으로 돌려 셔터를 누르는 통에 더욱 정신이 혼미해졌다. 눈도 없고 편한 운동화를 신고 걷는 운하는 정말 산책하기 딱 좋은,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물론 관광객들은 여전히 많지만. 작은 결혼식장에 들어가 보았다. 똑똑.\n아쉽게도 아무도 없었다.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이 없는 날인가 보다. 사실 기억을 더듬어보면, 3년 전 예약할 때도 원하는 시간에 바로 예약이 가능했기 때문에 어쩜 이곳은 그리 붐비지 않는 식장일지도. 결혼식장 이름이 적힌 벽 앞에는 눈 대신 꽃이 피어있고, 나의 피인 줄 알고 오해했던 마가목은 벌써부터 탐스럽게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공항이 폐쇄되기 전에 내린 친구들 역시 눈이 너무 많이 내려 기차를 타지 못하고 렌터카를 빌려 천천히 올 수밖에 없었기에 예정보다 늦어진 결혼식을 마치고 서둘러 피로연장으로 이동하느라 보지 못한 운하의 야경도 구경한다. 오타루 오르골당만 겨우 구경하고, 르타오에서 치즈케이크를 포장에서 갔던 그때와 달리 사카이마치의 공방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고, 젓가락을 파는 가게에서 나무젓가락도 세트로 샀다. 뭐가 부족할지도 몰랐던 그때와 달리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살림살이가 뭔지 잘 알게 되었으니까.\n샤코탄 블루\n오타루를 떠나기 전 겨울이라면 안전 때문에 길을 폐쇄할 가능성이 높은 샤코탄 반도의 가무이 미사키에 가보기로 했다. 샤코탄 반도는 '샤코탄 블루'라는 별도의 색이름이 붙을 정도로 바다색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이 '샤코탄 블루'는 여름철에만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바다가 평온하고 해초가 적을 때 투명도가 높아지며 내는 색이기 때문. 9월이지만 여름 못지않게 더운 이상기후의 날이었던 탓에 우리는 한없이 투명한 샤코탄 블루를 만난 후 이곳을 떠날 수 있었다.\n\"그래도 오타루에 눈이 없으니 좀 허전하지 않아?\"","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8","published_date":"2019-10-09T04:58+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1,"source":"brunch","title":"13화 우린 잘 지내고 있어요.","content":"오타루에 가면 많은 여행객들이 외치고 싶어 한다.\n“잘 지내고 있나요.(오겡키데스까)”\n“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와타시와 겡키데쓰)”\n하지만 이 아름다운 외침은 사실 오타루에서 들릴 리 없다. 장면이 촬영된 곳은 나가노현에 있는 야쓰가타케 목장(八ヶ岳牧場)이라고 한다. 어찌 됐든. 오타루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알렸더니, 어떤 사람은 비아냥대듯 어떤 사람은 신기하다는 듯 일관된 반응을 보였다.\n“오타루? 오겡키데쓰까?”\n“오겡키데쓰까 찍냐?”\n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러브레터』를 보았고, 또 오타루란 지명에서 모두가 같은 것을 떠올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린 영화처럼 눈이 소복이 쌓인 오타루에서의 결혼식을 꿈꿨다. 나는 오타루로 떠나기 전에 『러브레터』를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정작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오타루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영상으로 마을을 익혔다. 식을 앞둔 한 달 전부터는 매일 아침 우리 동네 날씨보다 오타루의 날씨를 먼저 챙겼고, 결혼식 날 오타루에 눈이 안 오면 어쩌지 전전긍긍했다.\n이와이 슌지 감독의 첫 번째 영화 『러브레터』엔 ‘후지이 이츠키’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과 남학생이 등장한다. 둘은 같은 반이 되었고, 친구들의 장난으로 도서위원에 나란히 선출된다. 어른이 된 남학생 후지이 이츠키는 와타나베 히로코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그리곤 조난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후지이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는 와타나베는 그의 집에 남아있던 졸업앨범에서 그의 옛 주소를 발견하고, 편지를 보낸다. 편지는 같은 이름의 여자 후지이 이츠키의 집으로 배달된다. 얼굴이 닮은 (영화에선 같은 배우가 연기하는) 후지이 이츠키와 와타나베 히로코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후지이 이츠키를 추억한다.\n후지이 이츠키가 근무하는 도서관\n두 명의 후지이 이츠키가 함께 보낸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은 오타루에서 흘러갔다. 남자 후지이는 오래전 오타루를 떠났지만, 여자 후지이는 여전히 오타루에 살며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자신을 좋아하는 아키바 시게루의 제안으로 오타루에 가게 된 와타나베 히로코는 간발의 차이로 후지이를 만나지 못한다. 둘은 어느 교차로에서 스쳐 지나가게 되는데……. 오타루 우체국 앞 풍경이 배경에 담겼다. 후지이 이츠키는 자신을 만나러 왔다가 그냥 떠난다는 와타나베 히로코의 편지를 읽은 후 답장을 써서 작은 우체통에 넣었다. 우체통은 몇 발자국 떨어진 자리로 옮겨져 있었다. 우린 일부러 이곳을 찾아간 것이 아니었다. 호텔에서 운하까지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다. 지나가지 않으려 해도 지나갈 수밖에 없는 오타루는 작은 도시였다.\n인구 12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오타루는 운하가 유명한 데서 알 수 있듯 항구로 번영했다. 지금은 다른 도시의 항구가 커지고, 홋카이도의 중심도시가 삿포로로 바뀌며, 인구도 줄어만 가고 많이 침체되었다고 하지만, 운하는 명소가 되어 관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n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결혼식 전날, 당일, 다음날, 총사흘을 머무는 내내 오타루는 눈의 나라였다. 결혼식 전날 부모님과 신랑과 나는 작은 렌터카를 타고 조심조심 눈길을 기어가야 했기 때문에 늦은 밤에나 오타루에 도착했다. 두텁게 쌓인 하얀 눈 위에 주황빛 가로등이 내려앉아 있었다. 눈을 만난 강아지 같던 우리 모습을 엄마가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둘째 날엔 허리까지 쌓인 눈에 파묻혀 눈만큼이나 하얀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운하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이 카메라 방향을 틀어 우리를 담기 시작했다. 셋째 날엔 여전히 그치지 않던 눈을 꾹꾹 밟으며 드디어 오타루 여행을 시작했다.\n지난 이틀 동안 결혼식을 준비하고, 올리느라 도시를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오타루가 마냥 시골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타루의 대표명소 오르골당에 가보니 인파가 대단했다. 관광객이 오르골 종류만큼이나 있었다. 커다란 가방에 때문에, 아이의 부주의로 인하여 오르골이 깨지는 장면을 두 번이나 목격했다. 나는 소음을 흡수해 버린 깊은 눈에 둘러싸여 주인공의 숨소리만이 들려오던 영화를 보고 오타루에 대한 환상을 그려왔다. 나의 환상이 오르골이 깨지는 소리처럼 와르르 깨져버릴 것 같았다. 북적임을 견딜 수 없어 빠져나와 오타루 역 근처로 걸어갔다.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한 오타루의 모습을 보러 가기 위해서.\n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침대에 파고들어가 다시 잠을 청하여 자고, 늦은 아침 식사 후에는 거실에서 세 번째 잠을 즐겼다. 그 기분 좋은 잠을 방해한 것은 집배원의 고물 오토바이 소리였다.\n- 소설 『러브레터』 중에서\n후나미자카(舟見坂)라는 언덕은 영화 속에서 후지이 이츠키에게 관심을 보이는 우체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이츠키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꽤 가파른 언덕이었다. 열선이 깔린 길은 눈이 깨끗하게 녹아 있었고, 하얀 눈은 열선이 없는 땅을 찾아 잔뜩 앉아 있었다. 언덕 풍경은 영화 장면과 똑같았고, 한가득 쌓인 눈이 주변을 더욱 고요하게 만들고 있었기에 영화의 기분에 흠뻑 빠져들 수 있었다.\n여행을 다녀와서 한참 뒤. 오타루로부터 소포가 왔다. 결혼식 사진과 동영상이 담긴 CD가 들어 있었다. 나는 와타나베의 부탁을 받아 후지이가 달리던 운동장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내준 후지이를 떠올리며 오타루에 메일을 띄웠다.\n“우린 잘 지내고 있어요.”","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29","published_date":"2019-10-09T05:1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2,"source":"brunch","title":"03화 입구도 출구도 없는 골목을 찾아","content":"그날은 일부러 자전거를 타고 역 앞까지 나가기로 했다. 그녀가 자신의 옷을 그 가게에 맡긴 것을 알면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n-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중에서\n오랜만에 생긴 도쿄에서의 나 홀로 저녁시간이었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을 싫어하진 않지만, 아니 오히려 매우 좋아하는 편이지만 정작 퇴근 시간이 다가오니 무얼 해야 할지 막막했다. 도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보았다.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렇담 어딜 가서 저녁을 먹지. 이왕이면 회사가 있는 신주쿠를 벗어나 보자고 생각했다. 매번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신주쿠역 주변에서 인파에 치이며 밥을 먹는 일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한 골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골목. 《태엽 감는 새》의 주인공이 자주 오가는 골목을 찾아보자.\n태엽감는 새. 1: 도둑까치 편\n현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70121260&g=KOR\n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태엽 감는 새》에는 법률사무소를 다니다 그만두고 주부로 살고 있는 서른 살의 오카다 도오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내 구미코와 고양이와 함께 도쿄 세타가야의 한 주택을 외삼촌으로부터 싸게 빌려 산다. 그러던 어느날 고양이가 집을 나가고, 아내도 함께 집을 나간다. 집으론 기묘한 전화가 걸려오고, 점술가 가노 마루타, 그의 동생 구레타, 그리고 이웃에 사는 가시하라 메이와 엮이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대개 그렇듯 줄거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운데, 오랜만에 《태엽 감는 새》를 다시 읽어보니 하루키의 가장 최신작인 《기사단장 죽이기》와 매우 흡사한 점이 많음을 발견했다. 두 소설 모두 세계 제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과 과오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태엽 감는 새》에서는 집 근처에 마른 우물 이 있고, 《기사단장 죽이기》에선 새벽마다 방울소리가 들리는 구덩이를 파헤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은 우물과 구덩이에 들어간다.\n《태엽 감는 새》의 주인공이 사는 마을에 가면 이런 우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 비슷한 것이라도. 아니면 입구도 출구도 없는 골목에 관한 힌트라도 말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묘사하는 마을엔 오다큐선이 지나며 구립 수영장이 있고 역 근처에 도서관, 세탁소가 있다. 《산책으로 즐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자 나카무라 구니오는 아마 ‘교도 역(経堂駅)’이 아닐까 추측했다. 고로 내가 저녁을 먹게 될 역은 바로 교도 역이다. 오타큐선에 오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도 역에 내렸다. 분주히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인 듯 남편을 만나 함께 돌아가는 젊은 아내의 모습도 보이고 무척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오카다 도오루는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며 집과 슈퍼마켓, 도서관, 집 근처 구립 수영장만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역 계단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는 샐러리맨들을 보고는 멍해진다. 나도 오카다가 (아마도) 서 있었을 길 위에서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역 앞에는 오카다 도오루의 아내가 좋아할 만한 세탁소가 있었다. 심지어 세탁소 이름은 무라카미 클리닝! 우연인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하다. 일단 배가 고파 중국집에 들어가서 탄탄면과 맥주 한 잔을 마시고 골목이든 우물이든 찾으러 나서기로 한다. 탄탄면은 예상했던 것보다 매워서 입맛에 딱 맞았다. 곁들인 맥주 맛이야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고. 역 앞 상점가를 벗어나 주택들이 모여 있는 마을 깊숙이 들어간다. 걸으면 걸을수록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었다. 산책로가 잘 꾸려 있고, 작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는 놀이터도 있고. 그리고 재밌게도 무라카미라는 글자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무라카미 부동산, 무라카미 빌딩, 무라카미 총업 …\n《태엽 감는 새》을 처음 읽었을 때부터 꼭 한번 배경여행을 해봐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소설에 등장하는 골목 때문이었다. 여러 집의 뒷마당을 잇는, 입구도 출구도 없는 골목. 잘 상상되지 않았다. 이 골목이 머릿속에 잘 안 그려지다 보니 계속 신경이 쓰여서 소설 전체 이야기에 빠져들지 못했다. 다시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이런 묘사에 딱 맞는 골목이 없을까. 그 골목으로 이어지는 집 중 하나에 우물이 있을까. 마을을 한참 헤맸다. 해는 저물어갔지만 나는 골목도 우물도, 조금 닮은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등에 주름이 간 양복차림으로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 있는 남자, 강아지를 끌고 산책을 하는 외국인, 저녁 반찬거리를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페달을 힘차게 밟는 아주머니. 모두가 나를 살짝 곁눈질하며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초조한 마음이 들며 헛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무얼 찾고 있는 거지. 소설 속에 그려진 가상의 공간이 실제로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에 함몰되어 급히 출발해버리고 종잡을 수 없이 직진하고 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다시 역으로 돌아갔다. 익숙하지 않은 마을을 어두워진 뒤에 계속 걷는 일은 좋지 않다. 역으로 돌아가니 교도 도서관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공간인 듯 하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하루키의 책이 있을까 싶어 ‘무’로 시작하는 작가들의 소설이 꽂힌 책장에 가보았지만 모두 대여중인지 한 권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곳에서 책을 빌려도(빌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때 반납할 수 없기에 서둘러 나와 역 바로 앞에 있는 산세이도 서점에 들어갔다. 마침 《기사단장 죽이기》의 문고본이 나왔단 소식이 책장에 크게 걸려 있었다. 이 정도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녁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이쯤에서 만족하자. 하루키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 한 권을 사서 호텔로 돌아갔다.\n그래도 좀 아쉽다. 어딘가 부족하다.\n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왠지 글을 쓸 기분이 나질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교도 역에 가서 다시 골목을 찾아보는 일은 더 우습다. 게다가 요즘 세상에 우물이 있을 리 없고.\n두어 달이 지나고 다시 간 도쿄 출장에서 나는 어디에서 점심을 먹을까 찾으려 구글맵을 켰다. 그리곤 지도 안에서 ‘우물’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떠올라 그곳으로 바로 튀어나갔다. 기요마사 우물. 진짜 우물이 있구나. 사실 우물이란 건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긴 하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구글맵에서 우연히 마주한 우물이란 글자는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찾아가 보니 도쿄를 처음 찾는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은 가보게 되는 하라주쿠, 메이지진구 안에 있다. 메이지진구를 몇 년 만에 오는 거지. 메이지진구는 고등학생 때 처음 방문했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도리이 아래서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모습이나, 입구에서 고개를 깊숙이 숙이는 일본인들의 모습이나. 그러나 나는 그 옛날엔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우물을 이곳에서 찾고 있다. 우물은 500엔을 내야 들어가 볼 수 있는 어원 안에 있었다. 어원 입구에 들어서서 화살표를 따라 우물을 찾아간다. 계속해서 보이는 표지판 화살표 끝엔 우물이 있다고 하는데 걸어도 걸어도 우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건 완전 구미코를 찾아 헤매는 오카다 도오루 같잖아. 겨우 도착한 우물엔 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태엽 감는 새》 속 우물은 말라 있어서 도오루가 사다리를 내려 내려갈 수 있는데 이 우물은 들어갈 수 없다. 또 깊지 않아서 바닥이 시원하게 보인다. 나무를 옮겨 심었다가, 대가뭄 때문에 마른 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맑고 투명한 물이 샘솟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더 이상의 집착은 그만두자. 집착 때문에 점심도 굶어 버렸잖아.\n좀처럼 찾기 어려워 처음엔 이게 기요마사우물인줄 알았다. 소설 속 우물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32","published_date":"2019-11-02T14:0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3,"source":"brunch","title":"01화 한신칸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content":"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재즈바 피터 캣을 운영하던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작품이다. 하루키는 이 소설로 군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1979년에 등단했다.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처음 읽고, '군데군데 코가 빠진 목도리' 같단 느낌을 받았다. 소설을 읽었다기 보단 사진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n《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주인공은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21살의 ‘나’이다. 시간적 배경은 1970년 8월 8일에서 8월 26일까지. ‘나’는 방학을 맞이하여 항구도시인 고향으로 돌아오고, ‘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와 매일같이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새끼손가락이 없는 여자를 조우한다.\n무라카미 하루키는 ‘한신칸(阪神間)’이란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베(神戸)와 오사카(大阪) 사이 지역을 한신칸이라 부른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는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하진 않지만, 첫 작품인 만큼 하루키는 자신에게 친숙한 장소, 고베와 한신칸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2년 뒤에 소설은 영화화되었고, 이 지역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n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70127194&orderClick=LAG&Kc=\n하루키를 좋아하는 감정도 크지만, 그보다 무척이나 부러워하는 나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장소가 어떤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떠난 여행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신칸 여행은 근사했다. 나는 일 년간 요코하마에서 지냈던 적이 있어서 이 일대도 비슷할 것이라 지레 짐작했다. 두 곳 모두 도쿄와 오사카, 큰 도시를 곁에 두고 있으며, 항구가 있고 차이나타운이 있으니까. 그러나 요코하마보단 차분하고 고풍스러움이 있었다.\n오사카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푼 나는 라멘집에 들어가 배를 채우고 고베로 향했다.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출발. 강 위에 서서히 내려앉기 시작한 석양과 함께 고베로 저물어 갔다. 고베는 오사카의 서쪽에 있다. 오렌지 빛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전차에서 잠시 내리고 싶어 졌다. 다음 역은 마침 '슈쿠가와(夙川)'였다. 하루키는 교토에서 태어나자마자 슈쿠가와로 이사를 갔다.\n슈쿠가와 역에 내리니, 역 앞에서 모금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과, 빅이슈를 팔고 있는 아저씨, 나들이를 다녀온 듯 한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에 들어가니 미용실 의자에 누워있는 아주머니의 발도 구경했다. 토요일의 저녁 시간이었다. ‘오늘 하루도 끝나가는구나’하는 아쉬움과 주말의 행복함이 동시에 전해오던 그때에 나는 강을 따라 걸었다.\n영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주인공이 배경음악 캘리포니아 걸스(Calidornia Girls)에 맞춰 경쾌하게 걷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항구에서부터 걸어 모토마치 상점가(元町商店街) 레코드샵에 들어가는데, 소설 속 '나'도 항구 근처를 거닐다가 눈에 띈 레코드 가게에서 일주일 전 바에 쓰러져 있던 여자를 우연히 만난다.\n“어떻게 여기서 일하고 있는 걸 알아냈지?”\n그녀는 체념한 듯이 그렇게 물었다.\n“우연이야. 레코드를 사러 온 거라구.”\n“어떤 레코드?”\n“<캘리포니아 걸스>가 들어 있는 비치 보이스의 LP.”\n-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중에서\n나는 슈큐가와에서 다시 전차를 타고 산노미야 역에서 내려서, 영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속 주인공과는 반대로 모토마치 상점가를 거쳐 고베 항구의 밤을 향해 걸어갔다. 상점가는 활기찼고, 항구는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풍경이었다. 항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고베 포트 타워에 올라가 보기도 하고, 항구에 즐비한 식당 중 하나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저녁 식사를 하고 싶은 식당은 따로 있었다. 주문하는 피자마다 번호를 매겨주는 피자집 피노키오. 하루키도 고베 여행 중 이곳을 방문하였고, 여행기엔 여자 친구와 몇 번인가 가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번호가 딸린 피자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고 적혀있다. ‘하루키도 맛 본 피자를 먹으러 간다’는 기대에 부풀어 한참을 걸어서 피자집에 도착했다. 여러 방면에서 유명한 가게인 줄은 알았지만, 나는 줄조차 서보지도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다. 종업원은 예약이 이미 꽉 찼고 기다려도 자리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구석에 비어 있는 자리에 앉을 순 없는지’ 묻자, ‘예약석이라 내줄 수 없다’고 했다.\n슬쩍 들여다본 가게 안은 크리스마스 저녁을 닮아 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주고받으며 피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도 쉽게 자리를 뜨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허망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하루키는 피노키오 레스토랑에서 헤밍웨이의 《해는 다시 떠오른다》를 읽었다. 나도 이번 여행엔 같은 책을 챙겨갔다. 『해는 다시 떠오른다』에는 전쟁 후 성불구가 된 주인공 제이크와 그의 연인이었던 브렛, 마이크와 콘 등 젊은이들이 등장하고 사랑한다. 주인공들은 매일 저녁 파리의 술집과 카페를 전전하면서 술을 마시고 헛헛한 나날을 보낸다. 이들의 모습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속 ‘쥐와’ ‘나’의 모습과도 겹쳐졌다. 하루키는 어디선가 이 작품을 '술을 부르는 소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피자를 못 먹은 나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잔뜩 사서 숙소로 돌아가 소설을 읽었다.\n나는 한숨을 쉬며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재킷을 벗어 뒷좌석에 던지고 나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n“그럼, 어디로 갈까?”\n“동물원.”\n“좋지.”\n내가 말했다.\n-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무라카미 하루키) 중에서\n나에겐 나흘간의 여행 마지막 날 반나절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가 판다가 있다고 하는 동물원에 가보기로 했다. 소설에서는 ‘쥐’가 동물원에 가자고 제안하는데 그치지만, 영화에는 ‘나’와 ‘쥐’가 고베시에 있는 오지 동물원(王子動物園)에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들어있다. 판다 '탄탄'이 무기력하게 퍼져있었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와 탄탄이 ‘쥐’와 ‘나’의 모습 같기도 했다. 탄탄 곁에는 원래 '싱싱'이라는 수컷 있었지만, 2010년에 죽었다고 한다. 다른 판다 친구가 와서 부디 탄탄이 활발해지길 바라며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러 산노미야역 근처 정류장으로 향했다. 주인공 ‘나’도 같은 곳에서 버스를 타고 도쿄로 돌아가며 영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막을 내린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33","published_date":"2019-11-02T14:30+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4,"source":"brunch","title":"18화 \"커티삭을 좋아해요?\"","content":"작년에 도쿄 신주쿠에 있는 더그(dug)에 간 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많을 땐 매주 신주쿠로 출장을 갔던 시기라, 무라카미 하루키 팬이라면 한 번쯤은 방문하는 더그를 자연스레 갈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가 다섯 잔이나 마시곤 계단에서 비틀댔던 칵테일을 ‘톰 콜린스’로 기억해 톰 콜린스를 두 잔이나 마셨다. ‘이 정도라면 나도 다섯 잔은 마실 수 있겠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대학생이 다섯 잔이나 마셔댈 가격은 아닌 것 같다’며 적당히 마시곤 호텔로 돌아갔다. 톰 콜린스는 레몬을 좋아하고, 달달하면서도 쓴 맛도 같이 나야 하는 내 입맛에 딱 맞는 칵테일이었다. 진에 레몬주스, 탄산수를 넣어 제조하기 때문이다. 하루키 소설 속 술을 정리한 조승원 작가의 저서 《\n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n》에 따르면 더그는 흔히 쓰는 '런던 드라이 진'이 아닌 ‘올드 톰 진’을 사용해서 좀 더 달고 촌스러운 맛이 난다고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그 둘의 차이를 알리는 없고. 미도리가 다섯 잔이나 마신 칵테일이 보드카 토닉이었던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더그에 다시 가서 보드카 토닉을 마셔야지, 다시 가봐야지 하다가... 출장은커녕 출근조차 불투명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n두 달 가까이 되어가는 재택근무. 당분간 보드카 토닉을 맛 볼 기회는 없겠구나 하는 아쉬움에 마트에 가서 더그에서도 사용한다는 '스미노프 레드'를 사 와 집에서 홀짝여본다.\n나의 몹쓸 입맛은 톰 콜린스와 보드카 토닉의 차이도 모르겠어서\n더그의 보드카 토닉을 향한 미련은 말끔히 떠나보냈다.  어차피 《1Q84》의 아오마메도 톰 콜린스를 마셨더랬다. 톰 콜린스 장면까지 도달해 보려고 《1Q84》 1권을 다시 읽기 시작하다가, 나는 오랜만에\n커티삭 위스키를 만나게 된다.\n남자는 문득 생각난 듯 커티삭이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고 바텐더는 말했다. 나쁘지 않아,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그가 선택한 게 시바스 리걸이나 까다로운 싱글몰트가 아닌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바에서 필요 이상으로 술의 종류에 집착하는 인간은 대개의 경우 성적으로 덤덤하다는 게 아오마메의 개인적인 견해였다.  - 《1Q84》중에서\n아오마메는 《1Q84》에서 전문 킬러로 등장하는데, 아무나 죽이는 건 아니고,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 남성들을 죽인다. 소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살인을 마치고 그녀가 향한 곳은\n아카사카의 고급 호텔 바. 이곳에서 ‘커티삭 하이볼’을 주문하는 중년 남자를 보게 된다.\n그의 두상이 마음에 든 아오마메는 그와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접근한다.\n아오마메. \"커티삭을 좋아해요?\"\n남자. \"아 네, 커티삭.\" \"옛날부터 라벨이 마음에 들어서 자주 마셨어요. 돛단배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n아오마메. \"배를 좋아하는군요.\"\n남자. \"음 그래요. 돛단배를 좋아합니다.\"\n이 장면에서 나는 책을 덮었다. 커티삭의 맛이 너무 궁금해서 더 이상의 문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n커티삭...!\n《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에는 커티삭을 찬양하는 하루키의 시가 실려 있다.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러스트까지 곁들인 이 글을 처음 봤을 때도 무슨 맛인지 너무 궁금해 견딜 수 없었는데, 나는 위스키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한국에서는 당연 구할 수 없으리란 생각으로 단념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혹시나 해서 검색을 했다가 마트나 주류 상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하곤 주변 주류 상점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몇 번의 통화 끝에 커티삭을 손에 넣게 된다! 신이 나서 커티삭 하이볼 제조에 들어갔다. 하이볼은 위스키에 소다수\n-토닉워터, 진저에일, 탄산수 무엇이든 관계없단다-\n를 넣고 레몬을 짜기만 하면 되어서 집에서도 쉽게 제조할 수 있다. 그러나\n커티삭의 뚜껑을 열고 향을 맡은 순간 깨달았다. 위스키는 내가 이제까지 가장 혐오해 온 ‘양주’였단 사실을.\n(이런 이야기를 하면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질타를 받겠지만.)\n내가 처음 양주 맛을 본 건 대학생 때였다. 당시 한 언론사에서 인턴기자를 했다. 거의 매일 같이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에, 얼음도 타지 않은 양주에,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까지... 몇 잔씩 마시곤 인사불성이 되어 퇴근을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가서는, 혹은 돌아가는 과정 중에(......) 쏟아낸 구토와 함께 올라오는 냄새. 바로 그때 그 냄새! 였던 것이다. 당시 40,50대 남자 선배들이 밸런타인이고 시바스 리걸이고 17년 산이라는 둥, 21년 산이라는 둥, 얼마짜리고, 역시 향이 다르다고... 으스대며 마셔보라 권유(인지 강요인지)했지만 나에게 양주는 그저 토 냄새로 기억되는 술이었다. 몇십만 원을 주고 이걸 마셔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고, 그때 그 강렬한 양주의 경험이 뇌리에 박혀 웬만하면 양주는 피해왔다. 어쩌다 마시게 되어도 올라오는 그 냄새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나는 커티삭의 향을 맡기 전까지\n어딘지 모르게 세련된 느낌을 주는 ‘위스키’ ‘커티삭’이란 소리의 울림 때문에 이 술이 양주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n너무 궁금해 꿈에서까지 그리던 커티삭이 이 향이었다니. 적잖이 실망했다. 남편\n(함께 인턴을 했던 그는 기자가 되었다)\n에게도 향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아아 아니. 이것은 출장 다녀오는 길에 부장 선물로 사가면 그날 회식에 등장하여 결국 내가 마시게 되는 바로 그 술의 향기 아닌가.”란다. 역시...!\n어찌 되었든 궁금함은 해소해야 해서 두상이 예쁜 아저씨가 마신 커티삭 하이볼을 제조해서 마셔보았다. 위스키의 강한 향이 레몬 뒤에 슬쩍 숨어 드문드문 나고, 음료계의 단짠단짠이기도 한 토닉워터 덕분에 주스를 마시듯 편하게 넘어갔다. 충격적이었던 커티삭 향기와 달리 하이볼은 꽤 만족스러운 맛이어서 한잔을 더 만들어 마셨다.\n(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n다음번 도쿄행에선 아카사카의 호텔에서 커티삭 하이볼을 마셔봐야지. 그리곤 다시 《1Q84》의 독서를 재개했다.\n아오마메는 ‘커티삭 하이볼’을 주문한 남성에게 들리도록 ‘커티삭 온더록’을 주문한다. 아... 이런. 커티삭 온더록도 마셔봐야겠구나. 곧바로 컵에 얼음을 담고 커티삭을 부어 마셔본다. 얼음 덕분에 향이 조금 은은해졌지만 여전히 양주의 향기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래서 첫 단추가 중요하다.) 물을 부어 미즈와리로... 하루키의 소설 속 주인공들도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예를 들어 《양을 쫓는 모험》에서 친구 ‘쥐’의 죽음을 마주한 ‘나’라든지, 나오코를 떠나보낸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 정도가 아니면 스트레이트 보단 하이볼이나 온더록, 미즈와리 정도로 위스키를 즐기는 듯하니까. 나도 하이볼에서 만족하기로. 이 정도가 내겐 딱 좋다.\n그나저나 왜 양주하면 촌스러워 보이고, 위스키, 하이볼은 세련돼 보이는 걸까. 나만 그런가.\n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칵테일 이야기 둘.\n16화 이 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였을지도 모른단 말인가\n<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배경여행, 도쿄 아오야마 바 라디오 | 퇴근길에 종종 칵테일 한 잔 마시고 돌아가곤 해요. 물론 나는 이런 타입의 사람이 아니다. 바 bar라는 곳을 태어나서 두 번 가봤나, 세 번 가봤나. 하는 정도. 칵테일도 그 정도 먹어보았을 거다. 맛있다는 건 잘 알지만 아직(앞으로 바뀔지도 의문) 내겐 너무 비싸다. 그 가격이면 편의점에서 수입맥주가 8캔, 와인 한 병도 충분히 사니까. 그럼에도 불구하\nhttps://brunch.co.kr/@istandby4u2/124\n08화 할레쿨라니의 피나콜라다\n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  배경여행 1. 하와이 와이키키 | 처음 보았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넘쳐나고 호텔은 왜 이렇게 낡고, 불친절한지. 심지어 거리에 걸린 오키나와 페스티벌 현수막은 뜬금없다. 우리가 가장 실망했던 여행지 나하를 떠올리게 했다. 정말 ⟪댄스 댄스 댄스⟫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비행기표를 바꿔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니 귀국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을까 항공사 사이\nhttps://brunch.co.kr/@istandby4u2/115","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34","published_date":"2020-04-12T10:32+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5,"source":"brunch","title":"가까이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를 이야기","content":"작년 12월이 다가오던 어느 날. 연말이 가까워져서 인지, 출장 일정이 다소 급하게 잡힌 탓인지, 회사와 계약된 호텔이 아닌 사무실에서 한참 떨어진, 게다가 가부키초에 위치한 호텔에 머물게 된 적이 있다. 출장은 늘 저녁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음날 아침부터 근무를 하는 일정. 밤 11시를 넘긴 시간에 호텔까지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잔뜩 예민해 있었다. 아시아 최대 환락가 한복판을 그 밤에 걸어야 하다니. 회사는 대체 생각이 있는 거냐며.\n그나마 다행히도 함께 출장을 간 동료의 가족분이 공항까지 픽업을 나와주셔서 가부키초 근처까지는 무사히 도착했지만,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한계가 있어 호텔을 몇십 미터 정도 남긴 지점에서 내렸다. 청바지와 코트 차림에 트렁크를 달달달달 끌었다. 되도록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부단히도 노력하며 영화관 건물을 향해 걸었다. 호텔은 영화관 건물에 들어서 있는데, 건물 중간에 고질라 모형이 있어 고질라 호텔이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밤의 가부키초를 즐기는 여행객들에게는 꽤 인기가 있어 보였지만, 나는 저 흉물스러운 고질라는 왜 있는 건가 생각했다. 술에 잔뜩 취한 국적 불문의 사람들이 꽥꽥, 꺅꺅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어린 여자애들은 화려한 화장과 복장을 하고 웃었다. 발걸음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호텔 입구를 찾기 어려워 몇 차례 헤매자 겨드랑이에 땀이 차올랐다. 바깥 풍경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호텔 로비에 도착하자 나도 모르게 안도하는 한숨을 쉬었다. 로비에는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커다란 트리가 덩그러니 서 있었고, 한 아이가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하자 엄마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아이의 아빠는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n이날 밤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오른 건, 5월 황금연휴에 만난 <신을 기다리고 있어>란 소설 때문이었다. 나와 닮은 차림으로 이 거리에서 트렁크를 끄는 주인공이 등장했기 때문이다.\n신을 기다리고 있어\n돈이 없다. 수십 군데의 회사에 지원해서 채용된...\nhttp://www.kyobobook.co.kr/redi_book.jsp?b=9788954671316&g=KOR\n일본인이라고 해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있다. 술집이나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듯한 화려한 차림의 남녀 외에도, 누가 봐도 조직 폭력배로 보이는 무서운 얼굴의 사람들도 이 거리를 걷고 있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스피커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경찰의 안내 방송이 서로 뒤섞인다. 호객행위는 금지라느니, 바가지 판매에 조심하라느니 하는 경찰의 안내를 듣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귀담아듣고 주의할 만한 사람은 애초에 이곳에 오지 않는다.\n나는 어깨보다 조금 긴 길이의 까만 머리를 하나로 묶고, 캐멀색 코트에 청바지를 입고 보아털 부츠를 신었다. 이곳 분위기와는 완전히 따로 노는 차림이다. 거리 중심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있지만 거기 가는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n- 하타노 도모미, <신을 기다리고 있어>\n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홈리스가 되어 거리로 나가게 된 스물여섯 살 여성의 6개월간의 삶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미즈코시 아이는 (상위권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도쿄에 있는 대학을 졸업 후 수십 군데의 회사에 지원했지만 딱 한 곳에 합격을 하게 된다. 합격한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성희롱을 당해 가지 않기로 하고, 문구회사 파견직으로 근무를 시작한다. 파견직 계약이 끝날 무렵 구두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정직원 전환, 차선책으로 요구한 재계약이 성립되지 않아 실직을 한다. 집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만화카페에서 숙식을 해결하기 시작하고, 일일 아르바이트, 즉석만남카페에서 돈을 번다. 대학까지 나와 이제까지 무얼 했냐고 멸시하는 공장의 작업반장, 남자에게 여러 차례 버림받고 아이 둘을 키우며 사는 사치(정신지체 증상이 있다), 아버지의 성폭행을 겪고 집을 나와 성매매를 하며 사는 여학생 나기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n난 이 소설을 좀처럼 내려놓을 수가 없어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초반부에 묘사된 미즈코시의 삶이 나의 20대 초반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아 깊이 감정이입을 했다. 나 역시 SKY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서 많은 회사에 지원했고, 떨어졌고, 딱 한 곳에 채용이 되었고, 다행히도 최종면접에서 성희롱을 당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렵게 입사한 첫 회사에는 아이의 직장 상황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회사 사정이 좋지 않고', '위에서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오가고' 등의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퇴사를 권고받은 선후배, 동기가 있었다. 주인공처럼 일처리만큼은 자신이 있으니 ‘나는 대상이 될 리 없지’하는 생각과 함께 고용 불안정은 늘 내 곁을 맴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을 수도 있는,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그날 밤 머문 호텔 벽 너머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을 이야기였다. 몇 번의 이직을 하고, 운이 좋게도 10년 가까이 회사원으로 살아남아 일을 하면서 회사 돈으로 일박에 2만 엔짜리 방에 머물며 투덜대던 나. (다음날 아침 조식도 맛이 없다며 나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 배경 속에서 <신의 기다리고 있어>의 아이는 2만 엔에 성을 팔아넘겼다. 여러 복잡한 생각이 뒤섞였고, 가부키초 풍경에 지난 회사생활 속 여러 단락이 겹쳐졌다.\n언젠가 회사와 계약된 호텔이 만실이라 가부키초의 호텔로 가게 된다면 나는 지난 해 겨울 밤과 다른 눈으로 그 거리를 바라보게 될 것 같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35","published_date":"2020-05-03T08:15+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6,"source":"brunch","title":"배경여행 서재 소재","content":"2년 전 이사를 와서 내 방이 생기자마자 하루키 컬렉션을 꾸몄다. 컬렉션이라고 해봤자, 책장 두 칸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단편과 장편 소설로 정리한 정도였지만 덕후들에겐 이런 게 꽤 기쁜 일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다. 2년 내내 하루키 컬렉션에만 만족하며 지내다 오늘 드디어 작품의 배경별로 책장을 정리했다. (분류한 책보다 분류하지 못한 책이 더 많지만 더이상 정리하면 쓰러질 것 같은 관계로 이쯤에서 마무리했다. 다음 정리는 또 2년 후가 되려나.)\n하루키 컬렉션\n2년 전에 컬렉션을 만들고 나서 신작이 몇 권 더 출간되기도 했고, 일본에 출장을 오가며 사들인 원작이 몇 권 늘어 하루키 컬렉션은 옆 책장으로 새끼를 쳤다. 원서들이 따로 모였고, 하루키가 쓴 글이 아닌 하루키를 분석한 글들만 다른 칸에 배치했다. 그리고 하루키가 추천하는 미국의 몇몇 작가의 글을 모은 칸도 하나 마련했는데, 아직까지\n하루키가 추천한 작가의 작품 중 흠뻑 빠져든 작품은 만나지 못했다.\n아 레이몬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에 나온 김렛 레시피는 정말 만족해서 종종 마시고 있다. (로즈사의 라임주스와 진을 반반 섞고 아무 것도 넣지 않아야 한다.) 아직 <기나긴 이별>은 다 읽지 못했다. 원서 섹션에 특히 추억이 많은데, <무라카미 T>(커버에 싸여있음)와 <무라카미 송즈>는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다. <무라카미 송즈>를 선물 받은 곳이 하루키의 단골 바인 바 라디오였다. 하루키가 번역한 <크리스마스의 추억>은 <양을 쫓는 모험의> 배경 니우푸의 한 숙소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떠나는 길에 선물로 주셨다. 추억이 듬뿍 담긴 칸.\n하루키 배경여행 매거진\n#무라카미하루키 #배경여행 #소설여행\nhttps://brunch.co.kr/magazine/harukitrip\n홋카이도 컬렉션\n꽤 오래전 홋카이도 가이드북 집필 계약을 했다. 계약을 하고 취재 및 집필 작업에 들어갔는데 한일 관계가 악화되었고, 코로나가 창궐했다. 출간은 무한정 늘어지고 있고 책 작업을 좀처럼 못하고 있지만 홋카이도 컬렉션은 잘 보존하고 있다. 가이드북 작업에 도움을 받고 있는 경쟁사 책들이 모여있고,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소설, 에세이, 만화 컬렉션이 있다. 미우라 아야코(그러고 보니 <빙점>이 어디로 갔지?)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작가로 워낙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내가 추천하고 싶은  홋카이도 배경여행의 최고봉은 사쿠라기 시노의 작품들이다. 특히 홋카이도 동부 여행을 간다면 사쿠라기 시노 작품 하나는 꼭 읽고 갈 것을 강력 추천. 갈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도 꼭 읽어보는 것이 좋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마자 비행기표를 예약하게 될 것이다.\nhttps://brunch.co.kr/@istandby4u2/126\n《빙평선》 따라  홋카이도 동부 여행\n사쿠라기 시노 배경여행 | 다리 난간에 붙은 가스등 아래를 지나 강을 건너오는 이미지가 그야말로 여자에게 잘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 꽤 오래된 것 같은데 계속 오빠가 하고 있\nhttps://brunch.co.kr/@istandby4u2/126\n가보고 싶은 일본 배경여행\n나의 저서, <다정한 여행의 배경> 리뷰 중에는 ‘너무 일본에 편중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데 이것이 내 책의 치부가 되는 것 같아 조금 속상한 마음은 있다.\n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이 없음 > 사람들과 대화가 되기 때문에 에피소드도 많고 쓸 거리가 많음\n물리적으로 가까움 > 계속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긴 여행을 하는데 한계가 있음\n앞으로 가보고 싶은 일본 배경여행 칸은 여전히 비교적 넓다. 최근에 읽은 <파친코>는 정말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일본만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은 아닌데, 한때 머물렀던 요코하마에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곳에 꽂아두었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가루이자와에 다시 가보고 싶게 하는 작품이고, <끝난 사람>에 나온 도쿄의 한 레스토랑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데뷔작 시나리오가 된 <환상의 빛>의 배경, 소소기 여행도 벼르고 있다.\n우리나라 배경여행\n이상하게 한국 작가들의 소설은 읽고 나서 배경이 된 곳에 가보고 싶단 기분이 들지 않는다.\n작품에 그려진 감정들이 여운으로 남을 뿐 배경이 어디였는지는 금세 까먹어버리곤 한다.\n최근 작품 중엔 장류진 작가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 판교의 이상한 다리가 나왔을 땐 기뻤고 (자주 지나간 길이라), 이도우 작가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고 나선 이화장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는 아마 30년 넘게 살며 바라본 배경들이라 익숙하여 호기심이\n생겨나지 않는 것일까.\n미국 배경 여행\n팟캐스트을 듣다가 피츠제럴드 이야기가 나와 읽게 된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화려함의 극치를 표현하는 문장들 덕분에 글을 읽고 있는 내내 눈이 부셨다. 언젠가 소설의 배경인 몬태나주 로키산맥에 위치한 1.6킬로미터의 결점 없는 다이아몬드를 찾으러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한다. 당연 가상의 공간인 줄 알면서도.\n유럽 배경여행\n한강의 <흰 도시>를 읽으며 배경인 폴란드 바르샤바가 너무 궁금했다. 최근 읽은 소설 <비와 별이 내리는 밤>은 끝까지 읽는데 고생을 좀 했지만 그리스 배경이 무척 매력적이다.\n다정한 여행의 배경\n<다정한 여행의 배경>이 출간된 지 꽤 오래되어서 섹션은 만들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한 칸을 내어주기로 했다. 이후에 떠난 배경여행 책들도 같은 칸에 정리하려다 공간이 좀 협소해서 최상위 층으로 옮겨버렸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작품 및 배경은 <태풍이 지나가고>의 기요세 아사히가오카단지와 <내게 무해한 사람> 속 광명시. 단지라는 점에서 두 곳이 매우 닮아 있다.\n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배경과 상관없이 모여있다\nhttps://brunch.co.kr/brunchbook/settingtripbook\n[브런치북] <다정한 여행의 배경>을 엮다\n우연한 계기로 시작하게 된 작품의 배경을 걷는 여행. 조금이나마 색다르게 보고 싶어 좋은 작품에 기대어 여행을 합니다. 배경여행의 기록이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오게 되기까지 이야기를 들\nhttps://brunch.co.kr/brunchbook/settingtripbook\n그리고\n책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들과 업무에 관한 책들만 따로 모은 칸도 마련했다.\n(본업을 들키게 될 수도)\n요즘 읽고 있는 책 섹션도 있는데, 조금 부끄러운 책들이 있어, 공개는 하지 않는다.\n아 이 글을 쓰게 된 이유.\n오전에 이북 리더기를 샀다. 책을 계속 관리하는 게 힘들단 생각에서였는데, 이렇게 하루를 온전히 쏟아부으며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또 책을 읽으며 ‘꼭 가봐야지’, '당장 가보고 싶어' 했던 마음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잃게 되는 건 조금 쓸쓸하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36","published_date":"2020-12-27T13:5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7,"source":"brunch","title":"수많은 삶이 쌓인 푸른 언덕","content":"내 본적은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n아나운서란 꿈을 갖고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진학한 난 학내 방송국 아나운서에 지원한 적이 있다. 서류 및 필기 전형에 통과하여 1차 면접을 보러 갔는데 동아리 면접치고는 꽤나 압박 면접이었다. 같은 조로 들어간 동기가 지각을 했는지 한참을 면접관들에게 시달렸다. ‘방송은 1분이라도 늦으면 청취자와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렇게 안일한 삶의 태도로 살아왔느냐’는 둥…….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었고, 이미 십 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친구의 얼굴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뎌낸 것 같다.\n다음은 내 차례.\n서류에 대충적은 ‘본적’이 문제가 되었다. 부끄럽지만 그때까지 나는 ‘본적’의 개념이 없었다.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누군가 내게 본적을 물은 적이 없었고, 내 ‘뿌리’는 미취학 아동일 때 맞벌이를 한 부모님이 잠시 맡겨두어 생활한 적이 있는 외가댁이자, 명절마다 찾아간 ‘파주’정도였다.\n(친할머니, 친할아버지는 아빠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게 시골 하면 외갓집뿐이다.)\n혹은 인생에서 가장 오랜 기간을 산 ‘일산’이었다. 그래서 학내 방송국 지원서 서류에 본적 란을 보고는 깊이 생각해보지도, 뜻을 조사해보지도 않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집 주소를 적어서 제출해 버린 것이다.\n“지원자는 본적의 개념을 모르나요?”\n“이 아파트는 본인이 태어난 곳인가?”\n“아버지가 이 아파트에서 태어나셨나요?”\n“본적의 개념에 대해서 정의 내려 보세요.”\n“그렇게 상식이 없어서야…”\n한바탕의 포화를 맞고 면접장을 나온 나는 본적 란에 적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1차 면접에 합격했단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2차 면접 전형에는 가지 않겠단 답변을 하고 그날밤 아빠에게 본적에 대해 물었다.\n서론이 길었는데, 난 ‘서울’에 뿌리를 둔 사람인 듯하지만, 서울에 대해 전혀 모른다. 스무 살이 되어 신촌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엔 종로로 회사를 다니며 본 서울의 단면이 전부인 서울 사람. 대학과 첫 직장을 다닌 기간을 합해도 7년 남짓에 불과하다. 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읽으며 나는 내 뿌리에 대해 생각했다.\n\"불편한 편의점\"은 서울 청파동에 있는 ALWAYS란 이름의 편의점에서 일하거나, 그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1편에는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다가 편의점 주인 염 여사와 연이 닿아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잃어버린 기억을 찾게 된 ‘독고’라는 사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2편에서는 ‘독고’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 시나리오의 독고 역을 맡은 황근배(별명 홍금보)란 오지랖 넓은 아저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2편에 거쳐 공무원 준비생, 쌍둥이 딸을 키우는 샐러리맨,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가장, 3년째 취업에 도전 중인 취준생, 잘난 형에게 치이는 고등학생 등이 등장한다.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사람들과 삶이다. 아니, 매 챕터 별로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전개될 때마다 취업에 고생했던 나를, 내 동생을, 유독 특출난 형 혹은 언니를 둔 내 친구를, 사촌을, 오래도록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아는 오빠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우리 아빠 얼굴이 여러 번 떠올랐다.\n그냥 떠나보내기엔 하늘이 너무 맑고 푸르러 아쉬운 가을날. \"불편한 편의점\"의 배경 청파동에 갔다.\n골목과 골목 사이 작은 삼거리의 편의점을 발견한 인경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트렁크를 끌고 그곳으로 골인했다. 편의점인데 편의를 좀 봐주지 않을까.\n…(중략)…\n“편의점요? 혹시 ALWAYS에 계세요?” 인경이 그렇다고 답하자 그녀는 바로 건너편 빌라 3층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인경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밖을 살폈다. 곧 빌라 3층 창문이 열리더니, 희수 샘과 똑같은 미소를 띤 얼굴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n- “불편한 편의점\" 중에서\n물론 청파동에 ALWAYS란 이름의 편의점은 없다. 하지만 “불편한 편의점\" 중에서도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 인경(작가로 등장)의 에피소드에 기대 ‘청파동 골목길 작은 삼거리’에 있는 편의점을 하나 찾아갔다. 소설의 배경은 상품 품목도 빈약하고 아르바이트생도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게 하는 ‘불편한 편의점’이지만 이곳은 엄연히 대형 프랜차이즈 편의점 GS25다. 그래도 나는 GS25 앞에 펼쳐 있는 2개의 파라솔을 아래, 이곳 야외테이블에 앉아 참참참(참이슬 + 참치김밥 + 참깨라면의 조합)을 먹는 경만과 소맥을 마는 최 사장. 그리고 옥수수수염차와 함께 그들 곁을 지키는 독고와 홍금보를 그려 넣는다. 2편을 읽다 보면 ‘참치’ 조합이 무척 궁금해지는데, 좀처럼 취업이 되지 않는 소진이 즐겨먹는 ‘참’ 이슬과 자갈’치’ 조합이다. 둘 다 아는 맛이지만, 같이 먹어 본 적이 없어 그 마리아주가 좀처럼 상상되지 않았다.\n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자갈치가 소진의 소울 푸드, 아니 소울 스낵 즉 영혼의 과자가 된 것은. 나중에야 소진은 자갈치가 생선을 본뜬 게 아니라 문어 모양이란 걸 깨닫게 되었으나 소울 스낵의 자리를 내어줄 만한 이유는 되지 않았다.\n거기에 소주가 더해진 건 대학을 졸업하고 첫 인턴으로 들어간 회사에서였다.\n- “불편한 편의점 2”중에서\n소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원룸 앞 대형 편의점에 자갈치가 놓여 있지 않아 조금 먼 ALWAYS 편의점을 애용하는데, 내가 방문한 GS25엔 자갈치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날름 집어 들었다. 사실 옥수수수염차도 함께 사려고 했지만 작은 사이즈를 팔고 있지 않아서 자갈치만 사서 나왔다. 그리곤 건너편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시키고 “불편한 편의점 2”를 마저 읽으려 에코백을 뒤적거렸다. 이런… 책을 집에 두고 왔구나. 나의 정신머리를 탓하면서 조금 더 걸을 수 있는 체력과 당을 충전시킨다.\n다시 본적 이야기로 넘어와서.\n본적이 공덕동이란 의미는 나의 아버지가 그리고 할아버지가 공덕역, 남영역, 서울역… 이 일대에서 오랜 시간 살았음을 의미한다.\n(내가 대학 방송국 면접을 본 다음다음 해를 기점으로 호적법은 폐지되었고, 호적법상의 호적을 의미한 ‘본적’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게 되었다. 사실 추상적 개념에 불가하게 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 면접을 떠올릴 때마다 억울하고 불편한 마음이 되곤 한다.)\n“불편한 편의점”에 등장하는 지명들 모두가 아빠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며 그중 공덕동, 효창동, 청파동 가운데에 ‘효창공원’이 있다. 소설 속 인물 여럿이 효창공원을 걷는데, ‘효창공원’으로 말할 것 같으면 아빠가 최소 백 번은 더 했을 추억 이야기가 하나 있다.\n“우리 형\n(= 나의 큰아빠.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된 큰아빠는 사환으로 일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거의 따로 나가 생활했다고 한다)\n은 가끔 나타나서는 효창공원에 데려가서 나 보고 먼저 뛰라고 해. 자기는 조금 이따 출발한다고. ‘나보다 느려서 나한테 잡히면 넌 빠따로 두들겨 맞는 줄 알아라’ 다짜고짜 이러며 뛰란다니까.”\n“이유가 뭔데요? 아빠가 공부를 안 했나 봐요? 형은 고생하는데”\n“아냐. 그냥 화풀이지.”\n... 로 이어지는 이야기. 이 추억 이야기에 항상 등장하는, 말로만 듣던 ‘효창공원’을 \"불편한 편의점\" 덕분에 처음 가보게 되었고, 사실 너무 깜짝 놀랐다. 일요일 오후. 투명하고 파란 가을 하늘 아래 다소 느슨한 듯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도 있구나…’ 내가 정말 잘 모르는구나.\n일요일에도 많은 사람들로 복작거리는 숙대입구역에서 내려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지린내가 나는 굴다리를 지나 언덕지고 구불구불한 청파로를 걷다 보면 대학생들이 별 것 아닌 일에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주워 담다 보면 금방 도착하는 숙명여대 정문. 그리 크지 않은 캠퍼스를 가로질러 올라서면 효창공원이다. 효창공원은 청파동이 숨겨둔 보석과도 같았다. 보석이라고 해서 다이아몬드 같이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보석 말고 할머니가 끼고 있는 옥반지 같은 보석.\n효창공원엔 아이와 배드민턴을 즐기는 아빠가 있었고, 조금도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가는 아주머니들이 있었고,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외국인이 있었다.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 3인의 유해를 안장한 묘소와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기다리고 있는 가묘가 있었고, 백범 김구 기념관이 있었고, 효창 독립 100년 메모리얼 프로젝트로 효창공원의 옛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들이 담장에 붙어 있었다. 효창공원은 원래 조선시대 땐 정조의 맏아들 문효세자의 묘가 있던 곳인데, 일제강점기땐 일본군의 숙영지이자 비밀작전지로도 쓰였고, 골프장의 모습을 한 적도 있었다. 옥반지를 낀 할머니의 손주름 마냥 켜켜이 쌓인 역사와 그 안에 있었을 수많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다가 다시 청파로로 나왔다.\n언덕길을 올라올 때처럼 거리엔 ‘오늘 그 분식집 안 하면 어쩌지?’, ‘OO이가 노래는 못하는 데, 코드를 진짜 잘 짜’ 따위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들 사이를 지나치며 노천카페에 앉아 아마도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중년의 남녀 그룹(교수님들 같아 보였다)도 흘깃 쳐다보기도 하고 해가 슬슬 지기 시작한 거리를 더 구경했다.\n청파동을 걷고 나서야 사람 냄새로 꽉찬 “불편한 편의점”이란 소설이 왜 이곳에서 탄생해야 했는지 이해했다. 잠깐 걸은 반나절의 시간 동안에도 나는 많은 이들의 얼굴을 보았고, 그들이 떠드는 이야기 조각조각을 들었고, 그 단편들에 상상의 살을 더해 그 삶들을 그려보았다. 그리곤 다시 숙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소주도 한 병 사서 (자갈치는 이미 샀으니) 집으로 돌아가며 아빠에게 ‘드디어 효창공원에 가보았다’는 카톡을 보냈다. 그 앞에 ‘일신 식당’이 20년 넘게 다닌 자신의 단골 맛집이며, 효창공원에 원효대사 동상을 세울 당시 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아빠(당시 국민학생)도 함께 밧줄을 당겨 동상을 세우는데 일조했단 새로운 추억 이야기가 반찬처럼 곁들여진 답신이 왔다.\n다음에 ‘일신 식당’에 같이 가봐야겠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39","published_date":"2022-10-01T15:09+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8,"source":"brunch","title":"고집불통 봇짱이 몸과 마음을 녹여낸 온천이 솟아나는","content":"몇 해 전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를 몇 달이고 붙들고 있다가 결국 완독을 하지 못하고 책장에 쑤셔 넣어버린 적이 있다. 그전에 읽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도 <마음>에도 그리 빠져들진 못했다. 겨울이 가기 전에 온천물에 몸을 담구고 쉬다 오고 싶은 마음에 마쓰야마행 비행기를 끊고 <도련님>을 읽기 시작하며 나는 나쓰메 소세키란 소설가를 다시 보게 되었다. 이렇게 재밌는 글을 쓰는 작가였구나.\n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2층에서 뛰어내리다 허리를 삐는 바람에 일주일쯤 일어나지 못한 적도 있다.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n<도련님>, 나쓰메 소세키의 시작\n도련님 : 네이버 도서\n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n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41236699629\n<도련님>은 도쿄 출신의 주인공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장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시코쿠에 있는 중학교에 수학교사로 가게 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형과도 사이가 좋지 못한 사고뭉치 독불장군 성격의 인물. 그 와중에 그에게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주는 사람이 있는데, 집안일을 해주는 하녀 기요 할멈이다. 소설 속에서 이 기요 할멈이 여느 등장 인물보다 중요한 역할하기에 소설의 제목도 기요의 관점에서 주인공을 칭하는 명칭인 봇짱(우리말로 도련님)이다. 기요는 주인공을 끔찍이 귀여워하며 다른 식구들 몰래 맛있는 것과 용돈을 챙겨줄 뿐만 아니라 늘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봇짱은 시코쿠로 부임하게 되며 피붙이 가족보다 더 가까운 기요 할멈과 떨어져 지내게 되며 크게 상심하고 편지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으며 할멈을 무척이나 그리워한다.\n마쓰야마 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도고온천행 무료 셔틀버스도 준비되어 있고 마쓰야마에서 즐길 수 있는 대부분의 명소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쿠폰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자비로운 도시가 있나. 에히메 한국 경제관광교류 추진 협의회는 기요 할멈인가..? 평소 과일주스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편이 공항에 있는 수도꼭지 주스를 쉽사리 지나칠 리 없다. 수도꼭지 앞에서 한참 고민하더니, 이건 나중에 마시고(결국 마쓰야마성에서 더 비싼 가격을 주고 마시고는 \"역시 착즙 주스만은 못 하군. 평범해\"란다. 봇짱이 따로 없다.) 착즙기로 짜주는 귤 주스부터 마셔보겠단다. 에히메는 이 지역에서만 키우는 귤 종류가 40종이 넘어 연중 내내 귤이 나는 귤 산지로 유명한 지역. 수도꼭지 주스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그 동네는 수도꼭지 틀면 귤 주스 나오지 않냐? 귤밖에 없는 동네 아니냐?라며 놀림감 소재를 삼은 것을 실제로 상품화해 버린 것! 수도꼭지 주스 대신 100엔을 더 주고 선택한 오늘의 착즙 주스는 이시마루농원이라는 곳의 이요칸(伊予柑)이란 품종. 1월부터 3월까지가 제철이라고 하는데, 설탕이나 시럽 같은 첨가물을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귤 몇 개를 짜내기만 한 주스인데 설탕을 듬뿍 넣은 것 마냥 달콤하고 맛있었다. 향도 상큼하여 비타민을 듬뿍 충전하고 여행을 시작한다.\n<도련님>의 주인공은 마쓰야마 시내에서 하숙을 하며 저녁마다 빨간색 수건을 들고 전차를 타고 도고온천에 가서 온천욕을 즐기는데, 워낙 고집불통에 사고뭉치인 성격인지라 학교에서 당직을 서라고 하는 날에도 온천을 다녀왔다가 교장선생님께 꾸중을 듣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도고란 이름 대신 ‘스미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마쓰야마 시내에서 전차로 가면 10분, 걸어서도 30분 정도이고, 공원과 유곽(지금은 맛집 거리려나)도 있고 주인공이 좋아하는 당고(경단) 가게도 있다고 그려진 소설 속 묘사가 지금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렇게 현실감 있게 그려져 있는 데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 본인이 실제로 1895년에 마쓰야마 중학교에 영어선생님으로 가서 당시 개축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도고온천을 즐겼기 때문이다.\n“도고온천은 매우 훌륭한 건물로 8 전만 내면 3층에 올라가서 차를 마시고, 과자를 먹고, 온천에 들어가면 머리까지 비누로 감겨주어, 꽤 오래 머물고 있습니다.”\n나쓰메 소세키가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n도고온천 역 주변은 관광객들로 조금 북적이긴 했지만 료칸을 향해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적이 드문드문 해지고 그나마 마주치는 사람들도 유카타를 입고 사뿐사뿐 걸으며 산책하고 휴식을 즐기는 이들뿐이라 차분한 마을의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도 온천욕과 료칸의 식사를 충분히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지난 몇 해간 홋카이도 가이드북 작업을 하느라 여행을 가도 좀처럼 맘 놓고 쉬는 여행은 하지 못했다. 모처럼 쉬기만 해도 되는 여행이니 몸과 마음을 충분히 녹여내기로.\n소설 속 도련님은 완고한 성격으로 인해 학교에서도 하숙집에서도 좀처럼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덴푸라메밀국수를 좋아해서 가게에 들어가 네 그릇이나 비우고 나면 다음날 칠판에 학생들이 칠판에 ‘덴푸라 선생’이라 적어두질 않나, 경단을 먹고 오면 “경단 두 접시 7 전”이라 써두어 주인공의 심기를 건드린다. 심지어 교장선생님으로부터는 메밀국수와 당고를 즐기는 건 상스러운 행동이라며 자제해 달란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또 학교 숙직실에서는 기숙사 학생들이 이불 밑에 메뚜기를 깔아 두어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선생님들과도 갈등이 많아 싸움도 잦다. 하숙집 주인들에게도 불만이 많다. 어떻게 보면 사회 부적응자 같지만 정의롭고 당당해 밉지 않은 캐릭터인 봇짱. 그  역시 늘 예민하고 날 선 하루하루를 이곳 온천에서 풀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피식 웃음이 났다.\n마쓰야마는 길을 걷다 보면 벌써 꽃봉오리를 열기 시작한 성격 급한 꽃나무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이미 봄이 시작되어 포근하긴 했지만 머무는 내내 흐린 날씨여서 조금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떠날 때가 되니 파란 하늘로 뒤덮인 온천마을의 아침이 밝았다. 이 풍경으로 마을을 기억하고 싶어 아침 온천욕을 하기 전 산책에 나섰다. 도고공원은 밖에서 볼 때보단 규모가 꽤 큰 공원이었다. 공원을 한 바퀴 정도 돌아본 후 마을 구석구석을 걸었다. 등교 시간이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학생들 혹은 소설 속 도련님을 괴롭힌 학생들이 입었을 법한 옛날 디자인의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n이 마을. 쉬러 또다시 찾아와야지.","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41","published_date":"2024-04-09T01:13+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39,"source":"brunch","title":"16화 새들이 지저귀는 깊은 산속에서 아마다의 아틀리에를 찾아","content":"귀에 꽂은 에어팟에서 오디오북 <기사단장 죽이기>가 들려온다. 도쿄 시나가와에서 기오이초를 향해 걷고 있다. 친구의 근무지 근처에서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난 탓에 러닝을 하고 조식을 먹고도 약속시간까지 2시간이나 남았다. 시간을 더 어떻게 죽이지… 고민 끝에 약속 장소까지 7km 정도 되는 거리를 그래, 한 번 걸어가 보자. 한 것이다. (이미 조깅으로 8.8km를 뛰고 난 다음이었다.)\n이러다 슬슬 다리가 무너지는 게 아닐까 싶던 찰나. 눈앞에 약속 장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은 아카사카였다. 그리고 정확히 ‘아카사카’란 지명이 귀에 선명히 귀에 꽂혔다. 신기하게도.\n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그녀의 스물아홉 번째 생일 일주일 후였다(생일에 긴자의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를 했는데, 그때 그녀가 여느 때와 달리 말수가 적었다는 사실을 그는 나중에야 떠올렸다). 당시 아카사카에 있던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전화로, 잠깐 만나서 할 이야기가 있는데 지금 그쪽으로 가도 괜찮은지 물었다. 물론 괜찮다고 그는 말했다.\n기사단장 죽이기 1: 현현하는 이데아 : 네이버 도서\n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nhttps://search.shopping.naver.com/book/catalog/32476637687\n두툼한 분량의 2권으로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그리 핵심 장소도 아닌 곳인데, 마침 딱 아카사카라니.\n사실 <기사단장 죽이기> 배경여행을 가야겠다 생각한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소설은 출간이 되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역시 이번에도 비슷한 전개군. 하면서도 하루키가 그리는 소설의 무대는 여전히 매력적이라 배경이 된 오다하라엔 꼭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이후에 몇 번의 기회는 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 기나긴 팬데믹의 시기를 보내고, 하늘길이 열리고 나서도 한참 뒤에나 이젠 진짜 가봐야 할 마음이 든 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출간 소식을 듣게 된 것이 계기였다. 만약 새 작품의 배경도 매력적이라면 숙제가 두 개나 생겨버리는 일이 되니까.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는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 두 개의 배경이 그려져 있는데 그중 비현실 세계가 너무나도 매력적이라 모델이 된 도서관이 있다고 하는 현실 세계의 배경에는 당장 가볼 마음이 들지 않는다. 기우였다.)\n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에서 사용하는 소재, 메타포, 설정 등 모든 장치를 등장시킨 하루키의 백화점과도 같은 소설이다. 주인공은 아내로부터 갑작스럽게 이혼을 통보받은 삼십 대 중반의 초상화가인 ‘나’. 아내와 함께 살던 집에 더 이상 머물 수 없게 되자, 친구 아마다의 마침 비어 있는 아틀리에에 머물게 된다. 아틀리에는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해 있는데, 유명 화가인 아마다의 아버지가 요양 시설에 가기 전까지 생활하며 작품생활을 한 \b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근처에는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연상케 하는 멘시키란 인물이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핏줄일지도 모르는 13살의 소녀 마리에를 지켜보기 위해 산골짜기에 커다랗고 화려한 집을 사들인 세련된 중년의 남자로 주인공과 가깝게 지내게 된다.\n아카사카를 지나 기오이초에서 친구와 맛있는 점심을 먹은 나는 다음날 도쿄에서 출발해 <기사단장 죽이기> 속 인물들이 생활하는 산골짜기 이리우다 入生田 로 향했다. 이리우다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집에 들러보기로 했다. 이렇게 쓰면 마치 약속을 하고 찾아가는 듯한 느낌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침 가는 길에 그의 집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되어 외관만이라도 구경을 해보려는 것이다. 지금도 이곳에 살고 있는지는 (하루키는 아오야마에도 멘션이 있다고 하고, 주기적으로 하와이에 거주하기도 하는 듯하다.) 모르겠지만 문패에 정직하게 ‘무라카미’라 쓰여 있다. ‘시나몬 자료실’이라는 집의 애칭인지 뭔지 모르겠는 타이틀 아래. 함께 간 남편은 세계적인 소설가치고는 소박한 집이라 놀랐다고 하지만, 사실 연예인도 아니고 강연이나 행사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인물도 아니고 인세를 주 수입원으로 살고 있는 작가이니 (물론 일본에서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톱클래스지만) 난 이 정도가 딱 적당한 집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들어가 볼 수도 없는 집 주변에서 너무 어슬렁거리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아 주변 마을 구경이나 잠깐 하다가 이리우다가 있는 오다이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의 마을 분위기는 참 좋았다.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달리고, 수영하고, 음악을 듣고, 일찍 잔다고 하는 하루키의 일상에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하루키가 어린 시절을 보낸 한신칸을 떠올리게도 하고.\n오이소에서 이리우다까지 차로는 30분, 기차로는 40분이면 닿을 수 있다. <기사단장 죽이기>의 배경이 왜 그토록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지 이해가 된다. 하루키의 삶의 터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을 소설의 주 무대로 삼은 것이다. 두 곳 모두 한적함에 하품이 밀려들어오고 눈꺼풀을 무겁게 하는 장소들이다. 두 마을 모두 바다가 가까이에 있고 마을 뒤에 커다란 산을 두고 있어 집들이 높은 언덕 위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있는 점도 비슷했다. 물론 이리우다가 훨씬 더 시골이다. 마주치는 사람보다 새들이 더 많을 정도다.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집도 많아 보인다. 별장이나 세컨드 하우스 혹은 정말로 빈 집이 되어버린 곳. 그나마 생활의 향기가 느껴지는 역 근처 마을을 지나 오르 시작한 산행 길. 산 속 깊이 들어갈수록 지저귀는 새들의 종류가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n아, 한 가지 분명히 할 점은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구체적으로 이리우다란 지명이 등장하진 않는다. 소설 속 몇 가지 힌트를 통해 일본의 몇몇 매체에서 이곳으로 짐작된다고 기사를 썼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이러한 짐작들은 대략 맞아떨어져 왔다.)\n일단 깊은 산속까지 들어오긴 했는데 어찌 됐든 허구의 무대이다. 정확히 일치하는 아틀리에 나 멘시키의 흰 저택이 눈앞에 나타날 리 없다. 이제부턴 그냥 대략 비슷한 건물을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니며 산책을 할 뿐이다.\n언제나처럼 남편은 곁에서 “어떤 건물이냐?” “어느 스폿이냐”를 계속 묻고 있다. 그러니까… (매번 이야기하지만) '그냥 이 공간을 느끼면 되는 거라니까...'\n(약간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멘시키가 지켜보는 마리에라는 소녀는 초상화가인 주인공 ‘나’의 모델이 되며 가까워진다. 소녀는 어릴 때부터 이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대의 구석구석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자신만이 아는 비밀통로를 이용해 주인공의 집까지 걸어서 방문을 하곤 한다. 그 비밀통로로 묘사된 길이 산속 곳곳에 있었다. 이 길도 소설에 나온 길 같고 저 길도 나온 것 같고. 걸으면 걸을수록 소설 속 장면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해졌다. 계속해서 정처없이 걷다보니 주인공이 머문 아틀리에를 떠올리게 하는 건물도 마주치게 된다. 이 공간 어딘가에 소설에 등장하는 수리부엉이 혹은 작품 한 점이 숨겨져 있진 않을까. 그러다 멘시키가 살고 있는 흰색 저택 같은 건물이 멀리 감치 보이기라도 하면 여행의 흥분이 가중된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니 흰 건물은 큰돈을 벌어 이른 나이에 은퇴한 인물이 호화롭게 살고 있을 법한 대저택은 아니었다. 그래도 하루키는 이런 소재 하나 하나에 점점 살이 붙여 소설을 완성했을 것이다. 한 시간 넘게 걸었더니 남편이 얼린 칼피스를 녹이려고 음료수 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 목이 마를테고 몹시 지루한 모양이다. 슬슬 돌아가자고 했다. 내려가서 맥주나 한 잔 시원하게 마시자.\n이류다 · 일본 〒250-0031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n일본 〒250-0031 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nhttps://www.google.com/maps/search/?api=1&query=%EC%9D%B4%EB%A5%98%EB%8B%A4&query_place_id=ChIJx5-pp5yjGWARa5Hu-ZKjz-c\n생각해 보니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주인공이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 계절도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내내 비 내음 나는 듯 빗소리가 들리는 듯했으니까. 그래도 내려가는 길엔 산바람이 마치 선풍기를 세기 ‘강’으로 하여 틀어 놓은 것처럼 시원하게 불어 장마철 습한 공기를 최선을 다해 날려버리고 있었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42","published_date":"2024-04-09T01:21+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40,"source":"brunch","title":"22화 입 안 가득 감도는 진하고 신선한 달걀의 맛과 향","content":"이번 미국 여행은 정말 오랜만에 한때 매일 밤 책을 읽고 작품의 배경이 된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와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에 흠뻑 빠져 지냈던 나날들의 감정을 몇 번이고 상기시키게 해 준 여행이었다. 올해 여름 대학원 연수와 여행을 붙여 무려 보름이나 미국에 머물게 되었고, 몇 년 만에 탄 장시간 비행으로 이틀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날려버려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이 시간들이 아깝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을 만났다.\n그 순간 중 하나.\n포틀랜드에서 불어든 가을바람과 향기가 불어든 시간을 기억한다. 푹푹 찌는 날씨 거나 폭우로 습기 가득한 한국의 여름과 달리 저녁 무렵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브런치를 맛본 후 나온 포틀랜드의 시내에는 쨍하게 내리꽂는 햇빛도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가을이 왔음을 떠올리게 하는 가을 냄새가 묻어난 바람이 기분 좋게 불고 있었다. 곁에서 걷던 남편도 “이 바람 가을바람이다. 나 이 바람 좋아해.”라 말했다. 마침 나도 같은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n우린 파웰북스란 이름의 서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장서수가 상당할 것으로 보이는 규모가 큰 서점이었다. 포틀랜드 여행 기념이 될 만한 상품도 많이 팔고 있고, 하루키도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서 “만약 당신이 책을 좋아한다면 미국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독립형 서점 ‘파월’에서 천국에 온 기분으로 한나절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안에서 길을 잃을 정도로 드넓은 서점에 고서와 신간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가 빽빽이 꽂혀 있다.” 라 표현했 듯 한 번쯤은 들러볼 가치가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 나는 우선 베스트셀러 코너부터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인 책들도 몇 권 보였고 황보름 작가의 <휴남동 서점>도 12위에 서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며칠 전 다녀온 스탠퍼드대학 내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익숙한 책이 별로 없고 이런 책이 스탠퍼드에서는 잘 팔린다고? 싶은 책들이 많았는데, 파웰북스의 베스트셀러 책장은 좀 더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곳 논픽션 섹션에서 나는 2년 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은 <h마트에서 울다>란 에세이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어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이 순간은 우리의 다음 여행 여정의 길잡이가 된다. (이 여행은 다른 글로 풀어볼까 한다.)\n한참 베스트셀러를 구경하다가 직원에게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은 어디에 꽂혀 있는지 물었다. 알파벳 순으로 정리된 문학작품 섹션에 있었는데 책장 맨 밑 두 칸을 배정받고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살펴본다. 소설들은 대부분 있는 듯하고 최근 나온 음악이나 티셔츠에 관한 에세이도 꽂혀 있다. 그리고 <1Q84>엔 직원의 추천글도 쓰여 있는데 '퍼즐링이나 미스터리를 좋아한다면 혹은 하루키팬이라면 꼭 읽어봐야 한다'고 적혀 있다. 난 사실 미스터리를 즐겨 읽지 않지만 하루키의 팬이기에 1Q84가 머스트란 점엔 동의했다. 이전에도 몇 권이고 영어공부도 할 겸이라며 영문판 하루키 소설을 산 적이 있지만 영어판은 커녕 일본어판도 번역본을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호기롭게 사놓고 결국엔 다 읽지 못한 채 출간된 번역본을 마주해 온 나이기에 또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기로 한다. 그렇지만 그냥 돌아갈 순 없다. 하루키 작품의 배경여행을 위한 포틀랜드 여행이지 않은가! 이런 나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는 듯한 표지 속 원숭이와 개구리의 시선이 매우 따갑게 느껴졌다. 하루키의 단편 소설 몇 편을 만화로 구성한 책의 표지 속 원숭이와 개구리다. 이 두 권을 기념으로 사기로 했다. 아마 만화라면 반신욕을 하면서라도 한 두 페이지 정도는 볼 테니. 게다가 스토리는 이미 아는 내용이고.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고스란히 '하루키 컬렉션' 책장에 꽂힌 채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n사실 이번 미국서부 여행 출발 2주 전까지도 어딜 여행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랜드캐년이나 포레스트검프 포인트 등 유타주 쪽은 이미 다녀왔고 LA도 다녀왔고. 그러자니 북쪽으로 올라가 봐야 하는데 저번 가족 여행에서 나만 도쿄에 다른 일정이 있어 가보지 못한 시애틀이나 가볼까. 그렇다면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는 어차피 다시 샌프란시스코에서 타야 하니 중간에 포틀랜드란 큰 도시가 있네. 여기에 들러야겠다란 식으로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탑승을 며칠 앞 둔 어느날 갑자기 결정을 했고, 이곳이 하루키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란 여행에세이의 한 소재로 쓰였단 사실은 여행정보를 얻고자 읽은 <살아보고 싶다면, 포틀랜드>란 책 덕분이었다. 하루키의 여행에세이를 무척 좋아하는 나는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를 몇 번이고 읽었음에도 '가볼 일이 없겠지 싶어'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책에 담긴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란 제목의 에세이에서 하루키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두 곳의 식당과 근교에 있는 와이너리를 이야기한다. 우린 머물 곳도 같은 곳으로 할 겸 히스먼호텔(Heathman hotel)에 머물며 이곳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맛보기로 했다. (참고로 하루키는 저녁식사를 한다.)\n요리를 주문할 때만 해도 메뉴 자체가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라기 보단 어디서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호텔 조식의 전형적인 메뉴들이었기에 하루키와 똑같이 저녁식사로 할 걸 그랬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주문을 하고 한참을 기다려(커피를 두 잔이나 리필해서 마셔야 했다!) 나온 요리를 한 입 맛보곤 그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정말 놀랍게도 맛있는 키슈였다. 그 흔하디 흔한 키슈란 요리를 이토록 맛있게 요리할 수가 있구나. 달걀맛이 무척 진하게 감도는데 전혀 비리지 않고 신선함이 느껴진다. 푸딩같기도 하고 달걀찜 같기도 한데 분명 채에 달걀물을 여러 번 거르는 등의 수고를 했을 것이 예상되는 질감이었다. 무척이나 부드러운 가운데 탄력도 잃지 않았다.\n키슈의 진한 달걀 맛을 맛보고 나니 포틀랜드를 배경으로 하는 B급 감성의 시트콤 <포틀랜디아>의 첫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두 주인공이 식당에 들어가 치킨 요리를 주문하려는데 무척이나 까다롭다. 자신들이 주문하려는 요리에 들어가는 닭이 어느 농장에서 자랐는지? 무엇을 먹고 자랐는지? 닭이 먹은 음식은 로컬(포틀랜드산)인지? 유기농인지? 닭의 이름은? (콜린이다.) 그 닭의 삶은 어땠냐? 등의 질문을 하다가 결국 두 주인공은 닭이 자란 농장에까지 찾아간다. 그 정도로 포틀랜드 사람들이 로컬 식재료에 집착을 한다는 점을 희화하는? 에피소드다. 히스먼호텔의 레스토랑 타븐(Tavern)에서 식사를 해보니 비로소 그 에피소드가 이해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시트콤에 나온 음식이 실제로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함께 나온 샐러드 역시 예사롭지 않다. 올리브유 정도만 써서 드레싱도 가볍게 한 듯한데 간이 딱 맞고 싱그러운 풀향기가 그래도 입안으로 전해 들어왔다. 하루키 역시 포틀랜드의 요리는 기본적으로 조리 과정이 복잡하지 않고, 재료가 가진 자연의 힘을 조금 거드는 정도로만 요리를 한다고 표현했다. 무척 공감이 되는 표현이다.\n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남편이 시킨 연어 요리 역시 감탄의 연속이었다. 살이 탱탱하게 살아있도록 잘 구운 연어스테이크 위에 고기향이 나는 버섯, 어떻게 조리를 한 것인지 특유의 톡 쏘는 향을 잠재운 셀러리, 불향을 살려 구운 레몬, 어딘가 모르게 흙향이 남아있는 감자 등 잘 구워진 야채들이 올라가 있고 그 위에 노른자가 주르륵 흘러내리도록 완성시킨 수란이 올라가 있다. 재료 하나하나의 맛을 살리는 데 공을 들였지만 복잡할 것 없어보이는 요리법으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이 맛은 똑같이 구현할 순 없으리라. 곁들여 나온 소스 역시 블루치즈 향이 진하게 나고 꾸덕해서 이것만 퍼 먹어도 맛있었다. 하루키는 자신의 친구인 작가 폴 서루로부터 이곳을 추천받았다. 폴 서루의 책이 몇 권이나 집에 있음에도 좀처럼 완독 하지 못한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큰 상관은 없어 보이지만) 그의 혀에 무한한 신뢰가 생겨버렸다.\n아... 히스먼 호텔에서 한 끼 정도는 정말 꼭 한 번 먹어봐야 한다. 포틀랜드엔 유명한 스텀프커피도 있고, 맥주 와인도 유명하고, 버거빌이란 버거도 유명하지만 일단 이곳만큼은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46","published_date":"2024-08-06T13:14+09:00","scraped_at":"2026-04-05 06:43:23"},{"id":141,"source":"brunch","title":"미쓰키가 머문 풍경을 걷다","content":"그날 밤 나는 다 읽지 못해 도쿄까지 가져가게 된 『엄마의 유산』이라는 소설을, 무더운 도쿄의 밤하늘 아래에서 시원한 맥주를 곁에 두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곤\n내일 아침 일찍 하코네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n소설 중간 무렵, 주인공 미쓰키가 엄마의 죽음 끝에 하코네에 있는 한 호텔에서 장기 투숙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에 그려진 호텔의 모습이 너무나도 신경이 쓰인 나머지, 도쿄에 있는 동안 가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n생각해 보니 몇 해 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가마쿠라 여행에 『본격소설』이라는 책을 가져갔는데, 이 소설 역시 『엄마의 유산』을 쓴 미즈무라 미나에의 작품이었다. 혼자 머문 호텔 방에서 밤새워 읽고는, 다음 날 소설의 배경이 된 가루이자와, 오이와케를 찾아갔다. (이 이야기는 나의 여행 에세이집 『다정한 여행의 배경』에 담았다.)\n소설은 주인공 미쓰키와 언니 나쓰키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실버타운에서 환급받을 수 있는 비용에 대해 전화 통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시작한다.\n미쓰키는 파리로 유학을 가서 데쓰오를 만나 결혼했고, 대학 강사와 번역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성장했고, 50대인 지금도 겉보기엔 행복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릴 땐 주말마다 요코하마로 피아노 레슨을 가는 언니 나쓰키의 가방을 들게 하는 등 엄마 노리코로부터 차별을 받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간병을 모두 떠안았다. 엄마 노리코는 서구 귀족 문화를 동경하며 더 높은 계급에 속하기 위해 집착하는 삶을 살았고, 그녀의 어머니이자 미쓰키의 외할머니는 일본의 신문소설 『금색야차』에 빠져, 자신의 삶을 『금색야차』의 주인공의 삶에 투영시켜 버렸다. 3대에 거친 모녀간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어, 『본격소설』만큼은 아니지만 꽤 재미있게 읽었다.\n미쓰키가 머문 하코네의 야마노 호텔 주변은 한적하기 그지없는 평화로운 호반 마을\n이었다. 하코네 관광의 중심지인 아시노호(芦ノ湖)가 있고, 이 호수에 해적선 스타일의 유람선을 띄워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미쓰키와 노리코는 이 해적선 유람선의 품위 없음에 대해 비웃었지만, 나는 꽤 오래전 이 해적선을 탄 적이 있고 당시엔 그렇게 촌스럽단 생각을 하진 않았는데, 다시 보니 무척 촌스러운 배다. (그날은 시간대가 안 맞았는지, 멀쩡한 크루즈선만이 오가고 있었다.) 기왕 하코네까지 온 김에 근처 들러볼 만한 곳이 있을까 싶어 구글 맵을 뒤져보니 ‘하코네 역전 뮤지엄’이 있었다. 하코네 역전은 일본에서 매년 연초에 열리는 대학생 릴레이 경주 대회로, 1월 2일과 3일에 도쿄와 하코네 사이를 왕복하는 장거리 경주. 10개 구간을 각 팀의 선수 10명이 릴레이 형식으로 달린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갈 때 가족 모두가 NHK의 ‘홍백가합전’을 보고, 2일과 3일에는 닛폰 TV의 하코네 역전 중계를 보는 것이 일본 사람들의 전형적인 연말연시 풍경이다. 나도 종종 TV로 본 적 있고, 몇 해 전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라는 소설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조금의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역시 러너. 들어가 보기로 했다. 솔직한 감상으론 입장료 600엔이 아까울 정도로 너무 협소한 뮤지엄이었다.\n역전 뮤지엄에서 나와\n어슬렁어슬렁 걸어, 소설의 배경인 야마노 호텔까지 간다\n. 중간에 약 500미터 정도 되는 삼나무 산책로도 있다. 키 큰 삼나무들이 시원시원하게 뻗어 있어 무더위를 막아준다. 삼나무길에서 빠져나오면 아시노호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후지산 뷰포인트라 불리는 스폿에 서 보아도 후지산은 보이지 않는다. 날이 그리 흐리지 않았는데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목적지로 향했다.\n외관에서부터 역사와 기품이 느껴지는 호텔이었다. 『본격소설』 배경 여행으로 찾아갔던 가루이자와의 만페이 호텔 느낌도 났다. 만페이 호텔보다는 세련됨이 묻어났지만, 북적이는 관광지의 호텔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소설에는 이 호텔의 역사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적혀 있는데, 아시노호에 면한 이 호텔 부지에는\n스위스 호반의 별장을 모방해 지은 한 남작의 별장이 있었다\n고 한다. 실제로 호텔 설명문을 읽어보니 미쓰비시 재벌의 4대 총수였던 이와사키 고야타(岩崎 小彌太)의 별장이었고, 전용 골프장까지 있었다. 지금도 이곳 야마노 호텔은 철쭉 정원으로 유명해서 매년 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다고 하는데, 이와사키의 별장 시절부터 30종이 넘는 철쭉을 심은 정원이 있었다고 한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둘러본 정원은 철쭉 시즌이 아닌지라 볼거리가 많진 않았지만, 소설에 나온 결혼식장이 있어 살짝 웃음이 났다. “성서 따위는 읽어본 적도 없는 수많은 일본인이 어느새 십자가를 내건 예배당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중략)… 이 호텔도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이런 묘한 것을 세웠겠지만” 하며 냉소적인 시선으로 이 공간을 둘러본 미쓰키가 생각났기 때문. 정원 근처, 기분 좋게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노부부(가 아닐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쓰키 역시 이곳에서 호감을 느낀 마쓰바라 씨와 마주쳐 이야기를 나눴으니까)가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 광경이 소설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이 호텔의 분위기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걷는다. (특히 스마트폰이 아니라 문고본 책이라는 점에 있어서)\n미쓰키의 외할머니는 고베의 게이샤 출신으로, 운 좋게 부잣집에 시집을 가놓고 아들의 가정교사와 사랑의 도피를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외할머니 역시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야마노호텔로 변모하기 전 남작의 별장이었던 시절이다. 이곳은 몇 번의 개조를 거쳐, 현재의 모습은 프랑스의 고성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문득문득 이곳이 일본이 아니라 유럽인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 이유가 있었다.\n철쭉 시즌도 아니고 여름휴가로도 좀 이른 시기여서인지, 투숙객은 많지 않아 보였다.\n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등장하는 라운지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n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이 라운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노년의 부부 몇 커플과 초로의 여성 그룹이 있었다. 소설에 그려진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아니 완전히 똑같았고), 미쓰키가 젊은 여자와 바람난 남편을 떠올리며 노려보던 난로도 있었다.\n“요는 장기 체류객 중에서 제대로 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거네요.”\n가오루 씨가 시시덕거리는 어투로 선언했다.\n미쓰키는 약간 놀라서 말했다.\n“저도 제대로 된 게 아닌가요?”\n“하지만 당신은 어젯밤에도 온몸이 빨간 도깨비처럼 무서운 얼굴로 난로를 노려보고 있었잖아요.”\n— 『엄마의 유산』 중에서\n소설대로라면 홍차를 시켜 마시는 것이 마땅하지만(실제로 이곳은 홍차가 맛있기로 유명한 호텔이다), 푹푹 찌는 이 날씨에 어쩔 수 없이 맥주를 시키고 말았다. 이곳 호텔의 오리지널 알트비어라는데, 캐러멜 맥아를 듬뿍 사용했고, 호텔에서 나는 천연수를 사용했다는 이 맥주는 굉장히 맛있었다. 평소 일본 소도시를 구석구석 다니며, 지역마다 반드시 있기 마련인 지역 맥주(‘지비루’라 부르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꼭 한 번은 마셔본다) 나도 이 호텔의 맥주는 충분히 마셔볼 가치가 있다고 느꼈을 정도로 제대로 된 맥주였다. 단맛이 강하지만 쓴맛도 함께 강해서, 다른 안주가 전혀 필요 없을 정도.\n맥주만으로 완성체란 느낌이 들었다\n.\n야마노 호텔을 다녀온 다음 날, 나는\n미쓰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지토세후나바시역에서 내려 마을을 걸었다.\n지토세후나바시는 『본격소설』에도 등장하는 지명인데, 근처 지역엔 몇 차례나 왔음에도 지토세후나바시역에 내린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 작가 미즈무라 미나에의 본가가 근처였으리라. 그렇지 않고선 이곳의 과거와 현재를 그렇게 생생히 묘사할 순 없다.\n역에서 내려 마을을 걸으며, 남아 있을 리 없는 미쓰키와 나쓰키의 집을 찾아본다. 언니 나쓰키를 좋은 집에 시집보내기 위해, 혼담이\n들어왔을 때 체면을 세우기 위해 어머니가 좋아하는 서양풍으로 개축한 집이 있을까?\n찾아보는 일이 생각보다 즐겁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야마노 호텔을 다녀온 후에도 『엄마의 유산』을 다 읽지 못한 상태였는데, 지토세후나바시를 걸으며 오디오북으로 들었다. 산책의 최종 목적지로 삼은 고마자와대학 근처 식당에 도착했을 무렵, 귀에서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흘러나왔고, 소설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n“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n“네가 궁상맞은 데서 쪼들린 생활을 하는 게 싫어. 엄마의 유산은 역시 집을 마련하는 데 써. 2,100만 엔의 여분이 있으면 꽤 편해지지 않을까?”\n고개를 끄덕이는 여동생의 볼에, 어른이 되고 나서는 언니에게 거의 보여준 적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n— 『엄마의 유산』 중에서\n이 장면은 이 동네 풍경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식당에 들어가, 내 생애 먹어본 피자 중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 시라스시소피자(잔멸치와 일본의 깻잎인 시소 그리고 치즈가 듬뿍 올라가 있다)와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url":"https://brunch.co.kr/@istandby4u2/147","published_date":"2025-08-03T07:17+09:00","scraped_at":"2026-04-05 06:43:23"}]}